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띠링!
[성좌 ‘도파민중독’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쩝… 몽마와 연애라길래 자극적인 걸 기대했는데 너무 귀엽네]
띠링!
[성좌 ‘청춘은 바로 지금’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히려 좋아]
‘역시 나만 이상할 정도로 건전하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어.’
내 생각이 썩은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것 같아서 내심 안도했다.
나는 우산을 들지 않은 손으로 그의 팔을 밀어내며 말했다.
“이거 놔. 내 시녀가 이 모습을 보면 어쩌려고 이래?”
클라이드는 내 어깨에 턱을 댄 불편한 자세로 기대고 있었다.
삐딱하게 기울이고 있는 얼굴은 무표정했고 두 눈은 집요하게 날 응시하는 중이었다.
누가 보면 망부석인 줄 알겠다.
‘그러고 보니 이 악마 녀석, 살살 달래야 말을 들었지. 나 달래는 거 못한다니까…….’
일반적인 연인 사이에서 삐친 상대를 달래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뭐가 있을까?
‘모르겠다. 일단 저질러 보자.’
나는 한숨을 삼킨 뒤 그의 뺨에다 쪽 소리가 나게 키스했다.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저 성좌는 데미안을 유독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그냥 누구든 엮이면 미치는구나.
클라이드는 입맞춤을 받자마자 표정이 무너졌다.
“……고작 이런 걸로 기분이 풀릴 것 같아?”
“너 지금 웃고 있는데.”
내가 지적하자 클라이드가 품에서 놓아주며 서둘러 얼굴이 보이지 않게 고개 돌렸다.
벌써 기분이 풀어졌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한다는 듯이.
‘귓바퀴가 빨개진 건 알고 있나?’
부끄러워하거나 말거나. 나는 그에게 우산을 들려주었다.
“네 키에 맞춰서 들려면 힘드니까, 네가 들어.”
클라이드는 어딘가 마뜩잖은 기색으로 순순히 우산을 들었다.
그러다 은근슬쩍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너 비밀 연애 뜻 모르지?”
내가 어이없어하며 묻자 클라이드가 날 바보 취급하는 대답을 했다.
“난 네가 아니야.”
이게 진짜.
띠링!
[성좌 ‘강경 클라이드파’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아… 뭐지? 악클 싫었는데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인간 클라이드랑 비슷한데?]
띠링!
[성좌 ‘인간 클라이드 악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난 인간 클라이드처럼 보이려고 발악하는 거 같아서 더 싫어짐]
후원창을 끄려다 문득 인간 클라이드처럼 보이려고 한다는 말이 눈에 콕 박혔다.
나 역시 악마 클라이드에게서 몇 번이나 인간 클라이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방금의 대화도 그랬고.
‘확실히 그냥 클라이드랑 대화하는 느낌이었어. 악마 클라이드가 아니라.’
악마 클라이드는 이런 성격이 아니다. 더 오만하고 포악하고 자기애적인 성향이 강했다.
이 세상은 이미 원작과 너무나도 많은 점이 달라졌으니 악마 클라이드도 성격이 변했을 수 있지만, 뭔가 석연찮은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낫긴 해.’
계약 연애 같은 상황인데도 클라이드의 태도 때문인지 평범한 남자친구를 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 평범이라기에는 너무 잘생겼나?
등굣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클라이드가 피식 웃었다.
“네 눈빛은 질이 안 좋아.”
뜬금없는 말에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날 잡아먹을 것처럼 보잖아.”
“……미쳤어?!”
내가 팔을 퍽퍽 때리자 클라이드가 꼭 소년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보고 있는 나마저도 저절로 미소 짓게 할 정도로 행복한 웃음이었다.
그때, 빗소리를 뚫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안녕, 테레제.”
시선을 돌리니 데미안이 짙은 남색 우산을 쓰고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띠링!
[성좌 ‘나만 아니면 돼’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와 재밌게 돌아가네 ㅋㅋㅋㅋ]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이 시간은 아무도 등교하지 않아서 내심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데미안과 마주치다니.
데미안이 미소 띤 얼굴로 다가오며 말했다.
“조심해, 테레제.”
“응?”
“더러운 게 묻잖아.”
팍!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막아내며 맹렬하게 대치했다.
데미안의 우산과 내 우산이 바닥을 나뒹굴었고 우리 셋은 순식간에 빗물로 젖어 들었다.
클라이드가 데미안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입술로만 미소 지었다.
“죽고 싶은가 보구나, 데미안.”
“너야말로. 주제를 알면 테레제의 곁에서 떨어져야 하지 않아?”
저기, 너희들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는 않았겠지?
클라이드는 상대를 한껏 조롱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떤 주제인데 떨어져야 하지?”
그리고는 내 허리를 끌어안고서 보란 듯이 비에 젖은 이마에 키스했다.
따듯하고 말랑한 입술이 낙인처럼 찍혔다가 떨어졌다.
“테레제는 내 것인데.”
쏴아아아아―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가 거세졌다.
한데도 클라이드의 목소리는 너무나 또렷하고 선명해서 못 들은 척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데미안은 안경을 벗더니 눈가를 문질렀다.
“상당히 뜻밖의 말이네.”
어둡게 가라앉은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응시해왔다.
“사실이야?”
나는 단번에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자 클라이드가 흉포한 짐승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은 우리 사이를 비밀로 할 생각 없어. 저 새끼한테 너와 내가 어떤 사이인지 말해. 당장.”
그것은 일종의 시험이자 확인이었다.
내 대답에 따라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협박이기도 했다.
나는 이 순간 깨달았다.
‘이 남자는 악마가 확실해. 본성이 전혀 변하지 않았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간 클라이드를 연기했을 뿐, 이게 진짜 악마 클라이드의 모습이었다.
“…어제부터 클라이드와 사귀기로 했어.”
비록 한시적인 관계지만.
내 대답을 들은 데미안은 특별한 반응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축 가라앉은 짙은 군청색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뱀처럼 서늘한 눈동자가 나를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
“연인관계라는 말이지?”
웃음기 하나 없이 묻는 담백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자 클라이드는 만족스러워하며 내 허리를 강하게 조이듯 안았다.
데미안은 내 허리에 감긴 팔을 쳐다보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배신감을 느낀 표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빗속으로 사라지는 데미안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을 때였다.
“어딜 가려고?”
허리를 조이는 팔의 힘이 더 강해졌다. 이제는 아플 지경이었다.
“이거 놔.”
그래서 놓으라고 했는데, 그 말이 클라이드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날 화나게 만들지 마. 저 자식을 당장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는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모르겠어?”
나 역시 점차 차오르는 분노에 몸을 거칠게 뒤틀었다.
“놓으라고!”
클라이드의 두 눈동자가 위협적인 붉은색으로 달아올랐다. 동시에 사악한 기운이 날 옭아맸다.
“내가 놔주면 뭘 하게? 데미안한테 가려고?”
나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난 네 멋대로 내 행동을 예측하고 화내는 폭력적인 행동이 싫어서 놓으라고 말하는 거야!”
“거짓말 좀 하지 마!”
클라이드가 사납게 윽박질렀다.
“악마와 인간의 차이가 뭔지 알아? 네 진심이 뭔지 냄새로 알 수 있다는 거야. 너는 데미안을 생각하는 감정의 반만큼도 내게 관심이 없어!”
그 순간, 검은 날개가 내 육신을 감싸더니 클라이드의 품에서 벗어난 자리로 이동시켰다.
현 상황이 내게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내가 도망친다고 생각한 클라이드가 거칠게 팔을 붙잡으며 고함쳤다.
“저 자식한테 가면 인간 클라이드를 죽여버릴 줄 알아!”
짜악!
온 힘을 다해 누군가의 뺨을 때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전신이 분노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반면 표정은 서늘했고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고요했다.
“지금 날 협박해?”
클라이드는 약간 돌아간 고개를 느릿느릿하게 움직여 날 바라보았다.
“내가 네 마음대로 해도 되는 사람처럼 보여?”
“테레제.”
나는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머리와 심장은 시리도록 차가웠으나 화마처럼 뜨거운 무언가가 나를 지배한 상태였다.
“연인이라는 게 뭔지, 그 전에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예절부터 배워. 짐승만도 못하게 굴지 말고.”
내 싸늘한 어조에 클라이드는 뺨을 힘껏 맞아 터진 입술을 비틀었다.
“감히 네가 나한테 화를 내?”
“화내지 않을 이유가 있어?”
“하. 이젠 인간 클라이드가 불쌍하지 않은가 봐.”
“불쌍해.”
나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그와 똑같이 조소했다.
“단지 널 상대해야 하는 내가 훨씬 불쌍할 뿐이지.”
클라이드의 표정은 굳어졌고 내 입술은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넌 나한테 연인이 되길 원했으면서 내 감정을 강요하고 네 기분만 맞춰주길 원하는데. 내가 어떻게 널 사랑할 수 있겠어?”
“난 노력했어.”
“아, 그래? 그런데 이거 어쩌지. 난 네가 싫어서 노력조차 하고 싶지 않은데.”
“…….”
“솔직히 네가 무슨 노력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내 비난은 그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을 것이다.
나만큼 그의 약점을 잘 알고, 바라는 게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나는 바닥에 떨어진 노란 우산을 주워, 혼자서만 썼다.
그는 이 우산 아래로 들어올 수 없었다.
“그냥……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그게 좋겠다.”
그 말을 끝으로 클라이드를 빗속에 버리고서 떠났다.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