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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27화 (228/277)

227화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날의 기분, 벼락처럼 찾아온 운명 같은 직감, 별자리 운세 따위에 상황을 맡기며 행동하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었다.

“저처럼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고 전략, 전술, 규칙을 손쉽게 파악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게임에 응하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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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신 발언해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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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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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로 품었지만 이럴 때마다 킹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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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말랬지ㅡㅡ]

화목한 우리 집을 평가하는 항목은 총 세 개.

육아, 금실, 평판이다.

‘평판’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나와 유지스가 좋은 부모인지 아닌지에 대한 항목이었다.

앞선 두 항목, 육아와 금실 부분에서 높게 평가받으면 평판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여기서 가장 핵심이 되는 평가 항목은 금실이다.

금실에는 남자주인공의 호감도 상태도 평가 대상에 반영되기에 여러모로 신경 쓸 부분이 많아서 까다로웠다.

그러나 막 걱정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유지스의 반응을 보면 나한테 꽤 관심 있는 눈치인데.’

나는 유지스에게 전달할 술과 시가를 챙기러 가던 길에, 잠깐 걸음을 멈추고 벽에 걸린 거울 속 내 모습을 확인했다.

“다들 그렇게 내가 좋은가.”

창조물들이 창조주에 느끼는 강렬한 이끌림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어느 정도로 내가 특별해 보이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러다 유지스의 호감도까지 확 올라버리면 어쩌지? 감당하기 어려운데.”

난 마음을 받아 줄 생각이 없다고. 하아.

인기인 노릇도 그럴 깜냥이 되는 사람이나 감당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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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던전에 가스 살포했냐? 오늘따라 애 상태가 더 안 좋다?]

나는 골치 아프다는 말만 여러 번 중얼거리며 윈다에게 안내받지도 않은 주류 창고를 찾아가, 자연스럽게 술을 챙겼다.

잠깐 술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관두었다.

이어 사치품 보관 창고에서 시가 케이스와 성냥 한 갑을 꺼내 유지스의 개인 침실로 향했다.

부부 침실 근처는 사용인이 없어 한적했으나, 이쪽 통로는 사람이 제법 돌아다녔다.

따라서 호칭을 조심해야 했다.

똑똑.

“여보, 저예요.”

내 딴에는 다정한 목소리로 부른 거였는데 생각보다 음성이 무미건조하게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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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안 설렐 수가…]

‘역시 진심은 통한다더니.’

내키지 않은 마음이 소리로 대변된 모양이다.

곧 안에서 허락의 말이 떨어졌다.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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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휴 아내한테 “들어와”가 뭐냐? 라울은 로잔에게 꼬박꼬박 말을 높이는데]

내 말이 그 말이었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느새 편안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유지스의 모습이 보였다.

유지스는 조금 신경질 난 얼굴로 방안을 구석구석 뒤지고 있었다.

“뭐 찾으세요?”

“성냥. 가져온 건 테이블에 둬.”

나는 테이블에 가져온 것들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성냥도 챙겨 왔어요.”

이 세계는 ‘좋아하는 걸 하지 않으면 죽는 던전’처럼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던전에 대해서도 좀 알아 왔고요.”

그제야 장식장을 채우고 있던 조각상을 퍽퍽 밀어뜨리며 거친 손짓으로 성냥갑을 찾고 있던 유지스가 나를 쳐다보았다.

“흐음.”

굳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 행동력이 탐탁했는지 매서웠던 눈초리가 누그러졌다.

그는 한결 여유가 생긴 걸음으로 테이블에 다가와 시가 케이스 뚜껑부터 열었다.

한데 막상 가지런히 놓인 시가를 빤히 보기만 할 뿐 꺼내진 않았다.

“던전에 대해 알아 온 거나 이야기해 봐.”

유지스는 내게 앉으라 손짓하더니, 본인도 맞은편 자리에 앉아 시가 케이스 뚜껑을 도로 덮었다.

당장 피울 생각은 없는 듯했다.

‘던전에 막 들어온 참이니 그래도 경각심을 갖는 건가?’

그런 거라면 제법 기특했다.

나는 세실리아가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 간략하게 설명했고, 유지스는 그보다 더 간단하게 축약해서 정리했다.

“세실리아가 만족하는 수준의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야 아까 총관리자가 못 들어가게 막았던 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군. 거기에 악마가 숨어 있고?”

“맞아요.”

세실리아의 소망을 알게 된 유지스가 혀를 찼다.

“별 같잖은 이유로 악마와 계약했군.”

“그런가요.”

왠지 겸연쩍어졌다.

난 충분히 소원이 될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내 소원이기도 했으니까.

유지스가 시시해졌다는 투로 물었다.

“짐이 부모 노릇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페널티를 받겠죠.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부적합자’로 판단한 던전이 저희를 처형시킨 뒤 다시 문을 열어 부모 역할을 할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거예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그러면 어떤 식으로 좋은 부모 역할을 할지 논의할 것이다.

하나 유지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녀가 혼자 열심히 세실리아를 돌봐주었을 때는 어떻게 되지?”

“결국 한계가 오겠지만, 세실리아가 아빠의 부재에 불만을 느끼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참작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됐군. 혼자 열심히 해 봐.”

유지스는 그 즉시 위스키 뚜껑을 열어 잔에 따랐다. 입가에는 느긋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짐에게는 던전보다 황실이 더 던전 같아서 딱히 서둘러 여기를 나가고 싶지 않거든.”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내가 순순히 받아들이자 예상한 반응이 아니었는지, 위스키를 마시려던 유지스가 멈칫하고 동작을 멈췄다.

“짐을 설득하려들 줄 알았는데 뜻밖이군.”

“아, 그건 지금 하려고요.”

탁.

유지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마시지도 않은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자신만만한 건지 열의가 없는 건지 좀 헷갈리는데. 어느 쪽인지 알려줄 수 있나?”

“자신만만한 쪽에 가까울 거 같네요. 저는 폐하께 내기를 제안할 생각이거든요.”

그러자 유지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무슨 내기를 하려고?”

과연 흥미를 보일 거라 예상했다.

“오늘부터 일주일 안에 폐하께서 아빠 노릇을 하시게 될지 아닐지 내기하실래요?”

“기준이 모호하군. 아빠 노릇에 뭐가 있지?”

“세실리아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면 아빠 노릇을 하시는 걸로 간주할게요.”

“좋아. 그래서 뭘 걸 건데.”

“제가 이기면 던전에 있는 동안, 어떤 순간에든 남편답게 행동해주세요. 그리고 본인을 짐이라 칭하지 마시고 저도 공녀가 아니라 부인이라 불러주시고요.”

“시시한 소원이군. 하나 더 말해봐.”

역시 인심을 쓸 때는 매우 후한 성격다웠다.

“그럼 세실리아 앞에서는 제 손을 잡아주세요. 다정한 부부답게요.”

“그러지.”

이번에는 유지스가 자신이 바라는 것을 말했다.

“짐이 이기면 그 빌어먹을 여보 소리 집어치워. 그리고 던전에 있는 동안 짐의 전속 시녀로서 행동하도록 해.”

“네. 그럴게요.”

내기는 순조롭게 성사되었다.

유지스는 지금까지 중 가장 생기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웃었다.

“이래서 짐은 공녀가 참 마음에 들어.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즐겁게 해 주거든.”

나 역시 즐겁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영광입니다.”

불쌍한 유지스. 본인이 함정에 빠진 줄도 모르고 내기할 생각에 들뜬 모습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다 자업자득이다.

‘혹시 모르지. 운이 좋으면 날 이길 수 있을지도?’

뭐, 개발자를 상대로 그게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 * *

유지스는 나른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어제는 비가 내렸다.

빛을 쬐면 죽는 괴물처럼 커튼을 쳐두고 사는 그가, 어제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비가 내리는 풍경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었다.

그러다 깜빡 잠들었더니, 아침 햇살에 눈이 떠졌다.

유지스는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쳐다보았다.

오늘도 두통이 없었다. 이로써 벌써 며칠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날에 햇빛을 보면 시신경이 타들어 가다 못해 뇌가 녹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침 햇살에 눈을 뜨는 일은 그에게 있어 매우 드물고 희귀한 경험이었다.

지긋지긋한 황궁을 벗어나 컨디션이 좋은 건가?

그게 아니라면 테레제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오늘이 며칠째지? 사흘째인가?”

테레제 스콰이어는 던전에 들어온 첫날, 그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자신이 아빠 노릇을 하게 되면 패배하는 내기였는데, 그날 이후로 테레제는 제게 필요한 걸 꼬박꼬박 챙겨주기만 하고 특별히 뭔가를 하는 낌새가 없었다.

유지스는 손가락 사이에 시가를 끼운 채 발코니로 나갔다.

“꺄아악! 엄마가 쫓아와!”

타이밍 좋게도 그때 마침 아이의 신난 비명이 들려와 시선을 내렸다.

테레제가 천으로 눈을 가린 채 아이와 술래잡기 놀이 중이었다.

“잡았다!”

“아하하! 놔줘어! 살려줘, 메리!”

까르르 까르르.

사용인들이 호응하듯 함께 소리 지르고 응원한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안대를 내린 테레제가 세실리아를 안은 채 빙그르르 돌자 치맛자락이 꽃처럼 피었다.

그러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테레제가 세실리아에게 속삭이더니 두 사람이 여기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빠!”

인사에 화답해주길 바라는 손짓을 무감하게 바라보던 유지스는 연기를 빨아들인 뒤 입 안에 고인 것을 훅 내뱉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광경이 연기로 뒤덮였을 때, 그는 도로 방에 들어가 버렸다.

BJ 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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