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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47화 (148/277)

147화

“……네?”

내 바보 같은 물음에 대답은 없었다.

대신 커다란 손이 내 뺨을 가득 뒤덮을 듯이 감쌌다.

살짝 맞닿아있던 코끝이 부드럽게 피부를 쓸고 지나갔다. 그가 고개를 비튼 것이다.

하나 입술이 닿진 않았다.

온기마저 느껴질 거리에서 멈춘 입술은 잠시 그 상태로 머물렀다.

분명 닿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입술을 겹치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긴장감에 전신이 뻣뻣해졌을 무렵.

일리야가 고개를 떨어뜨리며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역시 아름다운 천사의 유혹에 함락당할 수 있는 평범한 남성체 천사에 불과했군.”

꽤 굴욕적이라는 반응이었다.

띠링!

[성좌 ‘도파민 중독’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허억 허억 나 방금까지 숨 참고 봤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후다닥 그의 무릎에서 내려오려 했다.

하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은 팔 때문에 실패했다.

“저기, 일리야 님. 팔 좀 치워주실래요?”

“어째서?”

“어째서라니요? 이러고 있는 게 이상하니까 그렇죠.”

“방금까지도 잘 있었지 않았나?”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유혹에 굴복당해서 불쾌하신 거 아니었어요?”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한 남성체와 똑같은 짓을 한 건 불쾌하다. 하지만 그게 널 놓아주고 싶다는 말은 아닌데.”

분명 똑같이 무표정한데, 이상하게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일리야는 날 안은 채로 아예 소파에 몸을 깊숙하게 기댔다.

“잠시만 이러고 있지.”

“네? 왜요?”

“너와 닿아있으면 가끔 느껴보았던 기분이 들어.”

“…어떤 기분인데요?”

일리야는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는 표정으로 잠시 고민했다.

“내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다. 그 애가 엉뚱한 짓을 할 때나, 어쩌다 날 찾아왔을 때 느끼던 감정과 비슷해. 하지만 이건 즐거움도 반가움도 아닌데…….”

그 감정의 이름은 아마도 행복함이리라.

마음이 착잡해졌다.

느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이름조차 모르는 기분이 ‘행복’이라니. 속상하고 슬펐다.

속이 끓도록 차오르는 죄책감에 나는 일리야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행복에 서툰 사람이지만 일리야는 이제부터라도 행복이 익숙해졌으면 했다.

일리야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서툰 동작으로 내 등을 안고는 목덜미에 뺨을 댔다.

그 작은 행동들에서 그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항상 유지하고 있던 모든 긴장감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 그는 지금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었다.

“…….”

일리야가 숨소리에 가깝게 중얼거렸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갑자기 흐르는 눈물처럼 새어 나온 말인 듯했다.

그래서 들리지 않았지만, 무슨 말이었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지금까지 잘했다고 칭찬하듯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온기로 대화를 나누듯 오랫동안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 * *

그날 일리야는 꿈을 꾸었다.

타락 천사가 된 자신이 웬 머저리 같은 인간과 계약하는 불쾌하고 이상한 꿈이었다.

“나와 계약하면 네 수명이 끝나는 날 번스타인 가문의 모든 인간은 지옥으로 끌려갈 것이다. 그래도 나와 계약할 생각인가?”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듯한 번스타인 공작이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진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전부 죽을 목숨입니다.”

번스타인 공작에게는 병든 아내와 사람 구실 못 하는 개차반 같은 장남, 똑똑하고 정의로운 성격의 차남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후계자로 내심 생각했던 자랑스러운 차남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방구석에 누워 있었다.

번스타인 공작이 죽인 거였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차남은 당장 황제 폐하께 달려가 섭정에 간섭했던 가문은 스콰이어가 아니라 번스타인이었음을 이실직고했을 테니까.

아들은 유지스 황제가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지 몰랐다.

그 황제가 제 어미를 어떻게 벌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번스타인 공작은 절대로 가문의 치부를 밝힐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스콰이어 공작가만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됐지만, 원래 정치란 그런 것이었다.

“아내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조사가 들어오게 될 테고, 이 아이가 숨겨둔 가문의 비리에 대한 증거물이 어디선가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번스타인 공작은 그 증거물을 없애 달라고 빌었다.

또한, 죽은 아들을 대신할 존재를 만들어달라고 애원했다.

일리야는 문득 이게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네 둘째 아들이 되겠다. 대신 소원의 대가는 받지 않으마.”

일리야는 제 모습 그대로 인간계에 현신했다.

새까맣게 물든 날개가 사라지고 붉게 타오르던 눈동자도 암녹색이 되었다.

인간인 척하는 것도 역겨운데 번스타인 차남의 껍데기 그대로 사는 건 더욱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아블로 님. 그 모습은 제 아들과 다릅니다만…….”

“인간들의 기억 따위야 조작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날 일리야라고 불러라.”

일리야는 마신에게서 받은 이름인 아블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랬기에 아블로도, 번스타인 공작의 차남 이름인 론도 사용하지 않고 대천사일 때의 이름을 사용했다.

…혹시나 그 이름을 쓰면 반인반마로 태어난 제 쌍둥이가 전생의 기억을 각성하지는 않을까, 미련한 기대가 담겨있었다.

제 쌍둥이는 이번에도 ‘클라이드’였으니 자신도 ‘일리야’여야 했다.

그렇게 짧은 유희처럼 인간 교수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는 <속성 마법>이라는 분야의 권위자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솔직히 열의는 없었다.

제자를 거의 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대단히 어려운 학문의 교수가 된 건데, 클라이드가 전공으로 선택했을 때는 조금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웬 멍청한 여자애가 클라이드를 따라와 제자가 되었다.

솔직히 그 여자애의 존재는 기억에서 지운 채 지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교수님!”

관심도 두지 않았던 제자가 자신을 반갑게 외쳐 부르며 호의 가득한 얼굴로 다가온 순간, 뭔가가 달라졌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상대가 아니라 자신의 변화였다.

‘……이게 무슨 감각이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테레제가 하찮은 인간의 몸으로 고군분투하는 순간들을 지켜보며 처음으로 인간의 삶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성가신 변화이자 변수였다.

그는 목적에 일생을 전부 바치는 성격이었다.

오직 하나를 위해 살아왔고 살아갈 예정이었다.

하나 언제부터인가 테레제가 뇌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애는 이상했다.

원래의 테레제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감지되는데, 그 안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영혼이 들어왔음을 깨달은 순간부터는 더욱 눈을 뗄 수 없게 되었다.

호기심이라고는 오직 학문에 국한되어 있던 자신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같이 있으면 편안했고 즐거웠다.

아주 드물게 느껴본 기분이었다.

반려를 맞이하게 된다면 이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

일리야는 날카로운 송곳에 푹 찔린 것처럼 눈을 번쩍 떴다.

심장에 구멍이 난 듯했다.

아니. 육신이 절반으로 쪼개진 듯한 고통이었다.

이미 꿈의 내용은 잊어버린 뒤였다.

잠에서 불쾌하게 깨어난 그에게 남은 건 증오와 분노, 슬픔이 전부였다.

분명 마린이 이상 없다고 했었는데 어째서 이런 망가져 버린 천사나 겪을 법한 증상이 나타난단 말인가?

일리야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일리야 님?”

그때 늘 혼자 쓰는 침실에서 가늘고 우아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악몽을 꾸셨어요?”

테레제가 걱정하는 얼굴로 다가와 식은땀에 젖은 이마를 닦아주었다.

일리야는 잠시 눈을 감았다.

사납게 들끓는 감정을 억누르며 이성을 차렸다.

‘…테레제를 빛의 탑으로 데려왔었지.’

하급 천사인 테레제는 거처가 없었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자신의 거처로 데려왔고 이곳에서 머물라고 했다.

테레제는 침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고, 자신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잠들어버렸었다.

일리야는 기억을 차례대로 정리하고 나서야 간신히 평소와 같은 상태로 돌아왔다.

그러나 눈은 뜨지 않았다.

테레제가 자신의 품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안아주었을 때 나빴던 상태가 괜찮아졌다는 말을 떠올린 듯했다.

그건 적절한 조치였다.

목장에서처럼 지금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자신을 감싸며 속을 헤집던 고통을 없애주었기 때문이었다.

일리야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등이 보였다.

그는 두 팔을 들어 날개가 타버린 자리를 꽉 끌어안았다.

테레제가 멋대로 자신을 떠날 수 없음에 만족감을 느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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