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선택지를 본 성좌들은 너도나도 후원을 보내며 각자가 원하는 것을 피력했다.
띠링!
[성좌 ‘오즈테레 먹기 좋은 계절’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띠링!
[성좌 ‘못 먹어도 고’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무조건 2 무조건 2 무조건 2 무조건 2 무조건 2 무조건 2 무조건 2 무조건 2 무조건 2 무조건 2]
띠링!
[성좌 ‘마이너 장인’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진짜 큰 그림 그릴 줄 모른다 ㅋㅋ 여름방학 내내 오즈월드 저택에 있으면 1, 2 다 할 수 있으니까 나는 3]
“루비 반지를 끼는 건 뭐야?”
나는 그나마 가장 무난해 보이는 선택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오즈월드는 그늘진 산책로에 들어서면서 접어두었던 양산을 내게 넘겨주더니 허공에서 반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루비 반지가 들어 있었다.
데육시 던전에서 내게 주었던 반지와 생김새가 다르긴 했으나 보석이 같아서 그런지 기분이 찜찜해졌다.
“설마 이걸 약지에 끼라고?”
“그러면 재밌겠지만 미혼의 영애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순 없죠.”
오즈월드는 당연히 내가 4번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제멋대로 왼손 중지에 루비 반지를 끼웠다.
“이 반지는 손에서 빼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띠링!
[퀘스트: 1월 31일까지 루비 반지 빼지 않기]
▸보상: 호감도 대폭 상승
▸실패: 호감도 대폭 하락
1월 31일은 콘텐츠가 끝나는 날이었다.
한데 그때까지 반지를 빼지 말라는 게, 다른 남자주인공과의 사이를 끝까지 방해하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성좌들도 나와 비슷하게 느꼈는지 뜨거운 반응을 쏟아냈다.
[오즈월드 정실 가나요?], [오즈 코인 탑승 완료], [솔직히 채널 관리자가 개입하는 건 너무 반칙 아님?] 등등.
동시에 다른 남주 루트를 지지하는 성좌들의 불만도 거셌다.
띠링!
[성좌 ‘채널 관리자는 빠져’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들어오든가 ㅋㅋ 실컷 남주들한테 정들였는데 뭐 하는 짓임?]
띠링!
[성좌 ‘어차피 남주는 클라이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클라이드나 살려내]
나는 무덤덤함을 가장한 눈으로 루비 반지를 들여다보았다.
“지난번에도 루비더니 이번에도 루비 반지네. 당신은 확실히 붉은색을 좋아하나 봐.”
‘난 이제 붉은색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데.’
오즈월드가 내 손을 쥐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지구의 어느 나라에서는 여기도 결혼반지를 끼는 위치라는 거 알고 있습니까?”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알고 싶은 건 오즈월드의 머릿속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그건 당신이 저와 하고 싶은 거여야죠, 테레제 양.”
오즈월드는 느릿한 손길로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 세계는 당신이 남자주인공 한 명과 이어져야만 완전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잖습니까?”
그 전에 낙원을 찾으면 누군가와 이어지는 결말 같은 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된다.
오즈월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내게 결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낙원을 찾는 걸 방해할 생각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오즈월드가 날 방해할 이유는 충분했다.
방송이 흥행하고 있으니 중간에 갑자기 허무한 결말을 맞게 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플롯대로 흐르게 하고 싶겠지.
하지만 그 이유도 어쩐지 석연치 않았다.
‘오즈월드가 거대한 회사를 소유하고 있고 전설적인 채널 관리자라는 걸 떠나서, 흥행에 목을 매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성공과 흥행 따위를 강렬히 열망하는 이를 본 적 있었다.
1위 채널 관리자 체호프라고 했던가?
오즈월드를 어설프게 따라 하던 천박한 그 남자는 확실히 방송 흥행에 목숨 건 사람처럼 보였다.
성공에 대한 열망과 집착, 네임드를 향한 질투와 열등감이 그 증거였다.
반면 오즈월드의 태도는 뜨뜻미지근했다.
그러니까 뭐랄까…… 방송이 목적이 아닌 수단처럼 보였다.
대체 무엇을 위한 수단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정말 당신 생각을 모르겠어.”
무심코 내뱉은 말에 오즈월드는 재미있다는 듯이 반응했다.
“제 생각을 알고 싶습니까?”
“알려줄 생각이 있기는 하고?”
“그거야 당신이 그럴 마음이 들게 하면 되겠죠.”
띠링!
[성좌 ‘오즈월드가 리얼월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나 뭐든 할 준비 되어있어…]
나는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으려다가 관뒀다.
보나 마나 헛소리나 해서 날 화나게 만들겠지.
‘이런 건 차치하고.’
“이제 슬슬 내 반지 돌려줘.”
내가 손바닥을 펼치며 반지를 달라고 말하자 오즈월드는 질질 끄는 것 없이 순순히 넘겨주었다.
‘혹시 반지에 수작질을 부려놓은 건 아니겠지?’
오즈월드에 대한 신뢰는 제로에 가까웠기에 반지를 받자마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꼼꼼히 확인했다.
내 태도를 본 오즈월드가 조소했다.
“의심이 많은 건 좋은 자세지만, 그 반지는 그냥 평범한 반지일 뿐입니다.”
“……멀쩡한지 확인해 본 거야.”
나는 괜히 구시렁거리며 반지를 또 잃어버리기 전에 인벤토리에다 집어넣었다.
“그 반지가 당신에게 매우 소중한가 봅니다.”
“응. 소중해.”
“그래서 아직도 이런 흉측한 걸 달고 있는 건가요?”
“무슨……?”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오즈월드가 장갑을 벗더니 맨손으로 내 등을 짚었다.
오싹한 한기에 살갗이 에는 듯하다 못해 뼛속까지 시려 골이 아팠다.
오즈월드는 내 혈액이 모조리 얼어붙어도 아랑곳하지 않을 표정으로 뭔가를 닦아내듯 문질렀다.
정확히 클라이드의 이름이 새겨지다 만 자리였다.
“조금 아플지도 모릅니다. 반쯤 완성된 악마의 계약을 없었던 일로 하는 거라서요.”
꼭 냉기가 풀풀 흐르는 얼음을 살에 대고 문지르는 듯한 감각에 몸서리치자, 그가 나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잘 참고 있습니다.”
오즈월드는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다독인 뒤 등에서 손을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아픔이 가시기는 했으나 격통에 시달린 탓에 오즈월드의 부축 없이는 서 있을 힘이 없었다.
“이제 악마 계약의 흔적은 사라졌습니다.”
그 말에 이상한 공허를 느꼈다.
당연히 악마와의 계약 흔적이 없는 편이 좋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유지스는 단번에 알아챌 테니까.
따지고 보면 오즈월드가 내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
‘그런데 왜 고맙지 않을까.’
오즈월드의 도움이라서 고맙지 않다는 게 아니었다.
아마도 난 계약을 하다 만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클라이드가 살아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약한 생각하지 말자.’
“이제 괜찮아졌어. 고마워.”
나는 오즈월드에게서 떨어져 내 힘으로 똑바로 섰다.
잠시 끊겼던 연극을 다시금 이어갈 시간이었다.
“이만 저택으로 돌아갈까요, 발렌시아 후작님?”
오즈월드는 “그러시죠.”라며 내게 팔을 내밀었고, 우리는 걸어온 길을 되돌아갔다.
* * *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오즈월드가 금방 본인 저택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이 광경은 대체 뭘까?
오즈월드는 제집처럼 느긋한 모습으로 라울과 함께 테이블 축구 게임을 하고 있었다.
지구의 술집에서나 볼 수 있는 저 보드게임이 대체 왜 이 세계관에 불쑥 생겨나 있는 건데?
라울은 소년처럼 열기 띤 얼굴로 손잡이를 마구 돌리며 꼬챙이에 꽂힌 축구선수 인형을 움직여댔다.
하나 금방 골이 먹혔다.
“이런! 이 게임은 너무 악랄하기 짝이 없군.”
반짝이는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주세페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번에는 제가 할래요! 저랑 붙어요, 아버지!”
“좋다. 어디 덤벼 보거라.”
테이블 축구 게임은 순식간에 스콰이어 공작저에 존재하는 모든 남자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로잔과 리비를 비롯한 여러 사용인이 둘러앉은 테이블에는 오즈월드가 꺼내놓은 다른 보드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카드로 하는 마피아 게임인 뱅이었다.
“악! 보안관인 저를 죽이면 어떡해요, 리비 아가씨!”
“하지만 엘로이즈 네 표정이 너무 수상했단 말이야.”
“진작 아가씨 정체를 눈치채고 부관한테 신호를 보낸 거였단 말이에요.”
“미안, 윙크는 좀 그래서…….”
모두가 까르르까르르 웃고 즐기는 분위기 속에서 나 홀로 감시꾼을 자처하며 오즈월드의 주변을 떠돌았다.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띠링!
[성좌 ‘물질만능주의’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남부는 제국의 가장 큰 교역지라 신비한 물건이 많이 거래된다는 핑계로 지구에서 검증된 게임 막 뿌려버리네 ㅋㅋ]
오즈월드는 단숨에 스콰이어 공작저 내에서 입지가 단단해졌다.
로잔은 한바탕 신나게 게임을 한 뒤 오즈월드에게 호의 어린 눈빛으로 말을 걸었다.
“어쩜 후작은 이런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죠?”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리하여 오즈월드는 신전에서 나를 데려온 날부터 벌써 일주일째 공작저에 체류 중이었다.
‘피곤해.’
나는 뻑뻑한 눈가를 문질렀다.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려니 두통이 엄습해왔다.
오즈월드는 그런 내게 보란 듯이 스콰이어 공작저 사람들과 어울리며 친하게 지냈다.
결국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겉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인 상황이었다.
‘뭐. 그래도 괜찮아.’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모두가 즐거워하는 것으로 되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있었다.
‘분명 사교계에 발렌시아 후작이 여기에 계속 머문다는 소문이 퍼졌을 텐데.’
미혼의 젊고 잘생긴 후작. 그리고 미혼의 딸이 둘이나 있는 스콰이어 가문.
어떤 종류의 소문이 퍼질지 능히 짐작되는 조합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때 도노반 집사가 초대장이 가득 쌓인 은쟁반을 들고서 라울에게, 그리고 더 많은 초대장을 오즈월드에게 건넸다.
라울이 피식 웃었다.
“다들 후작이 궁금한 모양이구려. 스콰이어 가문에 초대해달라고 요청이 쇄도하는군.”
오즈월드는 “그런가요?”라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구석에 처박혀있는 날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방학인데 테레제 양은 어디 놀러 가지 않으십니까?”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