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방안이 고요해졌을 때 유지스가 내 머리칼을 정리해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소리 죽여 웃음 지었다.
“생각보다 아빠 노릇에 소질이 있어 보이시네요.”
“슬슬 가정을 꾸릴 나이이기는 하지.”
유지스는 농담처럼 가볍게 대꾸하더니 내 손을 겹쳐 쥐었다.
“던전을 나가면 나와 마지막으로 춤춰.”
그건 다시 말해서 사교계의 꽃이 된다는 뜻이었다.
“영광이네요.”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나하고만 춤춰.”
“…네?”
“알아들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군.”
그가 내 손가락에 자리한 사파이어 반지를 건드렸다.
“이런 장난감이 아니라 네게 더 어울리는 걸로 끼워줄 테니 나와 결혼해.”
아무리 붉은 하트가 5개라고는 해도 설마 오늘 당장 청혼을 듣게 될 줄 몰랐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는 동안 유지스가 손등에 키스했다.
“네가 원한다면 내 모든 걸 줄 수 있다. 나라든 뭐든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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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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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 나라의 이름은 테레제국입니다.]
“일단 진정하시고요, 폐하…….”
진짜 환장하겠네.
나는 유지스에게 붙들린 손을 빼내려다 힘을 이기지 못해 그냥 관두었다.
그래. 가져라, 가져.
“우선 잘까요? 내일 세실리아가 원하는 걸 들어주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요.”
“그건 안 되겠는데.”
유지스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나는 깜짝 놀라 작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하는 거예요?!”
“내일은 애랑 종일 놀아줘야 하니까, 지금은 나랑 놀아줘.”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방향은 부부 침실이었다.
“아니, 잠깐만요. 놀자면서 왜 이리로 가요?”
유지스가 내 뺨에 입 맞추며 대답했다.
“부부 놀이하려고.”
후원 알림이 또 폭발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 * *
낮게 깔린 묵직한 음성이 깊게 침잠한 의식을 파고들었다.
“테레제.”
단번에 잠을 깨우기에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음성이라 외려 자장가 같았다.
“여보.”
이번에는 귓바퀴에 입술이 달라붙어 숨이 가득한 음성을 쏟아냈다.
오싹한 간지러움에 어깨가 움츠려졌다.
나직하게 큭큭 웃는 목소리도 들렸다.
“아직 젖살도 안 빠진 아기라 그런가. 잠이 많군.”
말랑한 볼살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점점 성가셔졌다.
내가 미간을 찡그리자 유지스가 그 위에 입을 맞췄다.
“이렇게 잠이 많으면 황궁 생활이 꽤 힘들 텐데. 전부 오후 정무로 바꿔줄까?”
“으응…….”
대체 뭐라는 거야? 좀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제도 잠을 설친데다 오늘도 유지스의 부부 놀이 때문에 너무 늦게 잠들었다.
게다가 이 짐승 같은 인간을 상대하느라 체력도 부쳐서 더 피곤했다.
“유지스…….”
나는 제발 좀 그만하라는 뜻으로 웅얼웅얼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나를 귀찮게 하던 유지스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건지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얌전히 있었다.
그렇게 다시 잠에 빠져들려는데, 간지럽게 느껴지던 자잘한 입맞춤과는 다른 농도의 짙은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점점 숨이 막힌다.
게다가 흥분한 상대가 자꾸 뺨이며 귀며 여기저기 깨물어댔다.
이어 옷자락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벼락 맞은 것처럼 눈을 번쩍 떴다.
이대로 더 잤다가는 큰일 날 것이라는 위협을 느낀 탓이었다.
유지스는 잠에서 깬 날 보더니, 특유의 악당 같은 미소를 지었다.
“더 자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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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라 우리 테레제…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 양도… 다들 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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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으로 재우려고 하네]
“아침부터 뭐 하는 거예요……?”
어이가 없어서 물어보자 그가 대답했다.
“아침이니까.”
“…?”
왜 동문서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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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모닝]
“이상한 소리나 할 거면 비켜요.”
나는 어느새 위를 점령한 유지스를 밀쳐내고서 침대를 확인했다.
어제 분명히 다시 내 침실로 와서 잠들었었는데, 세실리아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뭘 찾는지 뻔하다는 듯 유지스가 말했다.
“세실리아는 아까 일어나서 사용인들이 데려갔어.”
“아, 얼른 준비해야겠네요.”
유지스는 몸단장하려 일어난 내게 다가와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았다.
“천천히 해도 돼.”
“세실리아가 무척 기대했잖아요. 늦으면 실망할 거예요.”
“하아…. 우리 애는 늦게 낳는 게 좋겠군. 아예 안 낳아도 되고.”
“졸리세요?”
유지스가 내 뺨에 콧등을 비비며 킥킥 웃었다.
“이렇게 무엄하게 굴어도 귀여워서 큰일이네.”
그러니까 왜 아침부터 자꾸 헛소리하냐고. 잠꼬대할 거면 그냥 더 자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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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 던전이 안 끝났으면 좋겠어ㅜ]
나는 유지스의 팔을 꾹 밀어내며 타박했다.
“좀 비켜요. 나갈 준비하게.”
“도와줄까?”
“아니요.”
“왜? 어제 부부 놀이하면서 연습했잖아. 오늘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유지스는 당당하고 뻔뻔했다.
그게 신경을 건드려서 결국 참지 못하고 그를 찰싹찰싹 때렸다.
이 탕아 같으니! 못 하는 말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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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가라 어른들끼리만 놀자]
유지스는 팔뚝을 때리는 내 손을 붙잡아 또 멋대로 쪽쪽 키스했다.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사랑해, 테레제.”
사랑한다는 말은 들어도,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얼굴만 빨갛게 물들인 채로 굳어 있자, 유지스는 기회라는 듯 날 안아 들었다.
“안 되겠어. 조금만 늦자.”
여름처럼 더운 숨이 나를 집어삼켰다.
* * *
결국 세실리아와 함께할 여정에 늦어버렸다.
메리는 내 몸단장을 도우며 실실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는 ‘세실호’를 장식할 깃발을 만드시느라 바쁘셨거든요.”
“…고마운데 왜 자꾸 웃어.”
내가 괜히 미간을 찡그리며 혼내듯 물으니 메리가 아예 활짝 웃었다.
“아잉, 그야 두 분이 너무너무 뜨거우시니까요~! 까르르!”
괜한 걸 물었군.
제대로 몸단장할 시간도 없어서 간편한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저택 밖으로 나갔다.
로드리고 저택은 바로 앞에 작은 호수를 끼고 있었다.
귀족들이 종종 뱃놀이를 즐기는 곳인지 작은 나루터도 존재했다.
우리는 그곳에 ‘세실호’를 띄웠다.
그냥 놀이용 작은 배에다 세실리아의 이름을 쓴 깃발을 만들어 단 게 전부였지만 반응은 좋았다.
“세실 호 너무 멋져……!”
감격한 세실리아는 당장 자신이 가진 모든 보물을 세실호에 싣고 출항했다.
노를 젓는 건 유지스의 몫이었다.
“기가 막히는군.”
그는 누군가의 시중을 들어본 경험이 없었기에 이 상황을 매우 어이없어했으나 그래도 노는 착실히 저었다.
“직진! 직진!”
“싫어.”
세실리아는 직진만 외쳐댔고 유지스는 작게 반항하며 우측으로 배를 꺾었다.
그러든 말든 세실리아는 좋아했다.
“직진~!”
아무래도 직진이라는 말을 그냥 빨리 움직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열심히 호수를 탐방하는 동안 사용인들은 꽃집을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숫가에서 꽃을 잔뜩 실은 수레와 그럴싸하게 만든 입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 저기 꽃집이야!”
“그러네. 세실리아 꽃집이네.”
“나 저기 갈래!”
나는 유지스를 향해 약 올리듯 생긋 웃어 보였다.
“저리로 가볼까요, 여보?”
유지스는 내 유치한 도발에 픽 웃어버리고는 노를 저었다.
귀하디귀하신 황제 폐하께서 노질이라니.
진귀한 구경거리라 한껏 비웃고 싶은데, 노를 젓는 그의 모습은 전혀 우습지 않았다.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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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함 평가: ★★★★★]
보다시피 그러했다.
유지스는 처음부터 본인이 육체노동을 맡게 되리라 생각하고 가벼운 셔츠만 입고 나온 상태였다.
소매까지 걷어 올려 두툼한 팔뚝을 드러낸 채 힘을 쓰니, 그것만으로도 그림이 되었다.
“우와! 아빠 빨라!”
배는 금방 나루터에 도착했다.
세실리아는 황홀한 비명을 지르며 간이 꽃집 주변을 빙글빙글 뛰어다녔다.
“꽃 사세요! 얼른얼른 사세요!”
손님은 나와 유지스, 사용인들이었다.
세실리아는 꽃 한 송이에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을 턱턱 불렀다.
그러다가도 상대가 사탕이나 초콜릿을 내밀면 순순히 물물교환하는 융통성 있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나와 사용인들이 꽃 한 송이씩 손에 쥐고 나서야 마지막 손님인 유지스가 어슬렁어슬렁 세실리아의 앞에 섰다.
그는 손가락으로 수레의 끝에서 끝까지 가리켰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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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사를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세실리아는 새침하게 거절했다.
“세실리아 꽃집은 욕심쟁이 손님은 안 받아요~”
“장사를 엉망으로 하는군.”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었다.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