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라울이 나직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어라. 혹시 말실수한 건가?
놀란 얼굴로 눈꺼풀을 깜빡거리고 있자, 라울이 아프지 않게 내 뺨을 꼬집었다.
“뭘 그리 놀라? 자신의 신을 만나 뵙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다만 넌 꼭 좋은 사람 같아서 소개받고 싶다는 투로 말하니 엉뚱하게 들리는 게야.”
나는 꼬집힌 뺨을 머쓱하게 쓸어 만졌다.
라울의 추측은 어쩌면 정확했다.
남들이 창조주라 불러주니 나도 모르는 새 의식 저편에서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심어진 듯했다.
‘말도 안 되지.’
창조주 특전을 받고 있기는 해도 그것으로 끝이다. 나는 신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이런 걸로 내가 특별하다 착각하는 건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민망함에 뜨거워진 뺨을 손부채질로 식히자, 라울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 민망해할 것 없다. 마신께서 네 말을 들으셨다면 틀림없이 기꺼워하셨을 테니.”
그는 새끼손가락에 낀 인장 반지를 빼냈다.
“잘 보거라.”
반지를 책 귀퉁이의 조그마한 홈에 끼우자 철컥하며 정중앙의 나비가 역방향으로 뒤집혔다.
“……이게 끝이에요?”
고작 나비가 역방향으로 돌아간 것 말곤 엄청난 이펙트 같은 건 없었다.
내가 책을 건드렸을 때는 음각된 부분이 전부 마력으로 채워지며 꽤나 화려한 연출이 있었는데.
라울은 되레 내 반응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뭐가 더 있어야 하니? 책이 번쩍번쩍 빛날 줄 알았던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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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던데 쩝…]
그뿐만 아니라 다른 차원에도 보내던걸요.
라울이 표지를 넘기자 빽빽하던 글씨는 온데간데없이 유려한 선으로 이루어진 나비 그림이 보였다.
‘선의 형태가 그냥 그림이 아닌 것 같은데. ……아, 뭔지 알았다.’
“마력 회로네요.”
“마력 회로라고? 룬이 보이지 않는데.”
“룬을 대신해 선으로 모든 정보를 집어넣었으니까요. 그래서 룬을 사용했을 때 생기는 한계를 깼어요. 고위 마법을 여럿 겹쳐버릴 수 있는 방식이에요.”
나는 날개 쪽을 가리켰다.
“여기 소환 술식이 들어가 있는 걸 보니 강령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인 것 같아요.”
설명이 쭉 이어질 동안 라울은 조용히 내가 가리키는 부분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이 선을 전부 그리려면 어지간한 마력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거예요. 혹시 스콰이어 직계 혈족이 유독 마력량이 높은 이유일까요, 아버지?”
나비에서 시선을 떼어 고개를 들자마자 라울과 눈이 마주쳤다.
“……놀랍구나. 이걸 해석하려면 가문의 마법사들이 한 달은 매달려야 했을 텐데.”
“저를 너무 띄워주시는데요.”
“나는 최고의 마도학자로 구성한 연구진이 빠르게 해석해낸 기준으로 말한 거다.”
‘으음. 설마 그 정도일까?’
일리야나 클라이드라면 나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술식을 파악했을 것이다.
내 표정을 본 라울이 과장이 아니라며 더 설명했다.
“간단하게 말해주마. 장담하는데 누구도 이 나비를 보자마자 무슨 술식을 썼는지, 얼마큼의 마력이 필요한지 한눈에 알아볼 수 없을 거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인간이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일리야나 클라이드 둘 다 인간이 아니기는 했다.
“이제 무슨 뜻인지 이해했느냐?”
“어… 제가 똑똑하다고요?”
“네가 인간의 기준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고평가였다.
‘혹시 지능에 변화가 생긴 건가? 상태창.’
▼
[테레제 스콰이어]
설명: 스콰이어 공녀
나이: 22세
마법 등급: S
지능: S
마력: A+ (200,000/200,000)
▲
[성좌들이 BJ의 성장에 기뻐합니다.]
나는 상태창을 확인하자마자 얼떨떨해졌다.
지능이 S라니. 게임으로 치자면 벌써 만렙을 찍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라울이 책을 톡톡 두드려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뭘 멍하니 있어? 어서 해 보지 않고.”
“네? 아버지가 하는 게 아니고요?”
“회로를 다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무슨. 네가 해 보거라.”
“비전 마법은 보통 가주 전승이잖아요.”
내가 황당해하자 라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른 놈들이야 그딴 쪼잔한 규칙을 만들어 혈족을 통제하겠지. 우리 가문은 아니다.”
띠링!
[성좌 ‘스콰이어 절대 지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열린 꼰대]
“알겠어요. 한번 해 볼게요.”
나는 집중해서 마력으로 회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이 술식은 엄청난 양의 마력을 투여해야 했다.
하나 내 마력은 이 마법을 여러 번 사용해도 무리 없을 정도로 넉넉했다.
이윽고 술식이 완성되었다.
“태어나라.”
이 마법은 강령술이지만 시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불러낼 수 있는 수준의 영혼이 나비의 모습을 빌려 태어나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MMORPG 게임의 펫 기능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지.’
같이 전투도 하고 잡일도 해주고.
날 이리저리 보내버렸던 검은 나비와 달리 스콰이어 나비는 그야말로 조력자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검은 나비와 스콰이어 나비의 차이점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나비구나.”
나만 볼 수 있었던 검은 나비와 달리 스콰이어 나비는 타인의 눈에도 보이는 모양이었다.
라울은 꼭 신식 마차를 본 주세페 같은 표정으로 나비를 구경했다.
그러더니 들뜬 목소리로 집사를 불렀다.
“도노반! 당장 최대 규모 연회를 준비해라. 스콰이어 가문이 비전 마법을 되찾았으니, 방계 혈족까지 전부 참석하게 하고!”
“알겠습니다, 가주님.”
나는 손가락에 앉은 스콰이어 나비를 보며 빙긋 웃었다.
“잘 부탁해.”
스콰이어 나비가 화답하듯 날개를 한차례 팔락였다.
* * *
리비와 주세페는 채집한 곤충을 관찰하는 아이 같은 눈으로 스콰이어 나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스콰이어 나비는 테이블에 놓인 마법 꽃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리비의 하얀 나비도 함께였다.
확실히 두 나비가 나란히 있으니 생김새 차이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주세페의 눈에는 하얀 나비가 보이지 않았기에 오직 스콰이어 나비만 유심히 쳐다보다 툭 말했다.
“이게 우리 가문의 비전 마법이란 말이야? 약하게 생겼는데?”
리비는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나비가 들으면 섭섭해하겠어. 이렇게 예쁘게 생겼는데 뭐가 약해 보여?”
“독수리도 아니고 매도 아니고 하다못해 사마귀나 벌도 아니야. 나비가 어떻게 강해 보여?”
나는 오류를 정정했다.
“진짜 나비가 아니라 나비 형태를 한 인간의 영혼이야.”
그러자 주세페가 발끈했다.
“나도 알거든? 이 나비가 유령이라는 거잖아.”
음…… 엄밀히 따지자면 틀린 말이 아니기는 했다.
리비는 존중과 낭만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표현에 반박하려 입을 열었으나, 내가 먼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 쉬는 시간 끝! 잡담은 그만하고 어서 회로 그리는 연습이나 해.”
나는 리비와 주세페도 비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도를 맡기로 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처음에는 비전 마법을 익힌다는 사실에 기뻐하더니, 회로를 외우라고 하자마자 이 모양이었다.
“아, 이걸 어떻게 다 외우라고! 고위 마법만 다섯 가지나 합성되어 있잖아! 이게 말이 돼?”
‘…왜 말이 안 되지?’
조금 복잡하기는 해도 원리만 이해하면 되지 않나?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말에 미간을 좁히고 있으니 주세페가 몹시 기분 나빠 했다.
“야. 재수 없는 표정 짓지 마라? 진짜 짜증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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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주세페 말이 맞다. 회로 휙휙 그려놓고 따라 하라고 하면 누가 하냐?]
‘내가 너무 불친절하게 설명했나?’
“알았어. 다시 보여줄 테니까 따라 그려봐. 시간 없으니까 어서.”
라울은 자신도 연회 전까지 마법을 익힐 테니, 리비와 주세페도 반드시 연회 전까지 다 익혀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연회는 당장 오늘 저녁이었다.
“아니, 저녁 연회 전까지 이걸 어떻게 다 외우고 익혀?”
주세페가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리자 리비가 침착하게 회로를 그리며 대꾸했다.
“그냥 해. 지금까지 비전 마법이 없어서 아버지가 설움 많이 당하셨을 텐데, 보란 듯이 자랑하고 싶으실 거야.”
“…알았어. 할게. 하면 되잖아!”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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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평화로운 스콰이어 공작가~^^]
* * *
나는 방에 설치해둔 실링팬을 작동시켜 더위를 식혔다.
“벌써 8월이라니.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아요.”
엘로이즈는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었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스콰이어 비전 마법을 찾은 기념으로 연회까지 열지 않았던가.
연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라울과 동생들은 연회가 시작되기 전에 무사히 비전 마법을 익혀 나비를 소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비와 함께 손님들을 맞이했고,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한 몸에 받았다.
유독 시선들이 내게 집중되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황제랑 무슨 사이냐는 질문도 스무 번은 넘게 들었지.’
뜻밖이었던 건 카펜터 가문이 연회에 불참한 사실이었다.
또한 오즈월드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번스타인 공작가는 일리야만 제외하고서 전부 참석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연회에서 나와 염문설이 퍼진 남자들 모두 쏙 빠지게 된 셈이었다.
“그래서 다들 오늘 무도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척이나 기대 중이래요.”
몸단장을 정성껏 돕던 엘로이즈는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번 여름 무도회의 주인공은 명실상부 아가씨라니까요?”
나는 조금 황당해졌다.
“다들 스콰이어 나비보다 내가 어떤 남자와 더 친한지가 궁금한가 봐.”
“걱정하지 마세요. 마법 협회에서는 아가씨의 남자 문제보다 마법 능력을 더 궁금해하는 모양이니까요. 오늘도 온갖 학회에서 초대장을 보내왔다니까요?”
엘로이즈는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몸서리를 쳤다.
“대체 어떤 아가씨가 사교계의 꽃을 가리는 여름 무도회를 두고 마법 학회를 가겠냐고요!”
“…….”
“그렇죠, 아가씨?”
“아, 응. 네 말이 맞지.”
여름 무도회보단 학회가 더 재미있을 거 같기는 한데.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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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의 꽃 퀘스트 아니었으면 학회 참석했다에 1억 코인 걺]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