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악역영애-157화 (158/277)

157화

“……?”

나는 잠시 의미를 생각하느라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혹시 나한테 밥 사주기 싫다는 뜻인가?’

기분이 약간 상하려는데 성좌들은 뭐에 신이 난 건지 저들끼리 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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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겨라! 짝! 굶겨라! 짝! 굶겨라! 짝! 굶겨라! 짝! 굶겨라! 짝! 굶겨라! 짝!]

띠링!

[성좌 ‘주책바가지’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아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입꼬리가 안 내려오네? ㅋㅋㅋㅋㅋㅋㅋ]

아닌가…?

아무튼 현재 중요한 건 중앙도시를 방문한다는 사실이었다.

“갈까요?”

내 말에 일리야가 마법을 사용했다.

“이동.”

시야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중앙도시의 외곽지인지 건물이 드문드문 있었다.

돌아다니는 천사도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스산한 기운이 풍겼다.

그러나 나는 이 장소가 어딘지 알았다.

“슬럼가네요.”

천사들도 결국 인간과 비슷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였다.

그랬기에 아무리 번화한 중앙도시라 해도 어두운 이면이 존재했다.

그게 이 슬럼가였다.

‘그래봤자 인간계의 낙후 지역에 비하면 매우 온건한 편이지.’

일리야의 미친 통제 때문에 천계의 범죄율은 말도 안 되게 낮은 수준이었다.

“여기를 지나면 고급 상점이 있는 상업지구가 나온다.”

그는 당연히 내가 고급스러운 곳을 가길 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나 지금 이 장소가 내 관심을 확 잡아끈 상태였다.

“그러지 말고 이 근처에서 먹을까요?”

“아는 곳이 없는데.”

그렇겠지. 고귀한 대천사가 슬럼가에서 식사할 일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나는 잘 알았다.

“저만 따라오세요.”

일리야는 나 때문인지 일을 일찍 끝내고 퇴근하는 일탈을 벌였다.

이왕 하는 일탈이라면 제대로 해야지.

나는 그를 데리고 서브 퀘스트가 숨겨진 장소로 향했다.

“정말로 알고 가는 건가?”

“그렇다니까요.”

“중앙도시에 온 적 없을 텐데 어떻게 알지?”

그 말에 아차 했다.

“…들었어요!”

“누구한테?”

되묻는 목소리가 살벌한데.

“누구였더라…?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일리야는 또 내 옷을 봤을 때처럼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가려던 음식점을 발견했다.

“여기예요. [클로버].”

딸랑!

문을 열자 종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내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은 저들끼리 모여 낮부터 술을 마시며 포커를 치고 있었다.

[클로버]는 밤낮 할 것 없이 음식과 술을 파는 24시간 도박장이었다.

일리야는 내가 데려온 음식점의 정체를 깨닫자마자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천계에 이딴 곳이 있을 줄이야.”

“숨 막히게 굴지 마시고 얼른 이리로 오세요.”

나는 그를 이끌고 카드 게임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저랑 밥값 내기로 한 게임 하실래요?”

카드 게임은 내가 잘하는 것 중 하나였다.

절대로 일리야를 이겨 먹어보고 싶어서 고른 건 아니다.

일리야는 날 보며 골치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날 이런 곳에 데려온 천사는 네가 처음이다.”

“그래서 좋다고요?”

“말을 말지.”

일리야까지 착석하고 나자 주인장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구운 빵에 고기 스튜나 블루베리 파이만 판매하오. 술은 맥주와 증류주가 있고.”

“하나씩 주세요. 그리고 딜러 없이 둘이서만 간단하게 내기 게임을 할 거예요.”

“그럼 테이블비만 따로 받겠소. 나갈 때 계산하시오.”

주인장은 카드 케이스를 내려놓고 떠났다.

내가 능숙한 동작으로 카드를 섞고 있으니 일리야의 눈썹이 휙 들렸다.

“이런 장소와 카드가 익숙해 보이는군.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나?”

“천사 사는 곳이 다 비슷하죠. 그리고 카드 섞는 건 어려운 것도 아닌걸요? 해보실래요?”

일리야는 침묵으로 거절했다.

나는 괜히 그를 놀리듯 요란한 손기술로 카드를 섞은 뒤 배분했다.

“일단 간단하게 원카드부터 할까요?”

그리고 5분 뒤.

“내가 이겼군.”

일리야는 내게 막 원카드 규칙을 배워 처음 해보았다.

한데 초심자의 행운인 건지 그가 이겨버리고 말았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한 번만 더 해요.”

내가 졌다.

“다시! 방금은 실수였어요!”

또 내가 졌다.

“아, 이제 손이 좀 풀리네. 이번엔 안 봐 드립니다.”

일리야는 좀 질려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난 그만하고 싶은데. 이 재미없는 게임을 언제까지 해야 하지?”

허! 차암나! 본인이 자꾸 쉽게 이겨서 시시하다고 말하는 거야?!

일리야는 그렇게 말한 적 없었지만 내 귀에는 조롱으로 들렸다.

“정 게임이 하고 싶으면 밥값 내기 같은 게 아닌 제대로 된 보상이 있어야지 않겠나.”

가진 것도 많으면서 뭘 뜯어가려고…….

“뭘 원하시는데요?”

“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거라고는 하나밖에 없을 텐데.”

그게 뭔데요?

나는 뚱한 얼굴로 생각하다가 뭔가 번뜩 떠올랐다. 설마?

“…혹시 스킨십이요?”

일리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본인 뺨을 가리켰다.

“외부이니 여기로 만족하지.”

“…….”

이 천사가 진짜 미쳤나 봐.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면 하게 될 텐데 어려울 거 있나?”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일리야는 태연하게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두들겼다.

나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그의 뺨에 후다닥 뽀뽀한 뒤 뒤로 물러났다.

“됐죠? 한 판 더 해요.”

그리고 또 졌다.

“……원카드는 사실 연습 게임이었어요. 이번에는 포커 치실래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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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하다 레제야…]

일리야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

“같은 걸로 한 번 더 하지.”

나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카드를 섞었다.

‘밑장 빼기 기술 같은 거라도 연마해둘걸. 너무 정직하게 살았어.’

한데 이번에는 내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이겼다.

“내가 졌군.”

“일부러 져준 거잖아요! 그것도 엄청 티 나게요!”

“그게 중요한가?”

부정도 안 하는 거 봐.

일리야는 내가 이겼다는 결과를 얻었으면 그걸로 된 게 아니냐는 표정으로 카드를 내려놓았다.

“당연히 중요하죠. 자존심의 문제거든요.”

“이상한 자존심을 부리는군. 그 열의를 시험에 쏟으면 좋겠는데.”

그때 주인장이 음식을 가져오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렇게 사이가 좋은 부부는 내 평생 처음 보는군.”

일리야가 반박했다.

“부부가 아니,”

나는 얼른 그의 입에 빵을 쑤셔 넣었다.

음식점에서 뽀뽀하라고 시켜 놓고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말하면 퍽이나 정상적으로 보겠다.

여기가 슬럼가라고 해도 천계는 천계.

이런 행위는 각인한 부부 사이에서나 가능했다.

“응? 뭐라고 했소?”

나는 하하 웃으며 다급히 말을 돌렸다.

“남편이 꼭 칭찬만 들으면 이래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아하. 꽤 상위 계급 천사인가? 그쪽은 확실히 감정 표현에 서툴지. 껄껄.”

“조금 그렇기는 하죠?”

상위 계급 천사를 바보 취급하는 듯한 말에 일리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면서도 굳이 더 따지지는 않았다.

대신 뭐에 자극받았는지 대놓고 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왜 이래?’

나는 일리야가 또 엄한 소리를 하면 입에 쑤셔 넣기 위해 빵을 들고 있었으나 허무하게 빼앗겼다.

일리야는 우아하게 먹던 것을 삼킨 뒤 입까지 닦고 나서 말했다.

“식사 예절에 어긋난다.”

참 지독하다 싶었다.

그는 식사로 나온 스튜를 작은 그릇에 덜어 내 앞에 놔주었다.

정말 부부라도 된 듯 다정한 행동이었다.

주인장이 그런 우리를 보며 눈을 흘기면서도 실실 웃음 지었다.

“허허 참. 계급 차가 꽤 나는 듯한데도 사이가 좋아 보여 좋군. 오래오래 잘 지내라는 의미에서 서비스로 맥주 한 잔씩 드리리다.”

그 말에 문득 의아해졌다.

‘내가 상위 계급이 아니라는 걸 알아본 것 같은데 어째서지?’

지금은 제복이 아닌 일상복 차림이라 계급을 유추할 요소가 없었다.

궁금함에 주인장에게 물어보자 그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느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인은 겉모습만 보면 대천사 같소. 하지만 어떤 상위 계급의 천사가 카드 게임에 빠삭한데다 그렇게 체통 없이 열을 올리겠소?”

“…….”

안 들을 걸 그랬다.

“그리고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겠소.”

“분위기요?”

“부군은 누가 봐도 상위 천사의 분위기를 풍기잖소. 하나 부인에게는 어쩐지 친근함이 들더군.”

그 말이 나오자마자 곁에서 짤막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주인장이 껄껄 웃었다.

“부군이 아내 때문에 꽤나 마음고생했나 보구먼.”

“네에? 그런 적 없는데요?”

“아무튼 여기로 잘 왔소. 상위 천사들이 즐비한 상업지구로 가봤자 좋은 꼴 못 봤을 거요. 하지만 여기는 천계에서 가장 평등한 곳이라 안전하다오.”

그러고는 우리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물러났다.

아니, 왜 내 반박은 무시하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주인장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자 일리야가 특유의 무심한 투로 물었다.

“내가 먹여줘야 하나?”

그냥 밥 먹으라고 하면 될 것을 꼭 이렇게 밉게 말했다.

이런 걸 보면 클라이드와 형제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숟가락을 막 들었을 때였다.

콰앙!

갑자기 가게 문이 부서질 듯이 거칠게 열리며 제복을 입은 상급 천사들이 척척척 들어왔다.

그들은 하나 같이 진압봉을 쥐고 있었다. 군사경찰들이었다.

군사경찰 중 통솔자로 보이는 천사가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내부를 훑더니 명령했다.

“이 쓰레기들을 싹 다 밀어버려라.”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무리 군사경찰이라고 해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남의 영업장을 침입하시다니요!”

“닥쳐라! 이는 모두 일리야 님의 뜻이다!”

가만히 사태를 지켜보던 일리야가 미간을 꿈틀거렸다.

군사경찰은 감히 자신에게 대든 주인장을 발로 걷어차며 두려움에 떠는 다른 천사들에게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 때문에 천계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얼음 땅이 점점 번지고 있는 와중에 마정석을 캐러 가지는 못할망정!”

“그건 너부터 하면 되겠군.”

일리야는 어느샌가 앞장서서 고함을 내지르던 군사경찰의 머리통을 테이블에 내리찍었다.

빠악!

“크아악!”

그러자 주변에 포진되어 있던 다른 군사경찰들이 당황한 기색으로 서둘러 진압봉을 펼쳤다.

철컥! 철컥! 철컥!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즉시 폐기 처분하겠다!”

일리야는 손바닥 아래에 짓눌린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남들이 보면 그저 무심해 보일 표정이었으나 나는 그의 기분이 어떤지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일리야는 지금 군사경찰을 죽일 생각이다.

“크으윽! 당장 놓지 못하겠나! 뭣들 해?! 이 자식을 죽여!”

하나 군사경찰들이 움직이기도 전, 일리야의 머리카락이 원래의 검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또한 살짝 흐릿한 인상으로 보이도록 걸어둔 마법도 사라졌다.

옷 역시 대천사의 제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

“…….”

“…….”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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