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174화 (175/277)

174화

띠링!

[성좌 ‘앙큼한 클라이드가 맛이 좋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인간 쪽은 튕기는 맛이 있고 악마 쪽은 애교가 많네 ㅋ 팔색조가 따로 없네요 ㅋ]

한숨이 절로 나오는 후원 내용에 미간을 좁히고 있으니 클라이드가 내 손을 제 머리 위에 얹었다.

이건 또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내려다보고 있자, 그가 스스로 내 손을 움직여 머리를 쓰다듬게 했다.

“잠깐이라도 나 좀 예뻐해 줘.”

내용은 유혹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몽마의 페로몬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예뻐해달라는 게 꼭 위로해달라는 말처럼 들려서 방에서 내쫓으려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그렇다 해서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은 없지만.’

악마 클라이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건 명백히 배드엔딩 루트로 진입하는 일이었다.

클라이드를 돌이키려면 [성수] 아이템을 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8월에 시작될 여름 무도회까지 이 상태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에 만일 악마 클라이드의 호감도가 붉은 하트로 넘어가면 [꿈속의 연인]이라는 히든 엔딩이 뜨게 된다.

영원히 잠에 빠지게 될 테니 메리베드 엔딩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악마 클라이드와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편이 좋다.

나는 어느새 내 손에 뺨을 대고 있는 클라이드를 밀어냈다.

“그만해.”

클라이드가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싫어졌어?”

“싫고 좋고를 떠나서 우리는 이럴 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니까.”

“거짓말. 한 침대도 썼으면서.”

누가 들으면 단단히 오해를 살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어이가 없어 입을 떡 벌리자 클라이드가 친절하게도 손으로 턱을 꾹 눌러 닫아주었다.

“입도 맞추고 결혼도 했잖아, 우리.”

“그건 던전에서 있었던 일이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난 진심이었는데.”

그가 내게 왼손 약지를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던전에서 주고받았던 결혼반지가 떡하니 끼워져 있었다.

설마 결혼반지를 여태껏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기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걸 아직도 갖고 있었어…?”

“말했잖아. 진심이라고.”

결혼반지를 지금까지 계속 간직하고 있었던 건 인간 클라이드 쪽이지 악마 클라이드가 아니었다.

한데도 그는 뻔뻔스럽게 진심을 논했다.

띠링!

[성좌 ‘강경 클라이드파’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ㅋㅋ 나 왜 악마 클라이드가 짜증 나지? 던전에서 결혼한 것도, 한 침대 쓴 것도 전부 인간 클라이드 쪽이 한 건데 ㅋㅋ 지가 뭔데 남의 공 가로챔?]

악마 쪽의 행동이 불쾌감을 자아낸 것일까?

클라이드를 좋아하는 성좌가 악마 상태에 큰 거부감을 드러냈다.

띠링!

[성좌 ‘프로훈수러’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제를 기만해서 별로인 듯]

띠링!

[성좌 ‘방송은 방송으로만 보자’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뭔 또 기만이야; 오바 좀 하지 말자]

띠링!

[성좌 ‘마음으로 낳은 테레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넌 왜 시비질이야; 말 좀 둥글게 하자]

띠링!

[성좌 ‘방송은 방송으로만 보자’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겨우 이 정도로 시비라고 하네 ㅋㅋ 대체 어디까지 둥글게 말해야 하는 거임? ㅋㅋ]

성좌들의 의견이 갈리는 경우는 드물지 않지만, 지금처럼 날카롭게 코멘트를 쓰는 건 처음 보았다.

그래서 조금 당혹스러워졌다.

지금까지 내가 날카로운 말투로 싸우는 성좌들을 못 봤던 건,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오즈월드가 관리했거나.

그때, 오즈월드를 떠올리기가 무섭게 시스템 창이 떴다.

띠링!

[채널 관리자-오즈월드가 성좌 ‘방송은 방송으로만 보자’ 님의 후원 알림을 24시간 블라인드 처리합니다.]

‘계속 보고 있기는 한가 보네.’

그러고 보니 천계에 있는 내내 오즈월드를 보지 못했다.

내 기준으로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를 안 봤더니 지금은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쌍둥이들이랑 다비드는 잘 지내고 있을까?’

금방 생각이 삼천포로 빠졌을 때였다.

“지금 어디를 보고 있어?”

클라이드의 시선이 시스템 창이 뜬 지점에 정확히 가닿았다.

“아…무것도 안 봤는데?”

“그래?”

그는 아예 시스템 창이 있는 자리를 손으로 휘저었다.

매우 정확한 위치를 건드려서 나도 모르게 찔끔할 정도였다.

띠링!

[성좌 ‘클서방’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제를 얼마나 자세히 관찰하고 있으면 시스템 창 위치까지 정확하게 파악하네……]

클라이드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의문스럽게 중얼거렸다.

“뭔가를 읽는 눈짓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비밀 같은 게 있는 건가?”

“…….”

왜 이렇게 쓸데없이 감이 좋아?

저벅저벅.

그 순간 누군가가 계단으로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엘로이즈가 틀림없었다.

나는 엘로이즈가 2층에 도달하기 전에 황급히 열려 있는 침실 문을 닫은 후 클라이드에게 얼른 창문으로 나가라고 마구 손짓했다.

클라이드는 ‘내가 왜?’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기는 왜야? 여기가 내 방이니까 그렇지!’

내가 입술을 벙긋거리며 소리 없이 호통치자 클라이드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날 곤란하게 만드는 게 재밌는지 침실 문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뭐해?!”

나는 황급히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그마한 목소리로 다시금 소리치려는데, 문밖의 기척이 지척에 도달한 게 느껴졌다.

똑똑.

“아가씨, 안에 계세요?”

이어 엘로이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시선은 반사적으로 문의 잠금장치와 클라이드의 입술을 차례로 훑었다.

문은 잠겨있다. 단속할 것은 클라이드의 입술밖에 없었다.

나는 강력한 침묵 마법을 시전하며 아예 손바닥으로 그의 입술까지 덮었다.

굳이 마법을 깨면서까지 날 곤란하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 표시였다.

“응, 안에 있어. 그런데 들어오지는 마. 지금 마법 실험 중이라 위험하거든.”

“네? 침실에서요? 으음…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클라이드는 나를 내려다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기만 했다.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나마 얌전하게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 다행이었다.

“1층에서 먹을게.”

“알겠습니다.”

엘로이즈의 기척이 멀어졌다.

내가 안도하며 손을 떨어뜨리자 클라이드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네 아랫사람이니 입단속 시키면 그만인데 뭘 그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그래도 다르지. 엘로이즈는 너라면 치를 떨고 싫어하는……”

나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클라이드의 미소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나를 치가 떨리게 싫어한다고?”

“별수 없잖아……. 너는 윌로우고 나는 스콰이어니까.”

클라이드는 점점 미소가 잦아든 얼굴로 가만히 날 바라보았다.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괜히 어색한 기분만 들었다.

“왜 그렇게 봐…?”

내 물음에 그는 다시금 가벼운 웃음을 그려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냐.”

표정을 보니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띠링!

[성좌 ‘어차피 남주는 클라이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나만 느끼는 건지 모르겠는데, 클라이드가 왜 이렇게 우울해 보이지?]

한데 클라이드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다정한 표정을 그리며 내 머리를 헝클었다.

“네 반응이 재밌어서 자꾸 장난치게 돼. 더 하면 네가 화낼 것 같으니까 이제 가볼게.”

그리고는 창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휙 나가버렸다.

‘잘 가라는 말도 못 했는데.’

떠나기 직전에 클라이드가 짓고 있던 공허한 표정이 가시처럼 마음에 콕 박혔다.

악마 클라이드는 항상 자신만만하다 못해 포악한 캐릭터인데 뭔가 이상했다.

설정과는 다른 모습에 공연히 신경 쓰였다.

* * *

다음 날, 나는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창을 열자 밀려드는 비, 젖은 흙과 풀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나 오늘 치를 시험을 떠올리자 좋은 기분은 사라지고 한숨만 흘러나왔다.

“비 내리는 날에 <실전 전투 마법> 시험이 있다니.”

이번 <실전 전투 마법>의 시험 내용은 인적이 닿기 어려운 지역에 던전이 생기진 않았는지, 마계화가 진행되어있지는 않은지 확인 후 보고서를 작성하는 거였다.

필요하다면 마수를 직접 상대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하면 추가 점수가 붙었다.

한마디로 악마를 상대로 하는 일들에 대한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다.

엘로이즈는 활동하기 좋은 옷과 우비를 챙겨왔다.

“오늘 숲을 탐사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하필 비가 내려서 힘드시겠어요.”

“으응, 별수 없지. 아, 오늘은 머리를 땋아줘.”

“맡겨만 주세요!”

<실전 전투 마법> 시험은 발할라는 물론 외부에서도 주목할 만큼 결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게임에서도 전투 능력치를 잘 쌓아서 이 시험 점수를 높게 받아야만 스토리 진행이 원활해졌다.

‘테레제는 원래 이 과목 성적이 좋아. 게다가 지금은 지능과 마력이 높아져서 훨씬 수월할 거고.’

나는 가벼운 긴장감을 안은 채 오늘의 집합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미리 도착한 학생들 사이에서 혼자 환한 빛을 뿜어내는 듯한 남자를 발견했다.

‘어라, 클라이드잖아?’

클라이드가 오늘 시험에 참석해 있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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