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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47화 (248/277)

247화

제프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다행, 아니, 카펜터 영식에게는 유감인 일이군요.”

“그러게요.”

띠링!

[성좌 ‘데미안이 진짜 남주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게 진짜일 리 없어]

띠링!

[성좌 ‘주식 천재’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ㅋㅋ 나처럼 진작 유지스로 갈아탔어야지]

“그래서 말인데, 혹시 폐하께서 데미안에 대해 뒷조사를 맡기셨을까요? 걸릴 만한 게 없으면 조작하라는 명을 하셨다거나.”

청혼을 거절했다는 말에 미소를 감추려 차를 마시던 제프리는 심하게 사레가 들려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기침을 터뜨렸다.

“예? 그게, 콜록! 무슨, 콜록, 콜록!”

“하셨군요. 이제는 무의미한 일이니까 뒷조사를 중단해주시겠어요? 폐하께는 제가 설명할게요.”

제프리는 손수건으로 입을 꼼꼼히 닦은 뒤에야 완전히 졌단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원래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말려드는 사람이 아닙니다만. 공녀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겠군요.”

나는 적당히 인사치레하듯 미소 지은 후 입을 열었다.

“일이 많이 바쁘실 텐데 나가보셔도 돼요. 저도 서명한 서류들에 적힌 것들을 처리하려면 종일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바깥에 궁인들을 배치해두었으니,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종을 울리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제프리는 막 들어왔을 때보다 한결 더 친근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내게 인사한 후 방을 나갔다.

“…….”

마침내 혼자 남게 되자 고개를 들어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게 되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이 응접실에서 나와 실랑이하던 데미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끝끝내 희생을 강요하며 날 기만하던 그의 태도를 곱씹자 무심결에 욕이 튀어나왔다.

“나쁜 새끼.”

분명 데미안을 상대하고 있을 때는 머릿속이 놀랍도록 차분했었다.

성숙한 어른다운 태도로 그와의 이별을 고했다.

그 뒤로도 아무렇지 않게 제프리를 상대하며 일상을 유지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나보다.

괜찮은 줄 알았더니, 혼자 남게 되자 진짜 내 감정을 알 수 있었다.

“기어이 그딴 선택을 해?”

내가 잘못 키웠지.

그것도 한참을 잘못 키웠어.

뭐? 태생이 어쩌고 저째?

“그렇게 곱게 보낼 게 아니라 두들겨 팼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뒤쫓아가서 뒤통수를 갈길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분노 어린 한숨만 터뜨리기를 여러 번.

나는 아직 어른스럽기는 그른 것 같다는 결론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낙원의 문이나 확인해 보자.’

황실에 있는 낙원의 문은 연회장의 유일하게 잠긴 마지막 휴게실에 존재했다.

“이동.”

SSS급 지능으로 펼친 이동 마법은 더없이 깔끔하고 완벽했다.

던전을 다녀오기 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고위 마법을 이렇게 손쉽게 사용하다니.

“세계관 최강자가 된 기분인데?”

띠링!

[성좌 ‘흑염의 귀공자’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크큭… 이제 벌레보다 못한 하급 마법사들을 전부 처단할 시간이다]

저 성좌 아직도 보고 있었구나.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아공간에서 차원의 열쇠를 꺼냈다.

“역시 이 근처에는 아무도 없네.”

설정상 낙원의 문은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는 외진 장소에 생성된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이번에는 낙원이 나올까?’

열쇠를 꽂고 돌렸을 때 만일 낙원에 당첨된다면 [낙원을 발견했습니다. 진입하시겠습니까?]라는 안내가 뜬다.

달칵. 끼이이-

하나 아무래도 꽝인 듯 어떤 전조도 없이 잠잠했다.

‘차라리 잘됐어. 보상이나 가져가야지.’

안으로 들어가자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왜 이렇게 어둡지?”

주변이 식별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서 마법으로 불을 밝히려는 순간, 문이 부드럽게 움직여 도로 닫혔다.

“어? 왜 마법이 사용되지 않지?”

사방은 빛 한 점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마법은 사용되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태창을 열어보려 했으나 먹통이었다.

“설마 또 시그니오 행성인가?”

저벅. 저벅.

때마침 내게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설마 오즈월드인가?’

시그니오 행성의 황제인 오즈월드라면 큰일이다.

그는 첫 대면에 날 죽이려 했었고, 수배령까지 내렸으니까.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주먹을 꼭 쥐고서 조심스레 물었다.

“누구세요?”

“…….”

상대는 분명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은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뭐지?’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며 의문이 들었다.

“…저기요? 아직 제 앞에 있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앞으로 손을 뻗었다가 팔을 펴기도 전에 무언가가 만져지는 것을 느꼈다.

더듬더듬.

이게 뭔가 싶어 양손으로 만져보았다.

표면은 매끄러운데 단단하고 울퉁불퉁하다. 그리고 따뜻했다.

아. 이 사람 남자구나.

‘몸집이 상당히 크네. 게다가 엄청나게 단련되어 있어.’

얇은 옷자락 너머로 느껴지는 뜨겁고 딱딱한 몸을 쓸어 만지는데 상대가 움찔거렸다.

그래도 피하지는 않았다.

날 공격할 의사도 느껴지지 않았고.

‘더 만져봐도 되나?’

나는 조심스럽게 방금까지 더듬고 있던 복부에서 두툼한 가슴팍으로 손을 움직여보았다.

너른 어깨, 팔딱팔딱 맥박이 느껴지는 목을 지나 단단하게 다문 턱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손을 조금 더 올려보자 매끄러운 피부가 아닌 이질적인 무언가가 만져졌다.

“이게 뭐예요? …가면인가?”

나도 모르게 무심코 한 질문이었는데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친절한 성격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조금 더 안심하고 얼굴을 가린 가면을 만져보았다.

형태를 짐작해보건대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나비 가면인 듯했다.

아예 두 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는데, 미약한 한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너무 만졌나…?

손을 떼어내려는데 상대가 괜찮다는 듯 떠나려는 손길을 붙잡고 도로 뺨에 붙여주었다.

“더 만지라고요?”

끄덕.

“…왜요?”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질문하자, 손바닥에 담긴 뺨이 동그랗게 부푸는 게 느껴졌다.

남자가 웃고 있었다.

여전히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무척 호의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겠군.

아까 정체를 파악하려 더듬을 때는 몸을 바짝 긴장하기에 수줍음이 많은 줄 알았더니, 꽤 뻔뻔한 성격인 것 같기도 했다.

남자가 내 손을 쥐더니 손바닥에 글씨를 썼다.

-싫으면 됐어.

말이 없길래 나와 의사소통할 생각이 없는 줄 알았더니 뜻밖이었다.

나는 곧장 궁금한 걸 쏟아냈다.

“당신은 누구예요? 혹시 오즈월드 컴퍼니 피해자 연합원인가요? 하디가 보냈어요? 왜 하필 가면은 나비 모양이에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래서 다른 한 손으로는 남자의 어깨를 쥐고 있었는데, 질문하는 동안 그의 몸이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또 웃고 있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손바닥에 글씨를 썼다.

-연합원인 건 맞지만, 하디가 보낸 건 아니야. 가면은 그냥 나비가 좋아서.

“제일 중요한 대답을 안 했어요. 당신이 누구냐니까요. 혹시 말할 수 없는 비밀인가요?”

-응.

“그럴 것 같았어요. 이렇게 음침하게 나타난 남자의 신분이 떳떳할 리가 없지. 판테온 소속이죠? 켕기는 거라도 있어요?”

남자가 내 입술을 톡 건드렸다.

-좀 더 그럴싸한 관계로 생각하는 건 어때? 에로스와 프시케라든가.

“에로스 같은 소리 하네…….”

-실망하지 마, 내 프시케.

“재밌어요?”

또 남자가 웃는다.

‘참 웃음이 헤픈 사람이네.’

어쩐지 나도 피식 웃게 되었다.

“그런데 방송까지 차단하고서 왜 나타난 거예요? 그것도 비밀인가요?”

이번 질문에는 남자가 글씨를 써주지 않았다.

대신 글씨를 써주던 손으로 살포시 내 얼굴을 건드렸다.

너무 가볍고 얕아서 간지러울 정도로, 또 조심스럽게 이목구비를 훑는 손길이 애틋했다.

순식간에 마음이 이상해졌다.

남자의 행동이 꼭 내가 너무 소중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그리웠던 것을 간신히 만났으나, 감정을 절제하는 사람처럼 몸에 단단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반면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호흡하는 법도 잊은 채 내게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아도 여실히 느껴졌다.

“…이봐요.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이에요?”

상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훑던 손길을 거두었다.

“잠깐만요.”

나는 다급한 손길로 남자를 붙들었다.

그리고는 거의 본능적으로 가면을 벗겨냈다.

이 암흑 속에서 가면을 벗겨내봤자 상대의 얼굴을 확인해 볼 수도 없는데, 그런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지 못할 만큼 흥분했다.

이 남자가 왠지 내가 아는 사람일 것 같아서.

그래서 조그마한 단서라도 얻으려고 그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상대는 너무나도 손쉽게 내게서 벗어났다.

온기가 멀어졌다.

“잠시만요. 가지 마!”

사라지지 마!

탁.

사방이 밝아졌다.

남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가면은 남아있었다.

검은 나비였다.

띠링!

[성좌 ‘마음으로 낳은 테레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갑자기 왜 멍하니 서 있어?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눈앞에 뜬 후원에 화들짝 정신 차리고서 얼른 가면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보상을 찾아볼까요?”

제법 오랫동안 무저갱 같은 새까만 공간에 있었던 것 같은데, 성좌들은 공백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일상적인 말들만 떠들었다.

가면의 주인과 만나는 동안 시간이 멈춰있었던 건가.

나는 남자를 매만졌던 두 손이 하얘지도록 꽉 움켜잡았다.

마치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듯이.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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