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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09화 (210/277)
  • 209화

    채널 관리자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 상위 채널 관리자일수록 어마어마한 코인을 보유하고 있어, 근본의 격이 하찮아도 태생을 상쇄할 정도의 무력을 소유하게 된다.

    코인은 에너지였다.

    그래서 6위 채널 관리자쯤 되는 이라면 어지간한 격의 성좌들보다 강력한 힘을 지녔다.

    그랬기에 작금의 상황은 몹시 이례적이었고, 또 충격적이었다.

    위원장들은 몹시 놀랐는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당장 비서를 따라 사건 현장으로 이동했다.

    오직 오즈월드만 느긋한 동작으로 뒤를 따를 뿐이었다.

    그는 경계심보단 호기심을 느꼈다.

    이런 파격적인 짓을 벌일 수 있는 존재가 과연 누구일까?

    ‘예전에도 채널 관리자를 죽인 안티가 있기는 했지.’

    격이 높은 성좌가 자신이 아끼는 BJ를 짜증 난다는 이유로 죽여버린 채널 관리자에게 복수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빙의 에러로 인해 망가진 BJ를 정식 절차를 밟아 폐기하는 게 아니라면, 채널 관리자가 임의로 죽이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또한 성좌가 채널 관리자를 살해하는 것도 엄청난 페널티를 부여했기에 더는 찾아볼 수 없는 행위가 되었다.

    규칙은 보통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잖은가?

    한데 실로 오랜만에 채널 관리자가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범인은 보통의 안티처럼 행동하지도 않았다. 철저히 신분을 숨긴 채 코어만 도려내어 가져가고 시체를 전시하듯 내버려 두었다.

    마치 경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그냥 경고인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판테온에 상당히 억하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1위 채널 관리자부터 6위까지 죽었다. 물론 이 순위는 아까 갱신되었기에 어제 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다음 차례는 오즈월드, 자신이었다.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위원장들이 필요한 조치를 전부 취한 이후였다.

    “이 일대에 존재하는 성좌 전원을 확인해 보았나?”

    “예. 그러나 수상한 자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위원장들은 오즈월드가 나들이라도 가는 걸음으로 느긋하게 나타나자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아니면 여전히 의심하는 시선으로 그를 힐끗거렸다.

    아직 오즈월드가 알파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널 관리자들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에게 다가섰다.

    “왜 이제야 나타난 겁니까? 범인을 숨겨줘야 해서 그렇습니까?”

    오즈월드는 오래간만에 솟은 호기심으로 조금 나아졌던 기분이 망쳐지는 것을 느꼈다.

    잔챙이들의 투정은 언제나 역겨웠다.

    “저를 추궁하고 싶다면 증거부터 가지고 오십시오.”

    오즈월드가 한심해하는 투로 대응하자 채널 관리자들이 격분했다.

    “추궁당하기 싫다면 수상한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죠! 이럴 때일수록 협조적으로 행동하고 알아서 태도를 검열하는 게 상식적인 반응 아닙니까?!”

    “다들 신경이 곤두선 상황입니다. 범인이 무슨 수로 채널 관리자를 이리 손쉽게 죽이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했는데, 왜 그렇게 느긋하신 거죠?”

    채널 관리자들은 이미 오즈월드를 범인의 배후로 여기고 있었다.

    아니, 그냥 사실이 그러해서 오즈월드가 추방당해버렸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망했다.

    오즈월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약해서 죽은 건데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그의 말은 단숨에 엄청난 공분을 샀다.

    “뭐? 약해서 죽었다고? 당신 정말 미쳤어?!”

    “당신 안티가 왜 그렇게 유난스러운지 알겠군. 나라도 당장 추방해버리고 싶은데!”

    보다 못한 베타가 나서서 격앙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다들 그만하십시오. 그리고 오즈월드 씨. 당신이 지금껏 대리인을 세워 위원장으로서 임무에 소홀했던 만큼, 지금은 위엄을 지켜주시겠습니까?”

    베타의 점잖은 요구에 오즈월드는 한쪽 입꼬리가 유독 올라간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죠. 저도 쓸데없는 분쟁은 질색이니까요.”

    오즈월드는 채널 관리자들을 발치에 걸리는 돌부리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표정으로 곁을 지나쳤다.

    그의 관심사는 채널 관리자 오스카의 시신이었다.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반짝이는 점액질을 손으로 만져보던 오즈월드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범인은 마력 사용자군요.”

    “마력이요……?”

    다들 예상치 못한 이야기라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런 하등한 능력으로 채널 관리자의 코어를 빼냈단 말입니까?”

    그도 그럴 것이 마력은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힘이었다.

    어디에나 공기처럼 존재하는 게 바로 마력인데, 그런 특별하지도 않은 힘으로 채널 관리자를 살해했다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베타는 묘한 표정으로 오즈월드를 쳐다보았다.

    “검시관은 앞선 시신들에서 마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만. 신뢰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오즈월드는 희미하게 섞여든 마력 입자를 보여주었다.

    시선을 집중하자 다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점액질에 섞인 은은한 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앞의 채널 관리자들을 죽일 때는 마력의 흔적을 잘 감출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을 겁니다. 이번에는 좀 급했나 보군요.”

    “으음…….”

    다들 눈으로 마력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듯했다.

    성좌 중 마력 사용자 출신도 더러 있기는 했다.

    하나 소수였고 그마저도 영혼의 격이 상승하며 다른 힘으로 바뀌었다.

    채널 관리자는 보통 영혼의 격이 낮은 존재가 하는 일이었기에 여전히 마력을 사용하는 이가 더러 있었지만, 대신 강력한 힘을 사용할 땐 코인이 필요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엡실론이 망연하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오즈월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딘가를 응시했다. 비행선 착륙장이 있는 방향이었다.

    “글쎄요. 하지만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겠군요.”

    “네?”

    “저기에 범인이 버젓이 숨어 있는 걸 보면 아직 목표물이 남은 모양이네요.”

    “뭐라…?!”

    말이 완성되기도 전, 오즈월드는 그 자리에서 삭제되듯 깔끔하게 원하는 위치로 이동했다.

    그리고 곧장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꽈과광!

    지축을 흔드는 소음이 비행선 착륙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착륙장에 존재하던 모든 비행선이 거대한 압력에 의해 와드득 압축되었다.

    깔끔한 솜씨였다.

    정갈한 공격이었으나 어마어마하게 위력적이라는 점이 오즈월드의 마음에 들었다.

    정말이지 저를 죽이려는 자만 아니었다면 오즈월드 컴퍼니에 캐스팅했을 것이다.

    부옇게 피어오른 연기를 뚫고 무언가가 거침없이 쇄도했다.

    콰득!

    오즈월드는 한쪽 팔을 내어주고 반대편 손에 든 해골 지팡이로 상대의 어깨를 꿰뚫었다.

    서로 치명타를 입히며 잠시 공방이 멈췄다.

    이윽고 몹시도 궁금하던 상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검은 나비?”

    남자는 검은 나비 가면을 쓰고 있었다.

    오즈월드는 테레제의 심볼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검은 나비를 채널 관리자 연쇄 살인범이 사용할 줄은 몰랐기에 눈살을 찡그렸다.

    “제 안티였습니까? 아니면 피해자 연합?”

    굳이 자신의 BJ와 연관된 상징을 사용한다는 건 제게 유감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검은 나비 가면을 쓴 남자는 대답 대신 공격했다.

    꽈과광-!!

    하늘에서 천벌이 내리듯 벼락이 떨어졌다.

    오즈월드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그는 시공간을 찢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코인을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능력을 사용할수록 코인을 소모하게 되지만, 오즈월드는 코인을 모으는 일에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수십 개의 새까만 구멍을 뚫어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벌인 짓이었다.

    그 정도로 대응하지 않으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자는 시공간의 틈을 모조리 마력으로 틀어 막아버렸다.

    “놀랍군요. 마력은 원래 매우 격이 낮은 힘인데, 당신이 사용하는 마력은 그렇지 않네요.”

    그러자 남자가 변조된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런 힘의 본질은 결국 같으니까.”

    “좋은 말입니다.”

    오즈월드의 두 눈이 오랜만에 생기로 번득였다.

    전투 방식에서도 성향이 드러난다.

    남자의 공격은 하나하나 정확도가 높고 간결했으며 무자비하고 거침없었다.

    역량도 충분한데 숙련도까지 높은 천재 타입이라 오즈월드를 감탄스럽게 했다.

    “그런 훌륭한 능력으로 왜 채널 관리자를 죽이는 재미없는 짓을 하는 겁니까?”

    누군가를 죽이는 건 너무 간단하고 시시한 일이었다.

    놀랍게도 전지전능해지면 살 이유가 사라져버린다.

    적어도 오즈월드는 그랬다.

    그래서 제게 자극을 주는 일을 찾았고, 그게 채널 관리자였다.

    방송이란 인간으로 하는 실험 놀이다. 새로운 상황을 연출해 신선한 반응을 끌어낼수록 판테온은 오즈월드에 열광했다.

    재미있었다. 꼭 창조주가 된 것 같아서 고질병 같던 권태가 잠잠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오즈월드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아무리 전지전능해도 창조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그런 ‘등장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이후의 방송은 관성적으로 변했다.

    성공 공식은 뻔했고 오즈월드는 감이 좋았다. 노력하지 않아도 모두가 그의 방송을 사랑했다.

    그리고 또다시 끔찍한 권태가 찾아왔을 때, 우연히 신지우를 발견했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여자.

    너무 뻔하고 지루해서 보기만 해도 염증이 나는 캐릭터였다.

    게다가 신지우를 분석했을 때 적합하다고 뜬 장르가 로맨스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충동적인 이유였다.

    ‘로맨스가 유행이니 어쩔 수 없이 한번 해 보기나 할까.’

    뭐, 그 정도?

    오즈월드는 이제 놀 만큼 다 놀았다는 듯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나 검은 나비 가면을 쓴 남자가 일대에 존재하는 마력 입자를 전부 폭발 물질로 바꿔버렸다.

    “하아, 귀찮게.”

    오즈월드는 저도 모르게 투정 부리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상대의 공격을 완벽히 방어하는 일에 집중했다.

    솔직히 이 주변이 전부 폭발해 시공간이 뒤틀려버리든 말든 제 알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막아냈다.

    막지 않으면 판테온에서 체류할 시간이 길어질 테고, 그러면 그만큼 긴 시간 동안 <신의 유희>로 돌아가지 못하니까.

    저를 떨쳐내려고 한 공격임을 알면서도 당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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