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띠링!
[퀘스트: 유지스 찾기]
▸보상: 유지스 호감도 상승
▸실패: 유지스 호감도 대폭 하락
기어이 퀘스트까지 뜨는군.
태양궁의 중심부로 향할수록 표정을 관리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시종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탓이었다.
그렇다는 건 유지스가 일부러 주변에서 사람을 치웠다는 건데, 그만큼 상당히 예민한 상태라고 추측해볼 수 있었다.
‘그런 곳에 왜 나를 들여보내려고 하냐고!’
나는 티 나지 않게 날 안내하는 베인과 궁정 하인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곧장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고 말았다.
다들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는 소년처럼 날 쳐다보고 있는 탓이었다.
부담스러운 응원 어린 시선을 받으며 황제가 기거하는 태양궁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베인은 걸음을 우뚝 멈춰 서서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저희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폐하께서 이 안으로는 누구도 들이지 말라 엄중히 명령하셨습니다.”
“……네.”
내가 떨떠름한 미소로 대답하자 베인이 말을 이었다.
“공녀님이 도착했음을 고하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제아무리 베인이라 해도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
“폐하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신 것에 베인 시종장님도 포함된 것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어차피 직접 폐하를 뵈어야 하는 건 저니까요.”
죽더라도 괜히 두 사람이나 희생될 필요는 없지.
‘난 퀘스트 때문에라도 유지스를 만나야 하니까.’
“이게 더 효율적이잖아요.”
내가 말을 끝마치자 베인을 포함해 시종들이 다들 비슷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문제라도 있나요?”
띠링!
[성좌 ‘하하버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난 이걸 보려고 태어난 거야!]
띠링!
[성좌 ‘마음으로 낳은 테레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남을 위해주는 것 좀 봐… 이래서 테레제가 좋아ㅠ_ㅠ]
베인이 내게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하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아요.”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태양궁은 황제 본인을 제외한 누구도 마법을 사용할 수 없도록 강력한 마법진이 설치된 장소였다.
따라서 나 역시 이곳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야만 했다.
한데 이상하게도 마법을 사용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아니, 분명 가능하다.
‘마력의 흐름이 읽혀.’
마치 코딩 창을 띄워 이곳이 어떤 소스로 이루어졌는지 훤히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베인과 시종들은 더없이 공손한 태도로 예를 갖추었다.
“그럼 염치없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여라도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그럴게요.”
나는 혼자서 황제의 침실 앞에 섰다.
후. 잠깐 심호흡 좀 하고.
“폐하, 스콰이어 가문의 테레제가 알현하기를 청합니다.”
한데 안에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건가?’
“폐하, 스콰이어 가문의 테레제가 알현하기를 청합니다.”
그렇게 말하기를 여러 번.
유지스는 싫어하는 인간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타입이지, 이런 식으로 밖에다 세워놓고 기 싸움하진 않는다.
그래서 이상했다.
‘이쯤 했으면 안에 들어가도 되겠지?’
혹시 유지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 수 있으니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시가와 위스키 냄새가 느껴졌다.
한데 저번처럼 독하지 않았다.
게다가 뭔가 실내 공기도 싸늘했고.
“황제 폐하?”
그도 그럴 것이 침실에 사람이 없었다.
“뭐야. 어디로 간 거지?”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주변을 휙 둘러보았을 때, 부자연스럽게 틈이 벌어진 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래에는 깨진 술잔과 술이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다.
이는 필시 유지스의 흔적이었다.
나는 단번에 이게 뭔지 눈치챘다.
“벽면에 비밀 통로 같은 게 있는 모양인데.”
이런 건 게임에 없는 설정이었다.
‘이 안에 뭐가 있는 거지? 여긴 왜 들어간 거야?’
우수수 떠오르는 의문은 뒤로 넘기고 우선 틈이 벌어진 벽면 쪽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다 액자 중 하나가 살짝 비뚤게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이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뚤게 걸린 액자를 건드려보니 장치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비밀 통로가 드러났다.
띠링!
[성좌 ‘나 이거 알아’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방 탈출 게임]
드문드문 램프가 가로등처럼 걸린 길을 따라 쭉 이동하니 새로운 문이 보였다.
끼이익.
문을 밀고 들어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잠깐 동작을 멈추었다.
“와…….”
이곳은 거대한 보고였다.
한쪽 벽에는 성유물과 함께 다른 국가의 것으로 추측되는 독특한 양식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표지가 보이도록 선반에 전시된 특이한 책들을 나열해놓았다.
마도구, 갑옷, 미술품 등 척 봐도 예사롭지 않은 것들이 보관된 장소라니.
‘역대 황제들의 수집품 같은 건가?’
그렇다면 이곳에 스콰이어 가문의 비전 마법서도 있을까?
툭.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옮기다 발치에 뭔가 걸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책이 눈에 띄었다.
아니, 책만이 아니다. 바닥은 온갖 것들로 어지러웠다.
그리고 그 속에 유지스가 쓰러져 있었다.
띠링!
[퀘스트: 유지스 찾기 완료]
▸보상: 유지스 호감도 상승
“폐하!”
나는 쏘아지듯 유지스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서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보세요, 폐하!”
이러다 큰일이라도 나는 거 아닌가 싶어 그의 뺨에 손을 대었을 때였다.
유지스가 송곳에 찔린 듯이 두 눈을 부릅뜨며 내 손목을 잡아챘다.
“하아… 하아….”
그는 힘껏 달린 사람처럼 거친 숨을 흘리다 날 알아본 모양인지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테레제 스콰이어?”
“네, 폐하.”
“네가 왜 여기.”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윽…….”
유지스는 이마를 붙잡으며 어설프게 일으키고 있던 상체를 다시 바닥에 붙였다.
고질적인 두통이 온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레이니가 챙겨 준 포션 중에 통증에 효과가 좋은 게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며 설명했다.
“이건 두통을 가라앉혀주는 포션이에요.”
유지스는 포션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어금니를 꽉 다물며 어떻게든 두통이 가시길 인내했다.
‘미련하긴.’
“제가 드리는 게 안전한 건지, 못 미더우셔서 그러시는 거죠?”
그렇다면 방법이 있었다.
나는 포션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신 뒤 그에게 내밀었다.
“보세요. 저도 마셨으니까 인제 그만 고집 피우시고 얼른 드세요.”
유지스는 신경질적으로 내민 포션을 팍 쳐냈다.
다행히 다 쏟진 않았지만, 병을 쥔 손이 조금 젖을 정도로 내용물을 낭비해버렸다.
복용량이 부족할수록 약효가 떨어질 것은 자명했다.
하나 약효가 있는지 없는지 따위는 유지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뇌가 타버릴 듯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도 비척비척 일어나 사나운 눈빛으로 날 똑바로 노려보았다.
“감히 너 따위가 짐을 동정하느냐?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실핏줄이 터져 벌겋게 물든 눈을 보고 있으니 절로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죽일 때 죽이시더라도 약은 좀 드시면 안 될까요?”
“너…!”
유지스는 벌컥 화를 내려다가 의식이 끊긴 건지 그대로 허물어졌다.
“폐하!”
나는 그가 돌바닥에 머리를 처박기 전에 황급히 품에 끌어안았다.
포션도 흘리지 않고 여전히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와, 큰일 날 뻔했네.”
내심 내 순발력을 스스로 칭찬하며 식은땀 흘리는 유지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게 순순히 약 드셨으면 됐잖아요, 폐하.”
나는 혼절한 유지스에게 포션을 먹였다.
과연 레이니가 만든 포션답게 유지스의 표정은 금세 편안해졌다.
“그나저나 설마 유지스가 깰 때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건가…?”
이 인간이 언제 깰 줄 알고?
유지스는 여전히 내게 안겨 있었다. …솔직히 좀 무거웠다.
‘무려 190㎝나 되는 거구를 내가 어떻게 감당해?’
일단 바닥에 눕혀둬야겠다.
나는 낑낑거리며 책을 베개처럼 놓고 그 위에다 유지스의 머리를 조심스레 얹었다.
띠링!
[성좌 ‘쫄보’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사람을 불러와야 하지 않을까? 이러다 황제 잘못되면 어떡해?]
띠링!
[성좌 ‘프로훈수러’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ㄴㄴ 누가 봐도 은밀한 장소 같은데 함부로 사람을 불러왔다가는 비밀 누설로 죽을 듯]
나 역시 ‘프로훈수러’ 성좌의 말에 동감했다.
“이럴 때 이동 마법을 쓸 수 있으면 간편했을 텐데.”
유지스에게 경량 마법을 걸어 질질 끌고 침실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중, 바닥에 퍼질러져 있는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책은 몹시 컸다. 그리고 표지가 쇠로 되어있어 독특했다.
“자물쇠도 달려 있네.”
내 시선을 가장 끈 것은 표지 정중앙에 음각된 나비 문양이었다.
‘아무리 봐도 스콰이어 나비랑 똑같이 생겼는데?’
“설마 스콰이어 비전 마법서인가?”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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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물쇠에 열쇠 구멍이 없습니다.]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보려고 책에 손을 댔을 때, 갑자기 전신의 마력이 훅 빠져나갔다.
“흡…!”
한순간 눈앞이 아찔할 정도의 강렬한 감각이었다.
그렇게 빠져나간 마력은 표지의 음각된 부분을 전부 찬란한 빛으로 채워냈다.
이윽고 정중앙의 나비까지 마력으로 가득 차오르자 달칵하는 소리가 나며 자물쇠가 풀렸다.
‘마력이 열쇠였나?’
그 순간 책이 저절로 펼쳐지며 시야가 암전되었다.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