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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67화 (168/277)
  • 167화

    * * *

    바깥이 난리 나 있을 무렵, 악마 클라이드는 모친의 성을 종일 뒤지고 있었다.

    그가 찾는 답은 단순했다.

    악마가 인간과의 결합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금방 찾았다. 낳지 못한다였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세상 유일한 반인반마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나?

    그에 대한 답은 아직도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하려고 했던 악마가 지금껏 존재하지 않아서 자료가 없는 듯했다.

    하나 마음속으로는 내심 그 일을 가능케 한 방법으로 짐작 중인 게 있었다.

    만일 자신이 대천사였다면.

    그러다 모종의 이유로 모친이 그의 영혼을 잉태한 거라면.

    ‘미친 가정이야.’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가정인데, 자꾸만 거기로 확신이 섰다.

    일리야에 대한 기억이 스쳤다.

    지금까지 그가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다른 이와 어떻게 달랐는지.

    그저 천재성을 높이 사서 제자로 받아들였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가.

    클라이드는 지친 표정으로 기록서 하나를 바닥에 팽개치며 주저앉았다.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쌍둥이가 있었다…….”

    천계를 통치하던 대천사에게 쌍둥이가 있다. 그는 대외적으로 활동하지 않아서 공식적인 기록이 없었다.

    한데 그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환영 속에서 보았으니까.

    환영을 보기 전까지 제 외모는 친탁한 것이라 생각했다.

    윌로우가의 혈족 중 마력을 짙게 타고나는 이들은 종종 은발과 벽안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다들 외모도 수려했다.

    차갑고 냉랭한 분위기가 흐르는 이목구비 같은 게 자신과의 공통점이라 여겼다.

    다만 유독 클라이드만 생김새가 튀긴 했다.

    이는 릴리트를 닮아 그런가 했다.

    릴리트는 몽마의 왕으로서 매우 화려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클라이드는 문득 웃음을 흘렸다.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

    이유를 모르겠는데 기분이 몹시 가라앉았다.

    인간도, 악마도, 천사도 아닌 모호한 것. 이딴 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기가 막혔다.

    제 존재가 무엇하나 아귀가 맞는 게 없는 퍼즐 조각으로 만든 억지 같은 그림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결국 자신은 장난감 같은 건가?

    ‘이러니까 끔찍하게 여기지.’

    저를 본 인간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몽마에게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든가, 악마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싫어하든가.

    아. 하나 더 있었다.

    정체를 알고 끔찍해 하는 것.

    기억이 존재하는 시절부터 겪은 반응이라 익숙해서 셈하는 걸 잊었다.

    그는 계속해서 웃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은 인간 클라이드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와 달리 제게는 릴리트라는 진짜 가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 뒤졌니?”

    그때 릴리트가 애정이 담뿍 담긴 목소리로 물으며 다가왔다.

    자신이 뭘 찾고 있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태도였다.

    “엄마 너무 힘들어, 클라이드. 오늘 미치광이한테 잘못 걸려서 쓸데없이 고생했지 뭐니.”

    인간계에서는 음성이 정신으로 직접 전달되듯 다소 독특하게 들렸는데 마계에 있는 지금은 평범했다.

    그녀가 제 곁에 앉아 어깨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족 놀이를 하고 싶어하는 게 느껴졌지만, 장단을 맞추고픈 기분이 아니었다.

    “저를 왜 낳으셨어요?”

    “어머. 무슨 질문이 그래? 널 가지려고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클라이드는 여전히 웃음기 매단 얼굴로 릴리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장난감이 필요한 거면 인형에 영혼을 집어넣으셨어야죠.”

    그 말에 릴리트가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클라이드는 그녀가 전혀 속상하지 않으면서 일부러 거짓으로 짓는 표정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한테 너무한 것 아니니?”

    자신이 너무한 걸까?

    하지만 그녀를 위로하기엔 자신을 인간계에 버려두고 떠난 것에 대한 증오가 입을 다물게 했다.

    인간인 클라이드를 마계로 데려가기에는 너무 성가셔서 그랬다는 걸 안다.

    악마인 자신이었다면 데려갔을 거라는 것도 잘 알았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클라이드였다.

    악마는 그 점을 극렬히 부정하면서도 머리 한구석으로는 저와 반쪽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게 이상했다.

    시선을 공유받고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데 어떻게 동일인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 있을까?

    그 순간 갑자기 심장이 지끈거렸다.

    “으윽…….”

    릴리트의 손톱이 박혔던 자리들이 쩍쩍 벌어지는 듯한 느낌에 식은땀이 흘렀다.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본 릴리트가 놀란 눈으로 상태를 살피려 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손 치워요…….”

    “어디가 안 좋은 거니? 엄마가…”

    “치우라고!”

    클라이드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릴리트의 손을 쳐냈다.

    제 마음이 약해진 틈을 타 잠든 인간 클라이드가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간신히 얻은 자유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빼앗길 수 없었다.

    내가 진짜인데 어째서 몸을 빼앗겨야 하는데? 왜 내가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이어야 하는 거지? 대체 왜?

    클라이드는 저를 붙들려는 릴리트를 뿌리치고 인간계로 돌아갔다.

    “하아… 하아….”

    그는 끓는 열에 혼미해진 상태로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걷다가 기숙사 문 앞에 기대어 앉았다.

    “테레제…….”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이 찾아온 기숙사 주인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 이곳에 그녀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기숙사 안에 사람의 기척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일리야와 어디론가 떠났지.

    그 사실에 화가 나고 슬퍼졌다.

    클라이드는 테레제의 침실로 가서 침대에 누웠다.

    존재하지 않는 온기를 느껴보려는 듯 이불을 쓰다듬는 손길이 미련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이불을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천사였을 줄은 몰랐는데, 자카리.”

    “…….”

    자카리는 클라이드가 인간계로 돌아온 순간부터 계속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클라이드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너와 내가 아는 사이였나?”

    “그래.”

    “날 죽이려고 곁을 지키고 있었어?”

    “필요하다면.”

    “매정하네. 우리가 친구는 아니었나 봐.”

    “…….”

    “한 가지 알려줄까?”

    “뭐지?”

    “악마는 슬퍼서 울 수 없어.”

    클라이드는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웅얼거렸다.

    “신께서 눈물을 거두어 가셔서, 눈물을 흘릴 수가 없거든. 그래서 악마의 눈물을 믿지 말라는 거야. 거짓이니까.”

    하지만 반마는 슬픔으로 눈물 흘릴 수 있었다.

    “엿 같아.”

    붉은 눈으로 눈물 흘리는 완전하지 못한 자신이 싫어서 죽고 싶었다.

    * * *

    푹 잤다. 다른 수식어 필요 없이 그 말이면 충분한 상태로 개운하게 눈을 떴다.

    ‘공작저인가…?’

    확실히 공작저에서 사용하는 거라 매우 고급스러운 침구여서 그런지 피부에 닿는 감촉이 부들부들했다.

    게다가 방안을 감도는 햇살의 색이 맑고 투명했다. 탁한 보랏빛이 아니었다.

    코끝을 감도는 방의 냄새가 달고 부드럽다.

    간절히 바라던 감각들이었다.

    저절로 울컥한 기분이 들 정도로 지쳐있던 마음이 치유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왔어.”

    언제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집. 그곳으로 돌아왔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으나 코끝이 찡해진 상태로 괜히 이불에 뺨을 비비적거렸다.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확인받고 싶어서 하는 어리광 같은 몸짓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잖아. 꿈이 너무 길었어.’

    고단한 꿈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려내기 위해서 매 순간 힘껏 발버둥 쳤더니 정신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렇게 한계점까지 다다랐을 때 하얀 나비가 나타났었지.

    나는 번뜩하고 리비가 떠올라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리비에게도 나비가 생긴 건가?”

    설정에는 없는 능력인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에게 어떤 연결점이 생겨난 것일까?

    의문에 가득 차 있을 때, 뒤늦게 퀘스트 창을 발견했다.

    [퀘스트: 펠릭스 교수의 고스트 마수 토벌 의뢰 완료]

    ▸보상: 희귀 마법 식물 10종

    “온실이 엉망이었던 것 같은데 가져갈 만한 희귀한 식물이 있으려나.”

    걱정스럽게 중얼거리자 그때까지 웬일로 조용히 있던 성좌들이 폭발적으로 후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띠링!

    [성좌 ‘일리테레 아니면 죽음’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네 남편이 다 수습해놨으니까 걱정하지 마^^ 넌 고르기만 해]

    띠링!

    [성좌 ‘미친 교수 일리야’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제 넌 이제 큰일났다 ㅋㅋ]

    띠링!

    [성좌 ‘강경 클라이드파’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일리야 너무 막 나가던데… 강압적이라서 별로; 역시 클서방이 최고다]

    띠링!

    [성좌 ‘금쪽같은 내 새끼 데미안’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데미안은 죽지 않아]

    내가 쓰러진 사이 일리야가 뭘 하기는 했나 본데.

    괜히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을 때 엘로이즈가 침실에 들어왔다.

    “아가씨!”

    엘로이즈는 내가 일어난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거리며 달려왔다.

    그러더니 내 허리를 와락 끌어안는데, 늑골이 나가는 줄 알았다.

    “못 본 새 힘이 세졌구나…?”

    “고작 하루 못 봤는데 무슨 소리세요! 대체 악마가 우리 아가씨께 무슨 짓을 했길래! 흐어어엉!”

    하루라니. 겨우 그만큼 잤는데 이렇게 개운한 거였어?

    띠링!

    [성좌 ‘스콰이어 절대 지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우리 애 맛난 거 많이 먹여줘 엘로이즈ㅠㅠ]

    나는 엘로이즈가 간신히 울음을 그칠 때까지 등을 토닥여주다가 문득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 학교는? 오늘도 가야 하는 날일 텐데.”

    시간을 보니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준비하면 두 번째 강의부터는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이 아가씨께서 원하는 만큼 푹 쉬라고 하셨어요.”

    “일리야 교수님이?”

    “네! 몽마가 나타난 것도 본인이 알아서 다 처리하신다던 걸요?”

    “그래…?”

    불길함이 더 커지는데.

    “일단 좀 씻어야겠어.”

    현재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해가 드는 자리까지 나갔을 때였다.

    엘로이즈가 뒤따라오지 않아 의아해져 고개를 돌렸을 때, 여전히 그림자에 붙어있는 나비 날개가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날개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이거 보여?”

    “네…!”

    대답하는 엘로이즈의 두 눈이 심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먼저 나비 날개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던 걸 꾹 참은 듯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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