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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14화 (215/277)
  • 214화

    리비는 멀어지는 샤티 부인의 저택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있잖아, 나 부모님께 무척 감사하게 됐어. 예법은 실례되지 않을 정도로만 배우면 되는 것 같아.”

    “동감이야.”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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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이 정도로 지치다니 믿을 수 없군요. 이제야 황후로서 한 걸음 내디딘 수준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는 훨씬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한 법. 지금부터라도 그 지긋지긋한 마법서는 불태워버리고 당장 황실 법도를 익히는 일에 집중하세요.]

    오늘 일로 깊이 깨달았다.

    원래도 생각 없었지만, 죽어도 황후는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비척비척 파김치가 된 상태로 집에 도착해 가족들과 조금 늦은 저녁을 먹었다.

    “샤티 부인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니?”

    로잔의 물음에 꺼멓게 죽은 얼굴로 오늘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최대한 에둘러 설명했다.

    그러자 하소연을 가만히 듣고 있던 라울이 몹시 안타까워했다.

    “허어, 고작 반나절 교육받은 것으로 둘 다 식사 예절이 눈에 띄게 좋아졌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샤티 부인에게 너희를 맡길 걸 그랬어.”

    “…….”

    “…….”

    라울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듯 비죽 웃고 있던 주세페까지 쳐다보며 말했다.

    “이 김에 셋 다 샤티 부인의 수업을 들으면 되겠구나.”

    “저는 왜요?!”

    주세페가 버럭 소리치자 라울이 대번에 눈을 매섭게 떴다.

    “지금 네 태도를 봐라! 어디 겁도 없이 아비한테 소리를 쳐?”

    “아, 아버지! 샤티 부인은 여자만 가르친다고요!”

    “한심한 소리 말거라. 집안일과 예법에 남자, 여자가 어딨느냐?”

    주세페도 샤티 부인이 얼마나 엄격하게 영애들을 가르치는지 들은 바 있었다.

    더불어 최초의 남자 교육생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거세게 저항했다.

    “그런 건 쟤들 시키면 되잖아요! 저는 마법 공부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고요.”

    띠링!

    [성좌 ‘주쪽이가 달라졌어요’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주쪽이는 아직 많이 배워야겠다……]

    주세페는 그딴 건 누나들이나 시키라고 대들었다가 라울의 결심만 부추겼다.

    “조만간 주세페 너라도 교육받을 수 있게 부인께 청해야겠다. 오늘 네 누나들을 봐라. 얼마나 점잖으냐?”

    “이거 다 연기하는 거거든요?! 야! 너희 안 이랬잖아!”

    “주세페, 아버지 말씀 들어야지.”

    내가 엄한 표정으로 꾸짖자 리비 역시 새침하게 거들었다.

    “그리고 식사 시간에 소리 지르지 마. 예의 없게.”

    주세페는 몹시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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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 손절각 빨리 세우네 ㅋㅋ]

    “주세페 너는 앞으로 마법 수업을 줄이고 샤티 부인께 좋은 평을 얻을 때까지 교육받거라.”

    그렇게 결국 아버지에게 대든 주세페만 샤티 부인에게 교육받기로 확정되었다.

    나와 리비는 그날 내내 품위 있는 모습으로 저녁 식사를 마쳤다.

    잘 가라, 주세페.

    * * *

    천계는 풍부한 에너지로 이루어진 차원이었기에 그 어느 곳보다 훨씬 풍요로웠다.

    인간계에서는 마법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곳이 드물었는데, 여기선 길거리 잡초조차 마력을 품고 있었다.

    하다못해 천공을 부유하는 섬들마저도 강력한 마력을 토대로 공중을 떠다녔다.

    이렇듯 완벽하게 축복받은 곳이 바로 천계인데, 지금은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쿠우우우웅-!

    방금 또 하나의 섬이 떨어졌다.

    일리야는 그 섬뜩한 광경을 무심하게 응시하다가 다시 가던 길로 향했다.

    천계로 오니 명료한 확신이 섰다.

    누군가가 자신의 기억에 개입했다.

    릴리트를 상대하느라 테레제를 몽마의 꿈속에 집어넣었을 때, 어쩐 일인지 저 역시 현재의 기억이 봉인된 채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어떻게 기억이 돌아왔지?

    ‘테레제가 내게 약을 계속 먹였지.’

    약병을 확인하며 자신이 이성을 차리게 된 이유를 쉽게 납득했었는데, 지금은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의 오류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천계는 분명 무언가의 희생으로 차원 에너지를 회복했다.

    한데 지금은 창공의 섬들이 하나씩 떨어져 내렸고, 대륙은 검게 물들어가며 서서히 멸망해가고 있었다.

    일리야는 떨어지는 섬을 피해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가 멈춰 선 곳은 웬 요새 앞이었다.

    요새는 상당히 수준 높은 방벽을 세워두고 있었다.

    하나 외부의 침입을 막아줄 보호 마법을 유지할 마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요새만 보면 대천사의 실력 같은데 마력이 없다니.

    이런 반쪽짜리가 존재할 수가 있나?

    게다가 묘하게 요새를 이룬 마법이나 설치 방법이 자신의 방식을 닮아 있었다.

    꼭 쌍둥이라도 있는 것처럼.

    저벅저벅.

    일리야가 요새 안으로 진입하자 내벽을 수리하던 하급 천사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리야다! 대천사 일리야가 나타났어!”

    요새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들은 일리야가 자신들을 발견했으니, 틀림없이 폐기시킬 거라고 생각했다.

    일리야는 그들이 야단법석을 떠는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서 요새의 마법을 가동했다.

    우웅!

    그러자 요새에 둥그런 돔 형태의 금빛 방어막이 펼쳐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이 나간 얼굴로 도망치던 하급 천사들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어?”

    “이게 왜 다시 작동하지?”

    천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일리야에게 향했다.

    아무리 무지한 자라도 이 현상을 일으킨 게 일리야라는 사실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폐기 대상 천사들은 대륙의 요새 안에서 내내 생활하느라 바깥소식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일리야가 여전히 천계의 통치자인 줄 알고 있었다.

    일리야는 고갯짓하며 하급 천사들에게 명령했다.

    “전부 이리로 모여라.”

    천사들은 슬금슬금 일리야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자라도 일리야가 지금 저들을 보호해주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하급 천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천사가 앞으로 나섰다.

    “이런 누추한 곳까지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너희에게 확인할 게 있다. 이 요새는 어떻게 만들어졌지?”

    “저희가 지었습니다.”

    “이 요새에 새겨진 보호 마법은 너희의 실력으로 설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일리야의 단호한 대답에 천사들은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저희는 설계도를 토대로 이곳을 지었습니다.”

    “설계도를 만든 건 누구지?”

    “그건…….”

    하급 천사는 희뿌옇게 지워진 기억을 더듬으며 곤혹스럽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일리야는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몇 군데 먼저 들렸고, 비슷한 반응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클라이드라는 천사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여기서도 특별한 소득은 없었다.

    아니다. 하나 있기는 했다.

    클라이드라는 자는 폐기 대상인 하급 천사들을 모아 직접 보호하는 특이한 천사라는 걸 알아냈다.

    그것은 천계의 규칙상 용인할 수 없는 행위였으나 이상하게도 이들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금빛 창을 소환해버렸다.

    특별한 동정심의 발로는 아니었다.

    이 요새를 지은 클라이드라는 자의 흔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일리야는 요새를 나오다가 제 앞으로 착지해 내려오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자카리.”

    최상급 천사이자 군사경찰대장인 자카리였다.

    자카리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낙인을 지우고 다시 천계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겁니까?”

    “나도 원인을 찾아보는 중이다.”

    일리야는 자카리의 태도가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처단하러 온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군.”

    “전혀 아닙니다.”

    어차피 천계의 멸망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더는 천사를 희생시켜 차원을 유지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실 자카리는 일리야가 어떻게 낙인을 지우고 대천사가 되었는지, 천계를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일리야 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테레제, 그 여자가 정말 신입니까?”

    * * *

    현재 천계는 비상 상황이었다.

    섬들이 추락해서가 아니라 타락한 일리야가 천계를 당당히 돌아다니고 있어서였다.

    심지어 군사경찰들은 그런 일리야를 제지하지도 않았다.

    “일리야는 분명 마계로 끌려갔잖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천계에 들어올 수 있단 말입니까?!”

    원로 천사들은 일리야가 틀림없이 자신들을 학살하러 왔다고 믿었다.

    이들은 전부 일리야가 타락하던 순간을 똑똑히 떠올렸다.

    역대 가장 강력한 통치자였던 일리야를 적으로 돌리면 얼마나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강제로 깨닫고야 만 끔찍한 기억에 절로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한데 그 일리야가 순백의 날개로 멀쩡히 천계에 돌아오다니.

    “낙인이 사라지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시간이 되돌려진 게 아닌 이상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잖습니까!”

    누군가가 울분을 토했을 때, 뒤편에서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께서 허락하신 거겠지요.”

    원로 천사들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예전의 우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늙고 추해진 대천사 사무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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