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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87화 (188/277)

187화

클라이드 역시 나를 부둥켜안고서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다.

“늦어서 미안해.”

아니야, 하나도 안 늦었어. 돌아와 줘서 고마워. 내가 미안해.

억눌린 울음소리도 토해내기 바빠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이 계속해서 안에 쌓여갔다.

또한 혼란스러웠다.

이 사달을 낸 게 나라서.

사라졌어야 하는 게 악마 클라이드가 아닌 나인 것 같아서.

내가 사랑할수록 죄인이 되어가는 이 세상에 지쳐가서.

게다가 클라이드의 이름이 새겨지느라 벌겋게 벗겨진 날개뼈 부근이 몸서리쳐지게 아팠다.

찢어지고 쪼개지고 타는 고통이었다.

이게 내 정신에서 비롯된 것인지 실제 고통인지 헷갈렸다.

클라이드가 무너지는 나를 붙잡았다.

“그 자식이 말했잖아. 원래 우리는 하나라고. 내가 내 인격을 없앤 것뿐이고 넌 관련 없어. 그 이상한 퀘스트는 무시해.”

그는 내 죄악감을 꿰뚫어 보았다.

“너는 너만 생각해. 어차피 다른 놈들도 전부 자신만 생각하고 행동하니까. 그래야 네가 살아, 테레제.”

그때, 갑자기 새빨간 경고창이 떴다.

띠링!

[!오류 발생!]

[허가되지 않은 경로로 접속된 데이터 발견.]

[비허가 데이터를 삭제합니다.]

……뭐?

섬뜩한 예감에 두 눈을 부릅떴을 때였다.

띠링!

[퀘스트: 악마의 연인] (가로줄_삭제표시)

▸보상: 악마 클라이드 소멸 (가로줄_삭제표시)

▸실패: 인간 클라이드 소멸 (가로줄_삭제표시)

갑자기 퀘스트가 지워지고, 허공이 쭉 찢어지더니 시커먼 구멍이 뚫렸다.

저 비슷한 걸 본 기억이 있다.

판테온에서 오즈월드가 쏜 빛으로 시공간이 쪼개졌을 때 본 그 틈과 같은 형태였다.

“이게 무슨…!”

그리고 미처 상황을 다 파악할 새도 없이 내 품에서 클라이드가 떨어져 나갔다.

그의 육신은 노이즈로 가득했고, 오류가 난 화면처럼 흐릿해졌다.

대비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클라이드!”

균열로 빨려 들어가는 클라이드를 붙잡으려 미친 듯이 달렸다.

클라이드가 입술을 벙긋거렸다.

오지 마.

목표물을 삼킨 균열이 닫혀갔다.

내 뜀박질로는 도저히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비명처럼 절규했다.

“안 돼!”

그때 검은 나비가 닫혀가는 균열 속으로 휙 들어갔다.

그리고 균열이 닫혔다.

그림자에 붙어있던 나비 날개가 클라이드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하아… 하아….”

눈앞이 어지러워질 정도로 뛰었는데, 멈춰선 자리에 내가 원하는 것이 없었다.

빗방울이 지면을 두드리는 소리만 울려 퍼지는 예배당 한가운데에 나만 남겨졌다.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클라이드……? 어디에 있어.”

방금까지 여기에 있었잖아.

분명 여기에 있었잖아, 너.

하늘이 쩌저적 갈라지는 듯한 천둥이 울려 퍼지며 멍하던 정신이 번뜩 일깨워졌다.

나는 예배당을 뛰쳐나가 미친 사람처럼 주변을 뒤졌다.

“클라이드!”

웨딩드레스가 흙탕물로 새까맣게 물들었다.

구두가 벗겨진 발에 생채기가 늘어갔다.

와중에도 반지를 낀 손은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절대로 잃어선 안 될 물건이었으니까.

“클라이드, 어디에 있어! 제발 나와…!”

결국 드레스에 발이 걸려 볼썽사납게 엎어졌을 때, 코앞에 빗물 하나 묻지 않은 구둣발이 보였다.

“미련하군요.”

오즈월드의 목소리였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알림이 또 시끄럽게 울려댔다.

띠링!

[성좌 ‘오즈월드가 리얼월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미친 금발 오즈월드?!?!?!!? 와 뭐야 개잘생겼어]

띠링!

[성좌 ‘오즈월드가 리얼월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엥? 이제 오즈월드 필터링 안 당하네? 왜 풀렸지?]

띠링!

[성좌 ‘강경 클라이드파’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클라이드 없어졌어 오사장 ㅜㅜ 방송 오류 같은데 빨리 고쳐줘]

알림창이 한가득 뜰 동안 나는 엎어진 자세 그대로 멍청하게 구두만 응시했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려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럴 의지가 없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생각입니까?”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팔이 붙들려 강제로 몸이 일으켜졌다.

멍한 시야에 홀로 검은 우산을 쓴 오즈월드가 들어왔다.

그는 흉포하고 아름다운 달이 있던 곳에서처럼 깨끗하고 화려한 금발이었다.

옷차림은 더위를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하나하나 예법에 맞게 갖춰 입고 있어 더없이 오만해 보였다.

누구보다 귀족적인 모습을 한 오즈월드가 날 깔아보고 있었다.

“당신이 클라이드를 없앴어……?”

오즈월드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클라이드 씨가 설정에서 벗어난 치명적인 오류를 일으키는 바람에 시스템이 제거한 겁니다.”

띠링!

[성좌 ‘어차피 남주는 클라이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

띠링!

[성좌 ‘클서방’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무슨 뜻이야? 클서방 삭제된 이 상태로 계속 진행한다고?]

띠링!

[성좌 ‘인간 클라이드 악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남주 클라이드라고 개같이 싸우고 다녔는데 이렇게 뒤통수 처맞네 ㅋㅋ 네~ 하차할게요~]

“돌려줘.”

나는 오즈월드가 입고 있는 감촉이 매끄러운 재킷을 구겨 쥐고서 발악했다.

“돌려줘…! 클라이드를 돌려달라고!”

“이미 제거된 데이터입니다. 포기하세요.”

오즈월드는 짐짓 안타깝다는 듯 말하며 내 그림자를 확인했다.

“확실히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니 문제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군요. 참 다행인 일이지 않습니까?”

무슨 개소리냐고 소리 지르려 했을 때였다.

띠링!

[<신의 유희> 업데이트 완료-새로운 등장인물이 추가되었습니다.]

“…….”

기이한 정보를 담은 시스템 창이 뜬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새로운 등장인물이라니. 전신이 차갑게 식었다.

띠링!

[성좌 ‘물음표살인마’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새로운 등장인물 같은 것도 있었나…? <신의 유희>에 나오는 남주는 네 명으로 끝이라면서?]

오즈월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더 큰 즐거움을 드릴 수 없으니까요. 아, 이제부터 저는 후원 코멘트에 답변을 드릴 수 없을 겁니다.”

나는 뻑뻑해진 눈으로 오즈월드를 쳐다보았다.

아니겠지. 아니어야 했다.

오즈월드가 새로운 등장인물일 것이라는 거지 같은 예감은 단지 피해망상으로 끝나야 했다.

내 과도한 억측에 불과해야 하는데, 인물 정보 창이 떴다.

[오즈월드 발렌시아]

나이: ???세

키: 186㎝

생일: ???월 ???일

좋아하는 것: ???

싫어하는 것: ???

호감도: ♡♡♡♡♡

오즈월드는 시스템 창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 내가 응시하는 지점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물었다.

“제대로 보입니까?”

하…… 미친 새끼.

띠링!

[성좌 ‘오즈월드 연애 금지’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아악 개싫어!!!!!!!!! 왜 로맨스 방송에 출연하는 건데!!!!!!!!!!!!]

띠링!

[성좌 ‘오즈테레 먹기 좋은 계절’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나는 행복해!!!!!!!!!!!!!!!!!!!!]

띠링!

[성좌 ‘마이너 장인’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와 ㅋㅋㅋㅋ 본인이 직접 남주가 되어버린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난놈이다 ㅋㅋㅋㅋㅋㅋ]

띠링!

[성좌 ‘주식 천재’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뭐야 이게 무슨 일인데? 오즈월드가 왜 갑자기 남주가 되는 건데? 나 무슨 주식 잡아야 하는 건데?]

성좌들은 경악하거나 즐거워하거나 아쉬움을 드러내는 등 엄청난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오즈월드가 이 세계관의 남자주인공으로 직접 등장한 게 충격적이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과연 나만큼 충격적일까?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온몸이 쪼개지는 기분을 느꼈다.

울컥 신물이 올라오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이대로 주저앉고 싶었으나 오즈월드에게 붙들려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쇳소리처럼 목 안쪽이 잔뜩 긁히는 듣기 싫은 음성이 갈라진 입술 틈새로 흘러나왔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오즈월드가 내 뺨에 키스하고는 웃음기 묻어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흥미로워 보여서요. 당신의 사랑이.”

정신 나간 쓰레기 같으니.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을 잃었다.

25. 발렌시아 후작

치직. 치지직.

[“안녕. 신지우.”]

흐릿한 의식을 뚫고 괴이한 소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깨어났으면 대화하자. 시간이 없어.”]

마치 음성변조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뭐야, 여긴.”

나는 낡고 헤진 소파에 앉은 자세로 깨어났다.

이곳은 내가 모르는 장소였다.

정면에는 흑백으로 1960년대 시트콤이 송출되고 있는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양산을 한 손에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던 신사가 화면 너머의 나를 쳐다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타난 점은 미안. 업데이트가 막 끝난 참이라 오즈월드의 감시가 약해져서, 우리 쪽도 급했어.”]

나는 경계하는 눈으로 화면을 주시하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아마도 너와 비슷한 처지였던 사람?”]

“비슷한 처지였다면…… 혹시 BJ였나요?”

[“아니. 나는 너처럼 자신의 세계관을 무척이나 사랑한 작가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이었어. 그리고.”]

화면은 어느새 밀짚모자를 쓴 정원사가 화단에 물을 주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정원사가 말을 이었다.

[“오즈월드 컴퍼니 피해자 연합의 수장이기도 하지.”]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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