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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23화 (224/277)

223화

나는 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순수하게 감탄했다.

“마법 식물을 이렇게나 많이 사용하다니.”

엄청난 규모의 연회장은 실내 전체를 마법 식물로 꾸며두어 마치 거대한 식물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대형 실내 분수대도 있었다.

살면서 본 광경 중 이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한 건 없었다.

‘천계의 건물들도 화려하기는 했지만, 이런 사치스러운 느낌은 아니었지.’

황실 연회장은 부패한 제국의 끝을 보여주었다. 압도감마저 들 정도였다.

오즈월드가 물었다.

“어떤가요. 여름 무도회가 잘 구현되어 있습니까?”

게임에 관한 질문이어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성의껏 대답하게 되었다.

“그 이상이에요. 이렇게까지 화려한 광경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마음에 듭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부채로 입술을 가리고서 오즈월드에게 속삭였다.

“아니요. 멋지지만 옳지 못하잖아요. 이게 정말 게임이었다면 마음에 들었겠지만요.”

오즈월드는 부드럽게 웃더니 내 잔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지나치게 친근한 태도가 가증스러워 고개를 돌렸을 때,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유지스와 눈이 마주쳤다.

유지스는 내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샴페인 잔을 들었다.

건배사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연회장이 고요해졌을 때, 유지스가 입을 열었다.

“모두 여름 무도회에 참석한 것을 환영한다. 다가올 계절에도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맥이 풀릴 정도로 간략한 건배사였으나 이곳에 모인 이들 전부 유지스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알았다.

우리의 황제 폐하는 저런 분이지.

다들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첫 잔은 황제가 먼저 비운다.

유지스는 샴페인을 입에 털어 넣으면서도 집요하게 날 쳐다보았다.

‘진짜 왜 저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노골적인 시선이라, 귀족들도 전부 황제가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눈치채고서 쑥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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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무도회 시작부터 도파민 도네]

황제의 행태를 본 라울이 오즈월드에게 귓속말로 뭔가 속삭였다.

오즈월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곧 첫 군무가 시작되겠군요. 같이 나가죠.”

이어 라울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얹었다.

“그래. 어서 다녀오거라. 첫 춤은 파트너와 함께해야 하지 않느냐.”

내키지는 않았지만 라울의 말대로 첫 춤은 동행한 파트너와 추는 것이 관례였다.

나는 오즈월드와 댄스 플로어로 나가 자세를 잡았다.

곧 묵직한 선율이 흐르며 댄스 플로어에 나온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베인 시종장이 당신을 데리러 오기 전에 춤추러 나가라더군요.”

예상한 내용이었기에 고개만 끄덕인 후 입을 다물었다.

오즈월드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괜히 춤 동작에 더 집중하는 척했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 판테온의 일이나 부상 소식, 알파 위원장에 대해 물어봤자. 그가 내게 똑바로 대답해주지 않을 것임을 잘 알았기에 그냥 침묵했다.

‘말을 섞어봤자 화만 나겠지.’

오즈월드는 그런 내 선택을 존중할 생각이 없는지, 불쑥 질문했다.

“사교계의 꽃이 될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나는 입술을 비틀었다.

“당신 덕분에요.”

춤추는 커플들을 구경하는 귀족이든, 댄스 플로어에 나온 이들이든 전부 우리를 힐끔거렸다.

요즘 사교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사인 나와 오즈월드가 춤을 추느라 찰싹 붙어있는 광경이 얼마나 흥미롭겠는가?

오즈월드가 피식 웃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군요.”

‘이거 봐. 말 섞으면 화만 난다니까.’

나는 괜히 시선을 돌리다가 익숙한 인영을 발견했다.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은 지금까지 본 모습 중 가장 화려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번 여름 무도회를 통해 정식으로 친자라는 사실을 밝힘과 동시에 사교계 데뷔까지 시키겠다는 카펜터 공작의 포부가 느껴졌다.

점잖은 태도로 귀족들과 인사를 나누던 데미안이 시선을 느낀 건지 정확히 날 쳐다보았다.

고요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생기로 가득 차올라 만면에 미소가 피어났다.

나는 몹시 반가워하는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데미안을 향해 미소 지어주었다.

그 순간, 오즈월드가 갑자기 허리를 당겨 안는 바람에 스텝이 꼬일 뻔했다.

“집중해야죠, 테레제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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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뭐야 지금 질투해? ㅎ]

‘질투는 무슨.’

이 남자는 단지 날 엿 먹이고 싶은 거다. 그러니 보란 듯이 고개를 돌려 데미안에게 웃어주는 거겠지.

나는 오즈월드의 가슴팍을 쥐어뜯듯이 옷을 잡아당겼다.

“집중하셔야죠, 발렌시아 후작님.”

엄한 데다 시비 걸지 마시고요.

뒷말은 삼킨 채 빙긋 웃으니 오즈월드가 귓가에 속삭였다.

“그렇게 잡아당겨서는 벗겨지지 않을 겁니다.”

“아, 그래요? 남아도는 게 힘인데 더 세게 뜯을 걸 그랬나 봐요.”

내가 지지 않고 당돌하게 맞받아치자 오즈월드가 작게 웃었다.

“해 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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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합니다.]

‘해 보기는 뭘 해 봐, 미친놈아.’

고행 같던 첫 춤을 끝내고 돌아오자, 라울이 영 내켜 하지 않는 얼굴로 나를 불렀다.

보아하니 카펜터 공작 부부가 데미안과 함께 인사차 찾아온 듯했다.

“카펜터 공작님과 카펜터 공작부인을 뵙습니다.”

카펜터 공작이 과하게 반가운 척하며 데미안을 소개했다.

“오늘 참 예쁘군, 테레제 양. 시집갈 나이가 다 되어서 그런가? 껄껄! 참, 여기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내 아들인 데미안 카펜터일세.”

나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대답하며 데미안을 향해 짧게 인사했다.

데미안은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 사이 카펜터 공작은 오즈월드와 통성명했다.

“그쪽이 남부 귀족이라는 발렌시아 후작인가?”

“그렇습니다. 처음 인사드리는군요. 오즈월드 발렌시아입니다.”

“흐음.”

카펜터 공작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오즈월드를 훑어보았다.

“인물이 참 훤하군. 자랑 같아서 말하기 쑥스럽네만, 내 자식들도 아내를 닮아 외모가 남다르다네. 특히 세실리아는 미모로 사교계에서 유명하지.”

그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라울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감히 내 딸을 두고 네 딸 미모를 거론하는 거냐고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다.

카펜터 공작은 순간 기분 상한 표정을 지었다가 애써 웃으며 말을 돌렸다.

“얼마 전 스콰이어 가문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해 소개하고 싶었는데, 집안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불참하게 되었소. 이해해주길 바라오.”

“가문에 경사가 있어 조촐하게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던 것뿐이니 괘념치 마시오. 그나저나 세실리아 양은 보이지 않는군?”

라울이 세실리아의 행방을 묻자마자 카펜터 공작부인의 뺨이 굳은 채 파르르 떨렸다.

카펜터 공작의 눈가도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세실리아는 황실 정원에 있을 거요. 몸이 좋지 않은데 무리해서 나왔더니 탈이 나서.”

라울은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는 표정으로 데미안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런. 그런 거면 오라비가 가서 동생을 돌봐주어야 하지 않나?”

누가 들어도 넌 여기서 꺼지라는 의도가 다분한 말이었다.

자신이 왜 미움받는지 정황을 모르는 데미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카펜터 공작은 불쾌해했다.

“다 큰 여자애에게 오라비가 사사건건 간섭하는 건 보기 좋지 않지. 데미안, 너는 나갈 거 없다. 네 어미가 세실리아를 챙길 테니까.”

카펜터 공작부인은 차마 화내지는 못했으나 노여움 가득한 얼굴로 인사도 없이 휙 떠나버렸다.

데미안을 친자로 받아들인 게 카펜터 공작의 독단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라울은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듯 갑자기 오즈월드에게 다른 귀족들을 소개해주겠다고 나섰다.

또한 내게 이렇게 말했다.

“테레제 너도 이만 다른 사람들과 인사해야지. 저기 네 친구들 아니냐?”

라울이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클예부와 미모사가 또래 영애들이 모인 자리에서 날 쳐다보는 중이었다.

‘미모사는 내가 아니라 데미안을 보는 중이지만.’

나 역시 이 불편한 자리에 계속 있고 싶지 않았기에 데미안에게는 미안함을 담아 눈인사를 한 뒤, 예를 갖춘 후 자리를 떠났다.

클예부는 내가 나타나자마자 강강술래 하듯 주위를 둘러쌌다.

“꺄아악! 오늘도 눈부셔요!”

“잠깐, 저 지금 영감이 왔어요…. 혹시 오늘 창세기 때 마신께서 강림하신 그 모습을 구현한 건가요?”

“아~ 지난번 스콰이어 가문에서 설교했던 성전에 나왔었죠. 그때도 참 인상 깊게 들었답니다. 해서 테레제 님의 모습으로 마신 조각상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에요.”

“어쩐지! 그래서 오늘따라 미모가 더 성스러우셨군요? 꺄르르륵!”

“……제발 그만해,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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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얘들이랑 말이 잘 통해]

애석하게도 나하고는 말이 안 통했다.

클예부는 어느새 ‘마신 프로젝트’라는 명명으로 나를 어떻게 신격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절대로 그런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았기에 멍한 표정으로 데미안을 쳐다보는 중인 미모사에게 다가갔다.

“미모사, 뭐해?”

“데미안 보는 중이잖아. 알면서 뭘 물어보니?”

미모사는 오늘따라 더 까칠했다.

“데미안을 보는데 표정이 왜 그래?”

언제나 눈에서 하트가 뿅뿅 튀어나오는 상태로 데미안을 쳐다보던 미모사가 오늘은 심란해 보였다.

미모사가 한숨을 푹 쉬었다.

“모르겠어. 이상하게 데미안이 내가 알던 데미안이 아닌 것 같아.”

그 말에 솔직히 조금 놀랐다.

‘예리하네.’

지금의 데미안은 던전의 데미안과 섞인 상태였으니 미모사가 낯설게 느낄 만도 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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