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208화 (209/277)

208화

* * *

오즈월드는 오랜만에 판테온으로 돌아갔다.

<신의 유희>를 벗어나자 그는 모두가 익히 아는 새빨간 슈트에 화려한 실버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걸친 모습으로 바뀌었다.

징계 위원실에는 이미 일곱 명의 채널 관리 위원장과 사건과 관련 있는 채널 관리자로 들어차 있었다.

오즈월드가 회의 테이블에 착석하자 엡실론 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채널 관리자 체호프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 들으셨습니까?”

“최근 진행 중인 콘텐츠 때문에 판테온 소식을 듣지 않고 있어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비서인 다비드가 사라졌다는 사실도 이제 아셨겠군요.”

“그렇습니다.”

엡실론이 화면을 띄웠다.

“채관위 최상층 출입 기록입니다. 다비드와 체호프의 출입 시간이 거의 차이 나지 않는 것 보이십니까?”

오즈월드는 화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비드는 알파를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다 체호프와 우연히 출입 시간대가 겹쳤을 테고.

“이것만으로는 다비드가 체호프 살해 용의자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오즈월드의 말이 끝나자 존재감 없이 침묵하고 있던 베타 위원장이 나섰다.

“살해된 채널 관리자가 체호프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오즈월드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올렸다.

체호프야 워낙 여기저기 원한을 산 터라 언제든 갑자기 살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채널 관리자가 연쇄적으로 죽었다니.

그때 체호프와 동맹 관계인 채널 관리자가 뻔한 거 아니냐는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

“살해된 채널 관리자들은 전부 현재 방송 랭킹 1위에서 5위까지의 채널을 소유한 자들이었습니다. 저는 6위 채널을 보유하고 있죠.”

6위 채널 관리자가 눈초리를 매섭게 뜨며 오즈월드를 노려보았다.

“저까지 죽으면 [BJ악역영애] 채널은 순조롭게 1위를 차지하게 될 겁니다. 현재 7위니까요!”

온화한 성품의 감마 위원장이 흥분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하나 다음 차례는 자신일 거라는 강한 확신이 선 6위 채널 관리자는 침착할 수 없었다.

“당장 채널 관리자 오즈월드를 자백실로 데려가야 합니다.”

자백실. 그곳에 들어가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자라고 해도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당연히 아무나 자백실로 데려가지 않는다.

중죄를 저지른 자만 들어가게 되는데, 정황증거가 미흡한 오즈월드에게 강요하기에는 과한 조치였다.

이는 당연히 개소리로 치부되어야 했는데 위원장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위급 상황입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위원장들의 동의하에 용의자는 곧장 자백실로 보내질 겁니다.”

엡실론의 설명에 오즈월드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경우라 해도 위원장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자백실에 보내는 게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물론 전원에게 가부를 물은 후 절차가 진행될 겁니다.”

베타 위원장이 알파 위원장을 쳐다보았다.

“동의하시겠습니까?”

오즈월드는 자백실 이야기가 나온 게 진짜 자신의 자백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들은 자신과 알파가 모종의 거래를 통해 비밀스러운 협력 관계임을 밝혀내고자 강수를 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베타 위원장이 알파를 압박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알파 위원장과 채널 관리자 오즈월드 씨 사이에 불미스러운 내통이 있었다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알파 위원장은 태연한 얼굴로 오즈월드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오즈월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 채 고개가 서서히 돌아갔다.

마침내 오즈월드가 알파의 앞에 섰다.

“그간 수고하셨습니다.”

알파 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한 태도로 고개 숙이며 오즈월드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매우 영광스럽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자리를 바꾸었다.

오즈월드가 알파 위원장의 자리에 앉는 것을 본 모두가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대리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인사하는 건 처음이군요.”

“그게 무슨…….”

오즈월드는 미소 한 자락 없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채널 위원장 알파입니다.”

완벽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 * *

알파 위원장은 유독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한데 그 이유가 대리인을 내세워서였다니.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인지라 잠시 휴식 시간을 갖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 사태에 대한 대책 회의가 필요하다고 느낀 나머지 6인의 위원장이 옆 회의실로 옮겨가 심각한 표정들을 지었다.

“다들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베타의 질문에 엡실론이 대답했다.

“대리인을 내세워 자신의 정체를 감춘 것은 도의적인 문제만 있을 뿐, 법적으로는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듯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엡실론이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까지 알파 위원장, 아니, 대리인의 활동 기록을 확인해봤을 때 특별히 오즈월드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린 적은 없습니다. 있다고 한들 벌금으로 무마될 수준일 테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즈월드가 분명 시스템으로 잡히지 않는 온갖 불법을 저질렀으리라 예측했다.

그건 비단 오즈월드만 그러는 게 아니기도 했으니까.

“체호프 사망 사건이 정말로 오즈월드와 관련이 없는 걸까요?”

“그쪽에서는 같은 범인에게 다비드가 납치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게 딱히 억지스럽지도 않다는 게 문제죠.”

위원장들은 문득 창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전광판에 뜨는 순위를 확인했다.

[BJ악역영애 6위▲]

“또 올랐군요.”

굳이 입 아프게 역대 최고 기록이라는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체호프를 비롯해 5위 방송까지의 채널 관리자들이 전부 죽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기존 채널의 순위가 필연적으로 떨어지는 건 아니다.

운영할 관리자를 대체하면 그만이니까.

물론 운영 방식이 뒤떨어져서 채널 순위가 하락할 수는 있지만, 그게 당장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다.

그랬기에 파죽지세로 순위가 오르는 중인 [BJ악역영애] 채널이 대단한 거였다.

“대체 언제부터 알파였을까요?”

위원장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긴 세월의 간격을 두고 교체된다.

그중 알파가 가장 오래된 위원장이었다.

쉬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다들 답답해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비서가 문을 두드리고 나타났다.

“위원장님들, 알…파 위원장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위원장들은 굳어진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직 이 사태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일개 채널 관리자라면 몰라도 그가 알파 위원장이라는 사실을 시스템을 통해 검증까지 마친 상황이라 방문을 거절할 수 없었다.

베타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비서에게 말했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위원장들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오즈월드를 경계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6인의 위원장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음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외려 냉기가 풀풀 흐르는 태도 때문에 위원장들이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즈월드는 딱히 양해도 구하지 않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물 흐르듯 막힘없는 동작이었다.

다리를 꼰 오즈월드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귀에 주렁주렁 매달린 피어싱 펜던트들이 차르륵 아래로 쏠렸다.

“이제 진솔한 이야기를 해 볼까요?”

위원장들은 본인도 모르게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온통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가 뜨끔 놀라며 시선을 옮겼다.

“……진솔한 이야기라니, 무슨 뜻입니까?”

“재고 따지지 말고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는 뜻입니다. 제가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요.”

몹시 오만하고 무례한 말이었다.

하나 위원장들은 그의 태도를 지적할 수 없었다.

오즈월드의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이 위협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빼곡히 들어찬 분위기 속에서 베타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도록 하죠. 오즈월드 씨, 당신이 앞으로 하려는 일이 뭡니까?”

“베타 위원장님?”

“판테온 내 분란을 조장하는 것? 아니면 당신 방송을 1위로 만드는 것?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BJ를 가지고 놀다가 망가뜨리는 취미가 있는 겁니까? 당신이 채널 관리자이자 위원장이 된 이유가 뭐죠?”

위원장들은 베타가 너무 적나라하게 속을 캐내려 드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 상황에서는 보통 당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거나 다비드의 행방을 묻거나 하다못해 알파인 건 왜 숨겼느냐고 물어야 하지 않는가?

하나 그가 던진 건 핵심을 짚는 질문이었다.

너무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이라 과연 오즈월드가 대답해줄지 의문일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오즈월드가 대답했다.

“판테온 내 분란을 조장하려는 것 맞습니다.”

“…!”

“방송을 1위로 만들려는 것도, 단순히 BJ를 가지고 노는 것도 맞습니다.”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각하고 있는 겁니까, 오즈월드 씨?”

오즈월드는 위원장들이 불쾌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여긴 그런 곳이잖습니까?”

성좌는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여 영생에 가깝게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유희가 필요했다.

긴 삶을 지루하지 않게 해줄 재미있는 장난감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쏟아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완전히 비인도적이지는 않았다.

BJ를 선발할 때는 반드시 ‘곧 사망할 자’, 혹은 ‘막 사망한 자’라는 기준을 충족해야 했다.

신지우는 ‘곧 사망할 자’였고.

어찌 보면 인생의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판테온 시민들은 자신들을 진짜 신이라 여기기도 했다.

“지금 판테온을 비하하시는 겁니까!”

그래서 위원장들이 몹시 불쾌해하며 격분하는 것이었다.

감정이 부싯돌처럼 맞부딪쳐 분노로 발화되기 전, 베타가 차분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맞습니다. 판테온은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죠.”

아무리 포장해도 이곳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베타가 깔끔하게 인정하자 다른 위원장들이 불만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이곳에서 알파를 제외하면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위원장으로 지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였으므로.

베타는 그래서 더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즈월드 씨는 지금도 그 목적으로 [BJ악역영애]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까?”

오즈월드가 대답하려는 순간.

“위원장님! 채널 관리자 오스카 씨가 살해당했습니다!”

6위 채널 관리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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