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161화 (162/277)

161화 [삽화]

팽팽한 신경전이 오가는 동안 새로운 섬이 또 추락했다.

하늘이 이토록 맑고 아름다운데 전조도 없이 시작된 재앙에 모두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사무엘이 입을 열었다.

“보다시피 천계는 멸망해가고 있네. 지금은 운이 좋아 무인도가 추락했지만, 다음번은 천사들이 사는 섬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

만일 중앙도시가 떨어지면?

중앙 본부가 있는 섬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사무엘이 대륙을 내려다보았다.

“저길 보게. 새로운 균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군.”

그의 말대로 대륙에는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나듯 불길한 색의 차원 균열이 생성되고 있었다.

‘섬이 떨어지는 건 그럴 만한 시기라고 생각했지만, 균열이 벌써 이 정도로 생기는 건 시나리오와 맞지 않아. 대체 왜 이렇게 빨리 멸망이 다가오고 있는 거지?’

게다가 사무엘의 저 무심한 표정도 몹시 거슬렸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닌지 클라이드가 미간을 좁히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래서 망상을 근거로 힘없는 천사를 제단에 올리겠다는 겁니까? 만일 추측이 틀리면 단지 이 천사의 운이 나빴던 거라고 치부해버릴 생각이고요?”

“난 자네가 왜 이러는지 이해되지 않는군. 그 천사가 신이라면 자네가 희생하지 않아도 천계가 완전해질 수 있을 텐데 어째서 나를 가로막는 건가?”

클라이드의 대답은 간결했다.

“당연히 사랑하니까요.”

그리고는 본인의 말을 증명하듯 내 이마에 애틋한 입맞춤을 남겼다.

띠링!

[성좌 ‘어차피 남주는 클라이드’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어남클! 어남클! 어남클! 어남클! 어남클! 어남클! 어남클!]

띠링!

[성좌 ‘잘생긴 게 죄라면 클라이드는 사형’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당연히 사랑하니까요…드르륵 탁…당연히 사랑하니까요…드르륵 탁…당연히 사랑하니까요…드르륵 탁…]

띠링!

[성좌 ‘강경 클라이드파’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클라이드 주식 풀매수]

사무엘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사랑?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보면 모르겠습니까? 그러니 이 여자를 제단에 올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클라이드’ 루트를 지지하는 성좌들이 미쳐 날뜁니다.]

나는 몹시 떨떠름해졌다.

‘갑자기 왜 이래……?’

일단 클라이드에게 모종의 계획이 있는 것 같아서 잠자코 있다만, 왜 이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무엘은 이 마당에 사랑 타령이나 하는 클라이드가 미쳤다고 판단한 건지 강한 경멸이 깔린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다 같이 죽는 길을 선택하겠다는 건가?”

“그럴 리가요. 애초에 협의했던 대로 하자는 말이죠.”

협의했던 대로라면 클라이드의 희생으로 천계를 유지하자는 뜻이었다.

그동안 클라이드를 보호하듯 원로들을 견제하고 있던 자카리가 선명한 분노를 드러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이 천사들을 차원의 제물로 사용하는 거라면 차라리 천계를 신계에 다시 복속시키십시오, 대천사 사무엘.”

“아비에게 말이 지나치구나.”

“천사에게 혈연 따위가 의미 있습니까?”

그때 클라이드가 어딘가를 휙 쳐다보았다.

“일단 자리부터 옮기는 게 좋겠어. 이동.”

클라이드가 모두를 옮겨온 장소는 빛의 탑 1층이었다.

탑은 황금빛 햇살로 가득 차 있어 경건하기 이를 데 없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특히 1층의 중앙은 황금 제단이 존재했고, 그곳으로 천장에서부터 일직선으로 둥근 빛이 떨어져 내렸다.

클라이드는 날 바닥을 딛고 서도록 내려주었다.

“지금 제가 죽겠습니다. 테레제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영혼을 걸고 계약하시죠.”

“클라이드!”

자카리의 성난 외침에 클라이드가 그를 향해 고개 저었다.

더는 개입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자카리는 당장 이곳으로 다가오려 했으나 원로 천사들에게 가로막혔다.

사무엘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네. 계약하지.”

‘이미 사무엘은 날 제단에 올리면 천계가 완벽히 독립적인 차원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 그런데 이런 계약을 수락한다고?’

영혼을 건 계약은 불이행 시 타락하여 지옥에 떨어진다.

그랬기에 단순히 클라이드를 어르고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한 계약이라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사무엘이 진심으로 약속을 지킬 것 같지도 않았다.

‘설마 자신이 타락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천계의 독립은 사무엘의 오랜 염원이었다.

그것을 위해 평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착해 오던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자신이 타락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정신 나간 생각을 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난 착잡한 표정으로 클라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는 이미 사무엘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라는 걸 꿰뚫고 있는 듯했다.

‘일부러 이 상황을 만든 거야.’

자신이 먼저 죽기 위해서.

나와 일리야를 살리기 위해서.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견된 일이었다. 한데도 당혹스러웠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끝난 상태였으니까.

지금의 천계 상황은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아직 그의 죽음을 직면할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클라이드가 무얼 바라는지 깨달은 순간부터 의식할 새도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가슴에 울혈이 맺힌 것처럼 지끈거리며 아팠다.

그동안 클라이드는 사무엘과 영혼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제 제단으로 가게.”

클라이드는 거리낄 것 없다는 태도로 성큼성큼 제단으로 향했다.

그는 본인의 죽음에 지나치게 초탈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곳이 내게는 꿈속이라지만 그에게는 분명한 현실일 텐데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벌써요?”

클라이드는 옷자락이 붙들리자 걸음을 멈추더니 날 돌아보았다.

“나 참. 바보처럼 울지 마.”

코앞이 제단이었다. 죽기 직전의 상황인데도 그는 웃고 있었다.

죄책감, 후련함, 일말의 불안, 연민, 슬픔, 단념 등의 감정이 혼란스럽게 밀려들었다.

속이 말이 아닌데도 클라이드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로 내게 고개 숙였다.

“저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애틋한 사이인지 보여줄까?”

클라이드는 뭔가를 기다리는지 갑자기 시간을 끌었다.

“어떻게요…?”

“나한테 키스해줘.”

나는 망설임 없이 발뒤꿈치를 들어 그에게 입술을 겹쳤다.

부드러운 온기가 맞닿자 클라이드의 감정이 생생히 느껴졌다.

이 키스는 단지 대천사들의 말문이 막히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필요한 시간을 벌려는 거였다.

하나 감정이 급류에 휩쓸렸다.

슬프고도 황홀한, 찬란하고 고통스러운 환희가 전율하듯 전신을 훑었다.

세포가 하나하나 뒤바뀌어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듯 벼락처럼 얻은 깨달음.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열병 같은 첫사랑을 자각한 순간이었다.

타인의 감정을 통해 깨닫게 된 사랑은 너무 강렬하고 파괴적이라 두려운 마음마저 들게 했다.

마침내 입술이 떨어지고 우리는 서로를 보았다.

클라이드의 푸른 눈에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랑한다는 게 이런 거였군.”

알고 싶지 않았는데, 몰라도 됐었는데 어째서 삶의 마지막 순간 깨달아버린 건지 억울하고 원망스러워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넘어설 정도로 사랑했다.

표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사랑했다.

클라이드는 투덜거릴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열병처럼 깨달은 사랑에 휩쓸려 다시금 입 맞추려 했다.

그러나 입술이 겹치기 직전.

클라이드가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더니 나를 두고 제단으로 뛰어올랐다.

콰아아아앙!!!

직후 일리야가 나타나 일대를 마력으로 휩쓸었다.

“아아악!”

“크윽…!”

원로 천사들은 서둘러 방어했으나 절반은 마력에 휩쓸려 뒤로 날아갔다.

‘일리야 님! …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클라이드가 내게 입 맞췄을 때 침묵 마법을 걸었구나.’

클라이드는 제단 위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일리야와 눈을 마주쳤다.

“왔어?”

“당장 거기서 나와라.”

일리야는 막 몸을 일으키려던 사무엘의 가슴팍을 짓밟으며 말을 이었다.

“네 희생으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클라이드. 이 버러지들이 천계수를 망가뜨려 놓았으니까.”

“!”

나는 그제야 왜 갑자기 섬이 추락하고 균열이 마구 생겨났는지 깨달았다.

사무엘은 내상을 입었는지 피에 젖은 입술을 벌리며 큭큭 웃었다.

“어차피 제구실하지 못하는 천계수를 베어버리는 게 뭐가 대수겠나?”

그가 천계수를 벤 건 틀림없이 나 때문이었다.

‘나를 제단에 올려놓기만 하면 그깟 천계수 쯤은 금세 부활할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일리야는 이곳에 나타났을 때부터 손에 쥐고 있던 검으로 사무엘의 목을 그어버릴 듯이 가져다 대었다.

“너는 닥치고 있어라, 사무엘.”

평소의 예를 다한 태도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 쌍둥이의 이성 잃은 모습을 본 클라이드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조금만 늦게 오지 그랬어.”

그러나 그 말은 일리야의 화를 부추길 뿐이었다.

“당장 나와. 내가 쓸데없는 개죽음일 뿐이라고 했는데 왜 말을 안 들어!”

하나 이미 늦었다.

제단에서 시작된 빛이 클라이드의 육신으로 번져 들기 시작했다.

일리야는 클라이드의 어리석은 선택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제단으로 달려갔다.

쾅!

일리야가 제단을 감싼 결계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러나 은은한 빛이 감도는 결계는 한차례 출렁일 뿐, 깨지지 않았다.

대천사라 해도 제단의 결계는 뚫을 수 없었다.

곧 클라이드의 얼굴에도 햇살이 내려앉은 듯한 빛이 번져갔다.

빛에 뒤덮인 육신이 금빛 가루가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그가 사라지고 있었다.

쾅! 콰앙!

일리야의 주먹은 결계의 반발력에 의해 찢기고 멍들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이미 늦었다는 걸 알지만 멈출 수 없었다.

클라이드는 완전히 사라지기 전 일리야와 내게 인사했다.

“나중에 보자.”

그리고 빛에 완전히 잠식되었다.

일리야는 빛이 사그라들어 마침내 결계가 사라진 제단을 붙들고 절규했다.

“클라이드―!”

클라이드가 소멸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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