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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67화 (267/277)

267화

내가 말뚝을 제거하고 있자 어느새 다가온 주민들이 쭈뼛거리며 물었다.

“벌써 끝났습니까?”

“네. 땅은 아직 정화하는 중이기는 해도, 마수는 근처에 없어요. 안심하고 지내셔도 돼요.”

주민들은 매우 기뻐하며 내게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마을 촌장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헝겊 주머니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대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약소하지만 이거라도 받아주십시오, 공녀님.”

주머니 안에는 돈이 들어있을 게 분명했다.

“이런 거 말고, 따로 받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가요?”

“제가 아직 한 끼도 안 먹어서요. 점심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삶은 감자도 괜찮아요.”

촌장 할머니는 잠깐 당황하더니 이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귀하신 손님께 그런 걸 대접할 수는 없지요. 자자, 다들 손 좀 보태주시게. 공녀님을 위해 한 상 거나하게 차려보세나.”

그때 은근히 기죽은 얼굴을 하고 있던 청년이 먼저 나섰다.

“제가 돕겠습니다!”

나는 서로서로 솜씨를 부려보겠다며 나서는 주민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엘로이즈한테 오늘 저녁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야겠다.’

이들이 준비한 음식을 전부 맛만 보아도 저녁까지 배가 꺼지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주민들이 전부 음식을 해오자 그야말로 잔칫상이 차려지고 있었다.

나와 주민들은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점심을 들었다.

촌장 할머니는 내게 국자로 고기만 골라서 퍼 올린 스튜를 듬뿍 떠주며 물었다.

“한데 귀하신 분께서 어찌하여 홀로 이런 데까지 오셨습니까?”

“학교를 땡땡이치는 중이거든요.”

띠링!

[성좌 ‘미운 22살 테레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아 제발! 방금까지 되게 멋있었잖아ㅠ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주민들은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학교를… 예?”

나는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정황을 설명해주었다.

“학교에 가기는 싫은데 퇴학당하지 않으려면 명분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겸사겸사 마수를 정화하고 침식된 지역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학교를 빠지고 있어요.”

“아아…….”

묘하게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다 한 아주머니가 픽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공녀님께서 참 좋은 일을 하시는 건 맞는데, 꼭 제 아들내미가 할 법한 말씀을 하시네요.”

그 한마디로 식탁에 웃음이 흘렀다.

“나라를 구한 영웅도 공부는 싫은가 봅니다. 하하하!”

“저 공부 좋아해요.”

억울한 오해에 해명하자 다들 농담으로 받아들인 건지 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진짠데.”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버터 냄새가 고소하게 풍기는 빵을 큼직하게 뜯어 먹었다.

풍족한 식사가 끝난 후 밖으로 나오니 정화 작업을 끝낸 말이 도도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을 아이들은 무서워서 함부로 다가가진 못하고 있었지만, 마법 동물의 신비로움에 완전히 매료된 표정으로 근처를 서성거렸다.

그때 한 소년이 내게 달려와 물었다.

“저 말, 마법 동물이죠? 공녀님이 키우는 말인가요?”

“요한! 공녀님께 무례하게 굴지 말아라!”

소년의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며 이곳으로 다가와 아들을 끌고 가려 했으나 내가 만류했다.

“전혀 무례하지 않으니까 괜찮아요. 네 이름이 요한이니?”

요한은 아버지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이름은 요한입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공녀님!”

하는 말과 명랑한 표정이 전혀 매칭되지 않은 걸 보니, 아마도 내가 마을에 나타났을 때 급하게 배운 표현인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꼬마들을 불렀다.

“마법 동물은 우리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어.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도 알아차리지. 그러니 존중하며 대해야 해.”

“우와아아.”

“그리고 이 말은 내 일을 잠시 도와주는 동료일 뿐, 가축이 아니야.”

“저 알아요! 마법 동물은 사람을 따르지 않는댔어요! 하지만 공녀님은 마법 동물을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그랬어요!”

아이들의 반짝이는 시선이 말에서 내게로 옮겨졌다.

이런 멋진 동물을 부릴 수 있는 내가 엄청나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건 아니야. 난 마법 동물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이런 친구들이 내 부탁을 좀 더 잘 들어주는 것뿐이지.”

“와아! 그런데 이 말 이름은 뭐예요?”

“그런 건 없어.”

“에이.”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주민들이 다가와 아이들을 저지했다.

“자자, 다들 질문은 그만하거라. 이제 공녀님께서는 다른 곳으로 떠나셔야 한단다.”

주민들은 내가 마을 입구까지 가는 동안 졸졸 따라오며 배웅했다.

“이거 받으세요.”

나는 말에 오르기 전에 아공간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촌장 할머니께 내밀었다.

“점심값이에요.”

“네? 어휴, 제대로 대접도 못 해드렸는데 돈은 무슨요. 이렇게 마을을 안전하게 구해주셨으니 저희가 뭐라도 더 드려야지요.”

그 말에 나는 돈주머니를 하나 더 꺼냈다.

“그럼 더 드릴 테니까 마을 재건하는 일에 쓰세요. 이제 땅도 전부 정화되었는데, 돈 들어갈 일이 많을 거예요.”

그 말에 주민들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정말입니다! 새까맣던 땅이 다 갈색빛으로 바뀌었어요!”

“이 부근으로 다시 농사도 지을 수 있겠습니다!”

촌장 할머니는 기뻐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주름진 손으로 돈주머니를 받았다.

“이것 참… 감사합니다, 공녀님.”

주민들도 감동한 표정으로 내게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인사했다.

이럴 때 발휘해야 하는 처세술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얼른 도망치는 거였다.

“저는 이제 가볼게요.”

나는 말에 올라타 주민들의 인사를 뒤로하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는 바로 데미안의 집이었다.

*   *   *

나는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말에서 내렸다.

“지금까지 고마웠어.”

“푸르륵!”

함께 고생해준 말과 포옹한 후 멀리 떠나보낸 다음, 황량한 분위기가 흐르는 마을로 진입했다.

이곳은 시내와 조금 떨어진 장소이기는 하지만, 길이 정비되어 있으며 집들도 좀 더 발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공터를 기준으로 건물이 듬성듬성 있는 마을은 인기척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 마을이 원래 마수에게 습격받을 예정이었다가 내가 미리 대비해두어서 안전해진 곳이었지.’

데미안이 스콰이어 장학재단 소속 장학생이라 기사들에게 떠들썩하게 돌아다니도록 지시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데미안 집이 아마도 여기인 것 같은데.”

띠링!

[성좌 ‘금쪽같은 내 새끼 데미안’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데미안 집은 처음 와보네… 데미안이랑 함께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주인이 없는 집에 당당히 무단침입했다.

지능 SSS급 마법사에게 문을 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데미안은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이 집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가구들에 먼지가 쌓여 있어 유독 더 썰렁한 분위기가 흘렀다.

“간단하게 청소만 좀 해둘까.”

잠깐 신세 져야 할 듯하니 마법으로 집을 청소한 후 창가에 놓인 식탁에 걸터앉아 회중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오후 6시 15분.

“아직 6시간 가까이 남았네.”

띠링!

[성좌 ‘물음표살인마’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거예요?]

띠링!

[성좌 ‘설명충’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늘이 9월 30일이라서 온 듯? 자정되면 차원의 문이 활성화되니까 보상 얻으려고 온 거 같은데]

성좌의 말대로였다.

‘오늘은 보상 대신 진짜 낙원의 문이 열리겠지만.’

하나 낙원 엔딩을 볼 생각은 없었다.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시간을 확인했다.

바깥이 어두워져서 시간이 꽤 흐른 줄 알았는데 아직도 오후 6시 50분이었다.

“한참 남았네.”

마법서를 읽거나 새로운 마법을 연구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겠지만 일부러 그런 일들은 하지 않았다.

너무 몰두하다가 자정을 한참 지나쳐서 10월 1일이 된 사실을 깨달을까 봐서였다.

그것도 아니면 낙원의 문을 열었을 때 내가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날지 아닐지를 생각하느라 아예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크게 하품하며 침대로 가서 풀썩 드러누운 채 천장을 응시했다.

9월의 마지막 날이라 빠르게 해가 저물어 사방이 캄캄해진 와중에도 램프 하나 켜지 않았다.

멍하니 눈꺼풀만 깜빡거리고 있는데 후원 알림이 떴다.

띠링!

[성좌 ‘데릴사위 데미안’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데미안 생각하나 봐 ㅠㅠ]

전혀 아니었다.

지금 난 아무 생각도 없기 때문이었다.

‘당장 찾을 수도 없는 사람을 내내 생각하며 우울한 기분에 젖어 있고 싶지도 않고.’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엿 같은 상황이었다.

굳이 스트레스받는 생각을 일부러 계속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나는 졸음을 견디며 눈꺼풀을 느리게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다가 시간이 한참 흘렀다 싶었을 때 램프의 불을 밝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1시 58분이었다.

‘딱 맞췄네.’

데미안의 집에 존재하는 낙원의 문은 벽면의 커다란 책장을 옆으로 밀어야 발견할 수 있었다.

드드드드!

마법으로 책장을 옮기자 내 기억과 똑같은 형태의 문이 드러났다.

“후우.”

문고리를 쥔 순간 갑자기 차오르는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긴 숨을 내뱉었다.

이 문을 열었을 때 낙원이 아닌 클라이드가 나타나기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만일 그가 나타난다고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달칵.

하지만 그래도 나타나 주길 바라며 문을 열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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