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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203화 (204/277)
  • 203화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장난치지 말고, 다른 데 다친 곳은 없어?”

    데미안은 내 손을 쥐고 흔들흔들 움직이며 달래듯 말했다.

    “정말로 없어요. 이 멍도 별거 아니고요.”

    그는 내 염려를 받는 게 기분 좋다는 듯 고양이처럼 품을 파고들어 뺨을 비볐다.

    “부인이랑 있으면 하나도 안 아파요, 정말로.”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인벤토리에서 연고를 꺼내며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스티그마타의 활동이 활발해져서 위험하니까 밖을 돌아다니는 건…….”

    잠깐만. 스티그마타의 활동 정도는 데미안 호감도의 영향을 받잖아.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활개 치고 다닌다는 건 결국 데미안의 호감도가 떨어진 상태라는 거 아닌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져 그의 인물 정보를 띄웠다.

    [데미안 웨스트]

    나이: 22세

    키: 187㎝

    생일: 1월 31일

    좋아하는 것: 장난감, 요리, 스포츠 경기

    싫어하는 것: 귀족

    호감도: ♥♥♥♥♡

    ‘……기우였나 보네. 시나리오가 많이 달라진 만큼 알 수 없는 인과관계로 인해 그들이 자극되었을 수도 있겠지.’

    그 자극이 무엇일지는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부인?”

    내가 말을 하다가 멈추자 데미안이 의아하게 고개 숙였다.

    “아, 조심하라는 말이었어. 내일 날이 밝으면 주변에 스티그마타 일원이 있는지 알아볼게.”

    그러자 데미안이 고개 저었다.

    “그건 부인이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요. 위험한 건 제가 할게요.”

    “그래도…….”

    “이곳 데미안도 강하던데요? 제 기억까지 합쳐지면서, 이론과 실전 경험까지 일반인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해졌어요.”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하는 이론과 실전은 전투 혹은 살인에 관한 내용이었으니까.

    데미안이 싱그럽게 웃었다.

    “부인은 알잖아요? 제가 어떤 놈인지.”

    던전에서의 데미안은 암흑 조직의 간부였다. 이곳에서는 천재 암살자였고.

    완벽한 음지 인간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연고 뚜껑을 열어 그에게 내밀었다.

    “포션보다 안정성이 높은 성분으로 된 연고야. 혹시 또 다친 데 있으면 이거 발라.”

    한데 데미안은 연고를 받지 않고 상의를 걷어 올렸다.

    “뭐 하는 거야?”

    “부인이 발라주는 거 아니었어요?”

    “넌 손이 없니?”

    “나 아픈데…….”

    어처구니없는 응석인데도 어쩐지 매정하게 대하기가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손에 연고를 덜어 살살 발라주자 데미안은 뭐가 그리 좋은지 킥킥 웃었다.

    그럴 때마다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 근육들이 수축했다가 이완하길 반복했다.

    괜히 낯이 뜨거워졌다.

    “다 됐어.”

    얼른 연고를 다 바르고 옷자락을 잡아 내리자 성좌들이 아쉬움을 가득 담은 후원을 보내왔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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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연고 한 통 다 쓰자 ㅎㅎ 데미안도 그걸 바랄걸?]

    나는 후원창을 닫아버린 뒤 데미안의 거취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앞으로 어쩔 셈이야? 마침 종강했으니 학교에 적응할 시간은 차차 가지면 되긴 할 텐데. 집은 기억나?”

    “기억나요. 부인의 저택이 어디인지, 방의 위치도 알고 있는데요?”

    “……언제 그런 걸 알아낸 거야.”

    데미안은 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이 세계의 데미안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솔직히 원래의 데미안이 어떻게 된 건지 좀 더 구체적으로 묻고 싶었다.

    그가 돌아온 건 기쁘지만, 시나리오상 던전에서 사라졌어야 할 데미안이 어떤 이유로 살아났는지도 의문이었고.

    ‘그래도 오늘은 묻지 말자.’

    나는 데미안을 반겨주고 싶었다.

    원래 자신이 살던 세계가 아닌 낯선 곳에 떨어진 그를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곳을 사랑하는 만큼 그도 이곳을 사랑했으면 했다.

    ‘그러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스티그마타가 적대하는 데다 지금은 오즈월드까지 개입한 상태니.’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혹시 이것도 오류라며 오즈월드가 데미안에게 해코지하지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내게 더 강한 힘이 있었더라면 데미안을 훨씬 안전한 세상에서 살게 해주었을 텐데.’

    안쓰러운 마음에 가만히 그의 뺨을 쓰다듬고 있을 때, 데미안이 돌연 내 입술에 쪽하고 키스했다.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고장난 것처럼 가만히 있자, 데미안이 다시금 쪽 소리를 내며 입 맞추었다.

    “……갑자기 왜 이래?”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키스해달라는 거 아니었어요?”

    그 순간 문득 오즈월드가 한 말이 생각났다.

    “당신이 그렇게 쳐다보면 꼭 키스를 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짜 내 눈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혼란스러워졌을 때, 데미안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고백했다.

    “실은 제가 못 참은 거예요.”

    그리고는 용서해달라며 내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니, 데미안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응석을 부렸다.

    “또 못 참겠어요, 부인…….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 참아.”

    나는 그의 입술을 꾹 밀어내며 품을 벗어났다.

    그러나 데미안에게 도로 안겨져 저항할 새도 없이 입술이 맞붙었다.

    “싫어요.”

    뭉개진 음성이 거친 숨소리로 탈바꿈되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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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킨십에 후진은 없다. 오직 직진만 있을 뿐.]

    던전에서야 살기 위해 못 할 짓이 없었다.

    극 중 역할을 행하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키스할 수 있었고 부부처럼 행동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끝을 모르고 달려드는 데미안을 간신히 떨어뜨렸다.

    그러자 데미안이 가쁜 숨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팠어요?”

    “아픈 게 아니라-”

    “…그럼 혹시 불쾌했어요?”

    “아니, 불쾌하지 않아!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제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내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확신이 떨어져 흐릿하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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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포기하고 다 가져; 솔직히 남주들도 그게 더 행복할걸]

    분명 동의할 수 없는 말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헷갈렸다.

    데미안이든 일리야든 인제와 내외하는 게 우스운 사이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 나는 내 남자 주인공들을 사랑한다. 그만큼 리비도 사랑했다. 그래서 이게 성애적인 관점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키스가 불쾌한가?’

    아니다. 자극에 반응하는 내 신체 기능은 지극히 정상적이었고 정신적인 욕구도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거부하는 게 옳지 않나?

    생각을 거듭할수록 더 헷갈리기만 해져서 억지로 단호해졌다.

    “너를 만났던 세상에서 우리가 친밀했던 건 사실이야. 다만 그건 특수한 상황이었잖아.”

    “…….”

    “이곳에서의 나는 네 부인이 아니야.”

    나는 데미안의 ‘부인’이 ‘아내’라는 뜻임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하나 사라질 그가 가여워서 묵인하고 있었는데 현실에 진입했다면 이는 그만두어야 할 호칭이었다.

    데미안은 시선을 떨어뜨리더니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부인은 루비 반지를 끼고 있네요?”

    내가 손을 움츠리자 그가 빠르게 붙들었다.

    “여기에도 사별한 전남편이 있는 모양이죠?”

    묻는 목소리가 사나웠다.

    전남편이라고 칭하고 싶진 않은데, 그때의 루비 반지를 준 남자가 있기는 했다.

    그래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 살아있는 애인이에요?”

    “애인 같은 거 없어.”

    “그럼 이건 어떤 사이의 남자가 준 거예요?”

    “……이 반지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끼고 있는 거야.”

    내 형편없는 변명에 데미안이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약지에 낀 게 아니니까 결혼반지는 아닐 텐데, 왜 이상하게 결혼반지 같을까요?”

    “…….”

    “이 반지의 주인 때문에 저를 거부하는 거예요? 이 사람을 사랑해서?”

    “그건 절대로 아냐.”

    내가 강하게 부정하자 데미안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러면 안 돼요?”

    “저기, 질문이 이상한 것 같지 않아? 당연히 연인이 아니면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되잖아.”

    “아.”

    데미안은 그제야 오류를 깨달았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부인.”

    ‘뭐가 죄송하다는 거지?’

    “오랜만이라 자제가 안 돼서 기본적인 걸 못 떠올렸어요.”

    “어?”

    “우선 사귀는 것부터 시작할까요? 저는 결혼부터 하는 게 더 좋기는 한데.”

    띠링!

    [성좌 ‘그냥 데미안이랑 살아’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선 결혼 후 연애가 클래식이지]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난 연애할 생각 없어. 물론 결혼할 생각도 없고.”

    분명 내 대답에 실망할 거라고 생각한 데미안은 뜻밖에도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었다.

    “알아요. 그럴 것 같았어요.”

    그가 체온으로 얼음을 녹이듯 내 손을 살살 문질렀다.

    “아까 키스했을 때, 싫었어요?”

    “……아니.”

    싫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내 품을 파고든 데미안이 애교를 부렸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부인. 저는 당신의 고양이 같은 거니까요. 대외적으로는 친구가 적당하겠죠?”

    그가 내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친구끼리 키스는 좀 하겠지만요.”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야ㅠㅠ]

    상식을 파괴하는 발언에 골이 아파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고양이라니, 널 그렇게 표현하지도 말고.”

    “왜요? 제가 고양이처럼 귀엽지 않아서요?”

    솔직히 귀엽다고 생각했다.

    “논점 흐리지 마.”

    데미안은 유들유들했고 애교스러웠으며 다정다감하고 사랑스러웠다.

    다만 지독하게 말이 통하지 않았다. 벽에 대고 이야기해도 이것보단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땐 자제할게요, 부인.”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맞는 거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자꾸 대화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지쳐 나가떨어졌다.

    밤은 늦었고 피곤해서 눈꺼풀이 몹시도 무거웠다.

    하품을 계속 내뱉으니 데미안은 능숙하게 날 안아 들고서 침실로 향했다.

    “졸리죠? 이만 자고 내일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이건 이야기할 것도 없… 흐아암.”

    그는 날 침대에 내려놓고는 당연하다는 듯 옆에 누워 이불을 고쳐 덮어주었다.

    “잘 자요. 부인.”

    이마에 부드러운 입맞춤이 내려앉는 걸 느끼며 나른한 잠에 빠져들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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