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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10화 (211/277)
  • 210화

    오즈월드가 일대의 마력을 전부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을 때는 이미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즈월드 씨!”

    “알파 위원장님!”

    그때 위원장들이 제각각 통일되지 않은 호칭으로 오즈월드를 외쳐 부르며 착륙장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대단히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변명부터 늘어놓았다.

    “괜찮으십니까? 착륙장 주변으로 접근을 차단하는 결계가 생성되는 바람에 저희가 제때 오지 못했습니다.”

    “혹시 방금까지 대치하고 있던 자가 채널 관리자를 살해한 범인이었습니까?”

    “아마도 그런 것 같더군요.”

    오즈월드의 대답에 다들 탄식을 쏟아냈다. 예상보다 상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정체는 알아내셨습니까?”

    베타가 심각한 낯으로 묻자 오즈월드는 고개 저었다.

    “모습을 가리고 있더군요. 다만 얼굴에 검은 나비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오즈월드는 기억을 토대로 검은 나비 가면을 쓴 남자의 모습을 화면에 출력해 위원장들에게 전송했다.

    위원장들은 검은 나비 가면으로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남자의 외형을 확인하더니 묘한 눈초리로 오즈월드를 힐끔 보았다.

    검은 나비 가면이 스콰이어 나비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빨간 두건을 쓰고 다니는 기존의 안티와는 다른, 새로운 안티 집단일 가능성이 있었다.

    엡실론은 눈치를 살피다 말을 꺼냈다.

    “우선 알파 위원장님의 팔을 치료하고, 추후 이 사태에 대해 논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주변의 경계도 강화해둬야 할 테고요.”

    오즈월드는 그제야 부상당한 팔을 확인했다.

    수분이 죄다 빨려 나간 점토처럼 부서지고 있는 팔은 상태가 제법 심각했다.

    베타는 특이한 형태의 부상에 잠시 시선을 두다가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채널 관리자들에게 혼자서 다니지 말라는 경고 알림을 띄워야겠군요. 판테온 내 수비를 더 강화하겠습니다.”

    위원장들은 그제야 물꼬가 트인 듯 필요한 조치에 대해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렇게 업무가 착착 분담되고 있을 때, 오즈월드가 너덜거리는 슈트 재킷을 벗으며 물었다.

    “징계 위원회 소환은 여기까지 응해도 되는 겁니까?”

    정황상 오즈월드를 채널 관리자 살해 용의자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가 알파임을 숨기고 채널 관리자로 활동한 일에 대한 잘잘못은 지금까지의 기록을 낱낱이 살펴 따져봐야 했기에 당장은 묶어둘 명분이 없었다.

    베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사라진 다비드 씨의 신원은 계속 파악 중입니다. 발견 즉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찾게 되면 알려드리죠.”

    엉망진창이 된 비행선 착륙장 상태에 비해 몹시도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눴다.

    정체불명의 범인이 채널 관리자를 순위대로 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면서도 오즈월드는 긴장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위원장들도 오즈월드가 다쳤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 그가 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즈월드는 진즉 판테온을 떠나 더 높은 격의 존재가 되었어야 할 인물이었다.

    그 사실을 이곳 모두가 잘 인지하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뿔뿔이 각자의 일을 하러 흩어졌다.

    오즈월드는 알파 위원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망가진 상의를 모조리 벗어 바닥에 휙 던져버렸다.

    응급처치로 상처에 포션을 들이붓고서 검은 셔츠를 꺼내 팔을 끼우며 습관처럼 화면을 띄웠다.

    그러자 한적한 서재에 틀어박혀 마법 회로를 마구 그려대다가 막히면 고개를 갸웃하며 마법서를 뒤적이는 테레제의 모습이 비쳤다.

    그녀가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실링팬을 제대로 완성하려면 내가 직접 제작해야겠는데…….”]

    그 말에 아래쪽부터 셔츠 단추를 잠그기 시작하던 오즈월드가 피식 웃어버렸다.

    “하여간.”

    발렌시아 후작으로 있는 동안 그는 몰입감을 위해 일부러 판테온과 단절되어 있었다.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해야 더 즐거울 것 같았다.

    채널 관리자의 능력은 자신에 대한 퀘스트를 줄 때 사용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꽤 오랜만에 그녀가 혼자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거였는데, 참 변함이 없었다.

    테레제가 한참 집중한 얼굴로 설계도를 그리고 있을 때, 주세페가 불쑥 나타났다.

    [“누나, 여기서 뭐 해? 내가 혼자 다니지 말라고 했지!”

    “여기도 집 안이잖아.”

    “그러다 던전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너도 네 말이 이상한 거 스스로 느끼지?”]

    그러고 보니 스티그마타가 황제를 노리고 던전을 세 개나 생성했다고 했었지.

    오즈월드는 소매에 커프스단추를 달며 화면을 응시했다.

    어느새 잔소리하러 쫓아왔던 주세페가 테레제의 헛소리에 홀리더니 같이 실링팬을 제작할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도대체 본인이 역하렘 게임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자각은 있는 걸까?

    그는 테레제가 신지우였을 때의 삶을 대충은 알고 있었다. 긴 드라마를 요약한 편집본 영상을 본 것처럼 말이다.

    그 정도만 확인해도 신지우라는 사람이 얼마나 로맨스에 무관심한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종류의 이벤트라고 여기는 눈치였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잖은가?

    완벽한 모습으로 창조된 근사한 남자 주인공들이 사랑한다고 말하며 매달리고 애원했다.

    진작 마음이 생기고도 남을 만큼 강렬한 순간들을 함께 경험하기도 했고.

    심지어 남자 주인공들은 테레제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서 틈만 나면 지분거리기 일쑤였다.

    한데도 테레제에게서 사랑에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애정을 갈구하는 주제에.

    그렇게 목말라하는 주제에, 정작 사랑받을 줄 몰라서 회피해버리는 건가 싶었다.

    헌신하는 쪽이 편하다는 듯이.

    그래서 자신이 전부 소모되어버려도 저 말간 얼굴로 “별수 없지.”라며 보는 이의 속을 태울 것 같았다.

    그래. 그러고도 남을 여자였다.

    만일 신지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 테레제에게 빙의되었다면 지금쯤 방탕하기 이를 데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누나는 왜 이런 걸 만들고 있어?”

    “식물을 배양하려면 시간이 걸리잖아. 황궁에 납품할 샘플이 확보되기 전까지 실링팬도 만들고 공부도 좀 더 해두려고.”

    “파티는 안 가? 초대장이 엄청 많이 와 있던데.”

    “별로. 관심 없어.”

    “……혹시 어디 아파? 던전이 열렸을 때 사고로 머리라도 다친 건 아니지?”]

    오즈월드는 팔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쟝을 불러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테레제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때마침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엷게 미소 짓는데, 게으르게 뜬 눈꺼풀이 나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은회색 눈동자에 담긴 약간의 우울감이 시선을 끌었다.

    공허해 보였다.

    무언가로든 채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할 정도로.

    저러니 주변에서 자꾸 신경 쓰고 곁을 맴도는 건가 싶었다.

    [“누나가 강해져야 주세페도 지켜주지. 안 그래?”

    “아, 하지 마!”]

    테레제가 와락 끌어안자 주세페는 말로는 싫은 척하지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오즈월드의 시선은 어느새 테레제가 아닌 주세페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관심을 받을 때마다 눈에 띄게 마력의 흐름이 좋아지며 흐릿하던 존재감이 점차 뚜렷해지는 것이 보였다.

    조연에 불과했던 주세페는 애정을 듬뿍 받아먹으며 영향력 있는 등장인물로 자라나고 있었다.

    스콰이어 공작저를 어슬렁거리는 늑대 한 마리와 지붕에 앉은 새마저도 그러했다.

    테레제가 자신의 세계에 애정을 느낄수록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격이 상승했다.

    그녀의 세계는 창조주의 헌신과 애정을 끊임없이 받아먹으며 성장할 것이다.

    자신의 세계를 사랑한 BJ들이 그러했듯, 그렇게 파멸하겠지.

    갑자기 베타가 한 질문이 뇌리를 스쳤다.

    “오즈월드 씨는 지금도 그 목적으로 [BJ악역영애]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까?”

    오즈월드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실수한 건가.”

    처음 [BJ악역영애] 채널을 개설했을 때 만해도 1월 31일에 콘텐츠가 종료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1년 정도 시범적으로 로맨스 방송을 운영해본 뒤 이딴 시시한 내용의 콘텐츠가 아닌 훨씬 자극적인 것으로 화제성을 끌어모을 생각이었다.

    한데 자신의 예상과 달리 성좌들은 테레제에게 이입했다.

    그녀의 서사에 열광했고 행동, 말투,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 옷차림까지 전부 따라 했다.

    지금 판테온은 온통 테레제로 가득했다.

    유례없는 흥행이었다.

    [“흠…… 이 술식은 보안 설비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 더 보강해볼까?”]

    여유만 있으면 마법에 미친 사람처럼 구는데 왜 저런 모습을 보고 있게 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성좌뿐만이 아니라 저조차도 그녀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느긋함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자신의 시간을 쓸데없는 곳에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이를테면 판테온이나 안티 같은 것에.

    “키케, 베니토.”

    오즈월드의 호출에 쌍둥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비드는 찾았습니까?”

    “아직. 판테온 내에는 없다. 다른 차원을 뒤져보는 중이야.”

    “다비드는 여기서 찾아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검은 나비 가면을 쓴 남자의 행방을 쫓으십시오.”

    “알겠다.”

    용 쌍둥이가 떠나기 전, 오즈월드가 잠깐 기다리라며 포탈을 하나 열었다.

    척 보아도 막대한 코인을 소모해 만든 차원 통로였다.

    베니토는 그게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과거로 가는 포탈인가?”

    정확한 시간을 상정해 포탈을 여는 건 오직 코인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는 오즈월드가 가진 알파의 권한까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사실상 반칙이나 다름없는 능력이었기에 사용하는 대가가 매우 컸다.

    오즈월드는 육체 회복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겉으로는 평온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다녀와 주십시오. 정공법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라.”

    용 쌍둥이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세계관에서 ‘무력 특화형 등장인물’이었다.

    그래서 판테온에서도 상당히 격이 높은 존재였는데, 그런 두 사람의 힘으로도 검은 나비 가면을 쓴 남자는 이길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타임 패러독스를 이용하려 합니다. 그게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쌍둥이는 화면 속 남자를 확인했다. 모습을 다 가리고 있는데 과연 이 남자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오즈월드는 어째서 저토록 확신하며 특정 과거를 포탈로 열었을까?

    포탈은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진 매우 풍요롭고 아름다운 제국의 정경을 비추고 있었다.

    몹시 모순적인 광경이었다.

    “여기는 어디지?”

    “[BJ모래성녀] 채널입니다.”

    오즈월드는 셔츠에 가려진 부상당한 팔을 응시했다.

    생명력을 제거해 팔을 바싹 마른 점토처럼 만들어버리는 힘은 그가 너무나 잘 아는 능력이었다.

    “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죠.”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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