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오즈월드는 거짓말을 했다.
방송은 <신의 유희>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기반으로 진행한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필요에 따라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을 숨겼을 뿐이지.
아. 물론 다른 채널 관리자들은 꿈도 못 꿀 행위였다.
그만큼 엄청난 코인을 대가로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즈월드는 코인이 많았다.
얼마나 많냐면, <신의 유희>처럼 구현해야 할 게 많은 세계관을 현실로 탄생시킬 때 드는 코인을 대출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심지어 그런 세계를 몇 개나 더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보통의 채널 관리자들은 <신의 유희>처럼 코인이 너무나도 많이 드는 채널을 열려면 90% 이상 대출을 껴야 했다.
압도적인 부의 차이.
그것은 누적된 성공과 세월이 만들어낸, 메울 수 없는 격차였다.
그랬기에 그는 전지전능할 수 있었고, 자신의 선택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오즈월드가 통제실로 돌아가는 길에 알림창이 와르르 떴다.
[등장인물 ‘일리야’ 동기화 진행 완료]
[‘테레제 스콰이어’와 동일한 사망 조건이 부여됩니다.]
[등장인물의 격이 높아 추가 코인이 필요합니다.]
[등장인물 ‘일리야’의 데이터에 ‘대천사 일리야’ 데이터를 덧씌웁니다.]
[등장인물의 격이 높아 추가 코인이 필요합니다.]
“흐음.”
약간은 마뜩잖은 듯이 흘리는 침음성.
오즈월드는 필요한 추가 코인을 전부 내면서도 찝찌름한 기분이 들었다.
코인은 썩어 넘치도록 많다.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코인은 판테온에서 화폐로 사용되지만, 인간들이 사용하는 광물이나 종이 쪼가리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였다.
그랬기에 한 차원에 코인을 너무 많이 투입하게 되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딱히 그런 이유로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
오즈월드는 문득 깨달았다.
“충동적이었군.”
왜 찝찝한가 했더니, 일리야를 꿈속의 육신에 집어넣어 버린 게 충동에 의한 결정이어서였다.
이번 행동은 목적이 썩 명료하지 않았다.
테레제가 일리야를 죽여야 꿈에서 깰 수 있으니, 그 점을 이용해 자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보자는 정도로는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오즈월드는 화면에 비친 테레제가 페가수스의 비비적거림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확인했다.
“우는 얼굴이 보고 싶었나?”
그는 또 충동적으로 ‘심연’의 문을 소환했다.
핏자국과 그을음으로 뒤덮인 황금으로 된 문.
그가 사자의 머리를 조각한 문고리를 잡고 부드럽게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휘이이, 적막과 잘 어울리는 바람이 불었다.
저벅. 저벅.
오즈월드는 몇 발자국 떼지도 않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날이 맑았다.
한데도 이상하리만치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오즈월드의 시선이 성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폐허가 된 도시 전경이 두 눈 가득 비쳤다.
그의 심연은 여전히 멸망해있었다.
* * *
천계의 원로원 한가운데.
일리야는 사방을 에워싼 원로들 사이에서 돌연 발뒤꿈치부터 머리끝까지 껍데기가 확 뒤집히는 듯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뭐지?’
일시적인 무호흡. 그리고 이명.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이상 증상이 다발적으로 발생했다가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사그라들었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때 원탁에 앉은 원로 천사 중 하나가 물었다.
“왜 그러지? 뭔가 문제가 있나.”
일리야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쳐다보았다.
참 이상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보는 저 얼굴이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느껴질까?
왜, 화가 날까.
감정과는 별개로 일리야는 밀랍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속 말씀하시죠.”
그는 최근 천계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어 매일 무리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 내라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회의 중 집중력이 흐트러지다니.
완벽주의에서 기인한 자기 혐오감이 훅 일었다.
그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장로의 말을 기다렸다.
파도 하나 없이 물길을 따라 고요하게 이동하기만 하는 죽은 바다 같던 일리야의 내면에 이상한 변화가 생겨나고 있음을 원로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다들 비슷비슷하게 메마르고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 그대로네. 더는 단순히 운영을 잘하는 것만으로 천계를 독립적인 차원으로 유지하는 게 어렵다는 말일세.”
천계의 낙후 지역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었다.
또한 천계수에서 태어나는 천사 중 하급 천사의 비율이 높아졌다.
차원의 균열은 너무 빠른 속도로 확장되어갔다.
일리야의 대처로 천계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태평성대를 누리는 듯 보였지만,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리야는 제 머리로도 생각해내지 못한 특단의 조치라는 게 원로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지 약간 의아해졌다.
“어떤 겁니까?”
그의 대단히 무례한 생각을 모르는 원로가 입을 열었다.
“강력한 생체 에너지를 지닌 천사를 희생시켜 마계와의 차원 거리를 벌리는 것일세.”
왜 생각해내지 못했나 했더니 너무 원시적이어서였다.
“자네도 잘 알다시피 더는 마정석 정도로는 버틸 수 없네.”
원시적이지만 효과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일리야가 태어나기도 전의 과거에 이미 수차례 시행했던 방식이기도 했고.
하나 그가 천계의 운영에 대한 전권을 잡게 되면서 그 방법은 사용할 일이 없어졌다.
원로는 남의 눈치를 살필 위치가 아니었다.
가장 존경받는 천사인 일리야조차 그들에게 말을 높였고 고개 숙여야 하는 위치였다.
그럼에도 이 말을 꺼내기 전에는 일리야의 안색을 살펴야만 했다.
늘 그렇듯 일리야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었다.
천사에게 감정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각각의 개성이라는 게 존재했다.
다만 사회가 각자의 자유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있었다.
또한 차갑고 무심하고 이성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그렇지 못한 것을 열등하게 취급했다.
그런 사회 기조로 볼 때 일리야는 조건들에 완벽히 부합하는 천사였다.
원로는 그의 이성을 믿고 입을 열었다.
“어지간한 천사로는 수많은 이를 희생해야 하네. 그러나 클라이드라면 그 하나만,”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쿠구구구구구―
나직하고 웅혼한 울림이 회의장을 진동시켰다.
원로들의 낯빛이 바뀌었다.
“지금 실력행사 하겠다는 건가?”
짐짓 차가운 어조로 일갈하고 있었지만, 다들 바짝 긴장했다.
일리야가 정말로 실력행사 한다면 이들 중 절반은 소멸할 테니까.
“…….”
일리야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아직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화풀이하듯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일이었다.
그는 권태에 가까운 감정으로 요동치는 내면을 짓밟았다.
간신히 살의가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다.
다만 언제고 폭발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시죠.”
원로들은 한시가 시급한 중대한 사안을 마무리하지 않고 돌연 회의를 중단하겠다는 일리야의 결정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대의를 위한 일에 감정을 끌어들이는 자였던가?”
“실망스러운 모습이군.”
“천계는 위기 상황이네. 클라이드 정도의 천사가 아니면 최상급 천사를 모조리 희생시켜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일세!”
“오늘 회의는.”
일리야는 더없이 침착하게 원로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가 기세에 짓눌려 입을 다물었다.
“이 안건에 대해서는 다시 조사하고 다른 방안을 준비한 뒤에 진행하겠습니다.”
“…….”
“이틀 뒤로 하죠.”
일리야는 회의장을 나갔다.
마침 때맞춰 회의장으로 온 델리오스를 발견하자마자 그가 지시했다.
“클라이드의 위치를 파악해라.”
“알겠습니다.”
기분이 한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여태껏 이 정도로 기분이 더디게 회복된 적이 없는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조절되지 않았다.
‘클라이드를 언급해서겠지.’
그것만으로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마린을 집무실로 불러라.”
마린은 일리야의 주치의였다. 델리오스는 살짝 굳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빛의 탑으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일리야는 그렇다고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이상할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져 있어서일까?
제복의 안주머니 안에 뭔가가 들어있는 게 느껴졌다.
그는 의아하게 안주머니를 뒤졌고 손바닥에 부드럽게 잡히는 무언가를 꺼냈다.
‘……이게 뭐지?’
손수건이었다. 꽃과 나비가 수놓아진.
델리오스는 곁에 있다가 같이 목격하게 된 손수건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가 봐도 일리야의 물건이 아니었다. 여성체 천사가 준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더 희한했다.
‘일리야 님은 이성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데…?’
일리야는 손수건을 물끄러미 보더니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문득 그 여자가 떠올랐다.
“그 여자는 비서실에 있나?”
그 여자? 델리오스는 잠시 일리야가 하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뭔가 짚이는 바가 있어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혹시 하급 천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하급 천사의 동향은 왜 살피시는 거지?
‘아, 역시 일리야 님도 하급 천사가 본부에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건가?’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테레제를 발령낸 당사자가 일리야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델리오스는 사건의 내막을 모르고서 태연하게 보고했다.
“현재는 비서실에 없습니다. 맡긴 업무를 생각보다 빨리 끝내서 다른 곳에 업무 지원을 보냈거든요.”
“업무 지원? 나는 그런 걸 지시한 적 없는데.”
일리야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델리오스를 쳐다보았다.
델리오스는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대화에 당혹스러워졌다.
“하급 천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 같은 것밖에 없어서 말입니다. 페가수스와 상성이 좋아 보이던데, 목장에서 일하는 쪽이 본인에게도 더 좋겠죠.”
하급 천사 따위가 목장에서 기고만장하게 굴던 모습을 떠올리니 다시금 울화가 치밀었다.
하나 델리오스는 점잖게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지시하실 게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전달하겠습니다.”
지시할 건 없었다.
테레제가 할 일은 비서실에 존재하는 것 말곤 없었으니까.
“빛의 탑으로 가 있어라, 델리오스.”
“예? 일리야 님은 안 가시는 겁니까?”
일리야가 날개를 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여자를 확인하러 가겠다.”
그리고는 휙 떠나버렸다.
델리오스는 어정쩡하게 만류하듯 들어 올리다 만 손을 내리며 망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일리야 님이 왜 저러시지…?”
한 번도 저런 돌발 행동을 한 적 없는 분이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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