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173화 (174/277)

173화

23. 죽어야만 사는 것

똑똑.

몰입을 깨는 노크에 종이를 꽉 채워가며 새로운 마법을 설계하던 손이 우뚝 멈췄다.

현재 이곳은 1층 도서관의 개인 열람실이었다.

“테레제 님, 이제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입니다.”

언제 시간이 그렇게 됐지?

사서의 목소리에 나는 찌뿌둥한 몸을 쭉 펴며 대답했다.

“응, 나갈게.”

짐은 모조리 인벤토리에 던지듯 넣어버리고 열람실을 나오니 나처럼 공부하고 있던 학생들이 주섬주섬 나갈 채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보니 클라이드를 종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악마 클라이드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사고 치는 강아지가 숨어 있는 듯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어디로 갔을까?’

심지어 <속성 마법> 시험이 있었는데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악마가 무슨 시험을 신경 쓰겠느냐만.

이쯤 되니 나로 인해 시나리오가 뒤바뀐 여파로 클라이드가 유급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설마 그렇진 않겠지…….”

나는 미간을 좁힌 채 걷다가 문득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내게 쏠려있던 시선들이 부산스럽게 흩어지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나비 날개를 구경한 거겠지.’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했기에 대수롭지도 않았다.

외려 내게 직접적으로 나비 날개에 관해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서 의아할 지경이었다.

‘아. 클예부는 제외하고.’

아무튼, 오늘 시험 결과는 모두 좋았다.

특히 <속성 마법> 시험은 천계에서 일리야가 날 훈련시킨 내용과 흡사해서 A등급을 확정받았다.

‘기숙사로 돌아가서 시험 범위만 좀 훑어보고 인벤토리 아이템을 아공간으로 연결시키는 마법을 개발해야지.’

톡.

열심히 마법서를 읽으며 기숙사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데 이마가 어딘가에 부딪혔다.

고개를 드니 데미안이 정면에 서서 손으로 날 가로막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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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 채널이 로맨스 장르 값을 하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부딪힌 이마가 아프지는 않았지만, 괜히 문지르자 데미안이 작게 웃었다.

“그렇게 다니면 위험하다고 했잖아.”

나를 부드럽게 타이르는 목소리에서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났다.

기분이 이상해져서 괜히 텅 빈 길목을 훑어보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는데.”

“그래도. 나처럼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그야 넌 기척을 완전히 숨길 줄 아는 암살자니까 그렇지.’

나는 적당히 알았다고 대꾸하고 데미안을 지나치려 했다.

한데 그가 내 앞에 나타난 게 그냥 우연한 일이 아닌지, 내가 지나치려는 방향으로 데미안이 동시에 걸음을 옮겼다.

일부러 진로를 막은 것이다.

“나한테 할 말 있어?”

“내일 나랑 같이 점심 먹을래?”

그 말에 조금 당황했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날 껄끄러워하지 않았나?’

하나 지금 날 쳐다보는 데미안의 눈빛에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좋은 변화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가 내게 같이 점심을 먹자고 제안한 것도 무슨 의도인지 정확히 가늠되지도 않았고.

게다가 내일은 리비와 같이 먹기로 했다.

‘만약 리비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려고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 거면 곤란한데.’

리비가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하얀 나비를 각성했다는 사실을 데미안이 알고 있다고 했다.

‘둘이서 먹는 거면 몰라도 리비를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는 건 안 돼.’

나는 계산이 끝나자마자 거절했다.

“미안. 내일 점심은 이미 선약이 있어서.”

그 말에 데미안의 미소가 순식간에 차가운 기색을 띠었다.

“일리야 교수님이야?”

“응?”

“그 선약 상대.”

“……아니?”

“그럼 클라이드?”

그의 추궁에 나도 모르게 다급히 해명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니야. 리비랑 같이 먹기로 했어.”

“아, 리비.”

데미안의 딱딱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부드럽게 바뀌었다. 동시에 귀가 붉게 물드는 게 보였다.

‘질투…였나?’

그의 멋쩍어하는 반응에 나마저도 민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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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귀여워서 현기증 날 것 같아]

데미안은 민망한지 얼굴을 가리고 싶은 듯 제 뺨을 쓸어 만지며 사과했다.

“미안. 내가 너무 날카로웠지?”

“아,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시험 기간이기도 하고…….”

내가 어설픈 말솜씨로 대신해서 변명거리를 만들어주니 데미안이 희미하게 웃었다.

“난 그냥 질투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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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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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정신차렸구나ㅠㅠ!!]

나는 데미안의 솔직함에 딸꾹질이 날 것 같았다.

어색한 기류가 깔린 가운데,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우리 사이를 통과하듯 휙 불었다.

긴 머리칼이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눈살을 찌푸리며 귀 뒤로 넘기는 순간.

어느새 그의 손이 내 머리에 닿아있었다.

“나뭇잎이 붙어서.”

“그래……?”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래?’

나는 어색함을 떨치고자 나뭇잎을 떼려 직접 머리칼을 헤집는데 데미안이 자연스럽게 손을 얽어왔다.

“여기.”

뱀처럼 스르륵 파고든 손이 내 손바닥을 스친다.

그리고는 직접 나뭇잎을 쥐여주는데, 이상하게 전신의 근육이 바짝 조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손가락에 닿는 나뭇잎의 까끌까끌한 감촉과 6월의 바람보다 더 뜨거운 체온,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눈빛이 전부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아가씨?”

그때 뒤에서 엘로이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어 데미안의 손을 떨쳐냈다.

푸릇한 나뭇잎이 바닥에 빙글빙글 돌며 떨어졌다.

“난 가볼게.”

나는 얼른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서 엘로이즈를 향해 거의 달리다시피 하여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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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좋았는데ㅜ]

엘로이즈는 고개를 빼꼼히 기울이며 내 뒤쪽을 힐끗 보았다.

“어머, 데미안 님이시네요?”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야?”

내가 말을 돌리자 엘로이즈가 “아!”하고 기숙사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아가씨께서 쓰실 침실에 문제가 생겨서요. 갑자기 문이 안 열리는 바람에 정리도 못 했지 뭐예요?”

“문이 안 열린다고?”

“네. 그래서 관리자를 불렀는데 그 사람도 열지 못하는 거 있죠? 그래서 아가씨께 얼른 이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본관으로 가던 길이었어요.”

“그랬구나. 내가 확인해볼 테니까 일단 기숙사로 가자.”

나는 뒤를 보지 않아도 아직 데미안이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괜히 뒤통수가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얼른 엘로이즈를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와 괴수의 침입이라도 막아내듯 문을 쾅 닫았다.

엘로이즈는 그런 날 보며 어딘가 음흉하게 웃었다.

“아가씨, 왜 그렇게 당황하셨어요? 대체 뭘 하고 계셨길래…….”

“아무것도 안 했거든! 침실 문이 잠겼댔지? 내가 열어볼게. 마법으로 해결 못 할 일은 없다고.”

“에이, 애정 문제는 제아무리 마법이라도 해결 못 할걸요?”

“너 저녁 준비할 시간 아니야?”

“네에~ 그렇죠~”

엘로이즈는 식당을 다녀오겠다며 기숙사를 나갔다.

흥얼거리는 콧노래의 정체가 ‘사랑의 인사’라 기분이 매우 언짢아졌다.

“사랑에 미친 세계 같으니.”

뭐든 엮지 못해 안달이지,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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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세계를 만든 당사자가 바로 본인이죠?]

그래. 내가 죄인이었구나.

가뜩이나 일리야가 호감도를 꽉 채우다 못해 폭주 중이어서 정신이 없는데, 데미안까지 적극적으로 행동하니 골이 아팠다.

일리야는 그렇다 쳐도 데미안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데미안은 스티그마타를 배신하기로 결심하기 직전까지 두루뭉술하게 행동하는 캐릭터인데.’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문지르며 2층으로 올라가 침실 앞에 섰다.

“문은 왜 갑자기 고장 난 건지 모르겠네.”

마법으로 문고리를 싹둑 잘라 내볼까 생각했을 때였다.

달칵.

내가 문고리에 손을 얹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살짝 열렸다.

“뭐지…?”

고개를 갸웃하며 침실로 들어선 순간.

“늦었네?”

침대에 누워 있는 클라이드가 날 반겼다.

……얘가 왜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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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 에피 끝나고 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더니 도파민 싹 도네]

“뭐야, 너. 왜 여기에 있어?”

내가 황당해하며 묻자 클라이드는 베개에 뺨을 비비적거리며 대답했다.

“여기가 좋아.”

쟤가 지금 남의 침대에서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나가. 누가 보면 어쩌려고 여자 기숙사를 들어온 거야?”

나는 베개를 끌어안고 있는 클라이드의 팔을 잡아당겼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며 실실 웃더니 힘을 못 당해내는 척 상체를 일으켰다.

“아야.”

그러더니 무성의하게 고통을 호소하며 내 품에 폭삭 안겼다.

내게 머리를 기댄 채 휘어진 눈으로 올려다보는 시선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안 떨어져?”

“네가 날 붙잡고 있잖아.”

내가 잡고 있는 건 팔이지, 네 뒤통수가 아니란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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