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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145화 (146/277)
  • 145화

    실패 페널티가 폐기가 아니라 재시험이라는 것조차 심히 일리야다워서 소름 끼쳤다.

    ‘잠깐만. Ⅰ? 이건 또 왜 붙어있는 건데? 어서 꿈에서 깨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이 책을 다 읽으라는 거냐고!’

    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끙끙거리자 일리야는 잠시 침묵하더니 퍽 관대한 제안을 해왔다.

    “이해하기 어려울 건 얼마든지 물어봐도 좋다.”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

    ‘아니지. 공부를 핑계로 일리야와 붙어있을 수 있으니 좋은 기회인 건가?’

    가뜩이나 답도 없는 상황인데 그와 떨어져 있는 건 좋지 않았다.

    나는 책을 끌어안으며 불쌍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읽어도 될까요? 모르는 게 생겼을 때 바로 질문하지 않으면 까먹을 수도 있잖아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당당하게 내뱉자 일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군. 그렇게 해라.”

    “…감사합니다.”

    집무실에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쉽게 얻은 건 좋은데, 이상하게 열받네?

    똑똑.

    그때 집무실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와라.”

    일리야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온 천사는 다름 아닌 델리오스였다.

    그는 깍듯하게 예를 갖춘 뒤 잠깐 날 홉뜬 눈으로 노려본 후 용건을 전달했다.

    “일리야 님께서 중앙 본부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린 주치의를 이쪽으로 데려왔습니다.”

    “아. 빛의 탑으로 가겠다고 했었는데, 잊어버렸군.”

    “마린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하급 천사를 내보낸 후 바로 들이겠습니다. 검진받아보시지요.”

    델리오스는 날 내보내고 싶어 안달인 표정을 억지로 숨긴 채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나갈 생각이었거든요?’

    일리야의 건강 상태에 따라 천계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만큼 기밀한 사안이었기에 하급 천사에 불과한 나는 밖에 나가 있는 게 옳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델리오스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 하자 일리야가 말했다.

    “여기에 있어라.”

    “네?”

    “예?”

    그의 말에 나와 델리오스 둘 다 깜짝 놀랐다.

    “마린에게 들어오라고 해.”

    나는 다시 소파에 앉지도, 나가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었다.

    델리오스는 마뜩잖으나 일리야의 명을 따랐다.

    곧 복슬복슬한 더벅머리 천사, 마린이 깡충깡충 뛰는 듯한 경쾌한 걸음으로 집무실을 들어왔다.

    “오랜만에 절 부르셨군요, 일리야 님!”

    사이보그 같은 일리야의 곁에 있기에는 과도하게 발랄한 천사였다.

    “걸음.”

    일리야가 한마디 하자 마린이 아차차, 하며 얌전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날 발견하더니 매우 신기해했다.

    “오, 당신이 그 하급 천사죠?”

    대체 소문이 어디까지 난 거야?

    마린이 내게 정신이 팔리자 일리야가 무뚝뚝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마린.”

    “핫, 죄송합니다. 제가 천사치고 호기심이 좀 많은 성격이라서요.”

    네, 잘 알죠.

    나는 그런 수더분한 마린이 좋았기에 괜찮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그래도 실력 하나는 확실합니다. 그럼 이제 상태를 볼까요?”

    마린은 청진기를 꺼내 일리야의 상태를 점검해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별다른 이상은 안 느껴집니다. 혹시 어디가 불편하신 겁니까?”

    “일시적이지만 회의 중에 갑자기 이명이 들리고 무호흡증이 왔다. 감각이 이상해지기도 했고.”

    일리야는 돌연 날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 저 하급 천사와 접촉한 순간 증상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그러자 집무실에 있던 모두가 날 쳐다보는 상황이 벌어졌다.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띠링!

    [성좌 ‘주식 천재’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접촉으로 병이 낫는다고? 이거 된다. 되는 주식이다.]

    마린은 나를 보며 “호오.”하고 흥미로워하는 기색을 드러내더니 일리야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앉으라는 뜻인 듯했다.

    “혹시 제가 테레제 씨의 상태를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네에, 그러세요.”

    나는 일리야의 옆자리에 엉덩이 끝만 불편하게 걸친 자세로 어색하게 앉았다.

    마린은 날 진찰해보더니 더 미궁에 빠진 것처럼 입술을 세모로 만들었다.

    “흐음. 이상하네요. 별 특별한 건 안 느껴지는데…….”

    그는 나와 일리야를 번갈아 확인하다가 문득 아공간을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끄집어냈다.

    000이라고 쓰인 패널이 붙은 직육면체 기계였다.

    생김새만 보면 플립 시계나 습도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델리오스가 가만히 상황을 보고 있다가 의아하게 물었다.

    “그건 각인 매칭률 테스트기 아닙니까?”

    “맞아요!”

    “그걸 왜 지금 꺼내는 겁니까?”

    [성좌들이 각인 매칭률이 무엇인지 궁금해합니다.]

    각인 매칭률.

    그건 말 그대로 ‘각인’을 시도했을 때 성공 확률을 뜻하는 말이었다.

    각인은 천사들이 서로의 영혼을 결속시켜 평생 함께할 반려를 맞이하는 행위였다.

    그런 행위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각인해야 임신할 수 있으니까.’

    천사는 보통 천계수 나무에서 열매로 태어나지만, 대천사는 반드시 임신과 출산을 통해서만 태어난다.

    ‘부모가 될 천사 중 하나는 반드시 대천사여야 한다는 조건도 있지.’

    각인하려면 최소한 80% 이상의 매칭률이 나와야 했다.

    하나 천사의 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매칭률이 잘 나오기가 어려워, 대천사의 경우는 50%를 넘는 경우도 드물 정도였다.

    이것이 대천사의 탄생이 희귀한 이유다.

    특히 일리야는 각인 매칭률이 역대급으로 저조하기로 유명했다.

    천사는 굉장히 긴 시간을 살지만, 영원히 사는 건 아니었다.

    그랬기에 천사들은 언젠가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테니 일리야처럼 우수한 천사가 반려를 맞아 새로운 대천사를 낳아주기를 원했다.

    ‘종마 취급이지 뭐.’

    아무튼.

    매칭률 테스트기에서 뜰 수 있는 최대 수치는 100이었다.

    ‘리비로 정상적인 플레이를 했을 때는 매칭률이 99%가 나오지.’

    100은 사실상 존재는 하지만 나올 수 없는 숫자였다.

    그렇게 설정했기 때문이었다.

    델리오스는 마린이 각인 매칭률 테스트기를 꺼낸 행위 자체에 모욕을 느낀 사람처럼 표정을 구겼다.

    “지금 이 하급 천사가 감히 일리야 님의 반려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델리만쥬 이 자식 플래그 세우네 ㅋㅋ 가능할 거 같은데?]

    띠링!

    [성좌 ‘하하버스’ 님이 100,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스으으으읍(들숨)하아아아아(날숨)스으으으읍(들숨)하아아아아(날숨)스으으으읍(들숨)하아아아아(날숨)]

    마린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도 옛 문헌으로만 보아서 확신할 수 없지만, 각인 매칭률이 높은 짝을 만나게 되면 특별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더군요.”

    “대천사와 하급 천사의 매칭률 테스트라니.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나 참. 누구는 좋은 줄 아나.

    ‘나도 이런 테스트 하기 싫거든요?’

    일리야는 열을 올리는 델리오스에게 손을 내저었다.

    “나는 상관없다. 진행하지.”

    대천사와 하급 천사의 격은 아예 비교할 수조차 없기에 테스트해봤자 1%의 매칭률도 뜨지 않는다.

    …그런데 왜 뭔가 뜰 거 같지?

    “그럼 두 분 다 테스트기에 손가락을 대시고 마력을 흘려 넣어주시겠어요?”

    나와 일리야는 동시에 손을 얹어 마력을 불어넣었다.

    타다다다다다닥!

    테스트기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숫자 패널 세 개가 동시에 미친 듯이 휙휙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게 왜 이러지?”

    탁!

    이내 패널이 동작을 멈췄다.

    999.

    “…….”

    “…….”

    “…….”

    “…….”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자 집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일리야조차 눈썹을 꿈틀거리며 날 쳐다볼 정도였다.

    ‘저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니까 그렇게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 주실래요?’

    마린은 “이게 왜 이러지? 오랜만에 써서 문제가 생겼나?”하며 테스트기를 흔들고 두드려보다가 머쓱하게 제안했다.

    “어… 음, 다시 해볼까요?”

    “그러지.”

    그렇게 다시 매칭률을 테스트했다.

    999.

    “하, 한 번만 더.”

    999.

    “…다른 테스트기를 꺼낼게요. 이걸로 해보면 정확한 값이 뜰 겁니다.”

    999.

    “이게 왜 이래?!”

    몇 번이나 새로 매칭률을 테스트해보았지만, 결과는 전부 999였다.

    보다 못한 델리오스가 입을 열었다.

    “그냥 이게 맞는 거 아닙니까?”

    누구보다도 날 격렬히 부정할 것 같았던 델리오스는 놀랍게도 합리적인 말을 내놓았다.

    “테스트기를 바꿨는데도 계속 같은 값이 나왔다면 고장보단 이게 유효한 결과라고 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델리오스의 두 눈에 점점 기이한 열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어떤 여성체 천사와 테스트해도 최대 매칭률이 49%로 그쳤었는데, 이런 결과라니……!”

    그러면서 날 보는 눈빛이 꼭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진짜였구나!’라고 감탄하는 느낌이었다.

    BJ악역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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