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오즈월드는 안부를 주고받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반응했다.
“이제는 저와 잘 지내는 척 연기할 생각도 없는 모양입니다.”
“네. 아직은 그럴 마음이 안 들어서요.”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마음이 안 들 예정이었는데, 오즈월드는 굳이 물어보았다.
“제가 어떻게 하면 그럴 마음이 들겠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누군가를 싫어해 본 경험이 처음이라서.”
내가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말하자 오즈월드는 잠깐 침묵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군요, 테레제 양.”
“미친 새끼.”
본인을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드디어 솔직해졌다고 평가하는 게 정말로 미치광이 같았다.
상종하고 싶지도 않아서 뒤돌아 나가려는데, 돌연 낚싯줄에 꿰인 것처럼 몸이 뒤로 휙 끌려갔다.
오즈월드는 내가 넘어지지 않게 허리를 받쳐 안았다.
“조심해야죠.”
그러면서 이딴 소리나 지껄이는데 열이 확 뻗쳤다.
“정말 미쳤어? 뭐 하는 짓이야!”
“줄 게 있습니다.”
“필요 없어. 그리고 다시는 내게 이딴 짓 하지 마.”
오즈월드는 들은 척도 않고 책상 서랍에서 책 하나를 꺼내더니 내게 쥐여줬다.
“레시피북입니다. 앞으로 강의에서 다룰 내용도 쓰여있죠. 당신 친구가 무척 갖고 싶어 하던데. 전달해주시겠습니까?”
이걸 갖고 싶어 하는 친구는 다름 아닌 레이니였다.
오즈월드의 강의 수강 신청은 역대 최고로 치열했고, 안타깝게도 레이니는 등록에 실패했다.
그래서 강의가 끝나는 대로 강의에 나온 레시피를 레이니에게 알려줬다.
분명 레이니가 이 책을 받으면 무척 기뻐할 것이다.
척 봐도 딱 한 권만 제작한 비매품으로 보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책을 그의 가슴팍에 집어 던지며 신랄하게 비아냥거렸다.
“왜? 내가 너무 말을 안 들으니까 친구를 들먹이면서 회유하려고?”
오즈월드는 몹시 공격적인 내 태도를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제 호감도가 떨어지는 일이 무섭지 않은 가보죠?”
나는 분노로 어깨를 들썩거리면서도 더는 쏘아붙이지 않았다.
오즈월드의 호감도가 검은 하트가 되었을 때, 이 세계에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예측해보건대, 내게 최악의 상황을 보여줄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자존심 상하고 불쾌했지만, 계속해서 감정적으로 굴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결국 내가 분노를 누그러뜨리며 적대감을 표출하던 것을 멈추자 오즈월드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저는 솔직한 당신이 좋습니다, 테레제 양. 다만 그런 식으로 피곤하게 구는 건 방송에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태도라서 말입니다.”
“하.”
방송 걱정하는 사람치고 본인이 지금까지 한 행동이 너무 쓰레기 같지 않았나?
“행동을 똑바로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나는 연구실 문을 부숴버릴 듯이 쾅 닫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다행스럽게도 오즈월드는 날 붙잡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오즈월드는 종잡을 수가 없는 미친놈이었다.
내가 반항하면 재미있어하다가 금방 싫증 내며 피곤하다고 하지를 않나.
그렇다고 또 순순히 굴면 지루해하며 날 공격했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죽여버리고 싶었다.
“2학기 내내 이 상태로 학교에 다녀야 하나?”
그랬다가는 내 정신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오즈월드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서 고군분투 중일 아군에게 잔뜩 손해를 끼치는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하아. 돌아버리겠네.”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침대에 풀썩 엎드렸다.
극한까지 몰려드는 스트레스에 마구 소리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그냥 강의를 다 째버릴까?”
앞뒤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불쑥 내뱉은 말이었는데 매우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학교 안에 있어봤자 기숙사에 처박혀 있는 것 말고는 오즈월드를 확실하게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행동하면 리비나 친구들이 걱정할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아예 학교를 벗어나 버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제적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출석하고 시험만 잘 보면 되겠지.”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사유로는 멸악 활동을 들먹이면 될 테고.
내가 그냥 강의를 안 듣겠다는 것도 아니고 멸악 활동을 열심히 한다면 학교에서 편의를 봐줄 것 같기도 했다.
좋아. 결심은 끝났다.
나는 당장 활동적인 옷으로 갈아입은 후 우다다 계단을 내려갔다.
갑자기 내가 뛰어 내려오자 엘로이즈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디 가세요, 아가씨?”
“학교라는 굴레를 벗어나 세상을 구하러.”
“…??”
엘로이즈는 미간을 좁히며 ‘무슨 말을 하는 거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명랑하게 외쳤다.
“저녁 식사 전에 돌아오세요~!”
* * *
학교를 빠진 지 2주가 흘렀다.
나는 후드가 달린 얇은 로브 차림으로 금빛 마력을 뿜어내는 말을 타고 있었다.
“이쯤에서 멈춰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 말이 내 말을 알아듣고 제자리에 멈췄다.
사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앞에서 풍겨오는 사악한 마기를 느끼고서 알아서 멈췄으리라.
멸악 활동을 시작한 첫날에 구해준 이 말은 그때부터 나와 침식된 지역을 돌아다니는 동료가 되었다.
나는 말에서 내려 새까맣게 오염된 흙을 만져보았다. 침식 진행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는 양호하네?”
고스트 고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땅을 정화하고 있는 건지,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오염된 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 침식 진행도면 꽤 까다로운 마수가 나오겠어.”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침식 전문가 다 됐네… 난 사랑 전문가가 되길 바랐는데…]
정상적인 땅과 침식된 땅의 경계를 따라 범위를 가늠하던 중 마을이 보였다.
“이런……. 마수가 이쪽으로 도망칠 수도 있겠는데.”
본격적으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멸악 활동에 착수하면서 몇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우선 내가 경험한 마수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마수 중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타입은 지능형이었다.
특히 지능형 마수는 보통 은닉에도 특화된 경우가 많았다.
지능형 마수를 상처입히지 않고 정화하는 일은 상당히 고난도 작업에 해당했다.
“게다가 마을이 껴 있으니 주민들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도 있고.”
하아. 골치 아프네.
초반에는 이런 경우가 발생했을 때, 별생각 없이 일대 전체에 정화 마법을 퍼부어버리고 포션으로 마력을 보충했었다.
하나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마력을 사용하는 만큼 체력도 소모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 기절할 듯한 피로감을 안고서 쓰러져 눕기를 여러 번.
이제는 마력이 많다고 펑펑 써버리는 무식한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때에 사용하기 좋은 마도구를 개발했다.
깡! 깡! 깡!
로브로 모습을 꽁꽁 감춘 채 마을 근처에서 망치를 두드리고 있으니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보시오! 거기서 뭐 하는 거요?”
나는 말뚝 형태의 마도구를 설치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마수를 정화하러 온 마법사입니다.”
내 로브는 딱 봐도 마법사들이나 입게 생긴 형태라 이 정도로만 설명해도 다들 “오오.”하고 수긍하며 넘어갔다.
하나 이번 마을은 경계심이 유독 강했다.
“마법사라면서 왜 이상한 걸 설치하고 있소? 그리고 어떤 마법사가 이런 보잘것없는 마을을 도와주려고 찾아온단 말이오?”
강직하게 생긴 청년이 매서운 표정으로 다그치자 다른 이들도 동조했다.
“마법사는 보통 귀족인데, 그들은 이런 곳에 오지 않아!”
“마법협회에서 파견 보낸 거라면 협회원이라는 증거가 있겠지!”
이런 때도 물론 대응할 방법이 있었다.
나는 후드를 끌어내렸다.
그러자 내 얼굴을 확인한 주민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본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띠링!
[성좌 ‘나 이거 알아’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페이스 인증]
유지스의 요구에 따라 화려하게 집으로 귀환했던 날 이후로 나와 리비의 얼굴은 전국구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덕분에 이렇게 얼굴만 보여줘도 다들 의심을 풀었다.
가장 앞장서서 날 경계했던 청년은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하나 나는 그런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먼저 손을 내저었다.
“사과하지 마시고, 살려달라고 빌지 마시고, 죽여달라는 말도 하지 마세요.”
“그, 그럼 저희가 뭘 해야 할까요, 공녀님……?”
“안전한 장소로 대피해 있으세요. 이 일대를 정화할 예정이니까요.”
주민들은 처음에는 말귀를 못 알아들은 표정으로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다 자신이 들은 말을 의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더니 이내 놀라워하거나 감격했다.
저런 반응도 처음에는 머쓱하고 쑥스러웠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다.
나는 주민들이 감격하는 시간을 기다려준 다음 멀리 보내놓고 마도구를 작동시켰다.
우웅!
이 마도구는 마수의 인지력을 교란하는 기능이 있었다.
이어서 새로운 마도구를 꺼냈다.
바로 정화 수류탄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해.”
머리가 좋으면 몸이 편안해진다.
나는 수류탄 핀을 뽑아 숲을 향해 몇 번 집어던지는 것으로 원숭이 마수들을 전부 정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너희가 끝이지?”
내 질문에 마법 동물들이 온순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땅을 정화해야겠다.”
침식된 땅을 정화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는 강한 정화 능력을 보유한 마법 동물들만 가능했다.
나는 동료가 된 말에게 마력을 듬뿍 먹여주며 부탁했다.
“이 근방을 다 정화하고 와줄래?”
“푸르륵!”
그러자 얌전히 곁을 따라다니던 말이 금빛 마력을 잔상처럼 휘날리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녀석이 한바탕 휘젓고 돌아오면 땅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으리라.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