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유지스는 오만한 태도로 나를 추궁하면서도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얻어걸리길 바라며 그냥 찔러보는 건 아니었다.
‘내가 침실에 들어갔다고 확신하고 있어.’
클라이드와 스콰이어 나비가 균열로 빨려들어 가며 등장인물들의 기억이 바뀌었다.
이미 여러 차례 확인한 바가 있었으나 예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유지스도 내가 갑자기 침실에 나타났던 날의 기억이 없어야 했다.
‘대체 뭐 때문에 확신하는 거지?’
어쨌든 나로서는 여기서 그렇다고 인정할 수 없었기에 발뺌했다.
“제가 어찌 허락도 없이 황제 폐하의 침실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곳은 이동 마법도 쓸 수 없는 곳인데요.”
“그래서 짐이 묻지 않느냐.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저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표정의 미동도 없이 담담하게 거짓을 고하는 날 바라보던 유지스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살다 보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하지. 흔히 기적이라 부르는 그런 일들 말이야.”
“…….”
“죽은 사람이 살아나거나, 갑자기 과거로 가버린다든가, 혹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 버리는 그런 일이 아주 불가능하다고 보나? 그대는 죽었다가 살아나기까지 했잖은가.”
농담처럼 던지는 말들이었으나 나는 온전히 농담으로 들을 수 없었다.
“짐은 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지. 그래서 공녀가 미지의 힘을 사용해 짐의 침실에 들어왔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아.”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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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누구보다 제일 꼰대인데 되게 열린 척한다]
유지스는 손을 들어 올려 내게 확인시켜주듯 앞뒤로 뒤집었다.
“아까 짐의 손을 유심히 보던데. 상처가 다 나았을지 궁금해서 본 게 아니었나?”
……설마 그걸 이상하게 여길 줄이야.
‘아주 잠깐 쳐다봤다고!’
예민한 캐릭터인 건 알았지만 유지스의 예민함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했다.
“그건 폐하의 손이 워낙 고우셔서요…….”
그의 손은 빈말로도 곱다고 하기 어려웠다.
핏줄이 선명하게 불거진 손은 훈련으로 인한 굳은살이 가득해 매우 강인해 보였다.
자세히 보면 희미한 흉터들이 곳곳에 있기도 했고.
유지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유쾌해서가 아니라 차오른 화를 견디지 못하고 터뜨린 웃음이었다.
“짐은 기만을 좋아하지 않아, 공녀.”
스콰이어 나비는 사라졌다.
따라서 침실에 들어간 게 나라고 밝혔을 때, 사용한 방법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의심 많은 황제는 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상황은 순조롭게 최악으로 치달으리라.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덜컹!
그때 갑자기 마차가 다급하게 멈춰 섰다.
말들이 겁에 질려 내는 요란한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 날카로운 고성들이 이곳까지 들려왔다.
유지스는 중요한 일을 방해받아 짜증 난 얼굴로 창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때마침 상황을 보고하러 다가오던 황실 마법사가 서둘러 아뢰었다.
“전방에 던전이 생성되었습니다, 폐하.”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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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요?! 가나요?! 가나요?!]
‘갑자기 던전이 생성됐다고? 사람도 다니지 않는 이런 곳에서?’
유지스도 나와 똑같은 의문을 품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텅 빈 길거리에 갑자기 던전이 생겨날 이유가 무엇이냐? 내부에는 악마 계약자가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악마 계약자는 유지스 앞에서 정체를 숨길 수 없었으니 이는 내부 소행이 아니었다.
황실 마법사가 굳은 낯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지금이라도 속히 환궁하시는 게 어떠하시겠습니까?”
황제와 스콰이어 가문의 사이가 나쁜 건 워낙 유명했으니, 우리 쪽에서 뭔가 한 건 아닌가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이건 좀 억울한데?’
유지스는 던전이 나타나든 말든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백성을 위한 새로운 국책 사업을 준비하겠다고 나섰는데, 고작 던전 하나 생겨났다고 돌아가면 참으로 꼴이 보기 좋겠구나.”
“하오나 폐하…….”
이미 나로 인해 기분이 좋지 않았던 유지스는 감히 자신에게 반박하려는 마법사로 인해 눈빛이 돌변했다.
“지금 짐을 웃음거리로 만들 셈인가?”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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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또 눈깔 돌았는데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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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큭… 달콤한 살기가 느껴진다]
황실 마법사의 제안은 타당했으나 말을 꺼낸 타이밍이 나빴다.
이러다 무고한 이가 괜히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오지랖을 부렸다.
“폐하는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드릴 겁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는 보란 듯이 유지스를 역성들며 황실 마법사를 과하게 나무랐다.
“경은 폐하의 안위를 위해 주변 상황부터 정비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진정 폐하를 위한 일일 것 같습니다만.”
“…….”
황실 마법사는 새파랗게 어린 여자애에게 싫은 소릴 들은 치욕감에 낯빛을 굳혔다.
유지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다가 턱을 괸 자세로 날 쳐다보았다.
당장 때려죽일 듯이 번들거리던 눈이 느슨하게 풀린 것을 보니 분노가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공녀는 참 깜찍한 짓을 많이 해.”
하아. 한시름 놓은 건가?
“그렇게 깜찍하게 굴며 짐의 기억에도 남지 않게 손을 치료한 건가?”
아직도 안 끝났어? 돌겠네.
이를 어떻게 수습할지 골치가 아파졌을 때였다.
쿠구구구궁―!
지축이 뒤흔들리더니 땅이 쩌저적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숨이 턱 막히는 지독한 악취처럼 사악한 기운이 마차 내부까지 끼쳐 들어왔다. 틀림없이 불길한 징조였다.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바깥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마법사들은 전원 보호 마법을 펼쳐라!”
“방금 던전으로 빨려 들어간 사람이 누구지? 각 부처는 즉시 인원 파악하도록!”
나는 황급히 창밖을 내다보았다가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전방에 악마 던전이 무려 두 개나 생성되어 있었다.
유지스도 창밖을 확인하더니 혀를 찼다.
“확실히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이지는 않는군.”
처음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던전은 여기서 떨어진 곳에 있어서인지, 빨려 들어간 사람이 없어 문이 활짝 열린 상태였다.
반면 두 번째로 생겨난 던전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유지스는 황궁을 나오자마자 제 앞에 생겨난 던전들이 놀랍지도 않은지 심드렁하게 명령했다.
“처음 생겨난 던전에 공략대를 보내고 피해 규모를 확인해서 보고해라.”
“명을 받듭니다.”
띠링!
[성좌 ‘유지스 신랑수업해’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뭐야 던전 열리면 남주랑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ㅠ]
던전이 열렸다고 해서 제가 전부 들어가지는 않는다고요.
나는 던전 쪽을 힐끔거리다가 유지스에게 물었다.
“폐하, 저도 조사단에 합류하여 상황을 알아봐도 되겠습니까?”
던전이 생겨난 타이밍이 공교로웠다.
이게 오즈월드의 농간인지 유지스의 돌발 행동으로 인한 여파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라.”
유지스는 끓었던 감정이 식어서인지 권태로워진 얼굴로 대충 꺼지라는 듯 손짓했다.
“황공합니다, 폐하.”
혹여라도 변덕이 죽 끓는 유지스에게 도로 붙들리기 전에 부리나케 마차에서 내렸다.
띠링!
[성좌 ‘과몰입오타쿠’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렇게 문이 두 개나 열리니까 확실히 분위기 이상하긴 하다…… 여기만 유독 빛이 안 드는 것 같아]
성좌가 느끼는 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실제로 던전이 생성된 주변은 사악한 기운으로 뒤덮이며 땅이 거멓게 침식되기 시작하니까.
‘공중에도 희미하게 마기가 흩날리고 있어서 까만 안개가 엷게 낀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수군수군.
내가 주변을 살펴보며 던전 쪽으로 다가가자 곱지 않은 눈초리가 모여들었다.
“공녀와 얽히자마자 이런 일이……”
“최근 벌어진 일들도 보면 꼭 공녀가……”
“폐하께서 태양궁 밖까지 나오시게 만들고……”
“참 그 수단이 무엇인지 궁금……”
뒷말은 흐릿해서 잘 들리지 않았으나 다들 날 욕하고 있다는 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띠링!
[성좌 ‘로판중독영애’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과연 황실에서 일하는 자들이라 하는 짓들이 음침하기 이를 데 없군요. 일부러 지나가는 때에 맞춰 내용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닙니다.]
“어쩐지 속닥거리는 소리가 잘 들리더라니. 들으라고 한 말이구나.”
성좌의 후원 코멘트를 보고 심드렁하게 중얼거리는데 주변에서 기침을 터뜨려댔다.
그들이 불편해하든 말든, 나는 마력을 활성화해 마력 회로를 동시에 수십 개 생성했다.
“정찰자들은 태어나라.”
은신, 민첩 같은 정찰에 필요한 룬으로 회로를 이은 술식에 마력을 불어넣자 빛으로 이루어진 새들이 탄생했다.
“주변을 확인하고 와.”
내가 명령하자 마치 철새처럼 무리를 짓고 있던 새들이 동시에 투명해지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확실히 마력이 많으니까 물량 공세를 퍼부을 수 있어서 좋네.’
던전을 향해 한걸음 옮기는데, 그에 맞춰 고개들이 따라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뭐지?’
의아하게 주변을 훑자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며 날 쳐다보는 마법사들과 눈이 마주쳤다.
“…….”
“…….”
묘한 침묵이 잠시 감돌다가 마법사들이 먼저 내 눈을 피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뭐야, 진짜.”
띠링!
[성좌 ‘하하버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아이 좋아~ 꺄르르르~!]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