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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46화 (247/277)
  • 246화

    정말로 호감도가 붉은 하트 4개인 데미안이라면 차가워진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스티그마타의 일원이었던 거 알고 있었구나.”]

    반면 검은 하트라면 미간을 찡그리며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역시나 검은 하트였구나.

    예상한 결과였기에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괜찮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에게 강경한 투로 말했다.

    “당장 마음 인형을 만드는 것도, 뿌리는 것도 그만둬.”

    그러자 데미안이 싸늘하게 실소했다.

    “물어본 게 아니었네요. 이미 제가 스티그마타의 수장이라고 확신하고 있군요.”

    “널 잘 아니까.”

    담담하게 읊조린 대답에 데미안의 표정이 일순간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달콤한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어요. 다른 때에나 해주지.”

    그는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하며 초조감을 드러냈다.

    본인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나 보였다.

    “부인이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저는 쓰레기니까. 태생이 그렇잖아요.”

    “널 그렇게 함부로 표현하지 마.”

    데미안은 교활하다.

    그는 누구보다도 나를 속상하게 만들 방법을 잘 알았고, 그걸 본인이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이용했다. 지금처럼.

    “제가 보고 배운 건 그런 것뿐이에요, 부인. 알잖아요. 그래서 이 세계가 꽤 편했어요. 던전에서도, 이곳에서도 저는 일관된 나쁜 새끼라서 적응할 것도 없던걸요.”

    “그만하라고 했어.”

    “아, 황제 폐하께 부탁하지 그래요? 저를 몹시 싫어하시던데. 제가 스티그마타의 수장인 것 같다고 말하면 당장 목을 쳐줄 텐데요.”

    그 말을 할 때 데미안은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을 떠올린 듯 유독 신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목소리에 실린 악의가 짙었다.

    그는 내게서 항복을 받아 내려 집요하도록 지독하게 굴기를 멈추지 않았다.

    “부인이 원한다면 기꺼이 처형대로 끌려가 드릴 수 있어요.”

    내가 눈시울이 뜨거워진 채 말없이 노려보자, 데미안이 빙긋 웃었다.

    “어때요. 지금 할까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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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데쪽아 또 왜 그래ㅠ]

    그의 행동이 특히나 더 질 나쁜 이유는 진심이라는 데에 있었다.

    내가 홧김에라도 그러라고 대답한다면, 데미안은 망설임 없이 유지스를 찾아가 자신이 스티그마타의 수장이라고 밝힐 것이다.

    문득 허탈해졌다.

    내가 아무리 이 세계를 아등바등 지키려 해봤자, 소용없는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잠식했다.

    이곳은 내게 있어 집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또 평온하고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법 동물들의 보금자리였다.

    그러니 은연중에 남자 주인공들도 당연히 나처럼 이곳을 소중히 여겨줄 거라 믿었는데.

    단지 내 헛된 바람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오늘로써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애정의 크기를 제외한 나머지에 관심 없었다.

    그게 이들의 정체성인데. 당연한 건데도 마음이 착잡해졌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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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온전히 너로 있을 때 결국 가장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거야. 그 사실을 잊지 마.]

    ‘내가 나로서 온전할 때 가장 강력해진다고?’

    생각해 보면 현실은 언제나 이처럼 냉정했다.

    꿈에서 깨어났다고 해서 현실이 망가지는 게 아니다.

    늘 그랬듯이 그럼에도 살아갔다.

    정답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러자 나와 데미안의 차이가 명확하게 인지되었다.

    “나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

    나라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상대를 상처입히고, 굴복시키려 악독하게 굴지 못할 것이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사랑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명료하게 깨달으니 속이 후련해졌다.

    “확실히 난 널 좋아하나 봐. 네가 나쁘게 굴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걸 보면.”

    데미안은 내 태도에서 본인에게 불리한 방향의 변화를 감지한 듯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내게 있어 이 세계는 집이야. 그런데 네가 지금 내 집을 망가뜨리려고 하고 있어.”

    “……그래서요?”

    “이대로 불청객이 될지, 이 세계의 일원이 될지 선택해. 어떻게 할래?”

    “제가 불청객이 되겠다면요?”

    나는 담담하게 선택의 결과가 어떨지를 알려주었다.

    “오늘이 우리가 보는 마지막 날이 될 거야.”

    외부의 요인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이별이 아닌, 진정한 이별을 하게 되리라.

    가족을 위협하는 사람을 품을 정도로 난 미련하지 못하니까.

    데미안은 분노와 실망에 젖은 얼굴로 날 노려보다가 감정을 억누르고서 말했다.

    “좋아요. 인정할게요. 부인의 말이 다 맞아요.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스티그마타를 버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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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이다… 이대로 데미안 탈락하는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렸네]

    “대신 오늘 당장 저와 함께 타국으로 떠나요. 배는 준비해뒀으니, 당신만 허락하면 돼요. 그곳에서 영원히 둘이서만 살아요, 부인.”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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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네…]

    이를 받아들이면 [종말을 기다리는 연인]이라는 엔딩이 뜨며 게임 오버된다.

    그러므로 이 제안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결국 불청객이 되기로 했구나.”

    [‘데미안’ 루트를 지지하는 성좌들이 절규합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공녀님, 제프리 님께서 던전 대책 회의에 관련한 일로 만나 뵙기를 청하십니다.”

    이 공간은 음소거 마법이 걸려 있어 바깥에서 내부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랬기에 직접 문을 열어주러 걸음을 옮긴 순간, 데미안이 뒤에서 나를 다급하게 끌어안았다.

    “가지 마세요, 부인. 날 선택해요. 제발!”

    나는 그의 손을 떨어뜨리고는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데미안에게 인사했다.

    “안녕, 데미안.”

    눈물이 흐르지 않는 이별이었다.

    31. 에로스

    내가 서류에 서명할 동안 제프리는 책상 근처에 서서 날 물끄러미 응시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데미안이 그토록 배신감을 느낀 얼굴로 냉랭하게 떠나버린 건지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모르는 척했다.

    대신 날 던전 대책 본부 임시 위원장으로 임명한다는 임명서에 확인 서명을 마쳤다.

    “서명 끝났어요.”

    이로써 황실 내에서 임시 직함만 다섯 개쯤 생긴 듯했다.

    “협조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오늘치 서명은 이쯤에서 마무리해도 괜찮겠죠?”

    “예?”

    “폐하께 이렇게 계속 일거리를 던져주지 않으셔도 한동안 황궁에 머물 생각이라고 전해주세요. 개인적으로 처리할 일이 많아서 더는 시간을 뺏기면 곤란해서요.”

    그제야 제프리는 내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탄식했다.

    “눈치채고 계셨군요. 알겠습니다. 테레제 양이 궁에 머물러 주신다면야 다른 복잡한 일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겠지요.”

    “그렇다고 던전에 관련된 업무들을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내가 황궁에 머물려는 이유는 유지스 때문이 아니다.

    “던전 대책 본부 임시 위원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예정이에요. 오늘은 좀 어렵고, 내일부터요.”

    아무래도 데미안을 그렇게 보내버렸으니, 오늘은 스티그마타를 상대하기 위한 밑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이제 저 감시 안 하셔도 돼요.”

    내 말에 제프리가 난처한 얼굴로 근처의 의자를 끌어와 아예 자리를 잡았다.

    “실은 폐하께서 정무를 보실 동안 제가 직접 테레제 양을 보살피라 명하셨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아직 내게 용건이 남은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비밀스러운 일을 할 게 아니었기에, 근처에 누가 있든 상관없었다.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편지지를 꺼내 빠른 속도로 휘갈겨 쓴 뒤 비행기를 접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날리자 편지지 비행기는 허공을 유려하게 가르며 목적지로 향했다.

    “맙소사…….”

    제프리가 경이로움과 황당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태양궁에서 꽤 당당하게 마법을 사용하시는군요.”

    “뭐… 폐하도 알고 계시니 괜찮지 않을까요?”

    황제의 총애를 믿고 건방지게 구는 애인처럼 내뱉은 말에 제프리가 실소했다.

    그사이 나는 인벤토리 브로치를 꺼내 아공간과 결합했다.

    브로치는 형체를 잃고 마력 입자가 되어 방금 완성한 아공간 마법에 흡수되었다.

    곁에서 구경하고 있던 제프리가 물었다.

    “그건 무슨 마법입니까?”

    “아공간에 마도구의 편의성을 결합한 개조 마법이에요. 필요할 때 아공간을 실물로 만들어서 타인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이죠.”

    “…그런 마법을 이렇게 간단히 만들어내신단 말입니까?”

    띠링!

    [성좌 ‘테부심’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엣헴! 고작 이 정도로 놀라긴! 테레제한테 이런 시시한 마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제프리는 조금 귀찮을 정도로 내가 만들어내는 마법들에 관심을 보였다.

    이건 뭡니까? 저건 뭐죠? 어떻게 이런 마법을 전부 개조할 수 있죠? 이게 학생 수준으로 가능한 겁니까?

    ‘혼자 있고 싶은데.’

    슬슬 곁에 사람이 있는 게 몹시 성가시단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크흠.”

    갑자기 제프리가 헛기침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곁에서 알짱대며 호시탐탐 본론을 언제 꺼낼지 가늠하는 것 같더니, 드디어 물어볼 생각인 듯했다.

    “카펜터 영식과 무슨 대화를 나누셨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겠습니까?”

    제프리가 머쓱하게 덧붙였다.

    “원래는 슬쩍 떠볼까 했었는데, 테레제 양에게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제 입장이 좀 난감하게 됐습니다. 폐하께 보고드릴 게 없으면… 아시잖습니까?”

    그 더러운 성질머리에 어떤 식으로 화풀이할지 모른다는 뜻이겠지.

    이런 경우 굳이 비밀이라며 꼭꼭 감추는 것보단, 먹음직스러운 가십거리를 던져주어 정말로 중요한 진실은 감추는 쪽이 낫다.

    “청혼받았어요.”

    “네?!”

    “저는 거절했고요.”

    축약하자면 그런 내용이기는 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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