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물론 그럴 생각이었다.
‘사실 꽃을 선보이러 가는 게 아니라, 스콰이어 가문 비전 마법서를 확인하러 가는 거니까.’
“네. 제가 직접 납품할 꽃들을 가지고 입궁할 예정이에요.”
그때 간식을 냠냠 먹으며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리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끼어들었다.
“폐하께서 꼭 제일 예쁜 꽃으로 가져오라고 신신당부하셨대요. 부인께서 보시기에 이 꽃들이 흠 잡히지 않을 정도일까요?”
리비는 아직 황제와 마주한 적 없었다.
하나 라울이 하도 황제 욕을 해대는 통에 그가 까다롭고 감정적이며 트집을 잘 잡는 데다 몹시 예민하고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래서 황제가 요구한 ‘가장 예쁜 꽃’이라는 조건이 날 트집 잡으려는 단서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샤티 부인은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손으로 입술을 가렸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우아한 동작이었다.
“폐하께서 테레제 양에게 꼭 제일 예쁜 꽃으로 가져오라고 신신당부하셨다고요?”
나와 리비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자, 잠깐 침묵하던 샤티 부인이 조그맣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너무나 해결하기 쉬운 문제로군요. 테레제 양이 예쁘게 차려입고 가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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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내 말이 맞지? >____<]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미간을 살짝 좁히며 진지하게 물었다.
“그 말씀은 품위 있는 차림을 하라는 뜻일까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샤티 부인의 웃음이 더 커졌다.
“세상에, 테레제 양! 그리고 리비 양까지……. 스콰이어 부인이 두 딸을 가르치려면 애를 먹겠네요.”
“……??”
나와 리비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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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창조주에 그 창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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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쁠 때도 눈물이 나는구나……]
샤티 부인은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이를 대체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스러워했다.
“직접적인 표현 방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에둘러 설명하면 두 영애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군요. 폐하께서는 테레제 양이 ‘사교계의 꽃’ 후보로 거론되는 일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을 겁니다.”
내가 사교계의 꽃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엘로이즈에게서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엘로이즈는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평판 상태나 주변 소식을 알려주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매우 넓은 소식통을 갖고 있는데, 사교계의 꽃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었다.
샤티 부인이 설명을 덧붙였다.
“황실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올해 어떤 영애가 사교계의 꽃이 될지 귀추를 주목한답니다. 아무래도 폐하께서 여전히 미혼이시니까요.”
‘그런 거였군.’
그러니까 아직 사교계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은 아니고, 황실에서 나를 후보로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유지스가 사교계의 꽃을 염두에 두고 나한테 가장 예쁜 꽃을 가져오라고 말한 거라면, 그게 더 심각한 일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유지스가 날 비꼰 것 같은데.
“제가 잘 차려입고 가면 더 싫어하지 않으실까요……?”
황후가 되고 싶어서 안달인 영애처럼 보이지 않을까?
샤티 부인이 고개 저었다.
“폐하께서는 평생을 최고의 것만 보고 자라셨습니다. 그만큼 심미안이 까다로우신 분이라 최대한 제대로 차려입는 게 좋을 거예요.”
‘하긴. 황후 루트에서 최고 등급의 드레스나 장신구를 하는 게 주요 조건 중 하나긴 했지.’
나는 얼추 이해했으나 리비는 아직도 무슨 대화인지 이해되지 않는지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샤티 부인의 눈에도 그게 훤히 읽혔는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지적했다.
“리비 양은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얼굴에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아요. 솔직함은 미덕이지만 사교계에서는 약점이 될 테니까요.”
“……! 조심하겠습니다.”
리비가 경직된 자세로 표정을 고치자 샤티 부인이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뻣뻣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노파심에 하는 말이니. 이번 여름 무도회에서 엄청난 수의 귀족들을 마주치게 될 텐데, 대비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라울과 로잔은 자식들에게 관대하다.
크게 흠 되지 않을 정도라면 개성적인 성격을 받아 들여주는 타입이었다.
사실 행동을 교정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출 계급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테레제가 순조롭게 개망나니가 된 거고, 주세페도 그러한 기질이 꿈틀거리게 된 거지만.
하나 샤티 부인은 평생 영애들의 예법을 교육해온 교육자였다.
그녀는 우리의 자유분방함이 매력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그래도 품위를 놓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지금은 영애들을 가르치는 일을 관두었지만, 습관인지라 지적하고 말았군요. 부디 내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들었으면 좋겠어요.”
나와 리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척 감사한 조언이었어요.”
“공녀의 신분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일 텐데, 이해해주니 고맙군요.”
“공녀는 수준 높은 교육을 통해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모범이 될 테니까요.”
내 말에 샤티 부인은 매우 감동한 눈치였다.
“요즘 영애들이 그런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데……. 두 사람 모두 괜찮다면 간단하게나마 예법을 알려주고 싶군요.”
내가 원한 게 정확히 그거였다.
나는 리비에게 눈짓했다.
‘알지?’
그러자 리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샤티 부인의 가르침을 받은 영애 타이틀은 사교계에서 굉장한 영향력을 지녔기에 미래를 생각한다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기회였다.
“샤티 부인의 가르침은 아무나 받지 못하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영광이에요.”
내 대답을 들은 샤티 부인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간단히 가문의 행정적인 부분을 운영하는 방법부터 이야기해볼까요?”
“네!”
1시간 뒤.
“그래서 제대로 된 사용인을 잘 알아보고 선별해 들이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사용인 면접은……”
2시간 뒤.
“요즘 사용인을 다른 가문으로 보낼 때 추천서를 엉망진창으로 쓰더군요. 원래의 양식은 이렇게……”
3시간 뒤.
“요즘 같은 사교 시즌에 손님을 초대할 때 내놓으면 좋은 정찬 코스가……”
4시간 뒤.
“화병의 위치나 꽃의 조합으로 그 사람의 안목이 결정되곤 하지요. 혹 은밀한 메시지를 전달……”
나는 최선을 다해 흥미로운 척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나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중간에 한 번 눈을 뜬 채로 잠깐 졸았던 것도 같다.
“귀족의 아이는 유모와 가정교사가 키우는 것이지만,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답니다.”
그러나 샤티 부인은 흥이 났는지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도 알려주기 시작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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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것 같아 벌써 5시간째 연강임]
벌써 5시간이나 지났구나…….
어쩐지 화병의 꽃도 좀 시들시들해진 것 같았다.
나만 이 수업이 괴로운 게 아닌지 맞은편에 앉은 리비의 눈빛이 동태처럼 죽어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이거 맞아?’
나를 향해 강렬한 의문을 품은 시선을 보내오는데, 나도 모르게 은근슬쩍 시선을 돌렸다.
사실 황후가 될 게 아니라면 이런 교육이 필요 없기는 했다.
“이 부분은 꼭 필기해두세요. 이 기회에 초대장을 쓰는 방법도 알려주어야겠군요.”
나를 빤히 쳐다보는 리비의 텅 빈 동공이 조금 무서웠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샤티 부인은 날이 저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 알려줄 게 많이 남았는데.”
나는 샤티 부인이 혹시라도 더 알려줄 테니 자고 가라고 말할까 봐 얼른 선수 쳤다.
“지금까지 알려주신 내용만으로도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부인.”
리비도 부리나케 말을 맞췄다.
“귀중한 가르침을 더 탐내는 것은 정숙하지 못한 행동 같습니다. 저희는 정말로 이것으로 만족해요.”
샤티 부인은 우리 둘의 대답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품위를 아는 영애들을 만나 즐거웠습니다. 앞으로 사교계에서 볼 모습이 기대되는군요.”
띠링!
[스킬 ‘중급예법’이 ‘상급예법’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오, 예법 등급이 높아졌네?’
이런 식으로 스킬 등급이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샤티 부인의 명성에 영향받은 건가.’
나와 리비는 가르침에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인사하며 아쉬워하는 척 다급한 걸음으로 마차에 올랐다.
“하아아아.”
마차 문이 닫히자마자 동시에 한숨이 쏟아졌다.
리비는 넋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며 내게 물었다.
“언니, 혹시 혼자 배우기 싫어서 나 데려온 거 아니지?”
꽤 섬뜩한 질문이었다.
“절대 아니거든? 샤티 부인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이 사교계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그래……?”
“그럼.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한 일이야.”
그러나 날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좀처럼 거두어지지 않았다.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