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 * *
[“네게 키스하고 싶군.”]
오즈월드는 그 어떤 잡음도 끼어들지 않고서 진행되는 방송 화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최근 여러 가지로 바빠서 뒤늦게 지난 내용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영상은 무척이나 아름답게 송출되었다.
오즈월드 컴퍼니에서 몰입감을 위해 후원 알림을 없앤 모양인지 로맨스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 더 숭고한 사랑마저 느껴졌다.
역겹게도.
“오즈월드 씨! 여기쯤이면 될까요?”
안전모를 쓴 인부가 설계도를 들고서 다가오자 오즈월드는 화면을 내렸다.
그는 현재 웬 한적한 공터에 나와 있었다.
“네. 여기가 좋겠습니다.”
인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설계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럼 바로 설계 시작할게요. 한 일주일쯤 걸릴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오즈월드는 푸른 잔디를 밟으며 느릿하게 저택이 세워질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을 낀 저택의 위치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는 어떤 성을 써야 할까요?”
그의 질문에 허공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주인님은 매번 다른 성을 써서 이제 남은 것도 없다. 그냥 예전에 쓰던 걸 썼으면 좋겠다.”
“그럴 수는 없죠, 키케.”
이름을 불린 키케가 아래로 폴짝 뛰어내리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테레제와 만났을 당시와 달리 어느새 훌쩍 커져서 성인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키케는 <신의 유희> 속에 들어온 게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미하게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이제 이런 악취미는 그만둔 줄 알았는데.”
오즈월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키케와 베니토 두 사람 다 테레제를 보고 싶어 했잖아요?”
“그런 적 없다. 단지 같이 토스트를 먹으면 좋겠다고 한번 말했을 뿐이야.”
“그게 그거죠.”
오즈월드는 피식 웃더니 강 너머로 보이는 건물을 응시했다.
“곧 함께 토스트를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곳은 마법 학교 발할라였다.
* * *
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일리야와 함께하게 되었다.
그래봤자 이제 이틀째였지만.
아마 일리야는 눈치 못 챈 것 같지만 나는 잠들지 않는다. 아니, 잠들지 못한다.
자각몽을 꿀 때 그 안에서 다시 잠드는 게 거의 불가능하듯, 비슷한 감각이었다.
게임은 장면과 장면 사이의 쓸데없는 일이 생략된다.
하나 현실은 그러지 못하기에 나로서도 예상치 못한 정신적인 피로감이 쌓였다.
‘이래서는 한 달 버티는 것도 힘들 거 같은데.’
내가 눈꺼풀을 비비며 책을 잠시 내려놓자 출근하기 위해 제복을 차려입고 나온 일리야가 다가왔다.
접촉할 시간이었다.
그는 나를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로 내가 읽던 책을 확인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책인데 집중을 못 하는군.”
그거야 당신 기준이고요.
나는 괜히 반박해 쓸데없이 기력을 소모하는 대신 그의 품에 편안하게 몸을 기댔다.
띠링!
[성좌 ‘예비 사위 일리야’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 자연스러운 스킨쉽… 이게 부부가 아니면 뭔데ㅠ]
일리야가 갑자기 악몽을 꾼 것처럼 잠에서 깨어났던 날,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접촉하면 서로의 마력이 반응한다는 거였다.
게임에서 결혼 시스템으로 서로 버프를 주고받는 것처럼 무려 999%의 각인 매칭률을 자랑하는 우리의 접촉이 서로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치를 상승시켰다.
이는 각인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였다.
‘우리는 각인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효과가 발생하고 있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이 세계가 내게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짐작했다.
아무튼.
이렇듯 그와 붙어있으면 내 정신적 피로감도 누그러들었다.
‘이러다가 이 감각에 너무 의존하게 될 거 같아서 무서울 정도야.’
나는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친 채로 물었다.
“이러고 있는 게 버릇이 되면 어떡하죠?”
일리야는 내 머리칼을 쓸어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상관없다.”
“나참. 그러다가 제가 회의장까지 쫓아가면 어쩌시려고요.”
“따라오겠나?”
“뭐라고요?”
“마침 오늘 원로 회의가 있다.”
“진심으로 하는 말 아니죠?”
“진심이다.”
대천사만 참석할 수 있는 원로 회의에 날 데려가겠다고? 미친 소리였다.
애초에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원리원칙을 지키는 일리야가 내뱉을 말이 아니었다.
타락 천사가 된 일리야라면 모를까.
‘고장이 났나?’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일리야를 살피고는 그의 두 뺨을 감싸 쥐었다.
“혹시 어디 아파요?”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냅다 어디 아프냐고 묻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띠링!
[성좌 ‘미운 22살 테레제’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무례제 on]
무례제는 뭐야? 설마 무례랑 테레제 합성어는 아니겠지.
일리야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돌연 고개를 돌려 손바닥에 키스하고는 날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
뭐, 뭐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띠링!
[성좌 ‘교수님이 날 막 조종하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띠링!
[성좌 ‘도파민중독’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당장 각인해! 당장 각인해! 당장 각인해! 당장 각인해! 당장 각인해! 당장 각인해! 당장 각인해! 당장 각인해! 당장 각인해!]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성좌들은 잔뜩 신난 기분을 후원으로 한껏 드러냈다.
일리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날 데리고 중앙 본부로 이동했다.
‘해명도 안 해? 그냥 이대로 넘어간다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제대로 매달리지 않았다가 추락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단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 순간 일리야의 입매가 호선을 그리는 걸 본 것 같기도 했다.
성좌들의 후원 도배로 인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중앙 본부에 도착하자 델리오스가 마중을 나왔다.
“오셨습니까, 일리야 님.”
내가 일리야의 침실에 머물기로 했다는 사실을 들은 델리오스는 “앞으로 저는 곧장 중앙 본부로 출근하겠습니다.”라며 음흉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나와 일리야가 조만간 각인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우리는 또 따가운 눈총을 한 몸에 받으며 집무실로 이동했다.
델리오스는 무엄한 눈빛을 보내는 천사들의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어 하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일리야 님의 명만 아니었으면 당장 매칭률을 공표했을 텐데. 감히 이 귀중한 인재도 못 알아보고 불충한 눈빛들이라니.”
‘이 천사도 날이 갈수록 좀 이상해지는 거 같은데. 묘하게 미모사가 생각나.’
그러거나 말거나 일리야는 나를 데리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소파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책들을 보니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 내 상태도 모르고 일리야가 또 과제를 냈다.
“책을 전부 읽고 조건에 맞는 마력 회로를 설계해서 가져와라.”
띠링!
[퀘스트: 훌륭한 천사가 되기 위한 기본 소양 쌓기Ⅵ]
▸보상: 다음 업무 진행
▸실패: 재시험
나는 발할라에서보다 더 지독한 마법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다.
덕분에 간단한 마력 회로 설계는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하루에 세 번도 넘게 시험을 치는 게 말이 돼?!’
마법서를 읽는 건 흥미로운 일이지만 시험을 보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시험이 싫다. 공부 말고 격렬하게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차라리 청소가 나을 거 같은데.’
하지만 일리야의 집무실은 너무 완벽한 상태로 관리되고 있어 [정리벽] 스킬로 확인해도 손댈 구석이 없었다. 불행한 일이었다.
내가 울적한 표정을 짓자 일리야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자 보다 못한 델리오스가 말했다.
“공부가 지겨운 모양입니다. 드물지만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 싫증 내는 천사들이 종종 있지 않습니까.”
일리야가 내게 물었다.
“델리오스의 말이 사실인가?”
공부가 지겹고 하기 싫다는 말을 당당히 하는 게 부끄럽긴 했으나 너무 신물 나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일리야는 조금 마뜩잖아하며 내 의견을 반영해주었다.
“그럼 이번 시험만 끝나면 한동안 학습 활동은 중지하도록 하지.”
‘안 할 생각은 없나 보네…….’
그래도 잠시라도 시험을 안 치르는 게 어디인가?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만 끝내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없던 의욕이 솟아나 집중도 잘 됐다.
‘마법을 설계하는 건 꽤 재밌기도 하고.’
슥슥슥.
“다 됐어요!”
나는 일리야가 과제로 내준 기존의 마법 3가지를 합성해 전혀 다른 속성의 마법으로 만드는 마력 회로를 설계해 제출했다.
일리야는 내가 설계한 마법을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신선한 발상이군.”
훗. 창의적이라는 칭찬에 우쭐해졌을 때였다.
“아무도 이런 쓸데없는 마법은 연구하지 않을 텐데.”
끝까지 들어보니 칭찬이 아니었다.
내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자 일리야가 설계도를 내려놓으며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의아하게 붙어서니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도 회로를 연결하는 게 능숙해졌군. 잘했다.”
띠링!
[퀘스트: 훌륭한 천사가 되기 위한 기본 소양 쌓기Ⅵ 완료]
▸보상: 다음 업무 진행
역시 결론적으로는 잘한 게 맞았다.
내가 우쭐거리며 웃고 있을 때, 델리오스가 뚱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원로 회의에 가실 시간입니다.”
일리야는 홀로 원로원으로 떠나기 전에 내게 말했다.
“그럼 공부하지 않을 동안 델리오스의 지시에 따라 원래 임무를 수행해라.”
“원래의 임무요?”
그게 뭐였지? 곡괭이질? 그건 시험보다 더 싫은데…….
델리오스가 눈을 부라렸다.
“서포터 말입니다. 서포터.”
“아, 맞다.”
나 이제 서포터였지? 깜빡 잊고 있었네.
BJ악역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