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273화 (273/277)
  • 273화

    *   *   *

    오즈월드는 삽시간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언급을 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지만.

    내가 이 점에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 갈까, 지우야?”

    처음 같이 하교한 이후로 자연스럽게 오즈월드가 내게 집에 가자고 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조금 잘한다는 것 외에는 달리 특별한 점이 없는…….

    아니, 더 냉정하게 말해서 별로 친구삼고 싶은 타입이 아닌 어두침침한 나.

    그리고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사는 듯한 오즈월드는 전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한데 오즈월드는 자꾸만 저와 어울리고 싶어 하는 애들을 제치고 꾸준히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 오늘 자전거 타고 왔는데.”

    오즈월드는 부잣집 도련님이라 고급 세단을 타고 등하교한다.

    반면 나는 우미가 차를 이용하지 않는 날에나 그런 일이 가능한 부잣집의 군식구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조차 우미는 늘 내가 걸어서 등하교하기를 바랐기에 절대로 차를 사용할 수 없게 했다.

    ‘그래서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지.’

    오즈월드는 뭐가 문제냐는 투로 말했다.

    “자전거는 차에 실으면 되잖아.”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거절하기가 어려워졌다.

    ‘오늘도 어영부영 오즈월드네 차를 타고 하교하게 생겼네.’

    나는 자전거 보관소에서 내 자전거를 찾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자전거를 세워둔 자리에는 줄이 똑 끊어진 자물쇠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새아버지가 상당히 좋은 자전거를 사주시기는 했지만, 설마 하루 만에 도둑맞을 줄이야.

    “하아.”

    자전거를 잃어버렸다고 말했을 때 엄마가 날 쉼 없이 질책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옆에서 가만히 날 응시하던 오즈월드가 물었다.

    “자전거 잃어버렸어?”

    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자전거를 찾아야 하니까 너 혼자 집에 가야겠다.”

    그러자 오즈월드가 기분이 가라앉은 날 응원하듯 어깨를 토닥이며 다정하게 말했다.

    “같이 찾아줄게. 일단 경비실로 가보자.”

    그는 위쪽의 방범 카메라를 가리켰다.

    “이 위치면 저기에 찍혔을 거야.”

    “아니, 괜찮은데…….”

    “남자가 자전거를 훔쳐 갔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같이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내게 어른의 기억이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몸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심지어 또래보다 키가 작은 편이고 삐쩍 마른.

    그러니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오즈월드가 나서준다면 3살은 더 많은 소년이라고 해도 섣불리 행동할 수 없을 듯했다.

    “고마워. 자전거 찾으면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아, 못 찾아도 사줄게!”

    내 말에 오즈월드는 “하하!”하고 상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스크림? 응, 기대된다.”

    왜 저런 반응이지? 애들은 다 아이스크림에 환장하지 않나?

    오즈월드는 경비실로 가서 자전거를 도둑맞았는데, 범인을 찾고 싶다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경비원은 순순히 CCTV 화면을 보여줬다.

    녹화 화면을 확인해보니 불과 10분 전쯤 고학년으로 추정되는 남자애가 자물쇠를 끊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오즈월드는 남자애가 걸어가는 방향을 주시하며 내게 말했다.

    “고학년은 아직 수업이 남아있으니까 학교에서 못 나갔을 거야. 아마 주인이 찾지 못할 장소에 숨겨뒀을 거 같은데?”

    충분히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내 생각에도 그래.”

    “나가서 찾아보자.”

    우리는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자전거를 찾아보았으나, 대체 어디에 숨겼는지 그 눈부신 은빛 몸체의 자전거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때였다.

    1시간쯤 돌아다니다가 지쳐서 포기할까 생각하던 중, 코앞에서 누군가가 내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휙 지나쳐갔다.

    “저기! 저거 내 자전거야!”

    내 외침에 자전거 도둑이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애는 내가 쫓는 모습을 발견하더니 페달을 더 세게 밟기 시작했다.

    “야, 거기서! 이 도둑아!”

    하나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려도 자전거를 탄 애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이대로라면 놓친다.

    ‘그건 안 돼!’

    “멈춰!”

    끼이익!

    그 순간, 운동장을 가로질러 어느새 교문을 통과하고 있던 자전거 도둑이 코너를 돌다가 넘어졌다.

    ‘기회다!’

    나는 얼른 달려서 자전거 도둑을 조금이라도 따라잡으려 했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통화 중인 오즈월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애 좀 붙잡아주실래요? 친구 자전거를 훔친 애라서요. 네, 그 남자애 맞아요.”

    ‘뭐지?’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즈월드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교문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자전거 도둑을 붙잡고 있었다.

    아마도 오즈월드가 등하교할 때 차를 운전하는 직원인 듯했다.

    오즈월드는 통화를 끝내고는 내게 교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자전거 찾으러 가자.”

    나는 우물쭈물 그를 따라갔다.

    자전거는 무사히 되찾았다. 그리고 자전거 도둑은 마침 지나가는 선생님께 인계했다.

    오즈월드가 본인 일처럼 나서서 전부 도와준 덕분에 별 탈 없이 무사히 소동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남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았는데.’

    그는 상냥하긴 하지만, 타인에게 무관심한 쪽이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도와줘서 고마워.”

    오즈월드는 “뭘.”이라며 담백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도와준 사실을 특별히 뽐내지 않는 태도가 무척 어른스러웠다.

    나는 이대로 오즈월드의 차를 얻어타는 신세까지 지려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리켰다.

    “아이스크림 먹고 갈래?”

    딸랑!

    아이스크림 가게 문에 달린 종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우리는 진열대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확인했다.

    “바닐라 맛으로 주세요.”

    내가 신중하게 맛을 골라 주문할 동안 오즈월드는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꼭 이런 곳에 처음 와본 사람처럼.

    ‘그럴 리가 없지.’

    부잣집 도련님인데.

    나는 의아하게 물었다.

    “안 골라?”

    오즈월드는 아이스크림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걸로 골라줘.”

    뭐야. 진짜로 처음 와보나?

    ‘아이스크림은 불량 식품이라고 입에도 대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집안인가?’

    드라마에서 보면 컵라면 하나 먹어본 적 없는 재벌 3세가 등장하지 않는가.

    오즈월드도 그런 경우인가 싶었다.

    그렇다면 속세의 맛을 알려줘야겠군.

    그때 문득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이왕 속세의 맛을 알려줄 거면 호불호가 갈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여볼까?’

    나는 재빨리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주문해서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맛이야.”

    “그래? 잘 먹을게.”

    오즈월드는 미소 지으며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어보더니 멈칫했다.

    “…이게 지우 네가 좋아하는 맛 중 하나라고?”

    “응. 왜, 맛없어?”

    “아냐. 맛있어.”

    대답에 영혼이 없었다.

    나는 작게 킥킥 웃다가 아직 한 입도 먹지 않은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과 바꿔주었다.

    “장난이야. 민트 초코는 내가 먹을 테니까 넌 이거 먹어.”

    오즈월드는 잠깐 내가 든 아이스크림을 응시하더니 순순히 바꿨다.

    맛있다고는 말했지만 실은 별로였던 게 틀림없었다.

    그가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걸 확인하고 놀리듯 물어봤다.

    “그건 맛있어?”

    오즈월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적어도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맛이기는 하네.”

    얘도 가만 보면 말을 웃기게 했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그에게 안 좋은 편견을 많이 갖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오즈월드가 친절하고 상냥한 듯 보이지만, 실은 위험하고 폭력적인 사람일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든다고 해야 할까?

    하나 막상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냥 평범한 남자애였다.

    심지어 회귀한 기억 때문에 또래와는 유치해서 말도 섞기 싫은 나와 매끄럽게 대화가 가능한 상대이기까지 했다.

    뜻밖에도 오즈월드는 말이 잘 통했다.

    그는 시종일관 여유롭고 부드러운 태도여서 내 딱딱한 성격으로도 대화가 잘 이어졌다.

    “네 이름 너무 길어서 부르기 힘들어.”

    “애칭으로 오스윈이라고 부르기도 해.”

    “그것도 긴데. 그냥 오즈라고 하면 안 돼?”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생각해보면 이 애에 대해 불편한 편견을 가지게 된 데에는 ‘호감도’도 크게 한몫했다.

    ‘이렇게 친절한 애가 왜 검은 하트일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그머니 핸드폰을 열어 호감도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

    호감도는 물론 참조 내용에 변화가 생겼다.

    [오즈월드 홀튼]

    호감도: ♥♡♡♡♡

    ※붉은 하트를 5개 달성할 시 ‘청혼’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청혼!’

    그건 분명 퀘스트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퀘스트를 다시 확인해보자.’

    [던전 퀘스트: 제로베이스 서울]

    당신의 기억은 현재 대부분 잠금 상태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서울’에서는 분명 노력에 대한 보상이 주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선택의 순간, 어느 한쪽을 고르면 다른 한쪽은 영원히 잃게 됩니다.

    ▸■■: ‘■■’로 살아간다.

    ▸■■: ‘■■■’로 살아간다.

    ※가려진 부분은 ‘청혼’ 이벤트 달성 시 해금됩니다.

    ‘이 내용이 오즈월드와 관련된 거였다니…….’

    사실 눈치채려면 진작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일하게 나에 대한 호감도가 뜨는 상대.

    누가 봐도 특별한, 이 세상의 주인공처럼 생긴 외모.

    그는 이 퀘스트의 대상이 아닐 리가 없는 특징을 모조리 가지고 있었다.

    ‘청혼이라니. 그럼 내가 얘랑…….’

    결혼해야 한다는 뜻인가?

    방금까지 고마운 친구로만 보였던 오즈월드가 순식간에 불편해졌다.

    “아이스크림 다 녹겠다, 지우야.”

    “어? 어.”

    나는 얼른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아이스크림을 떠먹었다.

    오즈월드가 퀘스트 대상임을 알게 되자, 어쩐지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BJ악역영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