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253화 (254/277)
  • 253화

    “오, 신이시여…….”

    그야말로 기적 같은 광경에 황실 마법사가 성호를 그었다.

    테레제 또한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런 현상을 일으킨 장본인을 찾으려는 거겠지.

    그러나 자신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크윽…….”

    데미안은 숨을 헐떡이며 비틀비틀 굽히고 있던 무릎을 폈다.

    똑바로 서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옆의 나무 기둥에 어깨를 처박듯 기대었다.

    백마력을 전부 방출시키느라 가진 마력을 죄다 써버렸다.

    삐이이이!

    고막이 터져버릴 듯한 이명이 정신을 날카롭게 찢어발겼고, 폐부가 콱 오므라들었으며 전신의 혈관이 터질 듯 불거졌다.

    “쿨럭!”

    심각한 내상 때문에 피를 몇 번이나 토하자, 죽기 직전까지도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된 은신이 흔들렸다.

    다시 말해서 데미안은 지금 죽어가고 있었다.

    마력을 전부 사용한 대가였다.

    그 순간, 테레제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설마 날 발견했나?’

    데미안은 설령 특별한 눈을 가진 황제라고 해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은신 상태였다.

    은신이 흔들렸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아닌 이상, 이미 인간이라 볼 수 없는 자신을 꿰뚫어 확인할 수 없을 텐데.

    그러니 그녀가 자신을 발견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이 떨렸다.

    혹시 그녀라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게 단지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인 건 아닐까?

    어쩌면. 혹시 어쩌면…….

    데미안은 자신의 위치를 들키고 싶은 건지, 들키고 싶지 않은 건지 헷갈렸다.

    이내 테레제가 고개를 돌렸다.

    “마수들은 제가 정화해서 데려갈 테니 다들 이곳을 빠져나가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나 테레제는 자신의 기대를 배신하고 마수들을 정화하는 일에 성공하자마자 이곳을 떠났다.

    공들여 만든 덫도, 그녀도 전부 사라졌다.

    전부 제 손으로 허무하게 망가뜨린 것이다.

    쏴아아아아―!

    바닥에 깔린 백마력이 전부 방출되어 빗물이 역행하는 듯한 현상이 사라지자, 부슬비는 폭우로 변해 아래로 쏟아졌다.

    데미안은 쓰러져 누운 채 비가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가 싫다.

    한데 마지막으로 보는 광경이 비가 내리는 풍경이라니. 웃기지도 않는군.

    의식이 빠르게 흐려졌다.

    죽음이 지척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데미안은 눈을 감기 전에 빌었다.

    부디 그녀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기를.

    그러나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는 듯 삶을 유지할 동력을 잃은 심장이 잔혹하게 조소했다.

    그녀는 네가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을걸?

    왜냐하면 넌 버려진 쓰레기잖아.

    ‘알아.’

    던전에서 아름답게 죽고 사라졌어야 할 자신이 괴물과 계약한 순간부터 이런 결말은 정해져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자신은 이기적인 개새끼라서 이 세계의 불청객이 되어서라도 그녀를 만나고 싶었으니까.

    그러니 되었다.

    결국 우리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되었다.

    「안녕, 부인.」

    당신의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보육원생 데미안 드림.

    33. 중독적인 증오

    “잠깐만요.”

    나는 찜찜함을 참지 못하고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황실 마법사들은 얼른 이 끔찍한 숲을 벗어나고 싶은 모양인지 초조한 기색을 담아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심정은 이해한다.

    평소처럼 내가 이동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건, 혹시나 아까 보았던 그 이상하게 개조된 벌레 마수가 도심으로 흘러 들어갈까 봐서였다.

    그래서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지점까지 걸어간 후, 마법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 리비랑 이 일대 전체를 정화하는 작업을 할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이 이상한 현상으로 가득한 숲을 준비한 것도, 갑자기 일대를 장악하듯 내뿜어진 백마력도 전부 데미안이 한 짓 같아서 머릿속이 혼잡해졌다.

    ‘일부러 날 끌어들이려고 수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살려준 거지?’

    데미안이 비범하다고는 해도 그 정도 규모의 마력을 방출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다.

    “확인할 게 있어요. 여기 마법 동물들이 호위해줄 테니 약속한 지점까지 가서 기다리세요.”

    마법사들은 내가 혼자서 숲을 들어가는 게 싫은 모양인지 잠시 머뭇거리더니,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테레제 님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워낙 악랄하니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그럴게요.”

    마법사들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고, 나는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띠링!

    [성좌 ‘티 없이 맑은 아이’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왜 그 끔찍한 벌레 지옥에 다시 가는 거야ㅠ_ㅠ 나 벌레 싫어!]

    “뭔가 본 것 같아서요.”

    사방이 백마력으로 가득 차올랐던 순간, 먼 곳에서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었다.

    기분 탓이라고 넘겨도 무방할 정도로 묘한 느낌에 불과했으나 왠지 마음에 걸렸다.

    이대로 확인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기이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시선이 느껴졌던 것으로 짐작되는 지점에 다다라 걸음을 멈췄다.

    이 주변은 유독 식물이 음험한 형태로 빼곡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또한 키가 큰 나무들이 많아서 매복한 상태로 주변을 확인하기 좋은 장소였다.

    데미안이라면 이쯤에 있었을 것이다.

    “분명 이쯤이었는데.”

    한데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획에 실패했으니 돌아가 버린 건가?

    하지만 계획을 무효로 돌린 건 데미안 본인의 선택이었던 것 같은데.

    “데미안!”

    나는 주변에 스티그마타 일원들이 매복해있을지 모르는데도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여기에 있지? 이리 나와! 비겁하게 숨어서 날 훔쳐보지 말고!”

    하나 내 목소리는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는 비에 허무하게 파묻혔다.

    얼굴을 잔뜩 적시며 시야를 방해하는 빗물을 사납게 훔쳐냈으나 허튼짓이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 마법으로 찾아야겠어.’

    이대로는 데미안을 찾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위험을 무릅쓰고 마법을 사용해 주변을 확인했다.

    감각에 사람이 걸려들었다.

    한데 시체였다.

    “설마.”

    설마 데미안은 아니겠지.

    나는 얼른 좌표를 설정해 그곳으로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신경질적으로 휘두른 손짓에 흙이 파헤쳐지며 시체가 드러났다.

    “흡…….”

    시체는 머리가 없었다.

    구역질 날 것 같았지만, 이 시체가 데미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기에 떨리는 눈으로 외형을 훑어보았다.

    “…데미안이 아니야.”

    상대는 스티그마타의 정예들이 입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데미안이 아니었다.

    그는 전신을 새까맣게 뒤덮는 암살자 복장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초조하게 자리를 다시 이동했다.

    “분명 여기에 있었는데…….”

    데미안에게 실망하고 영영 떠나보냈으면서 왜 청승맞게 이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불안했다.

    띠링!

    [성좌 ‘그냥 데미안이랑 살아’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역시 백마법 쓴 거 데미안이지? 제발 용서해주자… 잘못된 건 그러지 말라고 가르치면 되잖아ㅠ]

    띠링!

    [성좌 ‘마음으로 낳은 테레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데미안도 다 큰 성인인데 가르치긴 뭘 가르쳐; 테레제가 창조주라고는 해도 신은 아니잖아]

    띠링!

    [성좌 ‘프로훈수러’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나도 방금 말에 동감. 테레제가 많이 강해져서 전지전능해진 줄 아나 본데, 얘 아직 인간임. 무리하다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좀 인지하고 보자.]

    띠링!

    [성좌 ‘그냥 데미안이랑 살아’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나도 안다고 ㅋㅋ 근데 어쨌든 데미안이랑 거의 연인 관계 아니었음? 그럼 책임져야지 ㅋㅋ 하여간 테레제충들 ㅈㄴ 유난ㅜ]

    데미안과의 이별 선언 이후 그를 지지하던 성좌들의 상심이 매우 컸다.

    그래서인지 요즘 후원으로 싸우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었다.

    ‘내가 죄인이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글쎄요. 그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군요.”

    옆을 돌아보니 오랜만에 위아래로 새빨간 슈트를 차려입은 오즈월드의 모습이 보였다.

    띠링!

    [성좌 ‘오즈월드가 리얼월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즈ㅠㅠㅠㅠㅠ 요즘 왜 이렇게 바빠ㅠㅠ 얼굴 좀 자주 보여줘]

    오즈월드는 피식 웃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오즈월드의 등장을 반기던 후원들이 동시에 멈췄다.

    아마도 광고를 튼 듯했다.

    그가 다가와 내 머리 위에 검은 우산을 씌워주었다.

    “잘 지냈습니까?”

    바투 붙어 선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고 싶었지만, 굳이 그런 행동으로 장대비 속에 돌아갈 필요는 없겠지.

    나는 흐르는 빗물에 눈살을 찡그리며 물었다.

    “당신이 여기는 어쩐 일이야? 발렌시아 후작으로서 나타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오즈월드가 장갑 낀 손으로 빗물이 흘러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는 날 위해 눈가를 쓸어주며 대답했다.

    “잠깐 본업에 충실하다 온 참이어서 말입니다. 일이 바빴거든요.”

    쓸데없는 친절을 사양하고자 손을 들어 올리는데, 그가 뺨에 키스했다.

    손가락 끝에 오즈월드의 차가운 뺨이 닿았다가 곧 긁히듯 떨어져 나갔다.

    사고처럼 일어난 가벼운 접촉에 불쾌감이 치솟아 황급히 손을 내리는데, 그가 붙들었다.

    “15일 연속 1위 축하합니다, 테레제 양.”

    1위고 뭐고 이 손이나 치우라고 날카롭게 쏘아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 마지못한 대답뿐이었다.

    “……응.”

    벌써 첫 1위를 하고서 그만큼이나 시간이 흘렀구나.

    그렇다는 건 곧 마지막 학기가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슬슬 기숙사로 가야겠네.’

    잠깐 딴생각에 빠져들었을 때, 오즈월드가 내 손을 살피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 착용하고 있군요. 무의미한 반항은 소모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해 다행입니다.”

    나는 하마터면 냉소할 뻔했다.

    방금까지 데미안을 찾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던 여파일까?

    오늘따라 잘 길들어진 짐승을 바라보는 듯한 그의 눈빛이 유독 참아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거슬렸다.

    오즈월드를 증오하는 마음은 이제 너무나도 일상적인 감각이어서 나름대로 잘 다스려왔다고 자부했다.

    한데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정말이지 오늘만큼은 빙의 초기 때처럼 예민한 상태여서 어지러워질 정도로 스트레스가 밀려들었다.

    오즈월드가 이럴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한 척하는 것도 점점 한계에 다다랐다.

    바짝 열이 오른 머리에 새빨간 비상등이 켜졌다.

    오늘은 위험하다고.

    제대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충동에 휩싸여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지 모르겠다고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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