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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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도서관인가? 설마 보상이 책은 아니겠지?]
도서관이라는 단어를 보자 그제야 코끝으로 책 냄새가 느껴졌다.
자꾸만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특히나 혹시라도 보고 있을 오즈월드가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도록.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심호흡한 뒤 얼얼하도록 꽉 잡고 있던 손에 천천히 힘을 풀었다.
차갑게 식었던 몸에 천천히 피가 돌았다.
이제 아무렇지 않게 평상시처럼 말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입을 열었다.
“맞아요. 완독하면 지능을 한 단계 높여주는 사기적인 아이템이죠.”
과연 SSS급인 내 지능에도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보단 가족들이 사용하게 할 생각이기는 했다.
이곳, 연회장에 존재하는 낙원의 문을 열었을 때 연결되는 장소는 ‘비밀의 도서관’이었다.
내 키의 두 배 가까이 높은 책장은 틈 없이 책으로 빼곡했다.
또한 양옆이 가로막혀 있어 꼭 무언가를 연상시켰다.
그래. 바로 미로였다.
지금껏 퍼즐 게임이라면 거침없이 정답을 척척 풀어왔던 나지만, 이때만큼은 조금 난감했다.
“미로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데.”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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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
“일단 한쪽 벽면을 따라서 이동해볼게요.”
나는 열의 없이 걸음을 옮겼다.
사실 이 장소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지능을 올려주는 마법서는, 내 관심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부디 내가 길을 잘 찾지 못해서 오래도록 같은 자리를 빙빙 맴돌길.
그래서 나를 찾아왔던 정체 모를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나길 기다렸다.
허튼 바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내 망상일 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혹시 그 남자가 클라이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아, 찾았네.”
일부러 미적거린 것 같은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빨리 보상을 찾아버렸다.
당연한가? 이 미로는 딱히 어렵지 않은 수준으로 제작되었으니까.
미로가 복잡해질수록 개발자의 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간단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냥 좀 더 부지런 떨걸.
하드 모드인 만큼 엄청나게 어렵게 만들걸.
무의미한 후회를 내려놓은 채 이동 마법을 써서 곧장 침실로 돌아왔다.
‘일이나 해야지.’
내일이면 손님을 여럿 맞이해야 할 테니까.
‘아, 여기로 손님을 불러도 되는지 유지스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괜히 축 가라앉은 기분을 애써 끌어올리며 뒤를 돌았을 때, 거대한 무언가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
다행히도 엉덩방아를 찧기 전에 상대가 날 끌어안았다.
“황궁 안을 제약도 없이 실로 편안하게도 돌아다니는군.”
고개를 들자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는 유지스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 제 침실인데요.”
유지스는 아프지 않게 내 뺨을 꼬집었다.
“그래서? 짐은 황궁의 어딘들 못 갈 곳이 없다. 특히 이 태양궁 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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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도에 맞지 않는 말이지만 희소식이네요.]
“제 사생활이라는 게 있잖아요.”
내가 투덜거리듯 항변하자, 유지스는 간단히 무시하더니 다정하게 흐트러진 머리칼을 넘겨주었다.
“대체 어디를 그리 돌아다니다 온 거지? 짐이 널 얼마나 기다린 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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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뭐야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오길 기다린 거야~?><]
낙원의 문을 언급할 수는 없었기에 떨떠름하게 웃고만 있자, 유지스가 날 끌고 창가로 갔다.
그는 창문을 활짝 열더니 널찍한 창틀에 걸터앉고는 다리 사이를 툭툭 두드렸다.
“앉아.”
저 인간은 내가 본인 강아지인 줄 아는 듯했다.
“정상적인 자리에 앉으면 안 될까요?”
“황명이야.”
폭군 같으니.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유지스가 두들긴 자리로 가서 앉았다.
창틀에 두 발을 모두 올리고 등은 유지스에게 기대고 있으니 생각보다 꽤 편안했다.
게다가 이곳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황실에 얼마 없는 마법 식물을 심은 화단이 쭉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네 침실을 여기에 마련했다. 여기서 보는 풍경이 예쁘거든.”
“그러네요. 예뻐요.”
화단에 핀 여름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향기가 전해졌다.
어수선했던 마음이 차분해지자 기분도 나아졌다.
문득 유지스가 내 기분이 어두울 때마다 주의를 흩트려주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이네. 개차반인 성격을 바꿀 만큼 날 많이 좋아하나?’
나는 상체를 바로 세워 유지스를 돌아보았다.
창밖의 풍경이 저렇게 아름다운데도 유지스는 계속 나만 바라보고 있었는지 바로 눈이 마주쳤다.
“폐하.”
“왜.”
“내일 제 친구를 황궁으로 불러도 될까요?”
어차피 허락할 거 같아서 이미 부르기는 했다.
역시나 유지스는 선선히 허락했다.
“그러든가. 스콰이어 공작도 불러줄 테니 인사해.”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내일 당장 던전 대책 본부 임원들을 부르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짐에게 물어보지 말고 해.”
“그래도 괜찮을까요?”
“어. 만일 네 명을 안 따르는 자가 있으면 이름 기억해두고.”
“네.”
태양궁에 아예 자리까지 잡은 내게 그럴 사람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때 유지스가 뜬금없이 입을 맞췄다.
“…뭐 하세요?”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자 유지스가 뻔뻔하게 설명했다.
“말을 잘 들으니 기특해서.”
그러면서 실실 웃는데, 뭔가 기분 좋은 일이 더 있는 게 분명한 기색이었다.
‘제프리한테 내가 데미안의 청혼을 거절했다는 말을 들었겠구나. 그래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네.’
그렇다면 다행인 일이다.
마침 데미안에 대해서도 또 부탁할 말이 있었으니까.
“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폐하.”
“말해.”
“데미안을 뒷조사하시던 걸 멈춰주세요. 그를 곤란하게 만들 계략도 그만둬주시고요.”
“흐음.”
유지스는 순식간에 심술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군. 하지만 싫어.”
“그럼 내기할까요?”
“그것도 싫어. 네가 이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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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탈 레전드]
아쉽다. 술 내기를 제안해서 황실에만 있는 고가의 술을 다 털어볼까 했는데.
술 생각에 입맛을 다시는데, 유지스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며 능청스럽게 지껄였다.
“네 말을 잘 듣게 하고 싶으면 대가가 필요한데.”
“듣지 않아도 무슨 대가인지 알 것 같아서 싫어요.”
“싫어도 별수 없어. 갑자기 네 말을 들어주고 싶어졌으니 합당한 값을 치러야지.”
“네? 무슨… 폐하!”
유지스는 날 번쩍 안아 들어 침대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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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재밌게 노네^//^]
* * *
덥다.
분명 내부 온도를 떨어뜨리는 마법을 설치해두고 잤는데도 더웠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덥지?’
아직 궁인이 깨우러 오지 않은 걸 보면 이른 시간이 분명했다.
해서 그냥 더위를 무시하고 자고 싶은데, 결국 갑갑함을 이기지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눈을 떴다.
여름이라 그런지 얇은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벌써 쨍쨍했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법이 고장 났나…?”
하지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려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뭔가가 날 뒤에서 바짝 당겨 안았다.
덕분에 푹신한 침대에 도로 얼굴을 처박고 말았다.
눈을 휘둥그레 뜨며 뒤를 확인해 보니 날 끌어안은 채 자는 중인 유지스가 보였다.
“…?!”
어제 간신히 방으로 돌려보냈었는데, 언제 내 침실에 들어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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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스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유지스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유지스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유지스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유지스 때문에 미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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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뇌 다 녹아버렸어]
나는 낑낑거리며 그를 떨어뜨리려 했다.
그러나 유지스는 미간을 찡그리며 실눈을 뜨더니 다시 감고서 날 더 단단히 껴안아 버렸다.
“더 바둥거리면 아침부터 혈기 왕성한 줄로 알 테니 계속해봐.”
“……폐하. 이건 도의에 어긋나는 행위예요.”
그가 잠긴 목소리로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결혼해서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콱 이동 마법으로 도망쳐버릴 수도 없고.
어제 유지스가 하도 괴롭혀대서 한 번은 이동 마법으로 그에게서 벗어났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 탓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폐하, 이제 슬슬 일어나야 할 것 같아요. 오늘 할 일이 많아서요.”
“하아.”
유지스는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한숨 지으며 날 나무랐다.
“정녕 일하고 싶으면 황후가 된 뒤에나 해. 대체 왜 하지 말라는 데도 나서서 일하겠다는 거지?”
“폐하께서 시키신 일들이잖아요.”
“그건 널 붙잡아 두려는 핑계였지. 정말로 네게 일하라는 뜻이 아닌 거 알잖아.”
“엉큼한 꿍꿍이를 당당하게 말씀하시네요.”
“위원장인지 뭔지 때려치우고 짐의 옆에나 붙어있어. 그게 네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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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알콩달콩 보기 좋다… 개같이 존버한 내 주식이 연일 상한가를 치는구나 으흐흑]
결국 짜증을 참지 못하고 허리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그를 찰싹찰싹 때렸다.
“귀여워서 봐줬더니, 자꾸 상습적으로 황제를 폭행하는군.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유지스는 방금까지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사람답지 않게 매끄러운 동작으로 내 위를 점령하더니 뻔뻔스럽게 선전포고했다.
“오늘 정무에 늦는 건 다 네 탓인 줄 알아.”
“그게 왜 제 탓…!”
나는 더 이상 반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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