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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19화 (220/277)

219화

*   *   *

나는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었다.

그러자 언제 고여있었던 건지 모를 눈물이 살갗을 쓸고 내려가 누운 베개를 적시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구프엘이 소멸하던 순간에 차올랐던 눈물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창고가 아닌 것 같은데.’

낯선 장소에서 눈을 뜨는 일은 내게 너무나 익숙했기에 별로 놀랄 것도 없이 차분하게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깨어났나?”

누군가가 곁에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어깨를 움찔하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지스는 거만한 자세로 앉아 날 삐뚜름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저절로 입술이 움직였다.

“괜찮으세요, 폐하?”

“하.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것이냐.”

대번에 비웃음이 날아들어 걱정한 게 무안해졌다.

나는 방금 한 말을 얼버무리듯 어설프게 미소 지었다.

“그러게요…….”

‘내가 왜 그랬지.’

그냥 유지스를 보자마자 머릿속으로 떠오른 말이 그거였고,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욕한 것도 아닌데 뭐.’

황제를 걱정하는 참된 신하처럼 보였으면 보였지, 나쁘게 해석될 여지는 없었다.

‘…근데 잠깐. 여기 황제의 침실 아닌가?’

그렇다는 건 내가 누워있던 자리가 바로 황제의 침대란 소리였다.

‘미혼의 영애를 본인 침대에 눕히다니, 제정신이야?’

이 세계관의 상식으로는 황제가 애인이 아닌 여자를 본인 침대에 눕히는 건, 말이 되지 않는 행위였다.

“실례했습니다.”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얼른 이불을 걷어 침대에서 내려가려 했을 때, 유지스가 내 어깨를 눌러 침대에 도로 눕혔다.

“그러다 또 쓰러져서 짐을 곤란하게 만들 셈인가? 곧 황궁의가 올 테니 그동안 누워있어.”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글쎄. 짐의 생각에는 여기만 한 곳이 없는 듯한데.”

“네?”

“공녀가 황궁에서 쓰러진 일이 외부에 알려졌을 때, 짐이 괴롭혀서가 아니라 다른 짓거리를 하느라 그런 거라고 착각들 할 테니까.”

기가 막혀 입을 떡 벌리자 유지스가 손수 턱을 밀어 닫아주었다.

“공녀는 처음으로 짐의 침대를 차지한 여인이니 이를 영광스럽게 생각하거라.”

영광은 개뿔.

“예에, 망극합니다.”

“망극하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잘도 하는구나.”

정곡을 찔리니 할 말이 없었다.

“그보다 짐이 궁금한 게 있는데.”

유지스는 아예 내 머리맡에 앉더니 지나치게 친밀한 거리에서 날 내려다보았다.

“왜 자꾸 괜찮냐고 묻는 거지?”

“네?”

“방금도, 창고에서 기절하기 전에도 짐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느냐.”

내가 그랬나……?

유지스는 내 표정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젖히며 한숨지었다.

“됐다. 말을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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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제는 그런 거 몰라! 아무것도 몰라! 근데 우린 다 알아!]

멍청해서 말이 안 통한다는 말투에 살짝 울컥했을 때였다.

툭.

유지스가 성의 없는 동작으로 내 옆에다 던지듯 책 한 권을 내려놓았다.

“그리 원하던 스콰이어 비전 마법서다.”

“감사합니다, 폐하.”

나는 환해진 얼굴로 얼른 몸을 일으켜 책을 안아 들었다.

하나 책을 펼쳐보지는 못했다. 유지스가 책을 펴지 못하게 위쪽을 움켜쥔 탓이었다.

“그 전에 해명할 게 있지 않나?”

또 뭐요.

유지스가 잠금이 풀린 상태로 달랑달랑 매달린 자물쇠를 툭 건드렸다.

“짐이 허락하기도 전에 미리 책을 건드린 것에 대한 해명.”

오늘 방문 목적이 비전 마법서를 확인하는 거긴 했지만, 까탈스럽게 예법을 따졌을 때 허락 없이 책을 건드린 건 내 잘못이기는 했다.

“그게, 저는 정말 손만 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물쇠가 풀리고 책이 펼쳐지지 뭔가요? 그러더니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고…….”

유지스는 듣기 싫다는 표정으로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짐의 허락 없이 포션을 먹인 건 어떻게 설명할 생각이지?”

“그것도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폐하께서 복용하신 포션은 협회 인증도 마쳤고, 어떤 포션보다 부작용도 적다고 밝혀진 물건이에요. 시가로 저택 한 채 값은 너끈히 나올 겁니다.”

“그래서 본인은 잘못한 게 없다?”

당연히 없었다.

“우연한 사고였고, 폐하를 위한 일이었지만,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약간의 반항심 섞인 뉘우침에 유지스는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 공녀를 너그럽게 용서하지 않으면 짐은 군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애초에 군자도 아니면서. 웃기지도 않았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유지스가 픽하고 비웃었다.

“또 거짓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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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궁예야 뭐야ㅡㅡ]

나는 화제를 돌렸다.

“참, 마법 꽃을 선별해왔는데 확인해보시겠어요?”

그 말에 유지스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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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지? 마음에 들지?]

내가 어색하게 굳어있으니 유지스가 드레스에 달린 끈을 손가락에 걸고서 물었다.

“왜 마음에 드냐고는 묻지 않지?”

“어…….”

“이럴 때는 짐에게 예쁜지, 취향인지 물어야 하지 않나.”

“……혹시 교태를 부리라는 말씀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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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태가 뭔지 알기는 해? 어? 교태가 뭔지는 아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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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제가 또 테레제한 걸로 왜 화를 내;; 이렇게 산통 깬 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잖아ㅠ]

내가 무슨 산통을 깼다는 거야?

그러면 여기다 대고 “그래요? 저 예뻐요?”라고 물어야 해?

“공녀는 참… 번번이 예상을 빗나가.”

유지스는 김이 샌 표정을 하더니 의자로 가서 다리를 꼬고 앉았다.

“짐이 그 책을 보면 글씨가 하나도 보이지 않더군. 아마 혈족의 눈에만 읽히게 하는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책을 건드렸다가 다른 차원을 다녀오는 바람에 내용은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책을 읽어봐도 될까요?”

유지스가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나는 무거운 표지를 넘겨 내용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비전 마법서는 뜻밖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아직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봤을 때, 마신을 섬기는 신도들이 작성한 성서인 것 같아요.”

“스콰이어 나비를 사역하는 방법이 적혀있지는 않고?”

“아직은요. …아, 스콰이어 나비가 강령술인 모양이에요.”

비전 마법서의 내용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망자를 나비로 불러들여 수족처럼 사용하는 방식이래요. 이 힘을 얻으려면 마신의 종이 되어야 하고요.”

나는 책 내용을 술술 말하다가 문득 성좌들이 내가 공부하는 걸 가장 지루해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유지스도 지루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물어보았다.

“계속 읽어드릴까요?”

한데 유지스는 조금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지루하셨어요…?”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묻자 유지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계속 읽어보아라.”

다행히도 지루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유지스는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나는 그의 요청대로 비전 마법서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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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비전 마법서 내용인데 이렇게 다 알려줘도 돼…?]

내용을 보니 어차피 마신의 종이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게 혈통이었다.

애초에 스콰이어의 피가 흐르지 않으면 스콰이어 나비를 사역할 수 없었으니, 유지스에게 말해봤자 그에게는 쓸모없는 내용이었다.

나는 마법서를 쭉 읽다가 황궁의가 오는 바람에 이야기를 멈췄다.

황궁의는 의식을 차렸음에도 여전히 황제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날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정성껏 진찰했다.

“아무런 문제도 없으십니다. 바로 활동하셔도 되겠군요.”

아무 문제 없다는 소리에 드디어 지긋지긋한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 사이 베인과 제프리가 상황을 살피러 침실을 방문했다.

“깨어나셨군요, 공녀. 많이 걱정했습니다.”

“시장하지는 않으십니까? 다과를 내어올 테니 응접실로 가시지요. 공녀님께서 가져오신 꽃들로 장식해두었습니다.”

그동안 유지스는 계속 묘한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다가 갑자기 파격 선언했다.

“제프리.”

“말씀하십시오, 폐하.”

“황궁에서 스콰이어 가문의 비전 마법서를 발견했다.”

“……예?”

“공녀를 아끼는 마음으로 친히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하니 그리 알고 비전 마법서와 함께 전령을 보내라.”

제프리는 감히 황제의 뜻에 반대하지 못하고 표정만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안 됩니다, 폐하. 그리하시면 폐하께서 오명을 쓰실 겁니다.”

설마 내가 반대할 줄은 몰랐는지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제 가문의 비전 마법서가 우연히 발견될 리 없다는 사실을 폐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대놓고 마법서를 돌려주시면 100년 전 사건이 재조명될 것이고, 황실은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이상한 말을 하는군. 짐의 명예 때문에 비전 마법서를 돌려받지 않겠다고?”

“네.”

어차피 그런 거 없어도 이 세계는 잘만 굴러갔다.

스콰이어는 주인공인 리비의 가문이기에 당연히 승승장구할 테고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하나 유지스는 아니었다.

그는 황제지만 불행한 이였다. 또한 돌아가는 꼴을 보니 리비에게 선택받기도 글렀다.

“돌려주지 않으셔도 돼요, 폐하.”

내 강경한 태도에 유지스는 침실에 있던 이들을 전부 내보냈다.

“다시 묻지. 대체 왜 짐을 걱정하는 것이냐?”

“그야 저는 신하로서,”

“지금부터 5분간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벌하지 않으마. 욕을 해도 상관없으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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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 타임]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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