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 * *
마법 동물들의 합류로 인해 인력 배치는 제법 수월해졌다.
던전 공략 대원을 빠르게 선별해 투입하고 행렬을 재정비하기까지 30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간신히 내 마차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마법 동물들을 직접 통솔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베인 시종장의 의견에 따라 말을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내 옆으로 대이동 중인 마법 동물의 행렬은 서브컬쳐에서 종종 등장하는 백귀야행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늑대들은 무리 지어서 내 주변을 둘러싼 채 이동하고 있었다.
뭔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기분이었다.
늑대들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빠르게 달리다가도 내 곁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컹!”
“그러지 마. 말이 놀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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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 ‘여유로운 오후 티타임’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렇게 평화로운 기분 드는 건 오랜만이네요~ 동물들도 참 귀여워요~^^]
행렬을 정비하며 나를 대하는 황실 사람들의 태도가 확연히 바뀌기도 했다.
그들은 마법 농원까지 가는 동안 계속 나를 찾아왔다.
“공녀님,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네? 딱히요.”
“원하시는 게 있으면 언제든 저를 불러주십시오. 항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네에…….”
이런 식으로 자꾸 내게 뭔가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댔다. 솔직히 말해서 관심이 귀찮았다.
띠링!
[성좌 ‘유지스의 개과천선’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유복치가 그렇게 차갑게 대했는데도 다들 테레제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네 ㅋㅋ 황후 코인 탄 듯?]
“마법 동물들과 친하니까 뭔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서 그러는 거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마저도 유지스의 암묵적인 허용이 없었더라면 턱도 없을 일이었다.
정말로 유지스가 날 싫어했다면 말을 섞은 것만으로도 사형감이었을 테니까.
나는 황제의 마차를 힐끗 쳐다보았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마차 창문을 열어둔 유지스가 턱을 괸 자세로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날 보고 있었던 거지?’
이대로 시선을 홱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개를 까딱 움직여 알은체했다.
하나 유지스는 반응하지 않았다.
‘날 쳐다보는 게 아니었나?’
얼굴 방향을 보면 날 쳐다보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싶기도 했다.
뭐, 쳐다보는 게 아니라면 다행이고.
다시금 시선을 정면으로 하여 계속 이동하자 서서히 마법 농원의 모습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깨에 앉은 새에게 물었다.
“이제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어떻게 할 거니?”
“끼루루루루.”
“이 주변에 있겠다고? 흐음.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여기에는 마법 식물이 많아서 너희에게 좋은 영향이 갈 테니까. 수고했어. 고마워, 얘들아.”
“컹컹! 헥헥헥.”
“끼루루루!”
목적지에 다다르자 내 곁에 남아있을 늑대 한 마리를 제외한 마법 동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내가 말에서 내리자 때맞춰 베인 시종장이 다가왔다.
“마법 동물들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농원 주변에 있겠대요. 이 부근에 터를 잡은 다른 마법 동물도 있을 테니 조력도 구하고요.”
그러자 베인이 잠시 미소 지었다.
천사들만큼이나 감정의 동요가 적어 늘 같은 표정을 고수하는 시종장이 미소라니.
그에 내심 놀라고 있을 때였다.
“공녀님은 신의 선물 같습니다.”
“네?”
베인은 당황한 내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용건을 전달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긴 여정이 고되어 바로 별장으로 가실 예정입니다.”
황제의 별장은 이곳에서 15분 떨어진 거리에 있다고 했다.
“그동안 공녀님은 필요한 준비를 마쳐 내일 황제 폐하를 보필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유지스와 같이 있어봤자 내 일에 방해밖에 되지 않을 테니 다행이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시종장님.”
베인은 은은한 미소를 띤 얼굴로 예를 갖추고는 황제에게 돌아갔다.
황제가 끌고 온 이들은 전부 별장으로 향했고 나는 늑대와 함께 마법 농원 총관리자를 만났다.
“만나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공녀님. 농원 총관리자 체드입니다.”
총관리자 체드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는 늑대를 힐끗거리며 더욱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공녀님께서 사용하실 연구실부터 확인해보시겠습니까?”
나는 고개 저었다.
“일단 이곳에서 일하는 연구원들부터 만나고, 그다음은 농원 전체를 확인해보고 싶네.”
“저를 따라오십시오.”
나와 체드는 마법 농원 연구실로 들어갔다.
이 농원에서 기르는 식물 대부분은 의료 목적성이 강했다.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한 분야라 펠릭스 교수가 데리고 있는 연구원들이 지원하러 온 상황이었다.
연구원들은 칠렐레팔렐레한 펠릭스 교수와 달리 사교성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배양실부터 안내했다.
나는 마법 식물도감에서 본 적 없는 식물을 가리켰다.
“이건 처음 보는 마법 식물인데, 어떤 효능이 있지?”
“뼈가 부러진 자라도 이 식물에서 채취한 성분으로 만든 액상형 진통제를 복용하면 만 24시간 동안 무통 상태가 됩니다.”
“그 정도면 현존하는 마법 식물 중 가장 강력한 효과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최근 배양에 성공한 식물이거든요.”
농원 연구실이 가동된 건 고작 보름의 일이었다.
마법 식물이 아무리 조건만 잘 맞으면 어마어마한 속도로 자란다고 해도, 이는 말도 안 되는 속도의 성과였다.
나는 일지를 확인하고 연구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금일봉을 하사했다.
연구실을 나와서는 임부들의 기숙사도 둘러보고 현장 상태도 확인했다.
밤이 깊어져 모든 걸 꼼꼼히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상당한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해주었군, 체드.”
체드는 얼른 손사래 쳤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공녀님께서 지시하신 부분을 고스란히 따른 것뿐입니다. 그러니 이는 전부 공녀님의 작품이지요.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럴 리가.
체드는 우리 팀에서 제작한 캐릭터로 애초에 이 일에 완벽한 적격자임을 알고 섭외한 거거든.
나는 빙긋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수고해준 보답이네. 급여와는 상관없는 단순한 선물이니 부담 없이 받게.”
체드는 낯간지럽다는 얼굴로 선물을 거절하지 않고 넙죽 받았다.
“감사합니다, 공녀님. 그럼 이제 공녀님께서 사용하실 개인 연구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내 연구실 겸 숙소는 미국의 농가에서나 볼 법한 형태의 나무집이었다.
공녀가 사용하기에는 볼품없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내게는 더없이 안락하고 좋아 보였다.
‘타이쿤 게임에 나오는 집처럼 생겨서 더 마음에 들어.’
애초에 그걸 염두에 두고 지어달라고 한 거긴 했지만.
“직접 가져오신 짐은 안에 두시면 내일 정리하겠습니다.”
체드의 제안은 고맙지만, 어차피 인벤토리에서 모든 짐을 꺼내놓고 생활할 것도 아니었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정리하겠네. 이만 가보아도 좋아.”
“알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나는 계속해서 날 따라다닌 늑대를 쓰다듬어주었다.
“네 무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컹!”
“계속 내 근처에 있으려고?”
“컹!”
“편할 대로 해. 무리하지는 말고.”
늑대는 눈꺼풀을 가만히 감고서 쓰다듬을 받다가 짙은 마력을 휘날리며 파수꾼처럼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달칵.
집 안으로 들어오니 바깥에 설치해둔 등불 빛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내부는 유독 깜깜했다.
등을 켜거나 마법으로 내부를 밝히면 되는데 나는 그저 닫힌 현관문에 등을 기대고 서서 적막에 잠겨 있었다.
“…….”
마음에 여유가 없어 세상을 피해 혼자 숨어있을 공간이 필요했는데, 우습게도 막상 혼자가 되니 사무치게 외롭고 공허했다.
어느새 곁에 사람이 있는 게 익숙해져 버린 모양이었다.
참 간사하기도 하지.
“빌어먹을.”
나는 나직하게 욕설을 중얼거리곤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클었다.
그러다 한숨을 푹 내쉬며 창문으로 다가가 활짝 열어젖혔다.
맞은편에 보이는 마법 농원이 꼭 크리스마스가 찾아온 세상처럼 빛으로 가득했다.
여름의 텁텁한 공기에도 찝찝하기는커녕 잠시나마 상쾌한 기분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럴 때는 시원한 생맥주를 마셔야 하는데.”
울적하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오는 길에 챙겨올 걸 그랬군.”
창밖에서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상체를 쭉 빼냈다.
“일리야 님!”
일리야가 창문 바로 옆에 서서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띠링!
[성좌 ‘예비 사위 일리야’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일리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가 고개만 틀어 날 쳐다보았다.
“잘 지냈나?”
나는 차마 잘 지냈다고 말하지 못하고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었다.
그렇지 않으면 울음을 토하며 당신 동생이 사라졌다고,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버릴 것 같았다.
“썩 잘 지내진 못한 모양인데.”
일리야는 벽에서 등을 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연구실의 기단부가 높지는 않아도 계단을 다섯 개나 쌓은 높이라 그런지 그가 내 시선보다 아래에 있었다.
나는 창틀 아래로 몸을 숨기고서 쪼그린 자세로 웅얼거렸다.
“……아니에요. 잘 지냈어요.”
“그건 그것대로 서운하군. 다른 남자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뜻일 테니.”
“실은 못 지냈어요…….”
창문 쪽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미 눈물을 찔찔 흘리고 있었으므로 위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때 일리야가 창틀을 짚더니 사뿐히 안으로 들어왔다.
“울고 싶으면 소리를 내. 내 앞에서까지 참을 필요 없어.”
그 말이 기폭제가 되었다.
나는 일리야가 이끄는 대로 품에 안겨 한참이나 엉엉 울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 난 언제나 곁에 있을 테니.”
“하, 하지만 저는, 반려도, 아니고…….”
내가 끅끅거리며 말하자 일리야가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그건 네가 내 것이 되는 문제지. 나는 이미 네 것이니. 그리고…… 네 약함은 사실 날 기쁘게 해. 아예 모든 걸 내게 의지하면 좋겠는데.”
아마도 어렵겠지만.
일리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싱겁게 웃었다.
그는 내가 약해진 틈을 타 유혹하고 있었다.
눈물을 닦아주는 부드러운 손길과 따뜻한 체온, 무심한 듯 다감한 목소리가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이대로 주저앉으라고. 기대라고.
하나 일리야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다른 마음도 솔직하게 밝혔다.
“하지만 역시 네가 진정으로 행복했으면 하는군.”
일리야는 경건한 맹세를 하는 이처럼 내 이마에 입 맞추었다.
“이런 게 사랑이라면 꽤 골치 아프다는 생각이 들 만큼.”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