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전교생 대부분이 듣는 필수 강의인 만큼 클라이드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의아하긴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학교에 코빼기도 안 비췄다고 들었는데.’
한데 오늘은 온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숲 입구의 집합 장소에서 고고하게 서 있었다.
클라이드는 막 도착한 날 발견하더니 눈웃음을 짓고는 고개 돌렸다.
“……뭐야?”
왜 갑자기 내외하는 거지?
하여튼 행동 하나하나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모든 학생이 도착했고, 뒤이어 교수가 등장했다.
“모두 모였나?”
“예!”
“오늘은 이 숲을 탐사할 예정이다. 4학년인 만큼 임무의 난도가 높아졌지만, 지금까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알겠나!”
“예!”
오늘 시험을 치를 학생은 전부 직전 학기 <실전 전투 마법> A등급 이상이었다.
그랬기에 거기에 수준을 맞춘 탐사 지역이 선별되었고, 팀전이지만 개인 평가였다.
‘개판 나기 딱 좋은 조건이지.’
가뜩이나 여기에 모인 이들 대부분은 귀족이라 단합과는 더욱 거리가 멀었다.
팀원이라도 무난하게 잘 걸리길 바라고 있었을 때였다.
교수가 첫 번째 팀을 호명했다.
“A팀은 클라이드, 테레제, 엘라, 프로스트 네 사람이다. 제한 시간은 3시간. 내부 탐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서를 작성 후 제출해라.”
클라이드가 포함된 조는 무조건 가장 위험한, 마수든 뭐든 반드시 나타날 장소로 보내진다.
그래서인지 같은 조가 된 엘라와 프로스트의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뭐, 나도 속사정이 썩 좋진 않았다.
‘하필 검은 하트가 4개인 클라이드랑 탐사라고? 죽으라는 걸까?’
클라이드의 하트 상태는 임무 난이도와 직결된다.
한데 하필이면 이런 때에 같은 조가 되다니.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하아아.”
남몰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클라이드가 다가왔다.
“출발하자.”
우리는 숲의 서쪽을 탐사해야 했다.
사람이 이용하지 않는 곳이라 숲은 음험하게 우거져 있는 데다가 비에 젖은 땅이 질퍽거려서 이동하기도 힘들었다.
‘체력 소모가 심할 것 같은데.’
그때 앞장서서 걷던 클라이드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나는 괜찮다고 하려다가 이런 식으로는 탐사 구역에 도착할 때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을 것 같아서 순순히 도움을 받았다.
“고마워.”
클라이드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프로스트에게 턱짓했다.
“너는 엘라를 잡아줘.”
“아… 어어, 그럴게.”
프로스트는 멋쩍은 표정으로 엘라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었다.
그러자 클라이드가 다시 앞장서서 걸었다.
그러다 바닥이 유독 고르지 못한 곳에서는 멈춰서, 내 발만 쳐다보며 거의 들어주다시피 부축했다.
벌써 30분째 그러고 있으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서 못 견딜 지경까지 다다랐다.
나는 클라이드의 은빛 뒤통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한데 그는 내 시선이 따갑지도 않은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괜한 오기가 생기게 만드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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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만 보면 다정한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무뚝뚝하게 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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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는 원래 살가운 성격이 아니지 않나? 그리고 지금 시험 치고 있으니까 진지하게 임하는 거겠지]
인간 클라이드면 몰라도 악마 클라이드에게는 해당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때 클라이드는 지도에 나온 지형을 확인해보더니 우뚝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 위험 구역이다. 다들 방어 마법을 걸고 천천히 진입해.”
그 말에 나는 방어에 관련된 몇 가지 마법을 건 다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여기서도 천계에서 새로운 섬을 탐사할 때 쓴 방식이 통하지 않을까?’
나는 바닥을 짚고 마력을 퍼뜨려보았다.
‘통한다!’
마력은 그물망처럼 퍼져나가 땅의 정보를 읽어냈다.
이 방식은 마법 식물이 많을수록 효과적이라 천계에서는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인간계에서는 마력 효율이 떨어졌다.
그래도 오염된 곳을 빠르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안쪽으로 10분 정도 더 진입해 들어가면 침식된 곳이 있어.”
내 말에 프로스트가 눈에 이채를 띠며 다가왔다.
“방금 그건 어떻게 한 거야? 그것도 스콰이어 가문의 비전 마법인 건가?”
“그건 아니야. 마력만 충분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오, 그래? 굉장히 괜찮아 보이던데, 나도 알려줄 수 있어?”
내가 알려주겠다고 대답하려던 순간, 클라이드가 끼어들었다.
“제한 시간 내에 보고서까지 작성하려면 잡담할 시간 같은 건 없을 텐데.”
싸가지 없는 말투가 인간 클라이드 그 자체였다.
‘어……? 그러고 보니 귀에 주렁주렁 달려있던 피어싱이 다 어디로 갔지?’
게다가 머리 모양도 얌전했다.
이걸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완벽히 인간 클라이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인물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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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 윌로우]
나이: 22세
키: 188㎝
생일: 1월 31일
좋아하는 것: 사랑
싫어하는 것: 클라이드 윌로우
호감도: ♥♥♥♥♡
▲
‘뭐야, 여전히 악마 클라이드 상태잖아. 그런데 왜 저러고 있지?’
내가 좀처럼 시험에 집중하지 못하고 온 신경을 클라이드에게 쏟고 있을 때.
클라이드는 조용히 주변을 확인하더니 미간을 좁혔다.
“침식 흔적이 오래되었어. 마수가 군집을 이루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 말에 엘라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그런 곳을 고작 우리 네 사람이 확인했다간 죽을지도 몰라. 지원이 필요해.”
프로스트도 엘라의 말에 동의하는지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이라면 지원이 필요하다는 쪽이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나직하게 낮춘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했다.
“이미 우리는 마수의 영역에 들어와 있어. 이미 마수들이 침입자를 눈치챘을 확률이 높아.”
“그럼 어떡하자는 거야? 정면으로 부딪쳐? 그러다 문제라도 생기면?”
엘라는 고작 학생 수준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자, 신경이 날카로워졌는지 몹시 초조하게 굴었다.
프로스트라고 해서 딱히 다르지 않았다.
그에 반해 클라이드는 매우 일상적인 태도로 주변에 접근하는 마수가 있는지 확인했고, 나 역시 발맞춰 대응할 준비를 했다.
‘이래서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는 건가.’
이제 이 정도로는 특별히 긴장되지도 않았다.
클라이드가 우리를 향해 “쉿.”하고 조용히 시키더니 귀를 기울였다.
“정화마법을 준비해.”
나는 서둘러 마력을 끌어올렸다.
곧장 내 귀에도 심상치 않은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두두두두두두!!
정면에서 새까맣게 몰려드는 마수 떼를 본 엘라가 짧게 비명 질렀다.
“저게 뭐야!”
“젠장…….”
엄청난 수의 마수가 검은 산사태가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바글바글 몰려왔다.
‘빌어먹을. 클라이드의 영향을 받아서 시험 난도가 너무 높아졌어.’
나는 최대한 마력을 많이 방출해 정화마법을 펼쳤다.
“정화되어라!”
내 시도에 엘라와 프로스트도 정신 차리고 정화마법을 사용했다.
클라이드는 물리 마법으로 마수의 접근을 차단하고 경로를 바꾸고 있었다.
‘클라이드가 정화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몰라도 이런 식으로는 상황을 해결하기가 어렵겠어.’
파앗!
그때 오랜만에 손등에서 은빛 문양이 떠올랐다.
나는 반사적으로 환하게 웃으며 위를 쳐다보았다.
부우우우우우―――
“고래야!”
은빛 고래가 어미 고래와 함께 등장한 것이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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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T_T]
“저게 그 고래 고스트구나…!”
고래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며 일대를 정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이때야! 어서 정화마법을 퍼부어!”
“검게 타락한 마수들이여, 원래의 모습으로 정화되어라!”
한창 마수들을 상대하며 원래의 모습으로 정화시키고 있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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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클라이드 상태가 이상한데?]
‘클라이드가 이상하다고?’
성좌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바닥에 주저앉은 클라이드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얼른 그에게 달려갔다.
“왜 그래? 어디가 아픈 거야?”
클라이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못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지 이를 악물며 심장 쪽을 쥐어뜯듯 움켜쥐고 있었다.
‘설마 고스트가 정화하는 힘에 영향을 받는 건가?’
마수들이 빠르게 정화되며 순식간에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가자, 나머지 팀원들이 여유가 생겼는지 이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설마 클라이드가 다쳤어?”
나는 클라이드를 힐끗 보다가 우비를 벗어 몸에 덮어주며 말했다.
“클라이드는 내가 보호하고 있을 테니까 너희는 주변에 마수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해줘. 고스트들이 정화해주고 있어서 위험하진 않을 거야.”
내 말에 엘라와 프로스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들이 사라진 걸 확인하자마자 클라이드를 부축해 고래의 정화를 피해 커다란 나무 아래로 도망쳤다.
그리고 덮어준 우비만으로는 안심되지 않아, 그의 머리 위를 감싸 안은 자세로 마력 입자를 막아냈다.
클라이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창백해진 얼굴을 들어 올렸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음습했다.
“너…… 내가 뭔지 알고 있구나.”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