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 * *
나는 공작저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엘로이즈에게 물었다.
“아버지께서 왜 빨리 돌아오라고 하신 거야?”
“제프리 부관님이 오셨어요.”
제프리는 황제의 부관으로, 내가 태양궁에 초대되었을 때 에스코트했던 남자였다.
‘황제가 전령을 보냈군.’
나는 걸음을 조금 더 서두르며 오즈월드의 저택으로 떠나기 전, 엘로이즈에게 몰래 지시한 일에 대해 물었다.
“데미안은?”
라울은 내가 결혼식을 준비했던 상대가 데미안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는 데미안의 흔적을 찾아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은근한 감시의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 혼자서 오즈월드의 저택으로 외출하게 되며 엘로이즈에게 빈 시간이 생겼다.
엘로이즈는 내 부탁대로 데미안의 행방을 조사했다.
“아가씨께서 말씀하셨던 날부터 지금까지 집에 들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지인이라고 할만한 이들과도 연락이 다 끊겼고요. 아예 행방이 묘연한 상태예요.”
“그래……. 혹시 모르니까 계속 확인해줘.”
“알겠습니다.”
우리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미리 짠 듯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황궁의 사용인들과 함께 행차한 제프리에게 다가가 예를 갖췄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프리 님.”
제프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매우 반가워했다.
“오, 반갑습니다, 공녀. 말씀처럼 정말 오랜만이죠? 갑작스럽지만 폐하의 뜻을 전달하고자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적당히 인사치레를 나눈 뒤 나는 가족들에게 다가가 황제의 전언을 받을 준비를 마쳤다.
그 모습을 확인한 제프리가 시종이 든 붉은 쿠션 위에 놓인 황제의 친서를 들어 올렸다.
곧 황제의 친서가 낭독되었다.
“짐은 국책 사업을 앞두고 테레제 스콰이어 공녀의 새로운 시도가 들어간 마법 식물 농원 운영법에 대한 도움을 얻고자 한다. 내일 곧장 황실의 인력을 보낼 것이니 협력해주길 바란다.”
내용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제프리는 친서를 다시금 쿠션에 내려놓더니 알아듣기 쉽게 내용을 축약하여 내게 전달했다.
“따라서 내일 바로 마법 식물 농원으로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26. 마법 농원
황제의 갑작스러운 지랄…이 아니라 명령에 스콰이어 공작저는 저녁부터 난데없이 뒤집혔다.
마법 농원으로 갈 일정이 분명 있기는 했다만, 오즈월드의 체류로 인해 흐지부지된 상태여서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인벤토리 브로치에다 다급히 짐을 쓸어 넣는 등 급하게 집을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주세페는 그런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언짢은 기색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귀족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가문을 비웃음당하게 만들고 싶어서 그래?”
귀족은 노동하지 않는다.
노동하는 귀족은 스스로 귀족이라는 지위를 걷어차 버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사실 내가 공녀라는 막강한 신분이라 이런 행위가 성격이 꽤 독특하다는 수준으로 포장될 여지가 있지, 아니었으면 곧장 사교계에서 업신여겨졌을 일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대귀족인 내가 나서야지.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 직접 움직여야 하니까. 그리고 난 그럴 힘이 있잖아?”
“…….”
주세페는 어딘지 충격받은 듯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인사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가족들은 차마 나를 붙잡지 못하고, 내켜 하지 않은 기색으로 부디 조심히 다녀오라 말해주었다.
공작저를 벗어나 황실 사람들과 합류하기로 한 지점에 도착하니 엄청난 규모의 행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종장님?”
게다가 나를 직접 맞이한 사람은 황제의 시종장, 베인이었다.
“스콰이어 공녀님을 뵙습니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얼떨떨하게 마주 인사했다.
“베인 시종장님을 뵙습니다.”
황실 사람과 함께 농원으로 가라고 해서 당연히 실무자들이 올 줄 알았더니 어째서 황제를 보필하고 있어야 할 시종장이 왔단 말인가?
‘……설마?’
등줄기를 훑는 오싹한 느낌에 시선을 번쩍 들자 가장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마차의 창문 너머로 유지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날 보고 빙긋 웃었다.
“오랜만이구나, 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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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황제의 데이트 스케일? ㄷㄷ]
인력을 보낸다더니 황제 본인이 출두하는 이 미친 상황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나는 우선 트집잡히기 전에 예를 갖추었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유지스가 내게 손을 까딱거렸다.
이리로 오라는 무례한 손짓에 억지로 발걸음을 떼어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말을 하려고 부르는 거지?
“타거라.”
나는 간신히 “왜요?”라고 묻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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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상처는 다 나았나 보네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유지스의 손을 힐끔 보았다.
‘정말이네.’
내가 그의 손을 유심히 확인하고 있을 때, 궁인이 발판을 가져와 아래에 놓고 마차 문을 열었다.
“드시지요, 공녀님.”
나는 떨떠름한 기분을 감추며 마차에 올랐다.
“혹시 제게 긴히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뭔가 은밀히 할 말이 있어 마차에 타라고 한 거였으면 좋겠다는 행복회로가 유지스의 무심한 한마디에 잿가루가 되었다.
“농원까지 가는 길에 짐을 무료하지 않게 해 보거라.”
“……제가요?”
“그럼 짐이 공녀를 재미있게 해주려고 불렀겠느냐?”
진짜 딱 한 대만 때려주고 싶었다.
“제가 그다지 재미있는 사람이 아닌데 어찌 폐하를 즐겁게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짐과 한 마차에 타는 영광을 누리려면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지.”
유지스는 자신이 알 바냐는 듯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훅 불었다.
“콜록…!”
그 순간 방심하고 있다가 타이밍에 맞춰 숨을 참지 못하고 콜록거리고 말았다.
나는 사색이 되어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황제는 콜록거리는 소리를 몹시 싫어했기에 까딱했다간 마차에서 집어 던져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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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노담이면 좋겠어!]
연기를 마시지 않으려 숨을 참느라 내 얼굴이 점점 빨개지는 걸 지켜보던 유지스가 픽 웃었다.
“혹시 짐을 눈치 보게 만들려고 하는 행동인가?”
“그게 아니라, 콜록!”
흡. 내가 또 숨을 멈추자 유지스는 혀를 차더니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껐다.
“공녀와 함께 있으면 짐의 수명이 늘어나겠구나. 참으로 고맙군.”
그의 비아냥거림에 속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송구합니다, 폐하.”
“수명이 늘어나는데 송구하다고? 그 말은 짐이 일찍 죽었으면 좋겠다는 뜻인가?”
“제가 그랬습니까? 황공하다고 말씀드린다는 것을 머리가 나빠서 실수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폐하.”
“저런. 그런 문제라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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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덜 잘생겼어도 바로 쿠데타 엔딩인데……]
하아. 우리 팀은 어째서 이딴 캐릭터를 남주랍시고 만들었을까?
만일 과거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게으르고 무능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남자주인공으로 만들 테다.
내가 속으로 욕을 퍼붓는 동안 유지스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로 옅게 웃었다.
“공녀를 보면 짐의 기분이 이렇게 좋아지는데, 얼굴 보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모르겠구나.”
“예에… 그렇습니까…….”
애석하게도 나는 유지스와 마주친 게 고작 얼마 전 일이라서 얼굴 보기가 어렵다는 게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좀 더 어려웠어도 좋았을 텐데, 왜 원작에도 없는 짓을 하는지.
‘그나저나 확실히 나비가 침실로 데려갔을 때의 기억은 없나 보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공녀. 최근 짐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는데 그대가 한 번 문제를 풀어보겠나?”
“어떤 문제 말씀이신가요?”
“얼마 전 짐의 어미가 죽은 날이었다.”
……왜 갑자기 그날을 언급하지?
유지스가 제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짐은 항상 그때마다 손을 다치곤 하지. 그런데 이번에는 깜찍한 솜씨로 치료가 되어있었어.”
“아하…?”
“게다가 짐이 수도에서 벗어난 웬 시골의 저택을 사서 수리하라는 명령을 했던 게 떠올랐단 말이지. 짐이 왜 그랬을까?”
“왜 그러셨을까요……?”
“그게 아니지, 공녀.”
뭐가 아니라는 건데.
“공녀는 여기에 답을 내놓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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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뭐냐 이거?]
유지스는 애써 당혹감을 숨기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대체 어떻게 짐의 침실을 들어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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