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 * *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에 적응하는 데에는 반나절의 시간도 필요 없었다.
전부 클예부 덕분이었다.
“테레제니이이임! 고위 악마를 상대하셨다면서요?! 이게 무슨 일이에요! 괜찮으세요?”
“꺄악! 다들 테레제 님의 그림자를 보세요! 날개가 생겼어요!”
“나비인가요? 너무 귀여워요!”
“자자, 처음으로 클예부에서 악마를 상대로 승리한 회원이신 테레제 님을 기념하는 축하 파티를 열도록 해요~!”
“네에~!”
띠링!
[성좌 ‘극내향형’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벌써 기 빨려]
나도 기가 쭉 빨렸다.
‘그리고 악마를 상대로 승리하고 돌아온 것도 아니라고.’
클예부는 내 그림자가 신기한지 재잘재잘 떠들며 계속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내가 다음 강의실로 이동하던 중 그들에게 물었다.
“다들 시험 치러 안 가?”
“아아…….”
시험을 언급하자마자 클예부는 뜨거운 물을 뿌린 화초처럼 시들시들해졌다.
“갑자기 클라이드 님이 보이지 않아서 공부할 기운이 나지 않는단 말이에요…….”
“도서관을 다 뒤져도 안 보이셨죠?”
“아예 학교에 안 나오신 것 같아요.”
“학생회에서는 클라이드 님이 임무를 맡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이상해요.”
그들의 말에 나 역시 의아해졌다.
“학교 어디에도 안 보인다고? 분수대 쪽이나 카페는?”
클예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생의 낙이 사라져서 슬퍼요.”
“지금 저한테 제일 재밌는 건 테레제 님의 나비 날개랍니다.”
“어머? 저도요!”
띠링!
[성좌 ‘팩트도 폭력이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그냥 시험 기간이라 공부 빼고 다 재밌는 상태인 거 같은데]
나는 미간을 좁히며 괜히 창밖을 살폈다.
클라이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존재감이 대단해서 눈에 잘 들어오는데도 불구하고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땅히 갈 데도 없을 텐데 대체 어딜 간 거지?’
되찾은 자유를 만끽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반짝거리고 있어야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테레제.”
창밖을 쳐다보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깨가 살며시 붙들렸다.
놀라서 앞을 보니 데미안과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앞을 보고 걸어야지. 위험하잖아.”
“아, 미안.”
나는 멍하니 대답하며 데미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데미안은 특유의 상큼한 분위기보다 어딘지 날카롭고 예민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던전의 데미안과 좀 더 흡사해졌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던전의 데미안을 떠올리고 말았다. 하아. 이러는 나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방금의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이 괜히 더 활짝 미소 지었다.
“시험 잘 봤어?”
데미안이 내 미소에 화답하듯 입꼬리를 들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게 미소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야 뭐. 너는 몸 괜찮아?”
“멀쩡해. 너도 리비랑 같이 온실에 왔었다면서?”
“응. 별로 도움은 못 됐지만.”
“무슨 소리야? 덕분에 내가 몽마의 꿈속을 벗어났는데.”
데미안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시험 잘 봐.”
그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그 말을 끝으로 나를 지나쳤다.
그때, 뒤편에서 루미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미안 님과 꽤 친하시네요……. 콜록.”
데미안이 왜 저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일까, 상념에 잠길 새도 없이 화들짝 놀랐다.
‘언제 온 거래?’
루미오는 한껏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클라이드 님은 보이지도 않고… 콜록.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부학생회장님과 새로운 사랑이 싹트기 좋은 타이밍이네요….”
그때 눈치 없는 영애가 발랄하게 끼어들었다.
“저도 방금 깜짝 놀랐잖아요! 데미안 님이 테레제 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던걸요?”
그만해.
“실은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만하라니까, 얘들아!
루미오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지고 있을 때 나는 서둘러 뒷걸음질 쳤다.
“난 펠릭스 교수님께 가봐야 해. 다들 나중에 보자!”
그리고 냅다 도망쳤다.
실제로 펠릭스 교수한테 볼일이 있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펠릭스 교수는 나를 보자마자 무척 반가워했고 또 미안해했다.
“마법 식물? 10종이 뭐야, 그냥 원하는 대로 말해! 다 줄게.”
혹시나 해서 카탈로그를 넉넉하게 챙겨왔는데 잘 됐군.
내가 가방에서 마법 식물 리스트를 꺼내고 있을 때 펠릭스 교수가 그림자를 보며 매우 신기해했다.
“호오. 이게 말로만 듣던 스콰이어 가문의 나비란 말이지? 만져봐도 돼?”
“네.”
날개가 팔락인다고 해도 그림자일 뿐이라 밟거나 만져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펠릭스 교수는 한참 날개를 구경하더니 내게 꿀차를 내어주고는 갑자기 목청을 가다듬었다. 화제를 전환하려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일리야 교수랑은 어떤 사이야?”
“푸흡!”
갑자기 이런 질문을 듣게 될 줄은 몰랐기에 나도 모르게 꿀차를 뿜어냈다.
“일리야 교수가 너한테 완전 돌아버, 아니, 반한 것 같더라구.”
나는 당혹스럽게 옆을 힐끗 보았다.
바로 옆방이 일리야의 연구실인데 이런 대화를 나누기가 영 불편했다.
“그야 교수님과 제자 사이죠.”
내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펠릭스 교수가 심드렁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금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또 물었다.
“그럼 클라이드나 데미안이랑은 무슨 사이야?”
“그런 건 왜 물어보세요?”
“세 사람 전부 널 좋아하니까?”
“…….”
내가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당황하고만 있자 펠릭스 교수가 히죽 웃었다.
“아~ 테레제는 과연 누구의 손을 잡아줄까? 난 누구든지 응원해.”
“여기 마법 식물 리스트 확인해주세요. 저는 시험 때문에 이만 가볼게요.”
“응, 힘내!”
힘내라는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펠릭스 교수의 연구실을 나와 강의실로 가려고 했다.
갑자기 일리야의 연구실 문이 열리며 그가 날 데리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일리야는 닫힌 문에 등을 기댄 자세로 날 끌어안았다.
그가 내 이마에 입 맞춘 뒤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몸은?”
“괜…찮아요. 그런데 학교에서 이러시면 좀… 곤란한데….”
나는 내심 학교에서 일리야와 마주쳐도 최대한 예전처럼 대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 일리야가 다짐을 와장창 깨부쉈다.
“지금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잖아.”
그러니까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투였다.
띠링!
[성좌 ‘일리야 교수님은 이상해’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게 CC지]
일리야는 내 안색을 살피더니 뺨을 쓸었다.
“확실히 몸은 다 회복된 것 같군. 곁에 있고 싶었는데 처리할 일이 많았어.”
악마가 나타났던 일에 대한 뒤처리를 혼자서 했으니 매우 바빴으리라.
“몽마에 대해 물으면 넌 꿈속에서 헤매기만 했다고 말해.”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일리야가 기특하다는 듯 관자놀이에 입술을 꾹 누른 뒤 떨어뜨렸다.
이러는 게 익숙해서 곤란할 지경이었다.
그와 나 사이에는 좀 더 거리감이 필요했다.
“교수님, 자꾸 입 맞추지 마세요.”
“이제 내가 필요 없어지니 버리는 건가?”
나는 심호흡한 뒤 그를 밀어내며 또박또박 말했다.
“전 교수님의 반려가 아니니까요.”
이는 그가 각인하자고 말했던 것에 대한 거절이기도 했다.
일리야는 비스듬한 자세로 문에 기댄 채 날 바라보았다.
화가 난 표정은 아니었다. 외려 거절할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간계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반려 제안을 거절했으니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을까?
아니면 아직 클라이드가 있으니 결정을 보류하려나?
겉으로는 그에게 맞설 듯이 말했지만 실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을 때였다.
“아무 짓도 안 해.”
그의 대답에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분명 인간계를 마계로 만들 거라고…….”
“사랑하게 된 여자에게 구애해야 하는데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내가 황당하단 표정을 하고 있으니 일리야가 피식 웃었다.
“내가 악마라는 사실을 잊었나?”
그의 출신이 어떻든 지금은 교활하고 제멋대로인 악마였다. 나는 순진하게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었고.
“……저 갈게요.”
일리야는 문을 열고 나가려는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진심이긴 했는데.”
어쩌라고!
내가 눈을 홉뜨자 일리야가 뺨에 촉 소리가 나게 키스했다.
“네가 화내면 씹어먹고 싶어진다고 말했던가?”
“그런 건 속으로만 생각하세요. 은근슬쩍 키스도 하지 마시고요!”
일리야가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귓가에 대고 말했다.
“강의실에서 보도록 하지.”
나는 끝내 씩씩거리며 연구실을 나갔다.
하필 다음 시험 과목이 <속성 마법>이라 또 일리야를 봐야 했지만.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달다…]
달기는 무슨. 속이 뒤집혔다.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