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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65화 (166/277)

165화

* * *

정말이냐고 묻고 싶었다.

정말로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하면 복수를 그만두는 거냐고 묻고 싶은데, 그럴 틈이 없었다.

“일리야….”

“응.”

말할라치면 벌어진 입술이 틀어막혔다.

이럴 때가 아니라고 버둥거려도 더럽게 크고 단단한 몸뚱이를 내 힘으로 밀어낼 수도 없었다.

띠링!

[성좌 ‘미식가’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야미]

띠링!

[성좌 ‘일리테레 아니면 죽음’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 주식 성공 못하면 오즈월드 가만 안 둠]

띠링!

[성좌 ‘오사장한테 충성하는 개’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왜 불똥이 오즈월드한테 튀냐고;;]

일리야는 본인 욕심을 그득하게 채운 뒤에야 부푼 입술을 떨어뜨렸다. 이렇게 지독해서 악마가 된 게 틀림없었다.

나는 눈을 홉뜨다가도 금방 간절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제가 그만두라고 하면 정말로 복수하지 않을 생각이세요?”

“내가 먼저 선제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하지.”

상대가 먼저 자신을 공격하면 그때는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일리야의 복수를 그만두게 한 것만으로도 이미 <신의 유희>를 클리어한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나는 안도한 얼굴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조건이 있는데.”

조건이라니?

의아하게 몸을 떨어뜨리자 숨결이 섞이는 거리에서 일리야가 말했다.

“내 반려가 돼.”

“…네?”

“각인하자는 뜻이다.”

띠링!

[성좌 ‘도파민중독’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인간계도 가만히 내버려 두는데 각인까지 하자고? 이게 진짜 1+1이지]

갑자기 각인이라니.

당혹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일리야의 호감도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확인했다.

[호감도: ♥♥♥♥♥]

……벌써?

[‘일리야’ 루트를 지지하는 성좌들이 열광합니다.]

일리야가 내 뒷덜미를 쓸었다.

오싹한 느낌에 솜털이 쭈뼛거렸다.

“어서 결정해.”

“저는 인간이라 꿈에서 나가면 제 영혼의 결속은 풀릴 텐데요…….”

“그건 평범한 인간일 경우겠지.”

나의 경우는 다를 거라는 말에 섣불리 반박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게임 설정이 온전히 내게 통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생각이 뒤죽박죽 엉켰다.

오히려 죽음보다 누군가의 반려가 되는 게 내게는 훨씬 더 어려운 문제였다.

“당장 결정해야 해요?”

“시간이 필요하나?”

“네에…. 1월 31일에 대답할게요.”

그 전에 낙원을 찾거나, 10억 코인을 모아 여기서 튀거나 둘 중 하나는 가능하겠지.

일리야는 내 얕은수를 꿰뚫어 본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때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모양이지?”

“아니요? 전혀요.”

“지금 결정해.”

나는 작전을 바꿔 울상지었다.

“여기서 계속 있으면 연약한 인간인 저는 죽게 될지도 몰라요……. 일단 현실로 돌아갈까요?”

그 말에 일리야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바깥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을 텐데.”

한데 왜 이렇게 상태가 나쁜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이었다.

“저한테 걸린 제약이 많아서요.”

대충 창조주 페널티라고 봐주시죠.

일리야는 어물쩍 넘어가려는 내게 어떤 제약이 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는 결국 시간에 따라 어떤 페널티가 발생하는지 죄다 부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내 손에 키스하며 물었다.

“그런데 나와 접촉하면 모든 증상이 완화된다는 건가?”

“네.”

“그렇다면 1년쯤 더 있어도 문제없겠군.”

“네?”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거지?

“각인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유예기간을 1년 주겠다는 뜻이다.

일리야는 이것으로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다는 양 아예 자세를 고쳐잡아 본격적으로 쪽쪽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잠깐만요!”

“사랑해.”

그는 돌아버린 게 분명했다.

실제로 눈빛이 좀 맛이 가 있었다.

날 쳐다보는 게 원래 알던 무뚝뚝하고 밥맛 떨어지는 인공지능 같던 그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집요했고 탐욕스러웠다.

내가 손으로 입술을 막아버리자 그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손바닥에 쪽쪽 입 맞추었다.

“현실로 돌아가요. 네?”

“사랑해.”

“아니… 아까부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사랑해.”

진짜 고장 났나 보다.

아주 그냥 말문이 턱턱 막히게 하는 재주가 일품이었다.

내가 말없이 노려보자 그가 악질처럼 은근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 표정도 할 수 있었구나.

모르는 게 나을 뻔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걸 원하지?”

“현실로 돌아가는 거요.”

“원하는 남편상을 묻는 건데.”

“말 잘 듣는 남편이 좋아요.”

일리야가 피식 웃었다.

“그건 어렵겠는데. 날 이렇게 만든 건 너잖아.”

이 무슨 날 왜 이렇게 낳았냐고 반항하는 사춘기 아들 같은 소리인가.

“이렇게 사리사욕만 채우게 만든 적 없거든요?”

일리야가 뺨에 입 맞추며 대답했다.

“그건 네가 사랑스러워서.”

결국 다 내 탓이지.

그가 내 달아오른 뺨을 문지르며 물었다.

“부끄러운가?”

내가 좋다고 난리 피우며 사랑스럽다는데 부끄럽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남세스럽기 짝이 없었다.

“몰라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늘어져 있자 일리야는 만족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띠링!

[성좌 ‘너희는 테레제하지 마라’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테레제가 사람 미치게 하는 경향이 있지]

‘뭐라는 거야.’

성질 돋우는 후원창을 당장 꺼버렸다.

나는 따뜻한 품 안에서 쏟아지는 애정 공세를 받으며 멍하니 동굴 바깥을 쳐다보았다.

이지를 상실한 일리야와 함께 이곳에 지내며 생긴 버릇이었다.

황량하고 척박한 광경이었다.

현실로 돌아가면 발할라의 아름다운 풍경이 날 반겨줄 텐데.

그러려면 이 남자가 제안한 각인을 받아들여야 한다.

짝을 정하고 싶지 않았다.

일리야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반려가 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또한 나는 성좌들을 상대로 방송 중이었다.

오즈월드에게 목줄이 쥐어져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암담한 현실이 내 마음을 차갑게 얼렸다.

그리고 난 아직 모두를 구하지도 못했다.

내게 <신의 유희>는 역하렘 게임이 아니다. 생존 게임이었다.

일리야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골몰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결정하기 어려우면 내 제안을 거절해.”

“……그럼 인간계는요?”

“사라지겠지.”

그가 얼어붙은 날 토닥였다.

“넌 내 곁에 있을 거고.”

띠링!

[성좌 ‘썩은 취향’ 님이 1,0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제발!!]

“정말… 당신은 미쳤어요.”

“나도 알아.”

그리고 나도 곧 미칠 것 같았다.

현실로 돌아가기만 하면 클라이드가 나사가 빠져 고장 나버린 일리야를 어떻게 제어해줄 수 있을 텐데.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을 때였다.

“입술은 깨물지 말고.”

일리야가 버릇을 고쳐주겠다는 듯이 입술을 겹쳤다.

나는 입맞춤을 받으며 놀란 눈으로 그의 뒤쪽을 응시했다.

하얀 나비가 보였다.

‘스콰이어 나비?’

그때.

“언니!”

또 한 번 리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리비가 저 하얀 나비를 보내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용도는 뻔했다.

절로 승자의 미소가 흘러나왔다.

내게는 골치 아픈 네 명의 남자주인공 외에 리비라는 진정한 주인공이 있다고.

나는 일리야를 방심시키기 위해 그를 끌어안고 깊이 입 맞췄다.

그가 잠시 입술을 떨어뜨렸다가 막 짐승처럼 달려들려고 했을 때, 나비를 움켜쥐었다.

그 즉시 꿈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일리야는 성가셔하는 얼굴로 허물어지는 꿈을 확인했다.

“창조주 특권인가?”

“그런가 봐요.”

그는 현실로 돌아가는 게 기분이 좋지 않은지 꼭 어리광부리는 것처럼 품에 안겼다.

하마터면 이 간악한 대악마가 딱하게 느껴져서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다.

이내 꿈이 완전히 걷혔다.

저절로 감겼던 눈이 뜨였을 땐 엉망이 된 온실 안이었다.

내 옷은 교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언니이이이!”

누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리비가 엉엉 울며 품에 안겼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과 초췌한 얼굴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었다.

나도 울컥한 얼굴로 리비를 끌어안았다.

밤이 된 하늘이 유리창 너머로 일렁이듯 보였다.

그때 하얀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서 리비의 어깨에 앉는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길고 길었던 꿈에서 마침내 깨어난 것이다.

“고마워, 리비.”

그 말을 끝으로 혼절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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