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 * *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오즈월드의 연구실을 찾아갔으나 문이 잠겨있어 그대로 강의실로 향했다.
어디 외출했나 싶어 의아했는데, <마법 식물과 연금술> 강의실에 오즈월드가 아닌 펠릭스 교수가 들어왔다.
“안녕, 얘들아~! 좋은 오후지?”
들뜬 상태로 오즈월드만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은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표정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발렌시아 교수님은요?”
“일이 생겨서 내게 레시피를 전달하고 가셨단다. 레시피 순서에 따라 포션을 제작한 후 제출하도록!”
띠링!
[성좌 ‘오사장한테 충성하는 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엄청 바쁠 것 같은데 어떻게 계속 남주로 있나 했더니 결국 판테온 갔나 보네]
나는 다른 곳에 시선이 팔린 척하며 후원 내용을 살폈다.
‘계속 판테온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모양이네.’
오즈월드가 오늘 강의를 펠릭스 교수에게 맡겼다는 말에 강의실 안은 순식간에 웅성거림이 번졌다.
“하지만 저희끼리 만들었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하나요?”
“재료는 전부 딱 맞춰 준비되어 있고, 오늘 만들 사탕 포션은 테레제가 잘 아는 내용이라 도움받으면 제출까지 문제없을 거라던데?”
펠릭스 교수는 그렇게 설명하며 내게 씩 웃는 얼굴로 손을 까딱거렸다.
‘졸지에 또 조교 일을 하게 생겼군.’
나는 원래 오즈월드가 직접 시범을 보여야 할 자리에 서서 오늘 만들 사탕 포션을 제조했다.
“이렇게 해서 걸쭉하게 끓인 다음 틀에 부어서 굳히면 끝이야. 다들 시작해.”
나와 펠릭스 교수는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제작 과정을 확인하고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했다.
“여기 레시피 순서 틀렸어. 이대로라면 폭발하는 포도의 성분이 남아있어서 작은 폭탄이 만들어지는 거나 다름없게 돼.”
“…….”
“이해했어?”
“네.”
내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학생이 대부분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뚱한 얼굴로 비협조적으로 구는 학생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이자벨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 말해, 말해.”
“이 강의는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개설되어서 다들 초보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선배라고 해도 같은 학생이 저희를 봐준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아서요.”
띠링!
[성좌 ‘눈치 챙겨’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제는 같은 학생이 아니지]
“응? 테레제가 너희랑 같은 수준이라고 누가 그래?”
펠릭스 교수는 여전히 유쾌한 태도였지만 목소리에 날카로움이 있었다.
“테레제는 같은 학생이 아니지. 쟤는 이미 교수해도 될 수준인데.”
“테레제 선배님이 물론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신 건 인정하지만…!”
“잠깐만. 간단한 질문 먼저 할게. 자, 여기서 다섯 가지 마법 식을 중첩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
“…….”
“한 학기 동안 개량 마법 논문 서른 개 이상 제출한 사람?”
“…….”
“방학 동안 신마법 열 개 이상 제작한 사람?”
이번에도 침묵이 흐르나 했는데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없습니다, 교수님!”
그러자 경직된 분위기가 한순간에 풀리며 웃음이 흘렀다.
반면 날 싫어하는 걸로 추정되는 무리의 표정은 오물을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
펠릭스 교수는 여전히 장난기 어린 태도로 말을 마저 이었다.
“나도 다 못한 거니까 당연히 없겠지. 납득했으면 뛰어난 학생회장님이 너희들을 계속 봐줘도 괜찮을까?”
“물론입니다, 교수님!”
“저는 좋습니다! 저 좀 봐주세요, 회장님!”
‘하아. 이런 식으로 대놓고 대척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펠릭스 교수가 곁으로 다가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인기인의 삶은 피곤하지?”
“인기인은 무슨요. 그런 거 아니에요.”
“네가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은 걸 가져서 그래. 어쩌겠어? 네가 너무 매력적이라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남자는 전부 너 좋다고 난리인데.”
“제발요, 교수님. 누가 들을까 봐 겁난다고요.”
“왜애? 사실이잖아.”
펠릭스 교수는 낄낄 웃다가 내게 작게 속삭였다.
“근데 난 일리야 교수 편이다? 지금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러게요.”
천계로 가는 문을 열 방법이라도 찾아야 하나 고민스러울 지경이었다.
* * *
강의가 끝나고 도구를 챙겨 오즈월드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당연히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연구실에서 누군가가 날 향해 쾌활하게 인사했다.
“오오옷, 안녕하세요!”
“?”
의아하게 고개를 돌리자 소파에 앉아있던 웬 여자가 날 향해 손을 흔들며 벌떡 일어났다.
새파란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묶고 입술은 초록색으로 바른 상당히 펑키하고 파격적인 차림의 여자였다.
“…혹시 채널 관리자인가요?”
“아뇨! 저는 관리자 연합 캐스팅 디렉터 주피라고 해요. 이건 제 명함!”
나는 떨떠름하게 주피가 내민 명함을 받았다.
관리자 연합 캐스팅 디렉터?
채널 관리자를 캐스팅한다는 뜻인가?
“참, 지금 성좌님들은 광고 때문에 저희를 못 보시니까 편하게 행동하셔도 괜찮아요.”
사실 평소에도 딱히 성좌들을 의식하지는 않았다.
오직 텍스트로만 존재감을 알 수 있어서인지 별개의 존재 같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불편한 쪽은 갑자기 나타난 주피라는 여자였다.
“평소에도 딱히 불편하진 않았어요.”
“역시 랭킹 1위는 다르시네요!”
그게 무슨 상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에, 뭐.”하고 대충 대답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이제 엔딩까지 얼마 안 남으셨죠?”
단순히 날짜만 따졌을 때 5개월이 채 남지 않았으니 그렇다고 볼 수 있었다.
“네.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기는 했어요.”
시나리오와 너무 많이 어긋나서 이 이야기가 언제 어떻게 마무리 지어질지 전혀 예상되지 않지만.
주피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제 방종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후의 삶에 대해 슬슬 생각해보실 때겠네요. 이곳에서 계속 테레제 스콰이어로 살아가거나 혹은 원래 살던 곳에 가거나 말이에요.”
원래 살던 곳이라…….
“글쎄요. 지구로 돌아가지는 않을 생각이기는 해요. 여기가 훨씬 좋아서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혹시 아예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떠세요?”
“새로운 삶이요?”
주피가 짜잔! 하고 외치는 듯한 포즈로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네! 바로 당신이 채널 관리자가 되는 겁니다!”
내가 딱히 아무런 반응도 없이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자, 주피는 머쓱해졌는지 팔을 얌전히 아래로 내렸다.
“크흠, 아무튼 이건 굉장히 좋은 기회랍니다. 채널 관리자는 코인을 얼마나 벌어들이냐에 따라 완전히 격이 다른 존재가 될 수 있거든요.”
주피는 은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오즈월드 씨처럼 말이죠.”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업 테이블로 슬금슬금 이동했다.
내 반응이 신통치 않다고 느꼈는지 주피는 쪼르르 따라오며 옆자리를 차지했다.
‘좀 부담스러운데.’
“이거 절대로 아무에게나 하는 제안이 아니에요. 10억 코인을 달성할 확률이 100%로 판명된 BJ에게만 채널 관리자 제안을 하거든요. 소원권을 사용해야 하는 일이라서요.”
“소원권을 사용해서 채널 관리자가 되면 어떤 이점이 있는데요?”
“소원권을 사용하는 것 이상의 권능을 지닌 존재가 될 수 있어요.”
…이거 다단계 아냐?
“지금 절 의심하는 눈초리로 보셨죠?!”
주피는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얼른 내가 볼 수 있는 시스템 창을 열어 방송 규칙을 확인시켜주었다.
“여기 보세요! 사기 아니라고요!”
나는 주피가 가리킨 부분을 읽어보았다.
“채널 관리자는 BJ의 소원을 갈취할 수 없다.”
“이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판테온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어요.”
주피가 하는 말이 썩 와닿지 않아서 계속 심드렁하게 듣고 있었는데, 판테온이라는 단어가 귀에 확 꽂혔다.
나는 판테온에 가는 일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말투로 지나가듯 물었다.
“…판테온으로 가서 확인할 수 있다고요?”
“네! 그럼요. 애초에 채널 관리자 등록 과정에 소원권을 사용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어서, 멋대로 할 수 없기도 하고요.”
주피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안 나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채널 관리자 행동 강령을 훑어보았다.
“규칙이 엄청 많네요.”
‘오즈월드가 이걸 다 지킬 것 같지 않은데.’
주피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네에. 놀랍죠? 거기에 또 새로운 규율이 생겨날 예정이에요. 하여간 오즈월드가 새로운 채널을 운영할 때마다 조용히 넘어간 적이 없다니까요?”
“오즈월드가 규칙을 많이 어기나 보죠?”
“규칙을 어긴다기보다는 만드는 쪽이죠. 늘 기상천외한 짓을 저지르니까요.”
‘만드는 쪽이라.’
나는 다시금 ‘채널 관리자는 BJ의 소원을 갈취할 수 없다.’라고 적힌 부분을 확인했다.
‘이 규칙이 만들어진 건 이렇게 행동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때 주피가 손을 휘휘 저으며 “뭐, 아무튼.”하고 주제를 바꿨다.
“저희는 테레제 님이 채널 관리자가 되었을 때, 성좌님들을 즐겁게 해줄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고 판단했어요. 소원권이 생긴 후로 계속 방송을 유지할 것 같지도 않았고요.”
“계속 방송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요! 엄청 많죠. 계속해서 톱스타가 된 기분을 느끼며 살 수 있잖아요.”
사람들의 관심은 확실히 중독적이라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SNS를 하는 거겠지.’
문득 거짓말로 일상을 만들어내 피드를 꾸미던 동생이 떠올랐다.
남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부잣집 딸이었음에도 그 애는 잘나가는 인플루언서를 보면 질투로 미치려고 했다.
‘돈을 주고 팔로워를 산 게 분명하다고 매일 욕했었지.’
정작 돈을 주고 팔로워를 산 건 그 애였는데 말이다.
‘걔라면 확실히 방종하지 않을 거 같기는 하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