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242화 (243/277)
  • 242화

    30. 불청객

    오즈월드는 실로 오랜만에 피로감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약간의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

    고작 그 정도만으로도 상대가 체감하는 압박감은 엄청났다.

    오즈월드 컴퍼니의 이사진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금발을 한 자신들의 고용주를 보며 땀을 뻘뻘 흘렸다.

    그럴 만도 했다.

    산업 스파이인지, 안티인지 모를 놈 하나가 오즈월드 컴퍼니 서버를 죄다 다운시킨데다 기밀문서까지 전부 파기시켰다.

    복구는 가능하다.

    그만큼 비용이 발생해서 문제일 뿐.

    “준비하던 신생 채널들의 차원 생성 일정이 전부 1개월 이상 밀렸습니다.”

    “이번 사건에 당한 곳이 저희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최근 채널 관리자나 회사들을 상대로 범죄를 일으키는 집단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사진의 무능한 말들에 오즈월드는 더 깊은 피로감을 느꼈다.

    언제부터인가 판테온에 있는 날이 지겨워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채널 관리자인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들었다.

    소위 말하는 매너리즘인가?

    그런 게 온 지는 한참이 지났을 텐데.

    지겹다. 지루하다.

    판테온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며 또다시 전성기를 맞이한 사람답지 않은 권태로움에 질식할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왜일까?

    오즈월드는 습관처럼 문제를 되짚고 답을 찾는 행위를 거듭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테레제가 던전으로 들어간 날부터 <신의 유희>에 존재하는 게 지겨워졌다는 사실을.

    참 큰일이었다. 판테온도, <신의 유희>도 전부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새롭게 준비 중이던 채널들에 나름의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일이 이따위로 꼬여버렸다.

    그는 문득 다비드의 부재가 얼마나 제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지 실감했다.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다비드라면 진작 수습할 방도까지 전부 마련해서 제게 간단한 보고만 올리고 끝맺었을 것이다.

    이사진 중 하나가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입을 열었다.

    “참, 내일 발표될 채널 순위가 1위라는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이사진들은 그에게 축하를 건네며 뻔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사실 1위를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관건이죠.”

    “순위는 기간 집계 방식인데도 저희 악역영애 채널은 누적 성적 없이 계속 치고 올라왔잖습니까. 어느 채널도 이런 압도적인 트래픽을 일으킬 순 없을 겁니다.”

    “그래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벌써 채널을 모방한 유사 콘텐츠 중 두각을 드러내는 것들이 제법 있으니까요.”

    “테레제 씨를 판테온에 초빙하는 건 어떻습니까? 1위 기념으로 방문한다면 화제성이 엄청날 텐데요.”

    오즈월드는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으며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교묘히 피하는 이사진들을 무심한 눈으로 훑었다.

    전부 죽어버려도 아쉬울 게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안타까웠다. 이 쓰레기들을 다 치워도 또 무능한 쓰레기로 머릿수가 채워질 테니, 기분 내키는 대로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게.

    오즈월드는 필사적으로 채널에 대해서만 떠들어대는 이사진에게 물었다.

    “‘던전’ 준비에는 문제없습니까?”

    그러자 침묵이 흘렀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언급을 피해왔던 문제가 대두된 탓이었다.

    결국 가장 관록 있는 이사가 이실직고했다.

    “이번 서버 테러 사건으로 인해 안정화에 시일이 좀 더 필요합니다. 아, 물론 구축은 이미 예전에 다 끝난 상태입니다.”

    대충 예상했던 일이었다.

    “예정된 날짜까지 끝내세요.”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었다.

    “대표님.”

    “방금 그러지 않았습니까? 1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누구도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오즈월드는 가벼운 비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와 유사한 채널이 늘고 있어 더 확실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건, 이사님들이었던 것 같은데. 제 기억이 잘못된 겁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분명히 다비드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도록 알아서 잘들 해달라고 부탁드리지 않았습니까?”

    오즈월드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들의 무능함에 질렸다는 듯 염증을 냈다.

    “다비드의 소재를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좀 황당하기는 하군요. 지금쯤이면 당연히 찾았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한동안 제가 진두지휘하죠.”

    오즈월드는 대표지만 회사 운영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보통은 큰 결정만 그가 하는 편이었고, 나머지는 실무진들의 판단을 존중했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시점부터 오즈월드 컴퍼니의 성적이 하향했다.

    로맨스 장르로 저변을 넓히겠다는 오즈월드의 판단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새로운 전성기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누구도 오즈월드가 직접 회사 운영에 간섭하겠다는 말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이사진은 하나 같이 속으로 ‘죽었다’라고 생각했다.

    오즈월드는 분명 유능하다.

    다만 그의 방식은 몹시 공격적이라 팬이 많이 늘지만, 그만큼 반감도 많이 사는 특징이 있었다.

    한동안 또 언론의 비난이 폭격처럼 쏟아지며 간신히 수를 줄여 놓았던 안티들이 기승을 부리겠군.

    이사진은 밤낮없이 여론을 진정시키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자신들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오즈월드는 고개만 간단히 끄덕인 후 회의실을 나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억눌려있던 한숨들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   *   *

    테레제가 황제와 함께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소식은 수도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여름 무도회 중 황제가 던전에 들어갔다는 소문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고, 제국에는 역병처럼 암운이 드리웠다.

    그러니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황실에서는 유지스가 무사 귀환했다는 소식을 빨리 알려야만 했다.

    ……라고는 해도, 사실 여기에는 다른 노림수도 존재했다.

    “클리어한 던전은 존경받을 만한 부모의 사랑을 테스트하는 종류이다. 평가 기준으로는 육아, 부부 관계, 주변 평판이 반영되었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는 첫 던전 입성임에도 완벽히 역할을 수행하시어 무탈하게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셨다…….”

    당장 ‘만세 만세 만만세’라도 외쳐야 할 듯한 공치사였다.

    하나 핵심은 황제가 첫 던전을 무사히 클리어하고 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황제와 테레제가 함께 다녀온 던전에서 두 사람이 ‘부부’로 함께했다는 것.

    그리고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건 부부로서 두 사람이 제대로 역할을 해냈다는 방증이라는 뜻이었다.

    라울은 몹시 기가 막혔다.

    “황제 폐하께서 정녕 미치셨나?”

    수도 귀족과 언론사에 뿌렸을 이 특보 내용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했다.

    테레제는 짐과 부부였던 사이다.

    그것이 비록 던전에서의 역할일지라도 우리는 잘 맞았고, 그 사실은 던전을 무사히 클리어한 것으로 증명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겠지.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공개적으로 본인이 테레제에게 흑심이 있음을 떠벌린 것이다.

    애초에 예감이 안 좋았었다.

    황제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벌레 취급하고, 본인 일이 아니면 관심 없었다.

    그런 사내가 유독 테레제에게는 다르게 행동했을 때부터 내심 이 사달이 언제고 일어나리라 예감했었다.

    라울은 미치광이 황제가 아차 하는 사이에 무심한 건지, 순진한 건지 모를 제 딸을 홀라당 잡아먹기 전에 서둘러 마차를 돌렸다.

    “당장 입궁하겠다.”

    *   *   *

    유지스는 오랜만에 완벽한 수준의 시중을 받게 되자,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을 느꼈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곁에 머무르다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손발처럼 움직이는 궁인들은 꽤 흡족한 마음이 들게 했다.

    “훌륭하군.”

    그래서 평소에는 일절 하지 않던 칭찬도 건넸다.

    궁인들은 갑자기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었다가 다시 찾게 된 사람처럼 구는 유지스에게 소스라쳤다.

    우리 황제 폐하께서 던전에 다녀오신 충격이 엄청난 모양이구나.

    그러다 재빠르게 정정했다.

    아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유지스는 설령 완벽한 시중이 새삼 기특해졌다고 한들, 굳이 칭찬까지 해줄 사람이 아니었다.

    이 변화를 이끈 건 황제의 침실 바로 옆 개인 응접실에서 수많은 서명의 늪에 빠진, 아름다운 공녀임이 틀림없으리라 짐작했다.

    똑똑.

    마침 황제의 환복이 끝났을 때 노크가 들렸다.

    “폐하, 부관 제프리가 알현하기를 청합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보고서를 든 제프리가 침실로 들어왔다.

    “분부하신 대로 테레제 양이 작성한 던전 보고서를 신문사에서 특종으로 기재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여기, 테레제 양이 서명한 계약서들입니다.”

    황제와 던전을 다녀온 테레제는 평소처럼 사건 경위서만 작성하는 게 아니라 온갖 확인서에 서명해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테레제는 곧 경위서에 허점은 없는지 온갖 던전 전문가들을 상대할 예정이기도 했다.

    사실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었으나 유지스는 테레제가 황궁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꾀를 내었다.

    덕분에 테레제는 족히 며칠은 황궁을 벗어나지 못할 예정이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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