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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33화 (234/277)
  • 233화

    *   *   *

    나는 유지스에게 세실리아와 민츠버그 가족을 떠맡겨버리고서 느긋하게 목욕을 즐겼다.

    평판 별점 3개 이상부터는 사용인들이 무척 협조적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마사지로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볕에 익은 얼굴에 차가운 팩을 올려 시원하게 열도 내려주었다.

    “시원하세요, 마님?”

    “응, 좋아. 고마워.”

    “별말씀을요. 여기 수박 주스도 좀 드세요.”

    극락이 별건가? 이게 극락이지.

    살림과 육아에 지친 심신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낮잠까지 자면 딱 좋을 텐데, 그럴 수 없어 아쉬웠다.

    가운을 몸에 걸치고 방으로 나오자. 막 갈아입을 드레스를 가져온 메리와 마주쳤다.

    메리는 윈다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사용인이었다.

    그리고 상당히 호전적이고 수다스러운 성격이기도 했다.

    “마님, 이거 보세요! 이 드레스라면 민츠버그 부인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버릴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떨떠름하게 메리가 가져온 드레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가슴이 너무 파인 것 같은데?”

    “어머? 다들 이 정도는 입어요. 민츠버그 부인도 늘 몸매를 과시하는 드레스를 입으시던걸요? 우리 마님의 몸매가 더 좋은데 말이에요!”

    메리가 분개하자 곁에 있던 다른 사용인들도 “옳소! 옳소!”하며 말을 거들었다.

    띠링!

    [성좌 ‘테랑둥이’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여기도 슬슬 테랑둥이 집단이 형성될 조짐이 보인다?]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아무리 그래도 그 드레스는 아닌 것 같아.”

    가슴이 깊게 파인 건 둘째치더라도 색깔이 빨간색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히잉…. 그러실 것 같아서 다른 드레스도 준비해오기는 했어요.”

    메리는 빗장뼈를 시원하게 드러낸 스퀘어 형태의 네크라인을 따라 우아한 진줏빛 러플이 달린 차분한 암녹색 드레스를 가져왔다.

    목에는 진주를 알알이 엮어 정중앙에 에메랄드가 달린 초크 목걸이를 착용했다.

    몸단장을 마치고 나니 어쩐지 귀부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여린 소녀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애초에 귀부인으로 보일 나이가 아니기는 한데.’

    “늘 생각하지만, 세실리아 아가씨의 언니라고 해도 다들 믿겠어요!”

    띠링!

    [성좌 ‘팩트도 폭력이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그게 사실이긴 해]

    사용인들은 저들끼리 “민츠버그 부인은 항상 청순한 소녀처럼 보이려고 갖은 애를 쓰던데, 타고나신 우리 마님을 보면 얼마나 배가 아프실까!”라며 까르르 웃었다.

    “그렇게 민츠버그 부인이 싫어?”

    내가 황당해하며 묻자 사용인들이 펄쩍 뛰었다.

    “당연하죠! 그 채신머리없는 부인이 감히 가주님께 자꾸 들러붙으며 추파를 던지는데요!”

    “저번에는 길을 잃은 척하면서 가주님 침실에 가더라니까요? 당연히 가주님께서는 민츠버그 부인을 본 척도 않으셨지만요.”

    “가정적이고 정숙하기로 소문난 민츠버그 부인이 그럴 줄 누가 알았겠어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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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적인 내로남불]

    띠링!

    [성좌 ‘막드매니아’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메리는 내 모습을 꼼꼼히 확인해보더니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이긴 게임이네요.”

    대체 뭘 이기냐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님들이 있는 응접실로 향했다.

    문짝 없이 커다란 아치형으로 뚫려 개방감이 느껴지는 응접실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대적으로 낮은 어른들의 목소리도 그 안에 간간이 섞여 있었다.

    꽤 오래 자리를 비웠는데, 유지스가 지금까지 무탈하게 손님을 응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좀 늦었습니다.”

    응접실로 들어서며 내가 돌아왔음을 알리자,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엄마아~!”

    세실리아가 날 발견하더니 활짝 웃으며 다다다 뛰어왔다.

    눈빛은 보석을 발견한 까마귀처럼 더없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엄마 예뻐. 공주님 같아!”

    그때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유지스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공주는 아니지. 나와 결혼했으니까.”

    띠링!

    [성좌 ‘우리 유신랑’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제한테 넌 황후라고 말한 거 맞지? 나만 그렇게 들은 거 아니지?]

    유지스는 깍지 낀 손을 가져가 내 손목에 코를 대더니 중얼거렸다.

    “장미 향인가.”

    “…아, 목욕물에 향유가 섞여 있었나 봐요. 혹시 어지러워요?”

    “아니. 그렇지는 않은데.”

    “다음에는 향유를 섞지 말라고 할게요.”

    그는 오감이 민감해서 인공적인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신경이 예민할 때는 두통으로 이어지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이런 세세한 부분이 유지스의 호감도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그래서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말했더니, 유지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부인은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것 같군.”

    그때 패트릭이 끼어들었다.

    “제 아내도 저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데, 로드리고 부인도 부군에 대해 통달하신 모양입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냥 “아하하.”하고 영혼 없이 웃었다.

    세실리아는 어른들의 대화가 지루한지 잠시 칭얼거리다가, 아비가일이 나무 블록으로 만든 집을 무너뜨린 것을 보고 부리나케 그리로 달려갔다.

    둘이서 옥신각신하며 블록을 다시 쌓는 동안 유지스는 나를 옆구리에 끼다시피 한 자세로 소파에 앉혔다.

    의도치 않게 서로 딱 달라붙어 앉게 되어 민망스러워졌다.

    끄응. 남주들이 하나 같이 힘만 더럽게 세서, 허리를 감싸 안은 팔을 풀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는 표정으로 노려보니, 그가 황당한 요구를 해왔다.

    “웃어봐.”

    “……네?”

    “웃어보라고.”

    이 인간이 드디어 제대로 미쳤나.

    나는 맞은편에 앉은 민츠버그 부부를 곁눈질로 확인했다가 패트릭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난감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 하. 하. 뭐 하는 거예요, 여보. 손님들도 계시는데.”

    남들이 듣지 못하도록 복화술로 은밀하게 추궁하는데도 유지스의 황당한 요구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 이상한 표정 말고. 눈은 이렇게 휘고, 입술은 이렇게.”

    그러면서 직접 내 입술 양 끝을 손가락으로 눌러 쭉 늘렸다.

    나는 그 상태로 심각하게 물었다.

    “…술 좀 드려요?”

    혹시 이거 금단 현상 뭐 그런 거 아냐?

    “크흠.”

    패트릭이 나직하게 내뱉은 헛기침 소리에 나와 유지스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머쓱하게 얼굴에서 유지스의 손을 치워냈다.

    “아, 죄송해요. 남편이 장난기가 좀 심해서…….”

    “하하, 괜찮습니다. 보기 좋은데요. 참. 혹시 스포츠 경기 좋아하십니까? VIP 관람석 티켓이 있는데, 내일 부부 동반 데이트라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띠링!

    [던전 퀘스트: 경기장 데이트]

    ▸보상: 평판 상승

    ▸실패: 평판 하락

    ※유지스가 거절할 시 실패로 처리됩니다.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갈 거죠, 여보? 저 가고 싶은데.”

    유지스는 갑자기 엄지손가락으로 내 뺨을 슥 문지르며 혀를 찼다.

    “이런 표정으로 부탁하니까 들어주고 싶어지네.”

    “……? 그러니까 같이 간다는 말이죠?”

    “그래.”

    여차하면 술이랑 시가로 협상하려고 했더니, 이렇게 순순히 요구를 들어준다고?

    “와, 고마워요.”

    이 개차반에게도 마침내 협력과 협동, 협조라는 개념이 생기는가보다 싶어서 흐뭇한 마음에 미소 지으니, 그가 날 따라 웃었다.

    그러다 나직하게 탄식하며 본인 입가를 쓸어 만졌다.

    나와 함께 기뻐한 게 마뜩잖다는 반응이었다. 참나.

    띠링!

    [성좌 ‘하하버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늘도 테레제 폼 미쳤다 ㄷㄷ]

    “……저는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방에 들어가서 쉬어야겠어요.”

    조안나는 내가 응접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더니, 이 자리가 불편하다는 티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습니까, 부인?”

    패트릭은 막 장난감을 가지고 달려온 아비가일을 상대해주다가 놀란 얼굴로 조안나를 부축했다.

    나 역시 그녀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시면 의사를 부를게요.”

    조안나는 곧 부서질 것 같은 미소를 띠며 처연히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좀 누워서 쉬면 나아지겠죠…….”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은 마지막으로 유지스에게 잠시 닿았다가 희망을 잃은 채 거두어졌다.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유지스가 테레제한테 푹 빠져있는 꼴을 두 눈 뜨고 못 보겠어서 도망치네 ㅋㅋ 개꿀잼]

    눈치 없는 패트릭은 아내가 왜 갑자기 저러는지 이유도 모르고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아내를 돌봐야 할 것 같군요. 아비가일도 데려갈 테니,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하죠.”

    “그럼요. 얼른 가보세요.”

    “내일도 아내의 몸이 좋지 않으면 집에서 쉬게 하고 우리끼리 경기장에 다녀오죠. 제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인데 놓치면 안 되잖습니까?”

    “아… 그랬군요….”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픈 조안나를 돌보는 건 결국 아랫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본인 취미에 몰두하는 패트릭의 태도가 실망스러웠다.

    ‘패트릭은 분명 가정적이라는 설정이었는데.’

    “그럼 내일 봅시다.”

    패트릭은 내일 보자는 인사를 끝으로 응접실을 떠났다.

    “엄마. 나 졸려.”

    친구가 떠나자 급격히 놀이에 흥미를 잃은 세실리아가 다가와 양팔을 쭉 펼쳤다. 안아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세실리아를 안아 들려고 했는데, 유지스가 먼저 아이를 번쩍 안았다.

    “다섯 살이라도 무겁잖아.”

    그는 꼭 꾸짖듯 내게 말하더니 비어있는 손을 뻗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당신이 세실을 안아주면 되겠네요.”

    유지스의 손을 잡으며 은근슬쩍 그에게 아빠 역할을 하라고 말해봤는데, 이번에도 선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원래는 안 하던 짓을 자꾸 하니까 왜 이러는지 좀 궁금해졌다.

    “오늘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내가 기분 좋아 보이나?”

    “음… 네.”

    “그렇단 말이지.”

    유지스는 묘한 얼굴로 날 응시했다.

    “오늘 같이 잘까?”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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