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나는 그가 권한 자리로 가서 앉으며 물었다.
“무도회에서 제게 하시려던 말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다네.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고 자네를 불렀지. 혹시 강의표는 확인해 보았나?”
“네. <마법의 생명체>와 <연금술>을 들을 생각입니다.”
“오, 연금술이라. 마침 잘 됐군.”
뭐가 잘 됐다는 건지 의아해져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실은 이번 학기에만 특별히 <마법 식물과 연금술>이라는 강의를 추가로 개설할 예정이라네.”
강의표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과목이었다.
‘딱 내가 원하는 키워드가 다 들어있는 수업이잖아? 괜찮은데?’
그때 이사장이 내게 넌지시 부탁했다.
“그래서 새로운 교수를 초빙했는데, 이 교수를 도와줄 조수가 필요해서 자네에게 부탁하려고 불렀다네.”
으음. 썩 내키는 제안은 아니었다.
마법 식물을 이용한 연금술이라면 학생들이 쓸 재료를 다듬는 일에 엄청난 시간을 소모해야 할 게 뻔했으니까.
물론 마법을 좀 이용한다면 많이 단축할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띠링!
[퀘스트: <마법 식물과 연금술> 강의 조수]
▸보상: <마법 식물과 연금술> 최고 학점 보장
▸실패: <마법 식물과 연금술> 강의 신청 불가
※거절 시 실패로 처리됩니다.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이런 게 퀘스트로 뜬다고?’
<마법 식물과 연금술>이라는 강의는 설정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게임에서 설정하지 않은 강의들이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갑자기 교수의 조수가 되라니.
이런 내용이 왜 퀘스트로 뜨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섣불리 수락하기 전에 질문했다.
“혹시 교수님이 누구신가요?”
“오즈월드 발렌시아 후작일세.”
“……아.”
하마터면 이사장 앞에서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어쩐지 퀘스트가 이상하다 싶더라니, 교수가 오즈월드였다.
띠링!
[성좌 ‘오즈월드가 리얼월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교수가 된 오즈월드라고?! 미쳤다 비주얼 폭격 들어갑니다]
내 반응이 시원찮았는지 이사장이 좀 더 설득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발렌시아 후작가는 연금술로 명망이 높은 가문이지. 게다가 가주인 발렌시아 후작은 이미 연금술 쪽으로는 정평 난 포션 제조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네.”
그러니 회사 소유의 마법 농원도 다수 존재하니까 내게 도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두 사람, 친하지 않나?”
무도회에도 파트너로 등장했고, 서로 첫 춤을 추는 모습을 많은 귀족이 목격했다.
게다가 그가 스콰이어 공작가에서 한동안 머문 사실로 인해 우리가 약혼하게 되리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었고.
그렇다지만 그럼에도 불쾌한 오해였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발렌시아 후작님이 그런 회사를 소유하고 계신 줄도 몰랐거든요. 그리고 그분은 저희 아버지랑 친해요.”
“흐음. 뭐, 어쨌든 안면이 있는 사이이기도 하고 젊은 교수인 만큼 나쁘지 않을 걸세. 최대한 자네에게 편의를 맞춰달라고 부탁해두지. 어찌하겠나?”
나는 다시금 퀘스트 내용을 살폈다.
이번 퀘스트는 그야말로 내 의사를 묻는 것에 지나지 않는 수준의 보상과 페널티를 제시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거절했을 테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현재 10억 코인을 달성하기 직전인 상황이었고, 오즈월드가 등장하면 코인이 유독 더 잘 쌓였다.
그러니 곁에 가까이 두는 게 이득인 셈이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띠링!
[퀘스트: <마법 식물과 연금술> 강의 조수 완료]
▸보상: <마법 식물과 연금술> 최고 학점 보장
“고맙네, 테레제 양. 발렌시아 후작에게 면이 안 설 뻔했는데, 자네 덕분에 한시름 놓았네.”
“별말씀을요. 학생회장으로서 마땅히 솔선수범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성좌들은 오즈월드가 교수로 취임했다는 사실에 여러 가지 정보를 쏟아냈다.
띠링!
[성좌 ‘채널 관리자는 빠져’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즈 행동력 하나만큼은 진짜 인정한다 ㅋㅋ 이제 채널 관리자는 방송에 못 나오게 해야 한다는 법안 발의되자마자 남주각 씨게 잡네 ㄷㄷ]
띠링!
[성좌 ‘오즈월드 계좌 열어’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근데 이렇게 계속 방송 나와도 괜찮을까? 요즘 판테온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위험할 것 같은데… 난 그냥 오즈월드가 방송 안 나왔으면 좋겠어 ㅠㅠ]
띠링!
[성좌 ‘가십충’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안티들 기승부린 게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닌데 걱정 ㄴㄴ 요즘 테러하고 다니는 놈들 곧 판테온에서 다 정리할 거임 ㅋ]
나는 성좌들이 떠드는 내용을 신경 쓰지 않는 척, 괜히 오즈월드의 연구실을 알려달라고 요청해 이사장에게 위치를 안내받았다.
“발렌시아 교수는 이틀 뒤에 첫 출근이니, 그때 일정을 조율하면 될 걸세.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내게 말하고.”
“알겠습니다.”
이사장이 자리를 떠나고, 나는 연구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다른 교수들이 사용하는 장소와 거의 흡사했다.
다만 연금술에 사용될 마법 식물을 다듬을 커다란 테이블과 시약병, 선반 같은 전문적인 도구가 마련되어있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진짜 안 어울리네.”
오즈월드와 연금술이라니.
그와 로맨스를 나란히 배치한 것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척 봐도 내 흥미를 이끌기 위한 강의인 것 같은데.’
성좌들의 말처럼 얼마나 남자주인공 역할에 충실할 작정이길래 교수까지 자처해서 발할라로 온 걸까?
그가 준비한 콘텐츠가 무엇일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틀 후에 알게 되겠지, 뭐.”
부디 흥미로운 콘텐츠를 준비했기를 바랐다.
그래서 내가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위험할지도 모를 이 세계에 오랫동안 붙잡아둘 수 있기를.
부디 하디와 검은 나비 가면을 쓴 남자가 뜻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랐다.
* * *
그렇게 사흘이 흘렀다.
띠링!
[성좌 ‘오즈테레 탑승합니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즈월드 출근 안 함? 미쳤어? 제정신이야? 이러고도 당신이 남주라고 할 수 있어?!]
성좌의 말처럼 오즈월드는 나를 찾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알아보니 멀쩡하게 출근도 했단다.
그런데 그냥 나를 부르지 않은 거였다.
“뭐 하자는 거지?”
내가 먼저 찾아가야 하는 건가?
어리둥절하게 가방을 챙겨서 기숙사를 나섰다.
오늘부터 개강이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좋은 아침입니다, 선배님!”
“존경합니다, 선배님!”
평소처럼 조금 이르게 본관으로 들어서는데, 어째 마주치는 학생들이 전부 내게 인사를 해왔다.
“으응, 안녕.”
손을 흔들며 화답해주면 후배들은 거의 자지러지려고 했다.
대체 왜 저래…….
날 보고 생난리를 피우는 건 구 클예부, 현 테랑둥이 클럽으로 충분했다.
“꺄아아악~! 테레제 니이이임!”
“우리 학생회장님 오셨다~!”
마침 테랑둥이 회원들이 우르르 나타나 순식간에 본관 로비를 떠들썩하게 장악했다.
나는 이제야 내가 클라이드에게 얼마나 못 할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테레제 님, 어디 가세요! 드릴 게 있단 말이에요오!”
“저희가 방학 동안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걸작인 마신 세트를 꼭 받아주셔야 해요!”
테랑둥이들은 하늘하늘한 소재로 된 검은 드레스를 펄럭이며 달려왔고, 나는 2층으로 도망쳤다.
스치듯이 봐도 마신 세트라고 명명한 드레스가 상당히 낯부끄러운 형태였다.
절대로 내 몸에 저런 걸 걸칠 수는 없어!
띠링!
[성좌 ‘테랑둥이’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만든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입어줘ㅠ]
“입을 만해야 입어주죠. 이동!”
내 위치는 순식간에 2층으로 이어진 중앙 계단에서 학생회장실로 바뀌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로 올 게 아니라 오즈월드의 연구실로 갔어야 했는데.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학생회장실을 나와 오즈월드의 연구실 쪽으로 향했다.
‘이쪽으로는 당연히 사람이 없을 테니까 괜찮겠…… 저게 뭐야?’
당연히 한적하리라고 생각한 연구실이 있는 통로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원인을 알아내는 건 무척 쉬웠다.
남들보다 훌쩍 큰 키와 화려한 금발, 아름다운 얼굴의 오즈월드는 무척 눈에 띄었으니까.
띠링!
[성좌 ‘얼굴감별사’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진짜 얼굴 하나는 끝내준다]
학생들은 전부 여자였고, 그들은 오즈월드에게 홀딱 반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싼 채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교수님, 약혼은 하셨어요? 애인은요?”
“저 이번에 교수님 강의 신청했어요! 경쟁률이 너무 치열해서 등록에 실패할 뻔했다니까요?”
“제발 내년에도 강의하러 오시면 안 돼요? 네?”
오즈월드는 스콰이어 공작가에서도 유독 인기가 좋았다.
오만한 외모와 달리 반듯한 태도로 모두에게 일관적인 친절함을 베푸는 모습은 꼭 톱스타 같기도 했다.
하긴. 판테온에서 저런 경험이 많았을 테니까 익숙한 게 당연한가.
‘나중에 사람이 없을 때 다시 와야겠다.’
나는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돌아가려고 했으나, 그 순간 오즈월드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학생들도 고개를 휙휙 돌려 오즈월드의 시선을 받는 중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학생들은 날 보자마자 경계심 어린 눈빛을 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즈월드는 내 인사를 받아주는 대신 학생들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강의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나중에 찾아오세요.”
“아아아.”
학생들은 아쉬움 가득한 소리를 내며 미적거리는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서도 날 힐끔거리는 건 꼭 빼놓지 않았다.
학생들에게서 자유로워진 오즈월드는 연구실 문을 열고서 날 쳐다보았다.
“들어올래요?”
그는 내가 조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들어오라고 하지 않고 들어올 거냐고 물었다.
미묘한 차이지만 그로 인해 연구실로 들어가는 행위가 권위로 인한 게 아니라 주체적인 선택으로 뒤바뀌었다.
꼭 시시한 보상과 페널티를 걸고서 조수가 될 거냐고 물었던 퀘스트처럼.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상하게도 함정에 빠져드는 듯한 감각에 비위가 상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걸음을 떼었다.
“네, 교수님.”
어차피 함정이든 아니든, 그는 내게 최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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