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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91화 (192/277)
  • 191화

    손등에 입을 맞춘 후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순간에는 조금 정신이 없었다.

    성좌들이 후원을 한가득 쏟아낸 탓이었다.

    그래서 금방 손을 거두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고 말았다.

    오즈월드는 어느새 꼿꼿하게 허리를 편 자세로 내 손을 가져가 팔짱을 끼게 했다.

    “제가 자리까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거절하기엔 이미 늦었다.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의 에스코트를 받았다.

    “친절하시군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후작님.”

    그러자 오즈월드가 눈에 이채를 띠더니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성장하셨군요.”

    흡사 놀리는 말투였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성장한 모양인지, 이제 이깟 도발에는 감정에 미동조차 생기지 않았다.

    우리는 정성껏 준비된 다과가 차려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나는 대화를 차단하기 위해 찻잔부터 들어 올렸고, 다행히 라울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간 남부 쪽 소식이 뜸했구려. 그쪽은 별일 없소?”

    남부. 발렌시아 후작가의 영지가 그곳에 있다는 설정인 모양이다.

    “남부는 해양 마수가 늘 골치죠. 그래도 덕분에 해적이 날뛰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산에 산적이 없어진 이유와 같구려. 대신 작정하고 암흑가에 발을 들이는 젊은이가 늘고 있어서 큰일이오. 참, 나라가 어찌 될는지.”

    “수도에 본거지를 둔 유명한 테러 집단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아아. 스티그마타 말이오?”

    달그락.

    실수로 찻잔을 너무 큰 소릴 내며 놓아버리는 바람에 시선이 쏠렸다.

    나는 “계속 말씀하세요.”라고 말하며 빙긋 웃었다.

    그러나 라울은 남부 상황이 정말로 궁금했던 건 아닌 모양인지 집중이 깨진 김에 화제를 돌렸다.

    “발렌시아 후작가는 남부에서 잘 움직이지 않는 걸로 아는데, 황실 무도회에 참석하러 수도에 온 것이오?”

    오즈월드가 빙긋 미소 지었다.

    “네. 저도 슬슬 혼처를 찾아야 해서 말입니다.”

    그러자 라울이 흥미를 보였다.

    “오, 그렇소? 지금 나이가 몇인지 물어도 되겠소?”

    “스물일곱입니다.”

    하마터면 헛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본인이 27살이라고? 일리야보다 나이가 훨씬 많을 것 같은데 양심도 없지.

    속으로 실컷 비아냥거리고 있는데, 내게서 어떤 낌새를 느낀 것일까?

    오즈월드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제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는데, 오늘은 무탈해 보여 다행입니다.”

    “염려해주신 덕분입니다.”

    어제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언급되자 라울이 헛기침하며 시선을 끌었다.

    “참,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테레제는 발할라에서 이번 학기 수석이라오.”

    “?!”

    나는 우아하게 차를 마시려다가 입천장을 다 델뻔했다.

    내 당황한 표정이 보이지 않는지, 라울의 자식 자랑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 자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나이에 학회가 전부 주목하는 논문을 여러 번 쓴다는 게 사실 드문 일이지 않겠소?”

    거기다 몹시 드물다는 마법 설계자의 재능이 있다느니, 정화 마법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다느니 하는 소리를 줄줄 늘어놓았다.

    꼭 이런 날만 기다려온 사람처럼 멈출 줄 모르는 자랑 일색에 얼굴이 타들어 갈 듯 화끈거렸다.

    띠링!

    [성좌 ‘스콰이어 절대 지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자식 자랑? 이건 못 참지 ㅋㅋ]

    오즈월드는 감탄사까지 터뜨리며 라울의 흥을 돋워주었다.

    “무척 우수한 학생이시군요.”

    “과찬…이십니다.”

    내가 어금니를 꽉 물고서 대답하자 그는 더 즐거워했다.

    똑똑.

    라울의 자랑이 연이어지기 전, 집사가 응접실 문을 두드렸다. 뭔가 일이 생긴 듯했다.

    “이런, 미안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소. 테레제 네가 날 대신해서 손님을 잘 모시고 있거라.”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라울은 흐뭇해하는 미소를 지은 뒤 응접실을 떠났다.

    “계속 연극을 이어가야 하나요?”

    내 질문에 찻잔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던 오즈월드가 의뭉스럽게 되물었다.

    “무슨 연극을 말하는 겁니까?”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그거요.

    미처 그렇게 말을 꺼내기도 전에 퀘스트 창이 떴다.

    띠링!

    [퀘스트: 발렌시아 후작 생일 알아내기]

    ▸보상: 호감도 소폭 상승

    ▸실패: 호감도 대폭 하락

    하. 퀘스트를 통해 강제로 공략하게끔 만들겠다는 건가?

    생일을 물어보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생일이 언제인데?”

    오즈월드는 내 말이 안 들리는 사람처럼 차를 마셨다.

    일부러 무시하는 태도가 어처구니없었으나 금방 오류를 정정해 다시 물어보았다.

    “발렌시아 후작님의 생일이 언제인지 궁금하네요.”

    그제야 오즈월드는 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듯 제대로 반응했다.

    “그런 게 왜 궁금하시죠?”

    네가 시켰잖아.

    “……꼭 축하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렇습니까? 마침 7월 7일이 제 생일인데, 축하받으려면 공녀를 저택으로 초대해야겠군요.”

    띠링!

    [퀘스트: 발렌시아 후작 생일 알아내기 완료]

    ▸보상: 호감도 소폭 상승

    네, 꼭 초대하세요. 제가 그때 수도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빙긋 미소 짓기만 할 뿐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나저나 이 이상한 연극에만 몰두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본인 안티 수장이랑 접선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은데.’

    안티 수장은 사랑하는 사람이 오즈월드 때문에 죽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도 이제 시작일 거라 했고.

    ‘정말일까?’

    물론 오즈월드는 그런 짓을 천 번이든 만 번이든 저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기는 했다.

    그래서 막막했고 갑갑했다.

    저 괴물을 상대로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착잡하게 차를 홀짝이자 또 퀘스트 창이 떴다.

    띠링!

    [퀘스트: 발렌시아 후작 취향 알아내기]

    ▸보상: 호감도 소폭 상승

    ▸실패: 호감도 대폭 하락

    설마 이거, 본인 인물 정보를 채우는 퀘스트인가?

    ‘오즈월드 인물 정보.’

    [오즈월드 발렌시아]

    나이: 27세

    키: 186㎝

    생일: 7월 7일

    좋아하는 것: ???

    싫어하는 것: ???

    호감도: ♡♡♡♡♡

    내 기억으로 오즈월드의 나이와 생일 부분이 분명 ‘???’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제대로 된 정보가 입력되어 있었다.

    ‘소개팅도 아니고 대체 왜 이런 걸 물어봐야 해?’

    “후작님은 어떤 걸 좋아하시나요?”

    오즈월드는 내 성의 없는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질문이 포괄적이라 어떤 답변을 드려야 할지 난감하군요.”

    띠링!

    [성좌 ‘오즈월드가 리얼월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상형 물어보자]

    “음……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으으, 이거 진짜로 소개팅용 질문이잖아. 너무 싫어.

    오즈월드는 내 질문 수준이 유치하다는 듯이 조소했다.

    “이상형이라.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 질문이네요. 그 질문에는 항상 없다고 대답하는데…….”

    그는 말끝을 늘이며 나를 빤히 주시했다.

    ‘뭘 쳐다보는 거야? 기분 나쁘게.’

    내가 미간을 살짝 좁히고 있을 때 오즈월드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대답했다.

    “지금은…… 심통 난 표정이 귀여운 사람?”

    “그러시군요….”

    “심드렁한 태도가 얄궂은 사람이기도 하고.”

    “…….”

    “경계하는 눈빛이 예쁘게 반짝거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좀 많았나요?”

    띠링!

    [성좌 ‘주책바가지’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그냥 테레제가 이상형이라고 말해]

    나는 떨떠름한 기색이 묻어나는 얼굴로 그를 나무랐다.

    “저를 놀리시는군요.”

    오즈월드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라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장소를 옮길까요? 날씨가 좋으니 밖을 걸었으면 합니다.”

    지금은 산책하기 좋은 때가 아니었다.

    햇살이 가장 강하게 내리쬘 때라 양산을 써야 하는데, 그러면 필연적으로 상대와 몸을 꼭 붙이고 걷게 되었다.

    게다가 어제까지 비가 흠뻑 내려 땅이 질었다.

    오즈월드에게 많이 의지하며 걸어야 할 테니 의도가 매우 불순한 제안이었다.

    “점잖은 분인 줄 알았는데 엉큼하시네요.”

    내가 비꼬자 오즈월드가 태연히 받아쳤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억울한 모함이군요.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저 혼자 다녀와도 괜찮습니다만.”

    거절하지 못할 걸 알고 하는 소리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같이 가요. 마침 걷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저와 마음이 잘 통하는군요.”

    오즈월드가 양산을 들고 나는 그의 팔을 감싸 안은 자세로 저택의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눈을 좋아하시나요?”

    “아니요.”

    “그럼 비는 좋아하시나요?”

    “싫어하는 편입니다.”

    “저는 별이 많이 뜬 밤하늘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건 어떠신가요?”

    “애석하게도 저는 하늘을 쳐다보는 행위에 감흥을 잘 느끼지 않습니다.”

    대화할수록 오즈월드와 나는 맞는 구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문득 오즈월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생각나 입을 열었다.

    “로맨스를 싫어하실 것 같은데, 맞나요? 그리고 왠지 빨간색을 좋아하실 것 같네요.”

    오즈월드가 작게 실소했다.

    “저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그러게요. 꼭 어디서 본 사람처럼 그건 알겠더라고요.”

    내 퉁명스러운 대꾸에 오즈월드는 더 크게 웃었다.

    띠링!

    [퀘스트: 발렌시아 후작 취향 알아내기 완료]

    ▸보상: 호감도 소폭 상승

    나는 걸음을 우뚝 멈추고서 오즈월드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제 슬슬 제 반지 돌려주시겠어요?”

    “아, 이거 말입니까?”

    오즈월드가 안주머니에서 내 결혼반지를 꺼냈다.

    반지를 본 순간 무심코 손을 뻗었으나 그가 뒤로 휙 빼는 바람에 가슴팍에다 얼굴을 박았다.

    “아야….”

    그는 피식 웃으며 내 턱을 쥐고서 고개를 들어 올리게 했다.

    “그렇게 강탈하려 들면 곤란합니다, 테레제 양.”

    새파란 시선이 너무 가까이서 떨어져 내렸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오즈월드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아예 내 뒤통수를 감싸 쥐고서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반지를 돌려주는 대가로 제게 뭘 주시겠습니까?”

    “당신은 다 가졌잖아. 그런데 내가 대체 뭘 줄 수 있겠어?”

    결국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사납게 쏘아붙이자, 오즈월드는 외려 내가 얌전떨 때보다 더 좋아하는 얼굴로 말했다.

    “고르기가 어렵다면 선택지를 주도록 하죠.”

    띠링!

    [반지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치를 대가를 고르세요.]

    1. 오즈월드와 결혼을 약속한다.

    2. 오즈월드에게 키스한다.

    3. 오즈월드의 저택에서 여름 방학을 보낸다.

    4. 오즈월드가 선물하는 루비 반지를 낀다.

    항목을 확인하자마자 혀끝까지 미친놈이라는 소리가 차올랐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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