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황실 마법사들은 빠른 속도로 마기가 퍼져나가지 않도록 보호 마법을 걸어두었다.
또한 비마법사들을 통솔해 안전하게 이곳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동 경로를 다시 설정했다.
그 과정이 썩 매끄럽진 않았다.
“주변 상황을 먼저 정찰한 후에 움직여야 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보호 마법을 걸어두었다고 해도 폐하께서 마기에 노출되게 하실 수는 없습니다.”
황실 마법사들이 다투고 있을 무렵,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찰조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어.’
그렇다는 건 누군가가 일부러 은신까지 한 새를 알아보고 공격했다는 뜻.
나는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황실 마법사들에게 다가갔다.
“근처에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보낸 정찰조가 전부 파괴되었어요.”
황실 마법사들은 내 말을 단번에 신뢰하지 않았다.
“확실합니까? 저희 쪽에서는 아직 아무런 보고가 오지 않았습니다만. 혹시 새를 유지할 마력이 부족했던 건 아닙니까?”
“네? 저는 정찰조에 마력을 계속 주입해주지 않았는데요?”
“예?”
“네?”
“…예에?”
우리는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만 물음표를 띄웠다.
‘스도쿠 던전에서 만난 황실 마법사들이었으면 말이 통했을 텐데.’
“정찰조를 만들어낼 때 한 번만 마력을 주입하면 끝나는 걸, 어째서 마력을 계속 보내주면서 유지해야 하죠?”
“그야 의지를 갖고 움직여야 하니까 그렇지요…….”
나는 직접 개량한 마력 회로 설계 방식을 통해 정찰조를 만들어냈다.
이건 레포트로도 제출한 적 있었고, 내용이 마법협회에도 공유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이는 황실 마법사들이 새로운 마법 논문을 읽고 공부하지 않았다는 뜻이 되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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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자기가 그 분야 권위자라고 생각해서 궤도에 오른 순간부터 공부 안 하는 사람 많지]
“제가 한 것을 보셨으면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이해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
황실 마법사들은 고작 학생에게 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자존심을 부렸다.
외려 슬슬 적대감마저 느껴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들이 날 이렇게까지 배척하는 이유가 뭘까?
나는 금방 원인을 찾아냈다.
가장 화려한 복색의 황실 마법사가 뒤편에서 찜찜한 표정을 한 채 날 응시하고 있었는데, 아까 마차에서 유지스의 역성을 드느라 나무랐던 그 마법사였다.
‘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게 바로 저 사람인 모양이네.’
아무래도 오해를 푸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서, 나는 그 마법사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까는 그런 식으로 말씀드려 죄송했습니다. 폐하께서 감정을 참지 못하시는 것 같아,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
사실 앞으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계속 목적지까지 가겠다는 건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지금이라도 환궁하자던 황실 마법사의 제안이 상식적인 행동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상대가 나빴다.
유지스가 상식을 벗어난 인물이라는 게 문제였다.
내내 딱딱한 무표정을 유지하던 황실 마법사들이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내게 싫은 소리를 들었던 마법사는 눈에 띄게 누그러진 얼굴로 고개 저었다.
“……아닙니다. 공녀께서 절 도와주셨던 것임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제가 못난 탓에 감정이 앞섰습니다. 오해를 풀 생각도 없었지요. 미안합니다.”
내가 오해받을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상대도 나에 대한 선입견으로 적대한 것은 사실이었다.
황실 마법사는 화해를 청하듯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맞잡았다.
“사과를 받아들일게요.”
“늙은이의 아집을 너그럽게 받아주어 감사하고 또 미안합니다.”
황실 마법사가 눈짓하자 나를 괜히 적대하고 있던 다른 마법사들도 머쓱하게 사과해왔다.
“죄송합니다, 공녀님.”
“저희를 핍박하시는 줄 알고 오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뭉치지 않고 내부 분열을 일으켜봤자, 신나서 콧노래를 부를 건 우리를 공격한 미지의 적밖에 없었다.
“저도 날카로웠어요. 죄송해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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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나서서 아랫사람을 보호하고, 마음을 헤아려 자비를 베풀 줄 알며, 결국 존경을 받게 되는 것. 이것이 황후의 자질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황후의 자질이 아니라 그냥 상식적인 인간관계 형성이 아닐까 싶은데.
아무튼 서로 감정 상한 일이 마무리되며 진짜 문제가 대두되었다.
“우리가 포위되었을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나는 고개 저었다.
“정찰조가 파괴된 장소가 여기서 멀어요. 애초에 악마 계약자만 이곳에 심어두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허어. 대체 어떤 반역자들이 이런 짓을…….”
그때였다.
“컹!”
우거진 숲속에서 들려온 갯과 짐승의 울음소리에 모두가 그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곧 울음이 들려온 지점에서 금빛 마력을 풀풀 휘날리는 거대한 늑대들이 어슬렁어슬렁 모습을 드러냈다.
“어?”
나는 그 늑대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투베로사 마을의 그 늑대들이잖아?’
기억보다 훨씬 덩치가 커진 것 같지만.
“잘 지냈어?”
내가 스스럼없이 다가가 쓰다듬어주자 늑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헥헥헥!”
늑대들은 기분 좋은지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그사이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늑대가 내 앞으로 다가와 입에 물고 있던 것을 바닥에 떨구었다.
툭.
그건 웬 나무 인형이었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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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양식이 과거 ‘델브 던전’으로 들어갔을 때 본 인형과 흡사한 것으로 추정.]
나는 이 인형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마음 인형이잖아.”
그렇다는 건 현재 이곳에 던전을 생성시킨 게 스티그마타의 소행이라는 뜻이었다.
‘계속 데미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니…… 설마?’
데미안의 호감도에 따라 스티그마타의 활동 정도가 달라진다.
호감도가 낮을수록 테러가 심해지는데, 이 정도라면 검은 하트 수가 최소 3개는 된다는 말이었다.
나는 인형을 들고 황실 마법사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비현실적인 장면을 목격한 표정으로 멍하니 날 쳐다보고 있다가 인형을 확인하더니 미간을 좁혔다.
“이건 요즘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마음 인형이 아닙니까?”
“네, 맞아요.”
빠각!
마력을 일으킨 손으로 마음 인형을 꽉 쥐자 이음새가 망가지며 속이 드러났다.
내부는 불길한 검보라색 술식으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
“이건 악마를 부르는 소환 술식이에요.”
거기까지 설명하자 황실 마법사 중 하나가 탄식했다.
“악마 계약자가 된 귀족들도 저 마음 인형을 갖고 있었습니다. 인형의 출처는 알 수 없고요.”
“혹시…… 스티그마타의 짓이 아닐까요?”
스티그마타란 말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가능성 있습니다. 아니, 황제 폐하를 공격했다는 점부터 던전을 생성해 테러하는 방식까지, 전부 그 집단이 하는 짓입니다.”
“어서 폐하께 아룁시다.”
황실 마법사들이 유지스에게 상황을 보고하러 떠나고, 마법 새가 날아와 목적지까지 자신도 같이 가도 괜찮겠느냐 물었다.
“끼루루!”
“마음은 고맙지만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어서…….”
“컹컹!”
“친구들이 더 오고 있다고?”
나는 당혹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늑대들의 말처럼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의 마력이 안개처럼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마법 동물의 수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호의로 가득한 마력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를 가득 채웠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나를 달래듯 물거품을 잔뜩 머금은 보드라운 파도처럼 밀려드는 애정에 코끝이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너희들이 호위해준다면 든든할 거야.”
내가 미소 띤 얼굴로 기뻐하자, 동물들도 행복해했다.
이들도 나의 감정에 큰 영향을 받는 듯했다.
“그런데 폐하께 여쭈어봐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황제가 탄 마차로 가려고 뒤돌았을 때였다.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모두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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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가려 합니다. 테레제를 더 이상 못 보겠습니다. 테레제가 여자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테레제를 사랑하는 심장을 찢어내려 합니다. 성좌분들 테레제를 아껴주세요.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저처럼 죽을 만큼 사랑하게 되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맛보게 될 겁니다. 그녀와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눈물만 흘리다 결국 그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게 될 겁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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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나갈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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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나는 시야를 방해하는 벽돌 같은 후원창을 꺼버리고 어느새 마차에서 내려 정면에 서 있는 유지스를 향해 예를 갖췄다.
“마침 폐하를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목적지까지 호위하고 싶다는데 동행해도 괜찮을까요?”
“마침 짐도 목적지를 이야기하고자 직접 찾아왔다.”
나는 그의 말투에서 직감적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않으리란 걸 예상했다.
스티그마타가 날뛰든 말든, 황제는 그런 것에 겁먹고 두려워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 선 신하들만 전부 죽을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짐은 공녀와 함께 마법 농원으로 갈 생각이다.”
“그렇다면 마법 동물들과 동행하는 편이 훨씬 좋을 듯합니다. 이 아이들은 인간보다 마수나 던전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니,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럴 테지.”
내 의견에 동의하는 음성이라기에는 비아냥이 가득했다.
유지스는 몹시 심기가 뒤틀린 듯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 얼굴로 덧붙여 말했다.
“신께서 공녀를 매우 사랑하시는 모양이구나.”
“신께서 널 지독하게도 사랑하시는 모양이구나.”
나비가 갑자기 그의 침실로 데려갔을 때도 들었던 말이었다.
“미물들의 도움은 내키지 않지만, 공녀의 뜻대로 하거라.”
유지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마차로 휙 들어가 버렸다.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