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다행히도 카펫이 깔린 바닥이라 깨지지는 않았는데…… 아니지, 지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는 억누르고 있던 본능을 터뜨리는 짐승처럼 나를 사납게 갈취했다.
“테레제.”
잠깐 입술이 떨어졌을 때는 내 이름을 불렀다.
“테레제. 테레제…….”
쉼 없이 입이 맞춰졌다.
상대의 적나라한 욕망이 전신으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가 귀를 어지럽히고 머리를 뜨겁게 했다. 속이 바짝 말랐다.
나를 원하는 상대의 몸짓에 완전히 휩쓸려 어느새 휴게실 소파에 눕혀졌다.
끝장을 볼 기세였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만!”
유지스는 숨을 헐떡이며 내게 밀려났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사슬처럼 날 옭아맨 그를 떨어뜨릴 수 없었으리라.
옷은 다 구겨졌고 자세는 볼썽사나웠다.
우리는 서로를 응시한 채 잔뜩 차오른 숨을 거칠게 내쉬기만 했다.
침묵을 먼저 깬 건 나였다.
“……꾀병이었으면 다시 경기장으로 가요.”
“누가 이길지 다 아는 경기를 또 봐서 뭐 하려고.”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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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다 ㅋㅋ 시간 되돌아갔을 때 키스 안 한 거 보고 테레제가 회귀 멈춘 거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유지스는 좀처럼 감정이 주체 되지 않는지, 다시 나를 끌어안고서 이번에는 온 얼굴에 키스했다.
“빌어먹을, 테레제 스콰이어.”
이렇듯 가끔 욕설이 섞인 탄식이 들리기도 했다.
“역시 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 너라는 형벌을 내리신 거겠지.”
그는 나를 형벌이라 부른 뒤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단단한 눈썹뼈가 목덜미에 비벼졌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날 죽인 원수 집안의 딸을 사랑하게 만든 거겠지.”
유지스가 회귀하며 사라진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전대 스콰이어 공작은 다른 꼭두각시 황제를 세우는 일에 동참했었다.
이번 생에는 일찍 지병으로 죽는 바람에 미처 그러지 못했고.
“네가 지금 내게 얼마나 끔찍한 죄를 저질렀는지 안다면, 평생 내 곁에서 나만을 위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유지스는 절망했다.
또한 나를 원망했다.
확실히 그는 감정적으로 매우 동요한 상태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쏟아내는 말들을 모두 들어주며 짐승처럼 날뛰려 하는 그를 부드럽게 토닥이기만 했다.
유지스는 거칠게 달아오른 숨을 천천히 골랐다.
뜨겁게 폭주했던 유지스는 이제 질식할 것 같은 우울감에 사로잡혀 버렸다.
“두려워. 또 그 끔찍한 과거로 돌아갈까 봐 무서워.”
그는 이제 회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절망했다.
“넌 내게 원하지 않았던 희망을 줬다. 그리고 이 희망을 잃어버리진 않을까 두려운 마음까지도 주었지.”
유지스가 내 이마에 입 맞추며 살의에 푹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가 내게서 널 빼앗을 거라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어.”
나는 유지스의 두 뺨을 쥐고서 단단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저는 몇 번이고 당신을 구할 거예요.”
이건 신하로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제 당신은 그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요. 제가 그러지 못하게 할 거니까.”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는 확신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제대로 마지막 생을 살아요.”
유지스는 내기에서 졌을 때도 짓지 않았던 패배자의 얼굴을 했다.
[호감도: ♥♥♥♥♥]
그것은 오직 자신만이 한없이 가여운 오만한 남자가 사랑에 빠져버린 표정이기도 했다.
* * *
시간을 돌아왔으니 즉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관계자들을 불러 명령했다.
“경기장 내에 방화범들이 숨어있으니 당장 확인하라.”
이럴 땐 권력이 좋았다.
근거 하나 들지 않은 내 말에 모두가 방화범을 찾아 나서야 했으니.
“찾았습니다! 실제로 기름과 성냥을 소지한 이들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예비 방화범들은 즉시 체포되었다.
명령했을 때만 해도 전부 대놓고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날 미친 사람처럼 여기던 관계자들이 이제는 몹시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패트릭도 마찬가지였다.
“놀랍습니다. 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나는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비공식이기는 하나 두 가문이 함께하는 자리잖습니까? 노파심에 안전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던 중, 오늘 경기 내용에 따라 방화할 계획을 짜는 무리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오오…!”
“저도 확신하지는 못했기에 현장에서 검거할 생각이었고요.”
“정말 준비성이 철저하시군요. 대단하십니다…….”
“제가 모신 손님과 하는 외출인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죠.”
주변에서 관계자들이 감탄하며 중얼거리는 말들이 들려왔다.
“민츠버그 부인보다 로드리고 부인이 한 수 위인 것 같군.”
조안나도 그 말을 들었는지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띠링!
[평가가 반영되었습니다.]
{화목한 우리 집 평가지}
▸육아: ★★★★☆
▸금실: ★★★★☆
▸평판: ★★★★★
고지가 코앞이었다.
게다가.
▼
[테레제 스콰이어]
설명: 스콰이어 공녀
나이: 22세
마법 등급: SSS
지능: SSS
마력: S (1,000,000/1,000,000)
▲
회귀를 멈춘 보상이 반영되었다고는 해도 모든 수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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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선 평범한 게임 오타쿠였던 내가 이세계에서는 SSS급 대마법사?!]
‘게임 오타쿠가 아니라 게임 개발자요.’
아무튼.
“그럼 다시 경기나 보러 갈까요?”
이후로는 불이 났던 사실만 제외하고 아까와 똑같은 상황으로 흘러갔다.
우승 경기에서 스팅이 패배하자 패트릭은 몹시 낙심했다.
“이럴 수가!”
나와 유지스는 당연히 울프 팀에 배팅했기에 도박에서 돈을 땄다.
이미 알고 있던 결과였다.
하나 화재 사건 없이 우승팀을 축하하는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꽃잎이 휘날리는 광경을 온전하게 즐기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지스는 내 손등에 키스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울프팀 우승을 자축하는 의미처럼 보이는 키스겠지만, 나는 알았다.
이는 세상의 시간이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음에 감사를 표하는 키스라는 사실을.
띠링!
[던전 퀘스트: 경기장 데이트 완료]
▸보상: 평판 상승
무사히 경기가 끝났다.
관중들은 안전하게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우리도 타고 온 마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갔다.
이왕 저택을 떠나 멀리 나왔으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집으로 돌아가도 되겠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조안나는 아예 사람들과의 대화를 단절하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침묵했고, 패트릭은 스팅의 패배에 우울해했기 때문이었다.
“후반전에서 그 골만 들어갔어도…….”
한껏 가라앉은 분위기의 두 사람과 달리, 나와 유지스는 조금 격앙되어 있었다.
“일리야 번스타인 교수와 무슨 사이인지 말해.”
나는 황당해져서 민츠버그 부부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였다.
“대체 몇 번을 말해요? 교수와 제자 사이라니까요?”
유지스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들었다는 듯 엄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 누굴 속이려고. 그런 멍청한 변명은 스스로한테나 해.”
뭐라고? 이 양반이.
“제 지능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르시나 본데…”
“됐고, 그럼 오즈월드 발렌시아 후작은?”
“남이에요, 남.”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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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자기 여자 주변에 얼쩡거리는 놈들 정리 들어가죠?]
유지스는 매우 언짢아하는 얼굴로 이를 갈았다.
“던전에서 나가면 그놈들을 전부 국외로 추방해버려야겠어.”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내가 타박하자 유지스가 신랄하고 거만한 태도로 비아냥거렸다.
“못마땅하면 나랑 결혼해서 권력으로 날 막으면 되잖아.”
정말이지 악당 같았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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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나가면 테레제 황후 되겠네 ㅋㅋ]
끄응. 호감도를 꽉 채울 계획은 추호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유지스는 미간을 좁히고 있는 날 빤히 쳐다보다가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가볍게 키스했다.
이번에는 맞은 편 자리에 나란히 앉은 민츠버그 부부가 보든 말든 시야를 가리지도 않았다.
그가 설명했다.
“아까 못 했던 거 채워야지.”
경기장으로 가는 길에 내게 입 맞추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또 멋대로 입술을 들이대는 유지스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체면 좀 차리세요, 제발.”
유지스는 내 하극상에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곧 마차가 저택에 도착했다.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으나 큰일을 겪은 탓에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로비에 들어서는데, 맞은 편에서 아비가일이 달려왔다.
“으아앙! 엄마아! 세실리아가 나 때렸어!”
아비가일은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었고 옷도 엉망으로 뜯긴 상태였다.
누가 봐도 싸운 몰골이었다.
“세상에, 아비가일! 대체 이게 무슨 꼴이니?!”
그리고 저 멀리서 똑같이 머리와 드레스가 엉망이 된 채 씩씩거리는 세실리아가 보였다.
“세실!”
세실리아는 독기 가득한 얼굴로 숨을 잔뜩 몰아쉬다가 제게로 달려오는 날 발견하더니 얼굴을 찌그러뜨렸다.
“흐어어엉!”
그러곤 서럽게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군이 나타나니 그제야 안심하고 눈물을 보이는 듯했다.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