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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25화 (226/277)
  • 225화

    세실리아는 겉보기에 멀쩡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절대로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눈빛이 섬뜩했다.

    띠링!

    [성좌 ‘던전만 기다리는 중’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헉 얘 악마랑 계약한 건가? 그러면 던전 들어가는 거야?]

    악마 계약자를 함부로 자극해서는 안 된다.

    준비할 새도 없이 던전을 생성해버리기 때문이다.

    세실리아는 내 발치까지 다가온 나무 인형을 주워 들었다.

    나는 일부러 나무 인형을 못 본 척하며 말을 걸었다.

    “여기는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요. 선배님이 보이길래 여기까지 인사하려고 일부러 찾아온 거죠.”

    “그랬니? 찾아온 성의는 고맙지만, 곧 폐하께서 오실 거라서. 나중에 다시 인사하자.”

    나는 일부러 유지스를 언급했다.

    그의 눈은 본질을 꿰뚫기에 세실리아를 보자마자, 그녀가 악마와 계약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실리아는 자신이 악마 계약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면 황제를 피해야 했다.

    “좋겠어요, 선배님은.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폐하와 단둘이서 시간을 보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

    “그렇게 사는 기분은 어때요? 듬직한 아버지가 계시고, 남매와 사이가 좋고, 다들 좋아해 주잖아요. 심지어 황제 폐하께서도…….”

    세실리아의 실성한 듯한 웃음이 갈수록 짙어졌다.

    “누구는 목숨 걸고 던전을 돌아다니는데, 누구는 운이 좋아서 온갖 기회를 얻네요. 진짜 불공평해.”

    나는 드레스 자락 뒤로 손을 가린 채 마력을 생성했다.

    연회장 역시 마력이 통제된 공간이었지만,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내가 마력을 일으키는 걸 발견한 궁인들이 쑥덕거리는 게 얼핏 보였다.

    ‘어서 이상함을 깨닫고 황실 마법사들을 이쪽으로 보내줘야 할 텐데.’

    “우리는 같은 공녀잖아요. 그런데 선배만 이렇게 대접받는 거, 치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한테서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거?”

    세실리아는 악귀 같은 얼굴로 내 팔을 부러뜨릴 듯이 잡아챘다.

    “읏…!”

    “내가 이렇게 비참한데, 너도 비참해야지.”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싸우나?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해하는 기색들이었다.

    더불어 뭔가 눈치챈 듯 황실 마법사들이 인파를 가르며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하나 기겁한 카펜터 공작이 이곳으로 달려들며 일을 망쳐버렸다.

    “세실리아, 이 정신 나간 것! 당장 이리 오지 못하겠느냐!”

    카펜터 공작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해가 갔다.

    황제가 직접 날 지목해 같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물러가도 괜찮다고 허락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는 라울와 로잔이라 해도 정확한 용건 없이는 섣불리 끼어들 수 없었다.

    한데 작위도 없는 공녀가 황제가 하려는 걸 방해한 셈이 되었으니, 카펜터 공작으로서는 경을 칠 수밖에.

    ‘그래도 눈치가 있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오지 말았어야지.’

    카펜터 공작을 발견한 세실리아의 두 눈이 붉게 변했다.

    그제야 카펜터 공작이 멈칫했다.

    ‘다 망쳐버린 주제에 정작 던전에 끌려들어 갈 위험은 피해 가네.’

    세실리아는 괴물을 본 듯 반응하는 카펜터 공작을 보며 증오에 몸을 떨었다.

    “어떻게 내 아버지가 저런 인간일 수가 있어!”

    띠링!

    [악마 던전이 생성됩니다.]

    “테레제!”

    멀리서 가족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데미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던전 발생 시 행동 지침에 따라 결계를 펼쳤다.

    이렇게 된 이상 던전을 다녀오는 수밖에 없었다.

    ‘세실리아가 악마 계약자가 되는 설정은 없어.’

    다만 지금까지 세실리아가 했던 말을 토대로 어떤 던전일지 예측해 볼 수는 있었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던전이 새롭게 창작된 적은 없으니, 이번 역시 내가 공략법을 아는 것일 거다.

    ‘아마 육아물 던전이 연결될 것 같은데.’

    그런 거라면 차라리 나 혼자 던전에 들어가는 편이 난도가 훨씬 낮아진다.

    하나 등 뒤에서 들려온 유지스의 목소리에 내 계획은 무산되었다.

    “요즘 애들은 불만을 악마와 계약하는 것으로 푸나? 말세로군.”

    나는 경악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아니, 왜 여기 계세요, 폐하? 결계를 풀 테니 당장 물러나세요!”

    코앞에서 던전 문이 생성되는 중이라 미처 연회장 분위기를 읽지 못했는데, 다들 매우 경악한 상태로 유지스를 부르짖고 있었다.

    모두 황제를 구해야 한다며 난리가 난 상황에서 유지스만 태연했다.

    “이미 늦었어.”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던전 문이 활짝 열렸다.

    우리는 저항할 틈도 없이 빨려 들어갔다.

    29. 폭군 길들이기

    뚱땅뚱땅!

    음계가 전혀 연결되지 않는 피아노 소리에 천천히 의식이 깨어났다.

    나는 웬 저택의 후원에서 눈을 떴다.

    혼자는 아니었다. 내 앞에 유지스가 아직 의식이 깨어나기 전인지,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던전에 들어오기 직전과 다르게 나는 흰 드레스를, 유지스는 흰 턱시도를 입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이거… 혼례복인가?

    멍하니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 퀘스트가 떴다.

    띠링!

    [던전 퀘스트: 폭군 길들이기]

    ▸보상: 50,000,000코인, 연회장으로 복귀

    ▸실패: 사망

    퀘스트 명을 보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다 못해 아찔해졌다.

    내 눈을 찌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만 던전에 들어왔어도 됐잖아! 왜 유지스도 함께 온 거냐고!’

    육아물 콘셉트의 이 던전은 어떤 남자주인공과 함께 들어오느냐에 따라 난도가 천차만별이었다.

    그중 최악은 단연 유지스였다.

    왜냐고?

    띠링!

    [화목한 가정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평가지를 생성합니다.]

    {화목한 우리 집 평가지}

    ▸육아: ☆☆☆☆☆

    ▸금실: ☆☆☆☆☆

    ▸평판: ☆☆☆☆☆

    ※모든 항목의 별점을 5개 채울 시 ‘세실리아의 방’이 열립니다.

    평가 목록을 보라. 벌써 사망 각이었다.

    띠링!

    [성좌 ‘던전만 기다리는 중’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

    띠링!

    [성좌 ‘유지스 신랑수업해’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금실! 금실! 금실! 금실! 금실!]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나 기대한다?! 어? 진짜로 기대할 거야?!]

    뚱땅뚱땅! 뚱땅뚱땅!

    후원 알림과 건반을 두들기는 소리가 최악의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을 때, 유지스가 눈을 떴다.

    “…….”

    “…….”

    우리는 춤췄을 때보다 더 가까이 밀착한 상태로 서로를 응시했다.

    이상한 긴장감이 몰려들 무렵, 아이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랑, 신부 입장하세요오!”

    낯선 이들의 웃음소리도 함께였다.

    나와 유지스는 동시에 아이를 쳐다보았다.

    하늘색 머리카락과 금빛 눈동자. 5살이 된 세실리아였다.

    세실리아는 결혼식 놀이를 위해 후원으로 꺼낸 하얀 그랜드 피아노를 두들겨대며 다시 한번 목청을 높였다.

    “신랑, 신부 어서 입장하세요!”

    유지스가 미간을 좁혔다.

    “설마 짐을 부르는…”

    나는 부리나케 그의 말을 끊었다.

    “세실리아가 부르잖아요, 여보. 어서 입장할까요?”

    “여보?”

    “네, 여보. 저기 사용인들도 꽃잎을 뿌리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유지스는 나와 세실리아, 그리고 주변에 포진한 사용인들을 쭉 훑었다.

    “아… 오늘 우리가 결혼하는 날이었나?”

    무슨 상황인지 다 파악했을 게 분명한 얼굴로 능청스레 묻는 저 입을 찰싹 때려주고 싶었다.

    그래도 연회장에서의 좋은 기분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모양인지, 유지스의 심술은 거기서 그쳤다.

    “가실까요, 부인.”

    그는 기꺼이 세실리아의 소꿉놀이에 동참해주었다.

    띠링!

    [성좌 ‘조용한 관종’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전에 마법 농원에서 만난 점성술사가 곧 결혼한다고 말했던 게 이건가 보다]

    우리가 피아노 쪽으로 다가가자 양옆으로 나란히 서 있던 사용인들이 꽃잎을 뿌렸다.

    다들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즐거워했다.

    정말로 그린 듯한 광경이었다.

    세실리아는 우리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피아노 의자에 올라가더니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두 사람은 반지를 교환하세요!”

    옆에서 반지를 놓은 쿠션을 들고 대기 중이던 사용인이 다가왔다.

    나는 아무것도 끼지 않은 왼손을 내밀었다.

    던전에 들어오니 오즈월드가 멋대로 끼운 루비 반지가 사라진 건 마음에 들었다.

    유지스가 왼손 약지에 큼직한 사파이어가 박힌 반지를 끼웠다.

    나 또한 반지를 들어 그의 손에 끼웠다.

    여기까지는 던전 에피소드가 시작할 때 반드시 진행되는 부분인지라 별 잡음 없이 순조로웠다.

    이후가 문제다.

    “이제 신랑은 신부에게 뽀뽀하세요오~!”

    이 대목에서 남자주인공의 호감도에 따라 입맞춤을 받는 부위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최고 점수는 입술이다.

    그리고 마이너스 판정은 입을 맞추지 않는 건데, 검은 하트 상태의 유지스는 절대로 플레이어에게 입 맞추지 않는다.

    ‘화목한 가정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세실리아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면 페널티가 발생해.’

    [성좌들이 ‘폭군 길들이기’ 던전의 특성 설명을 확인했습니다.]

    유지스는 입 맞추라는 말에 조소할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입맞춤을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들키기 전에 내가 먼저 유지스의 손등에 입 맞췄다.

    이 던전의 핵심은 ‘금실 좋은 부모에게서 듬뿍 사랑받는 외동딸이 된 세실리아’라는 욕망을 이뤄주는 것이었다.

    ‘제발 판정에 들어가라.’

    “어어…?”

    세실리아는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는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시, 신랑이 신부한테 뽀뽀해야 하는데…….”

    나는 유지스의 손등에서 느릿하게 입술을 떨어뜨린 뒤 세실리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

    “엄마가 뽀뽀하고 싶은데?”

    그러고는 세실리아의 뺨에도 입을 맞추었다.

    “꺄악! 으하학! 엄마가 뽀뽀 귀신이 됐어!”

    무표정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사용인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세상에, 로맨틱하셔라!”

    띠링!

    [평가가 반영되었습니다.]

    {화목한 우리 집 평가지}

    ▸육아: ★☆☆☆☆

    ▸금실: ★☆☆☆☆

    ▸평판: ★☆☆☆☆

    ‘됐다!’

    역시 예상대로 세실리아의 욕구를 충족하기만 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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