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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88화 (189/277)
  • 188화

    오즈월드 컴퍼니 피해자 연합.

    그 말에 자동으로 ‘오즈월드를 판테온에서 추방하라’라는 문구가 쓰인 빨간 두건을 두른 안티들이 떠올랐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끓어올랐다.

    “당신이 안티들의 우두머리인가요? 그들은 저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던데요. 그런 이들을 거느린 당신이 제게 접근한 이유가 뭐죠?”

    [“안티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의 수뇌부 중에서도 오즈월드에게 피해당한 이들이 상당수이긴 하지만, 우리와는 달라.”]

    물증 없이 꺼낸 말을 덥석 믿기에는 데인 게 너무 많았다.

    “제가 그 말을 신뢰할 근거는?”

    [“음. 안타깝게도 없어.”]

    기가 막힐 정도로 산뜻한 대답.

    어렵사리 접선한 것치곤 준비성이 형편없었다.

    ‘아니면 이딴 설득은 필요 없을 정도로 자신만만하다는 뜻이겠지.’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머리 위에 핀 조명을 켜둔 듯한 공간을 훑어보았다.

    이곳은 꿈의 감옥과 비슷한 개념의 공간인 듯했다.

    실제의 나는 교외의 작은 신전에 있었고, 마지막엔 오즈월드에게 붙들려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좋아요. 어차피 사과나 해명을 듣고 싶은 건 아니니까. 궁금한 게 있는데, 당신이 말한 그 작가는 BJ였나요?”

    내 질문에 상대가 긍정하는 의미로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혹시……”

    [“과연 보던 대로 질문이 많네. 그런데 말했다시피 시간이 얼마 없으니, 미안하지만 내게 발언권을 줄 수 있을까?”]

    “그러세요.”

    [“양해해줘서 고마워.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설명할게. 이곳은 네 정신에 지어둔 임시대피소야. 무의식의 공간이라 오즈월드도 접근하지 못해.”]

    예상한 대로였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오즈월드에게 아주 깊은 유감이 있어.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거든.”]

    “…….”

    [“너도 방금 사랑하는 이를 잃었지. 나와 마찬가지로.”]

    새카맣게 타버린 속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나는 불을 삼켜버린 것처럼 고통스러운 얼굴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래서요?”

    그래서인지 말이 몹시 사납고 거칠게 튀어나왔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오즈월드는 다른 채널 관리자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라서 방송 흐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어.”]

    그 말은, 클라이드처럼 다른 인물들도 그렇게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미 오즈월드에게 목줄이 묶인 신세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사지마저 자유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더 늘어나는 걸 원치 않아. 그래서 오즈월드를 판테온에서 추방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어. 그러다 너라는 가능성을 발견했지.”]

    “가능성이라는 게 뭐죠?”

    화면 속 인물은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백화점 쇼윈도우를 응시하는 미인이 입술을 움직였다.

    [“오즈월드의 ―――――――.”]

    치지지지지지지직―!!

    그때 갑자기 전파가 잡히지 않는 듯 불길한 소음과 함께 화면에 노이즈가 가뜩 꼈다.

    일그러진 여인이 더욱 기괴하게 뒤틀린 기계음을 내뱉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또 만나자.”]

    “잠깐, 못 들었-”

    뚝.

    텔레비전이 꺼졌다.

    * * *

    눈꺼풀이 저절로 들어 올려졌다.

    ‘여기는…….’

    라울의 바람으로 옮긴 새로운 내 방이었다.

    나는 관 속에 누운 사람처럼 죽은 듯이 허공을 응시했다.

    일련의 사건이 짤막한 단편 영화처럼 주르륵 뇌리를 스쳤다.

    비가 내리는 날의 결혼식. 등에 새겨지던 이름. 내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

    그리고 사라져버린 클라이드까지.

    흙탕물 위를 뒹굴며 넝마가 된 꼴로 미친 사람처럼 그를 찾아 헤매다가 오즈월드에게 붙들렸었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고 이상한 공간을 다녀왔다.

    이 끔찍한 일이 고작 시작이라고 했던가.

    “…….”

    눈가를 타고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클라이드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졌고, 오즈월드를 생각하면 분노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상황을 되짚을수록 막막했고 두려웠다.

    복잡한 마음은 눈물이 되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검은 나비가 클라이드에게 갔으니까 뭔가 조치해주었을 거야.’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정말이지…….

    띠링!

    [성좌 ‘마음으로 낳은 테레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제 괜찮아…? 충격이 안 가신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때, 밖에서 사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 없이 울음을 죽이고 눈물을 흘린 흔적을 없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다가올 불행을 눈물이나 뚝뚝 흘리며 무방비하게 맞이할 수 없었다.

    “……어?”

    그러다 문득 약지에 끼고 있던 반지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설마 신전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손에서 빠져버린 건가?

    얼굴에 핏기가 가셨을 때, 문이 열렸다.

    “어머, 아가씨! 깨어나셨군요.”

    엘로이즈는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주치의와 함께 다가왔다.

    나는 상태를 확인하려는 주치의를 잠시 저지하고서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엘로이즈. 혹시 내가 끼고 있던 반지는 어디에 뒀어?”

    “네? 반지 같은 건 없었어요. 항상 하시는 브로치는 드레스 룸에 보관해두었고요. 어떤 반지를 잃어버리신 거예요? 찾아볼게요.”

    “아무것도 아냐……. 내 착각이었나 봐.”

    아무것도 아닌 게 전혀 아닌 얼굴로 중얼거리자, 엘로이즈가 주치의에게 얼른 내 상태를 확인해보라고 성을 냈다.

    띠링!

    [성좌 ‘질서선’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반지는 오즈월드가 가지고 있어]

    오즈월드.

    증오스러운 이름에 냉수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즈월드가 반지를 갖고 있다고? 어째서지?’

    반지를 인질 삼아 내게 뭔가를 요구하려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물건을 친히 소지하고 있을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혹시 날 데려온 사람은 누구야?”

    “발렌시아 후작님이세요!”

    발렌시아 후작? 기가 막혀서.

    멋대로 남의 게임에 집어넣은 설정에 불쾌감이 치밀었다.

    엘로이즈는 그분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묘하게 들뜬 얼굴로 좋아하는 게, 꼭 쓰러진 날 데려와 주어서 가진 호감만 있는 건 아닌 듯했다.

    ‘하긴. 껍데기는 그럴싸하니까.’

    내 눈에는 그저 뼈째로 날 씹어 삼키려 드는 괴물로만 보이는데.

    나는 주치의의 진찰을 받은 뒤 아주 멀쩡하다는 소견을 들었다.

    심지어 맨발로 뛰어다니고 흙바닥을 굴렀는데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리비 아가씨께서 외상을 전부 치료해주셨어요. 잠시 놀러 다녀오신다더니,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아아, 리비.

    “리비는 어디에 있어? 아니다, 그냥 내가 직접 가볼게.”

    마침 방을 옮겨두어서 리비의 방까지 가까웠다.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그 애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혹시 해코지당하진 않았을지 불안한 마음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정신없이 침대를 내려왔을 때였다.

    “정신이 들었구나, 테레제. 몸은 어때? 괜찮니?”

    라울과 로잔이 나를 찾아왔다.

    “리비를 봐야겠어요.”

    클라이드가 지워졌다. 리비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오즈월드가 내 주인공들을 전부 죽일지도 몰라.

    그 애가 살아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가시지 않을 불안이 나를 뒤덮고 있었다.

    “진정하거라.”

    라울이 너른 품에 나를 안고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렸다.

    그러고 보니 살이 지져지는 고통이 없었다. 리비가 치료해준 걸까?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하얀 나비가 팔랑팔랑 방으로 들어왔다.

    문 너머에서 리비가 고개만 빼꼼히 내민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부모님이 먼저 내 상태가 어떤지 확인한 뒤, 방에 들어오라는 언질을 받은 모양이었다.

    띠링!

    [성좌 ‘스콰이어 절대 지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우리 리비 왔네]

    다행이다. 리비는 무사해.

    내가 진정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라울이 한숨처럼 말했다.

    “네 걱정에 아비 숨이 넘어갈 뻔했다. 다치지만 말거라, 제발.”

    나는 따스한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쪼르륵.

    주치의가 돌아가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를 마셨다.

    내 찻잔에는 붉은 홍차 대신 진정 효과가 있다는 허브차가 찰랑이고 있었다.

    “향이 좋구나. 마셔보렴.”

    로잔의 부드러운 권유에 입술만 살짝 축이고 내려놓았다.

    차보다는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내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시선을 건네고 있으니 라울 역시 뜻을 알아차린 듯 찻잔을 내려놓고서 나를 주시했다.

    “내가 뭘 물어볼지는 이미 알고 있으리라 믿으마.”

    누구와 어디를 다녀온 건지, 웨딩드레스의 정체는 뭔지를 묻는 거겠지.

    어설프게 거짓말해서 상황을 모면하려다 더 꼬이게 할 바에야,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혼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설령 라울이 내게 실망하더라도 그가 나를 용서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도 했다.

    “클라이드랑 교외의 신전에 갔었어요.”

    나는 불벼락을 예상하고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클라이드?”

    한데 라울의 표정이 오묘했다.

    게다가 어떤 놈인지 찢어 죽이겠다는 듯이 읊조리는 목소리에 원수를 대하는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듣는 이름인데. 설마 남자친구는 아니겠지?”

    심장이 서늘해졌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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