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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60화 (161/277)
  • 160화

    * * *

    일리야는 모든 게 성가시다고 생각했다.

    천계의 안위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일조차 넌더리가 났다.

    그는 단지 테레제를 품에 안아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간지러움에 간헐적으로 터뜨리는 웃음소리를 듣고 자신을 똑바로 마주해오는 눈빛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는 큰 인내심을 발휘해 테레제가 먹을 음식을 구하러 나오는 짧은 시간 중 일부를 할애해 몇 가지 업무 정도는 처리했다.

    그러다 사건이 발생했다.

    “테레제 씨를 다시 중앙 본부로 불러주십시오. 그녀는 반드시 이곳에 있어야 할 인재입니다.”

    천사들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테레제를 중앙 본부로 불러달라며 탄원하기 위해 집무실까지 찾아왔다.

    특히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은 요셉이었다.

    그는 아예 직설적으로 물었다.

    “일리야 님. 혹시 테레제 씨와 각인하셨습니까?”

    “그런 걸 왜 묻지?”

    “며칠 전 중앙도시에서 테레제 씨가 일리야 님과 함께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게다가 부부 사이라고 하셨다고요.”

    “각인했으면?”

    요셉은 감히 살기 어린 눈으로 일리야를 노려보았다.

    “저는 테레제 씨가 누군가와 각인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를 사랑합…!”

    요셉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일리야가 마법으로 천사들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묶어 무릎 꿇린 것이다.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조용히 서 있던 델리오스에게 명령했다.

    “당장 이것들을 끌고 가라. 이들의 생각에 동조한 천사들까지 모조리 강등시키고 주동자는 폐기한다.”

    “-!!”

    아무리 관용이 없는 일리야라고 해도 이 정도의 폭정을 한 적은 없었다.

    델리오스는 반박하고 싶었으나 일리야의 서늘한 눈을 마주한 순간 여기서 조금만 말을 잘못하면 자신도 똑같은 꼴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일리야의 명령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테레제를 언급하는 천사는 전부 반역자로 간주하겠다.”

    델리오스는 자신의 우상이자 존경하는 대천사인 일리야가 내린 말도 안 되는 명령에 배신감마저 느꼈다.

    하나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상대는 고작 하급 천사였다.

    그래. 단지 수많은 천사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한데 어떻게 이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델리오스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집무실을 나와 공문을 알리러 이동하던 중 마린과 마주쳤다.

    마린은 뭔가에 매우 놀란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달려왔다.

    “이, 일리야 님은 어디에 계시죠?”

    “집무실에 계십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당장 일리야 님께 매칭률에 대해 알려드릴 사실이 있습니다.”

    델리오스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마린을 붙들었다.

    “잠깐만요.”

    “왜 그러시죠? 급한 일이 아니라면 저를 좀 놓아…”

    “지금 일리야 님께서 천사들을 대거로 징계하셨습니다. 또한 지금부터 테레제 씨를 언급하는 천사는 반역자로 간주하겠다고 하십니다.”

    “예에?! 일리야 님이요?”

    마린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다가 뭔가 생각나는 게 있는지 잠시 숨을 멈췄다.

    “……가능합니다. 그러실 수 있어요.”

    “무슨 말이죠?”

    “전에 봤잖아요. 999퍼센트의 매칭률을요. 지금까지 어떻게 그런 수치가 가능한 건지 계속 알아보다가 발견한 게 있습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마린은 침을 꼴깍 삼킨 뒤 목소리를 한껏 낮춰 입을 열었다.

    “신은 자신을 섬기는 모든 천사와 완벽한 매칭률을 보인다더군요. 테레제 씨가 다른 천사들과 매칭률 검사를 했을 때도 999퍼센트가 뜬다면…… 그분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일 겁니다.”

    델리오스는 입을 떡 벌리며 놀라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천계는 신계에서 독립했기 때문에 더는 신을 섬기지 않습니다. 한데 어떻게 섬기지도 않는 신과 999퍼센트 매칭률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신이 아닐 테니까요.”

    “예?”

    마린은 전율에 몸서리치는 듯한 모습으로 호흡이 가득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델리오스는 경악스러운 추측에 어지럼증마저 느꼈다.

    “창조주라고요? 말이 됩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왜 하필 하급 천사로 이곳에 나타났단 말입니까?”

    “그야 저도 모르죠.”

    “하아. 그 얼토당토않은 말은 절대 입 밖에 내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마린은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아, 확실한데.”

    “상황도 좋지 않은데 혼란을 가중시키지 마세요.”

    “예에…….”

    델리오스는 마린을 돌려보낸 후 괜히 심란해진 마음으로 일리야가 내린 지령을 전달했다.

    군사경찰은 순식간에 이번 탄원에 가담한 이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델리오스의 머릿속에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건 자신이 아는 천계가 아니었다.

    테레제가 정말로 신이라면,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는 천계를 벌하기 위해서일 게 분명했다.

    델리오스는 착잡한 기분으로 일리야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하나 일리야는 그곳에 없었다.

    “어디로 가셨지?”

    일리야가 최근 들어 계속 짧은 시간 동안만 본부에 머물렀다지만 이렇게 다른 지시사항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저 창문.

    “아까까지 분명 닫혀 있었는데.”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일리야가 창문을 통해 이동했다고?

    그렇게 급박하게 움직일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테레제 씨에 관련된 일이 아니고서야.’

    델리오스는 잔뜩 굳은 얼굴로 날개를 펼쳐 창밖으로 날아갔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 * *

    나는 클라이드의 목을 조를 기세로 꽉 끌어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머리 위에서 섬이 추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악! 으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시끄러워, 좀!”

    추락 중인 섬은 작지도 않았다.

    나는 떨어지는 운석을 바라보는 멸종 위기의 공룡이 된 기분으로 벌벌 떨었다.

    “진원우 이 새끼야! 왜 이딴 설정을 넣자고 한 거야아아!”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ㅁㅊ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냅다 실명 거론해 버리네 ㅋㅋㅋㅋㅋ]

    클라이드는 날 질린 눈으로 노려보더니 부유 마법으로 섬의 추락 속도를 낮추며 본인은 더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질주했다.

    “그러니까 멀쩡한 대륙 놔두고 왜 섬에서 살게 한 거야!”

    “이건 제가 안 정했거든요?! 그리고 천사가 하늘나라에서 살아야지, 땅에서 왜 살아요? 그럴 거면 날개 떼든가!”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추락하던 섬이 쩍쩍 쪼개지기 시작했다.

    저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조각조각 부서진 섬의 파편이 유성우처럼 떨어져 내릴 테니까!

    클라이드는 보호막을 생성하더니 떨어지는 파편들을 한 줌의 먼지로 만들었다.

    그러다 섬을 폭파한 당사자와 맞닥뜨렸다.

    “멈춰라.”

    우리 앞을 막아선 것은 자카리와 정예 병사들이었다.

    자카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클라이드 너를 체포하러 왔다. 순순히 따라와라.”

    클라이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장 비켜.”

    “소환에 응하지 않을 시 강제로 데려가겠다.”

    “하… 이유나 알자. 왜 날 체포하겠다는 거야?”

    “네가 하급 천사들을 모아 천계에 반역을 일으키려 한다는 정황을 발견했다.”

    “연행하려면 이유라도 좀 그럴싸하게 대든가. 그게 말이 돼?”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반역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다.”

    우리 뒤에서는 섬의 파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앞에는 자카리가 길을 가로막은 상황이었다.

    “자카리. 내가 너희를 처리하려고 마음먹으면 못 막는다는 거 너도 알잖아.”

    “네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지.”

    클라이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혹시 내가 제물이 되기로 한 걸 알게 되어서 이러는 건가?”

    “원로원과 모종의 협의가 있었고 그 방식이 절대 옳지 않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그냥 나 하나로 끝낼 수 있어. 천계의 존속에 옳고 그른 문제 따위는 없다고.”

    자카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만일 다른 천사였다면 당연한 희생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나 자카리는 처음으로 비이성적인 대답을 꺼내놓았다.

    “나는 널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네가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

    “그건 감동적이네. 하지만 지금은 좀 비켜줬으면 좋겠다. 곧 화가 난 일리야가 나타날 예정이라서.”

    그 말에 자카리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 천사를 숨기려고 하나?”

    “더럽게 눈치 없는 네가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아버지가 그 천사의 행방을 찾고 있다. 일리야 님도 그 천사에게 집착해 최근 변하셨지. 그리고 지금 너까지 데리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평범한 하급 천사는 아닌 모양이군.”

    자카리의 아버지면 사무엘이 날 찾고 있다는 뜻인데, 어째서일까?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을 때였다.

    “그래. 절대로 평범한 하급 천사일 수 없단다, 자카리.”

    사무엘이 원로들을 이끌고 등장했다.

    그들은 노회한 데다가 전부 대천사였기에 엄청난 전력으로 무장하고 나타난 셈이었다.

    사무엘이 날 쳐다보았다.

    “정말로 간절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테레제 님.”

    콧대 높은 대천사가 일개 하급 천사에게 경어를 쓸 리 없다.

    그러니 저건 분명 내가 신과 다름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신한 행동이었다.

    사무엘의 신경 거슬리는 태도에 클라이드가 미간을 찡그렸다.

    “영감님, 장난치지 맙시다.”

    “내 어찌 장난질 따위를 치겠는가? 감히 신을 앞에 두고서.”

    날 쳐다보는 사무엘의 눈빛에서 오싹한 광기가 느껴졌다.

    클라이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하급 천사한테 신이라니, 노망드셨어요?”

    “회피하려 해도 소용없네, 클라이드. 내 자네를 얼마나 오랜 세월 보아왔는데 뭔가를 숨기고 싶어 할 때의 버릇을 모르겠는가?”

    “이래서 섬에 오기가 싫다니까.”

    사무엘이 허허 웃다가 이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더 늦기 전에 천계를 돌이킬 수 있도록 이만 우리의 신을 넘기시게.”

    클라이드 역시 냉랭하게 응수했다.

    “개소리하지 말고 도망이나 치시죠. 곧 제 형님이 올 것 같으니까.”

    이게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는 거구나.

    나는 아찔함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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