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테이블에 처박힌 군사경찰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상태라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공무집행 방해는 즉시 폐기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당장 놓아라!”
그러자 일리야가 높낮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으나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폐가 오므라들게 하는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허가한 적 없는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 건지 설명해라.”
그 말에 발악하던 군사경찰이 입을 딱 다물었다.
지금 머릿속이 뜨겁게 달궈질 정도로 팽팽 돌아가고 있으리라.
갑작스러운 대천사의 등장에 얼어있던 나머지 군사경찰들은 그제야 정신 차리고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일리야 님을 뵙습니다!”
그때 가게의 구석에 서 있던 한 천사가 바닥에 힘없이 미끄러져 앉았다.
“흐으으…….”
두려움에 완전히 질려버린 표정이었다.
비단 그 천사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이게 정말 현실인지,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일리야가 다시 물었다.
“내 질문이 어려웠나?”
숨이 막힐 정도로 묵직한 음성이었다.
일리야의 전신에서 위압적인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하자 계급이 낮은 천사들부터 바닥에 풀썩 엎드린 채 바들바들 떨었다.
“내 명령에 불복하면 폐기 처분된다는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군.”
그의 손아귀에 붙들린 군사경찰이 그제야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 일리야 님.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확인을… 끄으윽!”
그런데 군사경찰은 하필 일리야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말을 내뱉었다.
“천계에 착오란 없다.”
“죄송… 죄송합니다.”
“하물며 내 명령이라 들먹이는 실수 같은 건 더욱 존재할 수 없다.”
일리야는 태연하게 군사경찰의 목을 움켜쥐었다.
나는 소리 없는 신음을 흘렸다.
‘설마 지금 즉결처분하려는 거야?’
띠링!
[성좌 ‘예비 사위 일리야’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일리야가 무자비하기는 해도 이렇게 폭력적이었나…?]
아니. 그렇지 않다.
일리야는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력을 휘두르는 성격이 아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
일리야의 눈동자가 점차 붉은색으로 물들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주머니를 뒤졌다가 탄식했다.
‘옷을 바꿔입는 바람에 약병을 집에 놓고 왔어.’
다행스럽게도 [클로버] 안에 있는 천사들은 현재 감히 일리야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바닥에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더 재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붉어진 눈동자를 들키면 천계의 모든 천사가 그를 죽이려 들 것이다.
나는 일리야에게 달려가 손을 붙들었다. 그러자 그가 날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내가 손을 뻗어 목을 끌어당기자 일리야는 미간을 좁히면서도 순순히 품에 안겼다.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 눈을 덮었다.
그리고 말했다.
“눈 감으세요.”
속눈썹이 손바닥을 간지럽게 긁으며 아래로 감기는 게 느껴졌다.
다행스럽게도 이전과 달리 이번의 일리야는 얌전했다. 사악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화내지 마세요. 명령이 잘못되었다면 역추적해서 상황을 먼저 확인한 다음 관련자를 처분하면 되니까요.”
“…….”
“지금 이들을 두렵게 만들 필요는 없어요. 그렇죠?”
그는 내가 속삭이는 말을 자장가 듣는 아이처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나는 문득 일리야에게서 주변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곳에 있는 모든 천사가 경악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저들은 무고한 천사가 아니었다.
사무엘의 명령을 받아 뒤탈 없을 만한 천사를 골라 강제로 폐기하는 일을 맡은 이들이었다.
타락 천사는 일리야가 아니라 저런 이들이 됐어야만 했다.
나는 군사경찰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돌아가서 처분을 기다리세요.”
이는 나도 모르게 한 명령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군사경찰들은 경례한 뒤, 반쯤 넋이 나간 우두머리 격의 경찰까지 챙겨 가게를 나갔다.
‘다행이다.’
나는 일리야의 눈을 덮고 있던 손을 떨어뜨렸다.
혹시 그의 눈동자가 붉다고 해도 지금 가게에 남은 천사 정도라면 충분히 기억을 지워놓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다.
일리야는 지그시 닫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려 날 쳐다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아름다운 녹색의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그때 [클로버]의 주인장이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제가 일리야 님을 알아뵙지 못하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관용을 베풀어주십시오.”
주인장은 안타까울 정도로 덜덜 떨고 있었다.
일리야는 이성이 완전히 돌아온 차분한 표정으로 내게 기울이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탁.
그는 금화 한 닢을 테이블에 놓았다.
“음식과 테이블값이다.”
군사경찰을 처박았던 테이블은 금이 쩍쩍 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금화를 쓸 만큼 값이 나가지 않을 터였다.
주인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리야와 금화를 번갈아 보았다.
“도박은 천계에서 허락하지 않은 것이니 오늘부로 없애라.”
“아, 알겠습니다.”
“다만 간단한 게임을 하는 정도는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주인장은 전례 없이 너그러운 조치에 안색이 환해졌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리야는 내가 기쁘게 미소 짓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동.”
옮긴 장소는 집이었다.
순식간에 소란스럽던 공간을 벗어나게 되니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나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일리야 님….”
나는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입술이 틀어막혔다.
일리야가 입 맞춘 것이다.
그 때문에 가게에서 눈동자가 붉어졌을 때의 기억이 남아있는지, 지금 상태는 괜찮은지 등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일리야는 참아왔던 걸 터뜨리듯 날 갈망했다.
그렇게 입술이 떨어졌을 때, 가쁜 숨만이 정적을 채웠다.
그는 말없이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엄지로 뺨을 문질렀다.
모든 걸 뇌리에 각인하려는 사람처럼 시선으로 얼굴을 섬세하게 훑었다.
호감도를 보지 않아도 이 남자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뜨겁고 묵직한 시선이었다.
하나 흘러나온 목소리는 달콤한 행동과 달리 어둡고 눅눅했다.
그가 내 손을 감싸 쥐고서 입술에 가져다 대더니 고해하듯 중얼거렸다.
“널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이 감정을 깨닫지 말았어야 했어.”
“…….”
“하지만 늦어버렸군.”
그 말이 어쩐지 섬뜩하게 들렸다.
손을 빼내고 싶은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달콤한 마력에 모든 의지가 상실되었다.
“사랑한다.”
거부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그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사랑해.”
입술이 겹친 순간, 나는 눈을 감았다.
* * *
원로 천사 사무엘의 개인 서재.
그곳에 사무엘과 그의 아들인 자카리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무엘이 물었다.
“그 하급 천사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테레제입니다.”
“테레제……. 얼음 땅으로 보내졌던 천사였고 날개를 잃었다. 한데 일리야가 직접 중앙 본부로 불렀지. 참으로 기이한 일이군.”
자카리는 감정 하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사무엘은 보고서를 뒤적이며 헛웃음을 흘리더니 확신에 찬 어조로 읊조렸다.
“이건 절대로 하급 천사 따위가 아니다.”
“감별소에서 하급으로 판정받았습니다만.”
“그럼 감별소에서 판단 착오가 있었겠지. 너는 이 보고서를 읽고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냐?”
보고서에는 테레제가 중앙 본부에서 한 일들이 적혀있었다.
마치 신의 은총을 한 몸에 받은 것처럼 모두가 사랑하게 된 천사라고? 그딴 게 존재할 리가 없었다.
심지어 슬럼가의 한 음식점에서 군사경찰들에게 명령을 내린 일은 간과할 수 없는 징조였다.
군사경찰들은 여전히 그게 왜 잘못된 행동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보고서에 적혀있었다.
두렵고도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하나 자카리는 일리야가 무언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계급으로 정해진 이상의 권능은 가질 수 없다.
그건 신이 정한 절대불변의 규율이었다.
“특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눈여겨볼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성 강한 천사는 드물지 않게 존재합니다.”
“그건 단지 성격에 국한된 이야기다. 이 천사의 이상한 점은 성격이 아니라 능력이야.”
자카리의 시선에 의문이 담겼다.
그러자 사무엘은 다시 보고서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이 천사를 직접 만나봐야겠어.”
“현재는 중앙 본부에 없다고 합니다. 일리야 님만 행방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방만 알고 있겠느냐? 분명 어딘가에 숨겨두었을 거다.”
자카리는 처음으로 미간을 슬쩍 좁혔다.
“일리야 님이 그런 행동을 하실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사무엘이 피식 웃었다.
“너도 각인 매칭률이 높은 상대를 만나면 일리야가 왜 평생 하지 않은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는지 이해하게 될 거다.”
“하급 천사 테레제가 일리야 님과 각인 매칭률이 높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게 아니고서야 일리야의 행동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내 짐작으로는 조금 높은 수준이 아닐 거다.”
자카리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각인 매칭률 따위가 대천사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리야의 뒤를 밟아라. 분명 그 천사를 숨겨둔 곳으로 향할 거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예전에 하급 천사 테레제를 폐기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 있습니다. 하나 일리야 님의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어제 군사경찰대가 슬럼가의 천사들을 폐기하려고 했습니다만. 일리야 님은 그런 지시를 내리신 적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질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아버지께서 일리야 님을 사칭하여 내린 명입니까?”
자카리의 시선은 어떤 전조도 없이 고요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처럼 담담한 태도였다.
하나 사무엘은 그렇다고 대답하는 순간 자카리가 밀랍 인형 같은 표정으로 무자비하게 자신을 제압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융통성 없기로는 일리야보다 더한 녀석이었으니까.
사무엘은 무엄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물증도 없이 감히 원로 천사인 나를 의심하는 게냐?”
“부자지간에 여쭐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튼소리 말고 나가보아라. 공연한 의심을 받아 불쾌하구나.”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자카리는 미련 없이 서재를 나와 원로원의 복도를 걷던 중 이곳에서 마주치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과 조우했다.
“클라이드.”
이름이 불린 클라이드가 피식 웃으며 자카리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야, 오랜만이다.”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