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이곳은 성적을 확인하려는 학생들 때문이라도 유독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장소였다.
그만큼 번잡한 곳인데 지금은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이곳을 지켜보느라 굼뜨게 움직이거나 대놓고 서서 구경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교수와 학생이 한 여자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누구라도 관심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클라이드는 신경질적으로 작게 실소했다.
“교수님은 테레제가 곤란해하는 건 생각하지 않으시네요?”
그러자 일리야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곤란한가?”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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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더 해주세요.]
‘네. 엄청나게요.’
하나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아.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가 먼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나는 대단히 난처한 표정으로 두 손을 꼭 쥐었다.
“성적을 확인한 뒤에 상담하자고 말씀하신 걸 깜빡 잊었어요. 그것 때문에 절 찾아오신 거죠?”
그렇다고 대답하세요, 제발.
내 강렬한 눈빛을 본 일리야가 피식 웃었다.
“그래.”
애석하게도 그의 미소는 엄청난 파급력이 있어 모두를 술렁거리게 했다.
“일리야 교수님이 웃으셨어!”
“세상에…… 나 처음 봐.”
“평생 미소 짓지 못하는 저주를 받으신 게 아니었나? 설마 저주가 풀린 거야?!”
저주 같은 소리 하네.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녀석들의 입을 찰싹찰싹 때려주고 싶었다.
일리야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닌 것 같으니 나중에……”
탁!
그때 클라이드가 매서운 손짓으로 일리야의 손을 쳐냈다.
“테레제에게 손대지 마.”
소란스럽던 주위가 한순간에 정적으로 얼어붙었다.
정작 손이 내쳐진 일리야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는데, 폭력적으로 행동한 클라이드는 되레 모욕당한 당사자 같은 얼굴이었다.
가만히 두었다간 큰일 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클라이드를 붙잡고서 말했다.
“죄송해요, 교수님. 실례지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싸울 듯이 구는 클라이드를 질질 끌어 사람이 없는 장소로 자리를 피했다.
나는 자리에 멈춰 서자마자 그를 다그쳤다.
“왜 그랬어? 그분은 교수님이잖아. 예의 없게 굴어도 되는 분이 아니라고.”
그러자 클라이드가 신경질적인 어조로 몰아붙이듯 거세게 화냈다.
“교수? 그딴 눈으로 널 보고 널 만지는 게 그냥 교수야? 그 자식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널 여자로 대했어. 그것도 내 앞에서!”
여기서 그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았다.
그의 분노를 이해했다.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그와 내 감정의 온도가 여전히 좁힐 수 없을 만큼 차이 나서였다.
우리는 발의 높이가 다른 의자였다.
한쪽으로 기울고야 마는, 그래서 누구도 쉴 수 없는 의자.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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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클 왜 이렇게 화가 많은 건데ㅠ 제발 테레제한테 그만 좀 화내!! 너만 남주 아니라고ㅠㅠ]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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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악클 죽는 날 맞죠? 퀘스트 실패하면 하차할 거임]
“미안해.”
내가 사과하자 클라이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네가 사과해?”
오늘만큼은 네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되는 날이니까.
“내가 처신을 잘못한 거 같아서.”
클라이드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더니 뜨겁게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땐 그냥 날 안아주면 안 돼? 난 네가 손만 잡아도 기분이 풀리는 등신 새끼야. 아직도 그걸 모르겠어?”
나는 은연중 그 말이 악마 클라이드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인간 클라이드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했다.
따라서 그것을 자신의 감정이자 생각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서로를 파악할 만큼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으니까.
하나 군말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안아주었다.
클라이드는 그 정도로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짝 끌어당겨 품에 옭아맸다.
“오늘은 좋은 날인데 이런 일로 기분 상하기 싫어.”
묘하게 께름칙한 말이었다.
물론 오늘은 좋은 날이라 부를 만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여름 방학이 시작될 테고, 나는 수석이었으며, 우리는 오늘 데이트하기로 했다.
비록 비가 내려서 데이트하기 좋은 날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날씨였으므로 객관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확실히 좋은 날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말이 귀에 남았다.
내가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을 때 클라이드가 미간을 좁히더니 못 견디겠다는 듯 뺨에 키스했다.
“네가 날 취조하려는 것처럼 샅샅이 쳐다볼 때 약간 소름 돋아.”
“불쾌하다는 뜻이야……?”
“아니. 흥분돼.”
나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넌 진짜 돌았어.”
클라이드는 내 반응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품에 끌어안았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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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진짜 단순하긴 단순하다 ㅋㅋ 방금까지 엄청 화내던 애 맞냐고 ㅠㅠㅋㅋ]
기분이 좋아진 클라이드는 이제 데이트할 생각이 드는지 나를 보챘다.
“얼른 데이트하러 가자. 나 오늘만 기다리고 있었어.”
어쩌다 보니 클라이드의 주장에 따라 우리는 시험이 끝나는 날에 데이트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오페라나 연극을 볼까 했는데 그의 생각은 달랐다.
“결혼하자.”
난데없이 결혼이라니. 현실성 없는 헛소리에 제정신이냐고 진지하게 물었었다.
“아무도 모르게 하면 되잖아. 던전에서처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의미 있어. 적어도 나에게는.”
클라이드는 결혼 준비는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나더러 공부 열심히 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더 만류하지 않았다.
결혼을 핑계로 반지를 교환하면 자연스레 퀘스트가 완료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결혼하는 게 본인 소원이라는데,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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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이 다르긴 해도 클라이드랑만 결혼을 두 번이나 하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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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차피 아무 감정 없는 소꿉놀이야~]
우리는 가문의 반대에 부딪혀 도피하는 연인처럼 몰래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
클라이드는 신사답게 나를 에스코트해서 마차에 태운 뒤 교외로 나갈 동안 매우 몰상식한 남자처럼 달라붙었다.
마차가 멈췄을 때는 실랑이 하느라 옷이 다 구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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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결심했어! 나 악클이도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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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악클이 없어지는데 헤어질 결심 아니냐구…]
나는 지친 얼굴로 구겨진 옷을 마법으로 말끔히 편 뒤 클라이드에게 경고했다.
“지금부터 나한테 손 하나 까딱하지 마.”
“으응, 싫어. 비가 오잖아.”
“그게 무슨 상관…!”
클라이드는 들은 척도 않고 나를 안아 들었다.
그러더니 우산 대신 마력을 펑펑 낭비하며 우리 머리 위에 둥그런 구체를 띄워 비를 막았다.
“평생 비 한 방울 맞지 않게 해줄게, 내 사랑.”
“그것참 로맨틱하네.”
내가 비꼬는데도 클라이드는 혼자 신나서 킥킥 웃으며 건물 입구로 다가갔다.
도착지는 규모가 작은 신전으로, 게임에서 등장하지 않는 장소였다.
나는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여기 정말 비밀스럽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곳인 거 맞아?”
“그렇다니까.”
신전은 초와 꽃으로 풍성하게 장식해두어서 그런지 결혼식장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다만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신전에 신관이 한 사람도 없네?”
“응. 일반적인 신전이 아니라 애초에 이런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니까.”
“이런 목적?”
클라이드가 불순한 미소를 띤 얼굴로 귓가에다 속삭이듯 목적을 알려주었다.
“세간의 눈을 피해 애인과 밀회할 장소가 필요한 권력자를 대상으로 한 곳이라고. 너랑 나처럼.”
“…….”
“그러니까 우리 재미있게 놀다 가자, 자기야.”
세상이 말세였다.
클라이드는 빙글거리는 얼굴로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더니 웬 문 앞에 멈춰 섰다.
“짠.”
문이 열리자마자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토르소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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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웨딩드레스 테레제 보겠구나!!]
“실례하겠습니다.”
그때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는지 어느샌가 환복을 도와줄 사용인들이 나타났다.
“이쪽으로 오시면 단장을 시작하겠습니다, 공녀님.”
클라이드가 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갈아입고 나와.”
나는 얼떨떨한 상태로 커튼이 쳐진 구석으로 향해 단장을 시작했다.
어깨와 가슴팍이 드러나는 실크 드레스가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데, 내가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은 실감 되지 않았다.
사용인들은 빠르고 능숙한 실력으로 머리를 만져주었고 면사포를 매단 화관을 씌웠다.
그동안 퀘스트 창이 잠잠했다.
애석하게도 이런 걸로는 사랑의 증표를 받은 거라고 판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신부님 나오십니다.”
옷을 다 갈아입은 뒤 커튼이 걷히며 바로 앞에 서 있던 클라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그도 어느새 턱시도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띠링!
[성좌 ‘얼굴감별사’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HE SO HOT]
클라이드는 몹시 놀란 표정으로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두 손으로 새빨개진 얼굴을 뒤덮고는 당황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와, 미치겠다.”
띠링!
[성좌 ‘지나가던 성좌’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좋아 죽네ㅋㅋ]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