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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30화 (231/277)
  • 230화

    * * *

    한편, 던전 밖에서는 황제가 던전에 빨려 들어간 유례없는 사태에 난리가 나 있었다.

    그때 노엘 윌로우 공작이 아들 고든의 부축을 받으며 혼란 속에 등장했다.

    “오, 저기!”

    “오늘 연회에 불참하시는 줄 알았더니, 이제라도 오셨군.”

    “다행입니다. 윌로우 공작이라면 상황을 수습해주겠죠.”

    엘리트 마법사 집단을 양성하고 있어 많은 이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노엘이 나타나자, 다들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런 쪽으로는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을 지닌 그가 상황을 빨리 진정시켜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건 틀린 추측이 아니었다.

    노엘은 상황을 전달받더니, 곧장 전력에 불필요한 이들을 솎아냈다.

    “마법사가 아닌 이들은 전부 무도회장 밖으로 내보내 다른 궁에 머물게 하시오.”

    “알겠습니다!”

    귀족들은 역시 윌로우 공작이라며 신뢰의 눈빛을 보내다가, 점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윌로우 공작이 언제 저렇게 늙었지?”

    노엘은 언제부터인가 발할라에서 두문불출하더니, 폭삭 늙어버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물론 80대인 만큼 노화가 빠를 수는 있겠지만, 이건 느낌이 좀 달랐다.

    꼭 삶을 유지할 이유가 사라져 더욱 빠르게 늙어버린 노인의 모습처럼 보인 것이다.

    주변의 수군거림에도 노엘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마력을 실은 음성을 내뱉었다.

    “발할라 학생들은 전부 모이도록.”

    학생들은 순식간에 비장한 표정으로 돌변하여 이사장 앞에 척척 자리를 잡고 섰다.

    “내부에 스티그마타가 있을지도 모른다. 조를 편성해 수색대를 파견하고 나머지는 새로운 던전이 열리지 않도록 방어 마법에 치중해라.”

    “예!”

    노엘이 앞장서서 내부 분위기를 정리하자, 패닉에 빠져있던 이들도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내부를 수색해라! 수상한 자를 발견하면 즉시 체포하라!”

    황실 마법사들을 포함해 대귀족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자, 연회장은 순식간에 철통 요새가 되었다.

    비록 던전을 품은 요새이기는 했지만.

    그때 연회장 한편에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술렁임이 번졌다.

    끔찍한 분노에 휩싸인 라울이 카펜터 공작의 멱살을 잡고 허공에 번쩍 들어 올린 것이다.

    “컥! 커억!”

    “테레제가 분명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나? 네놈의 머리통이 장식이 아니라면 무슨 상황인지 깨닫고 세실리아를 자극하지 말았어야지!”

    그래서 자신은 당장 튀어 나가고 싶은 것도 꾹꾹 견디며 세실리아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힘 좋은 이들과 함께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나가고 있었다.

    한데 카펜터 공작이 다 망쳐버렸다.

    그럼에도 테레제는 기립 박수를 쳐도 모자랄 정도로 침착하게 세실리아를 상대하다가, 재빠르게 던전의 마기를 막고 주변의 접근을 차단했다.

    희생되는 건 본인으로 족하다는 듯 조금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영웅적인 태도였다.

    하나 라울은 자신의 딸이 영웅이 되길 바라지 않았다.

    딸이 던전에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그의 뇌리에 선명한 형태로 저주처럼 각인되었다.

    화가 치밀다 못해 미칠 것 같은 이 분노를 어디다 쏟아야 할까?

    정답은 카펜터 가문 그 자체였다.

    “나 라울 스콰이어는 카펜터 공작가에 영지전을 선포한다.”

    웅성웅성!

    당연히 사방은 난리가 났다.

    “스콰이어 공작! 신중하시오!”

    100년 전 영지전을 끝으로 이제 더는 영지전을 벌이는 귀족이 없었다.

    그게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지 다들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중? 내 딸은 물론이고 황제 폐하까지 던전에 끌려가게 한 카펜터 공작가를 멸문시켜버리려는 게 신중까지나 해야 할 일인가?”

    카펜터 공작은 자기변호는커녕 당장 쉴 숨도 모자라 발버둥 쳤다.

    그때 데미안이 나타나 손쉽게 라울의 손아귀에서 카펜터 공작을 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흥분하셨습니다, 공작님.”

    제 아비가 모욕당했으며, 본인 가문이 멸문하게 생겼는데도 기분 나쁠 정도로 차분한 태도였다.

    라울은 데미안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기만 할 뿐 더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노엘이 베인 시종장과 대귀족들을 대동해 이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노엘은 혼절한 카펜터 공작을 무감정한 눈으로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타일렀다.

    “어차피 카펜터 공작은 문책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오. 들어보니 확실히 카펜터 공작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경거망동했더군. 가문을 다스릴 역량마저 의심될 정도로.”

    주변에서 동의하는 표정들을 지었다.

    이미 카펜터 공작의 무능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고, 오늘 일로 정점을 찍었을 뿐이다.

    다들 황제의 안위까지 위협하게 된 카펜터 공작이 목숨만 건사해도 다행일 거라고 생각했다.

    “황제 폐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연금해두는 게 좋을 듯한데. 베인 시종장께 처리를 부탁해도 되겠소?”

    그러자 베인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카펜터 공작은 들것에 실려 나갔고 다음 안건이 던져졌다.

    “데미안 군이 카펜터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자이니, 가문의 일을 대신 처리하는 게 좋겠군. 다들 동의하시오?”

    제국이 위기에 빠진 상황이다.

    가장 강력한 병력과 권한을 지닌 공작가들의 결속이 필요한 때였고.

    카펜터 공작가 역시 정확한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따라서 유일한 후계자가 되어버린 데미안이 가주 대리로서 권한을 위임받아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는 가문 내에서 적합한 절차를 밟은 뒤 황제의 허가까지 받아야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이 자리에 모인 가주들과 카펜터 공작부인의 허가만 받아 약식으로 공증처리 하는 게 좋겠소만.”

    가장 먼저 찬성한 사람은 브루니 공작이었다.

    “나는 찬성이오. 어차피 이 청년이 카펜터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가 된 이상 뭘 어쩌겠소? 이런 허례허식을 치를 시간조차 아깝군.”

    “나 역시 찬성하겠소. 참, 약식이라 해도 신전 측 동의도 필요하지 않소? 콘스탄틴 대신관에게 급보를 넣어야겠는데.”

    “최근 콘스탄틴 대신관의 모습을 본 이가 없다는 소식을 들었소. 다른 대신관에게 내용 증명을 보내는 게 좋을 거요.”

    “허어. 대신관이라는 자가 왜 그리 자주 신전을 비우는지 모르겠군. 그럼 스콰이어 공작? 그대는 찬성할 거요?”

    라울은 반대하고 싶었다.

    개인적인 원한보다도 데미안을 믿을 수 없다는 묘한 직감 때문이었다.

    하나 직감은 직감일 뿐이다.

    고작 느낌만으로 반대표를 던질 수는 없었다.

    라울까지 찬성표를 던지자. 남은 것은 카펜터 공작부인의 동의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어이 그녀를 찾는 수색대까지 따로 꾸려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공작부인은 찾을 수 없었다.

    “카펜터 공작부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카펜터 공작가로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요?”

    “공작가로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라.”

    노엘은 공작부인을 찾을 때까지 이 문제는 보류하자고 말했다.

    그동안 데미안은 타인의 일처럼 이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라울은 그런 데미안을 미심쩍게 쳐다보다가 주변에 포진해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을 때, 그에게 다가가 경고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찬성하기는 했지만. 난 네놈이 가주 대리가 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니 경거망동하지 마라.”

    이쯤 되니 데미안도 의아해졌다.

    “왜 저를 그렇게 싫어하시는 겁니까? 저희는 별 접점도 없을 텐데요.”

    “네 놈이 께름칙하니까. 비단 테레제가 너와 결혼식을 올리려다 비참하게 버려진 일만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결혼식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이죠?”

    라울은 그 반응이 가증스러워 치를 떨었다.

    “교외의 신전. 이래도 모른 척할 셈인가? 클라이드라는 가명까지 써서 널 변호한 내 딸을 끝까지 우습게 만들려 드는군. 그런 주제에 감히 혼담을 입에 담질 않나!”

    라울이 테레제에게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카펜터 공작가에서 이미 테레제와 데미안의 혼담을 제안했다는 사실이었다.

    데미안은 라울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표정이 싸늘해졌다.

    “클라이드라면 테레제가 윌로우 가문의 후계자와 결혼하려 했다는 말입니까?”

    “무슨 헛소리를…!”

    라울은 난데없이 윌로우 후계자를 거론하는 데미안에게 윽박지르려다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테레제가 제일 처음 신전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고백했을 때 그랬었다.

    “윌로우 가문의 후계자인 클라이드를 말씀드리는 거예요.”

    뭔가 이상했다.

    그때는 데미안의 정체를 숨기려고 아무렇게나 지어낸 거짓말로 치부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테레제가 굳이 그런 짓을 할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데미안의 저 표정.

    저건 아내의 내연을 목격한 남편 같은 반응이지 않은가?

    라울이 이상한 위화감으로 오싹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언제 여기까지 다가온 것인지 리비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라울의 팔을 잡아끌었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찾고 있어요. 얼른 가요.”

    “뭐? 잠깐, 리비…….”

    “어서요!”

    리비는 평소의 온순한 성격답지 않게 성질까지 부리며 라울을 데리고 황급히 자리를 이동했다.

    데미안에게 위화감의 정체를 확인해볼 생각이었던 라울은 딸의 성화에 일단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대체 왜 이러느냐?”

    “제프리 님이 아버지를 찾고 있어서 그래요.”

    대답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리비는 불안한 눈으로 뒤를 힐끔거렸다. 데미안이 있는 방향이었다.

    “저 선배, 뭔가 이상해요. 세상에 없는 사람을 언급하질 않나……. 가까이하지 마세요, 아버지.”

    라울은 직감적으로 리비가 클라이드라는 인물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더불어 ‘클라이드’라는 존재를 알고 있는 테레제와 데미안에게 뭔가 다른 비밀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네 언니와 뭔가 비밀이라도 만든 게냐?”

    리비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라울을 쳐다보았다.

    “아, 아, 아니요?”

    “비밀이 있군. 상황이 마땅치 않으니 당장 묻지는 않으마. 테레제가 돌아오면 이야기하자꾸나.”

    리비는 차마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말아 물기만 했다.

    “스콰이어 공작님!”

    그때 제프리가 심각한 얼굴로 라울을 불렀다.

    “무슨 일이오?”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듯합니다. 외부에서 새로운 던전을 하나 발견했는데. 근처 바닥에 카펜터 공작부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채와 가방이 있었습니다.”

    그 말에 라울의 표정도 대번에 심각해졌다.

    “스콰이어 나비로 주변을 수색해보겠소. 마력에 민감한 녀석이니 숨어있는 마법사를 찾기에 더 적합할 거요.”

    “예. 부탁드립니다.”

    라울이 리비에게 말했다.

    “밖으로 나가자. 여기서는 나비를 소환하지 못한다.”

    “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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